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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가스통 르루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가스통 르루는 중등교육을 마치고 법률가를 지망하였으나, 파리의 신문 기고가가 되었다. 코난 도일과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받아 심리소설 《테오프라스트 롱게의 이중생활(La Double Vie de Theophraste Longuet)》(1904)을 발표하며 탐정소설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림 신문 <일뤼스트라시옹(L’Illustration)>의 권유를 받아 연재한 장편소설 《노란 방의 비밀(Le Mystere de la chambre jaune)》(1908)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밀실과 범인의 행방불명의 수수께끼를 푸는 그 강렬한 매력으로 추리소설 가운데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발표한 《검은 옷의 부인의 향기(Le Parfum de la Dame en Noir)》(1909)에서는 전작(前作)에서 미해결로 끝난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특히 1910년에 그가 발표한 소설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은 작품성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1986년에는 뮤지컬로 각색되어 현재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지은이 : 브램 스토커
1847년 11월에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cm 장신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병치레가 잦았으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병약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동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불을 지폈던 모양이다. 그가 1882년에 첫 출간한 작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한 동화 모음집이었다는 사실에서 어머니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브램 스토커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서 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유명한 운동선수인 동시에, 철학학회나 역사학회 같은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매우 적극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더블린 정부의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는 승진을 거듭하면서 12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연극평론가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썼던 연극평론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우연히 읽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이 호기심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남녀가 첫눈에 반하듯이 처음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기투합하게 된 두 사람은 1905년에 어빙이 사망할 때까지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1878년에 라이시엄(Lyceum)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어빙이 스토커에게 극장 프로듀서 자리를 제안하자, 그는 추호의 미련도 없이 12년 근무했던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런던에서 그와 합류했다. 이때 그는 배우 지망생이었던 플로렌스 밸컴(Florence Balcomb)과 결혼한다.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의 구애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라이시엄 극장의 2인자로서 당시의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서 코넌 도일,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스토커는 극장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97년 ≪드라큘라≫를 출간하기에 앞서, 그는 ≪뱀의 고갯길(The Snake's Pass)≫이나 ≪샤스타의 어깨(The Shoulder of Shasta)≫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창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라큘라≫는 그가 영국 국립도서관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6년 이상의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쓴 많은 작품 가운데 ≪드라큘라≫만이 유일하게 계속해서 독자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의 출간 이후로 어빙과 스토커에게 여러 악재가 뒤따랐다. 1898년에 런던 외곽에 있던 거대한 무대장치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극장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어빙과 스토커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어빙이 사망한 이후로도 그는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나 ≪흰 벌레의 소굴(The Lair of the White Worm)≫과 같은 모험소설과 방대한 ≪헨리 어빙에 대한 개인적 회상(Personal Reminiscence of Henry Irving)≫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에 추측과 성찰이 가미된 ≪유명한 사기꾼들(Famous Imposters)≫을 발표했다. 이 마지막 책에서 그는 엘리자베스여왕이 사실은 여장한 남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문필가나 소설가로서 그의 존재는 미미했다. 1912년에 그가 사망했을 때도 동시대인들은 그를 다만 헨리 어빙의 조력자로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지은이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토목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아버지 뜻에 따라 에든버러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전공을 법학으로 바꿨다. 1875년에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나 개업에 뜻이 없어서 명망 있는 직업을 뒤로한 채 자신의 여행담을 기록한 첫 작품집 《내륙 기행》을 펴냈다. 여행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창작의 원천이 되었으며, 이후 꾸준히 여행에 관련한 이야기를 집필했다.1876년, 스티븐슨은 파리 근처의 한 마을에서 남편과 별거 중이던 11세 연상의 미국인 패니 밴드그리프트 오스번을 만난다. 그는 곧 사랑에 빠져, 1880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가족과 함께 결핵 치료차 스위스 다보스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의붓아들 로이드를 위해 《보물섬》 집필에 몰두했다. 1883년에 《보물섬》이 출간되자마자 그는 단번에 인기 작가로 명성을 높이게 되고, 이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등 많은 화제작을 발표했다. 1888년, 건강이 악화된 스티븐슨은 아내와 함께 고국을 떠나 남태평양의 사모아 제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베일리마’라고 이름을 붙인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에게 추장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주요 작품으로는 《유괴》 《발란트래 경》과 말년에 사모아 제도를 여행하며 쓴 《팔레사의 해변》 《썰물》 등의 여행기가 있다.
*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2
* 상상력이 낳은 무시무시한 괴물들 4
『오페라의 유령』
제1장 음악의 천사 8
제2장 유령이 나타났다! 24
제3장 가면의 비밀 34
제4장 크리스틴은 어디에 46
제5장 시련의 방 60
제6장 유령의 사랑 73
* 작품에 대하여 80
『드라큘라』
제1장 드라큘라 성으로 83
제2장 수수께끼의 백작 95
제3장 공포의 성 103
제4장 루시의 병 114
제5장 영원한 이별 128
제6장 다가오는 공포 136
제7장 드라큘라의 최후 150
* 작품에 대하여 160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제1장 수수께끼의 남자 163
제2장 지킬의 비밀 179
제3장 사라진 하이드 190
제4장 서재 안의 남자 201
제5장 래니언과 지킬의 편지 210
* 작품에 대하여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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