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공석영 시집.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미주지역에서의 고단한 이민생활 14년을 홀로 이겨낸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87편의 시들과 36편의 시조를 통해 들려준다.
출판사 리뷰
이 시집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미주지역에서의 고단한 이민생활 14년을 홀로 이겨낸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87편의 시들과 36편의 시조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의 절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家長)인 여느 아버지의
눈물이자 생생한 일기장이다.
“이민 후 파산과 이혼으로 가정을 잃고 알거지 됐을 때 무너져가는, 자꾸 약해져만 가는 나 자신을 다독이고 추스리는 방편으로 일기를 쓰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고난 글재주가 워낙 가난해 써놓은 글들이 모두 화장실 낙서만도 못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내 인생의 발자취이자 발가벗은 내 영혼 몇 편을 추려서 엮었다. 비록 투박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지만 바늘 끝 만큼도 거짓 없는 내 파란 마음의 투영이다.”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이 시집의 내용중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벽파 김정건 교수님을 그립니다
교수님 내외분의 소식을 교수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서 그리고 저의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서 많이 기쁩니다. ‘born crying, live complaining and die disappointed’라고 당신께서 정년 퇴임식 때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 불평과 실망을 동시에 하며 삽니다.
야간 대학원 재학 시 당신의 강의 시간에 제가 꾸벅꾸벅 졸았지요. 당시는 제가 말단 신입행원이어서 낮에 종일 바쁘게 일하고 허겁지겁 택시 잡아타고 강의에 참석하면 졸기 일쑤였습니다. 행대 강의실 의자는 왜 그리도 푹신했는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강의 마친 후 말씀하시기를 ‘석영아 학부 때 내 강의 다 들었으면 강의 듣지 말고 때가 되면 와서 시험이나 봐라’
한 10년 전 제가 이민 온 후 처음으로 LA에서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LA 코리아타운 근처 어딘가로 기억합니다. 제가 이제 배부릅니다 더 먹지 못합니다 하는데도 당신께서는 ‘더 먹어 더 먹어’ 하시면서 갈비를 계속 추가 주문하셨지요. 그 때는 제가 LA에서 다 찌그러진 깡통밴 끌고 막노동할 때였으니 꼴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시고 교수님 마음이 아프셔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제 새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듯이 자기 제자 사랑하지 않는 스승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제자 사랑이 유별나셨습니다. 제자들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시는 분이 당신이었음을 석영이가 압니다.
수년 전 제가 나락에 떨어져 헤매고 있을 때 5백불 보내주셨지요. 제가 감사 전화 드렸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너 안 먹으면 죽어’ 그리고는 당신께서 유학하실 때 배가 고파 식빵 두 조각 훔쳐 드신 얘기도 들려주셨지요. 그러시면서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굶지 말고 햄버거라도 사 먹으라 하셨습니다. 그런 당신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중략)
제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스러워할 때 교수님과 사모님께서는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넓은 땅 미국에 의지가지 없는 저에게 교수님과 사모님은 부모님이셨습니다. 제가 울면 같이 울어주셨습니다. 저의 이혼사실을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 사모님께서 참 많이 우셨습니다. 덩달아 저도 전화기 붙들고 같이 울었습니다. 두분 덕택에 이제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전보다는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버이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자식인 것처럼 저 역시 당신의 사랑을 받기만 합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많이 죄송합니다. (2013년 스승의 날에)
내 이민생활의 성적표
한동안은 나에게 있었지요 모든 것이 다 있었지요/ 나는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하리라 여겼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그네들과 같이 살던 집이/ 살아서 나를 떠나리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이제는 모두 떠나가 버려/ 더 이상 내 곁에 남아 있지 아니합니다/ 나만 홀로 남겨두고/ 그래서 나는 지금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 이민생활의 성적표입니다 / 재수강조차 불가능한 ‘F’ 학점입니다
시절인연과 운명은 다른 말이면서 같은 말입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집이 모두/ 나와의 인연 때문에/ 나에게 와 잠시 머물다 인연이 다해 떠났습니다. (중략 …)
홀아비도 운명이고 이혼녀도 운명이고/ 그래서 결손가정이 두 아이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 많기는 많아도/운명보다 더한 것은 없겠습니다.
무덤 속 하얀 해골에 달빛이 파랗게 부서집니다/ 심연의 두 눈이 희번덕거리고 있습니다. (05/05/2014)
14년, 그리고 또 다른 14년
오늘이 내가 학부 마치고 취직했던 직장을 14년만에 그만두고/ 이민온 지 14년 되는 날이다/ 14년 전 오늘 파란 꿈과 함께 처자식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었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과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이/ 시간의 길이는 14년으로 둘이 같지만/ 같은 것은 그것 뿐이고 내용은 완전 딴판이다/ 앞의 14년은 얻기만 한 시간이고/ 뒤의 14년은 잃기만 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은행 다니면서 14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과/ 그리고 적지 않은 재물과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 그래서 복을 많이 받은 시간들이다/ 미국생활은 이렇게 14년 동안 얻은 복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빈털털이가 된 14년 세월이다/ 탑을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잠깐이다/ 이민 초 서너해 동안에 다 무너지고 부서져/ 지금은 파편만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아내를 잃었고 아이들을 잃었고/ 재물도 홀라당 날려 알거지가 됐었고/ 몇몇 친구들과도 이제는 소원해졌다/ 금전문제 때문은 아니었지만 모두 내 탓이다.
지난 연말에는 5년 묵은 빚을 갚기 위해/ 금년에는 해를 넘기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오랜 친구 ‘H’에게 실로 간만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 시간 빚진 죄인의 마음으로 전화하지 못했다/ 먼저 늦어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통장번호를 달라 했다/ 이제는 갚을 여력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친구는 시치미 딱 떼고 ‘뭔 얘기냐?’ 한다/ 똑똑한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는데/ 자기는 받을 생각으로 보낸 게 아니다 하면서/ 그 돈이 힘이 돼 다시 일어섰으면 그게 갚은 것이다 한다/ 작은 돈도 아닌데/ 5년 전 내가 H에게 아쉬운 소리할 때는 돈에 워낙 쪼들려/ 살아 숨쉬는 순간 순간들이/ 정말 똥끝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그런 때였었다/ 법원에 파산신청할 무렵/ 내 삶의 신조 중 하나가/ ‘이승에서 진 빚 저승까지 가져가지 말게나’/ 하지만 이래서 갚지를 못했다 갚지 않은 게 아니고.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다 잃은 것 같아도 그게 아니다/ 어느 시인이 ‘금’에 비유한 오래 묵은 친구들이/ 나에게는 지금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와장창 망가지긴 했어도/ 잃은 것은 가정이요 재물이요 시간일 뿐/ 금쪽같은 친구들마저 잃은 것은 아니구나/ 내가 인생 헛 살지는 않았구나 내심 자위도 해본다. (중략…)
이렇게 지나간 28년을 짧게 되돌아보면서/ 나의 잠언 한토막을 되새긴다/ ‘잃기만 하는 인생도 없고 얻기만 하는 인생도 없다’
내일부터 또 다른 14년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14년을/ 물론 시간이 가져간 것들은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03/11/2015)
“소쩍새가 울 만큼 울었으니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 공씨 성을 가진 소쩍새가 10년 울음에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으니 이제는 그저 기다릴 밖에요. 10년 숙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인데 덤덤하기만 합니다.… 10년 동안 쓴 글의 일부를 교정차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는데, 지금 다시 쓰라면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제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입니다. 이런 제 기분 짐작이 가십니까.
잃기만 하는 인생도 없고 얻기만 하는 인생도 없다 했는데 이번 출간이 제게 뭔가 얻는 인생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 조심스레 가져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공석영
중앙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신한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업실패와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체 등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갔지만 틈틈이 독서와 시 작업을 통해 재기에 몸부림쳐 왔다.2019년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15년 만에 그리운 고국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모아 한권의 아름다운 시집을 펴내었다.
목차
들어가면서
01 잊고 싶은 10년
서시(序詩)/ 이민 따라지의 슬픈 이야기/ 소슬비/ 예전에는/ 이민따라지 10년/ 묻지 마세요/ 관광과 이민의 다름/ 백조의 노래/ 시간과의 대화/ LA 쪽방 사람들/ 감나무 꼭대기 홍시 하나는/ 실패한 인생운전/ 고독한 자라투스트라/ 내 사랑 밥통에게 부치는 글/ 내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나귀의 속울음/ 추수감사절 전날 밤에/ 달빛 아래 이모저모/ 나무 인간/ 바람에 구름 가듯이/ 벽파 김정건 교수님을 그립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등불/ 우리들의 거짓 이별/ 허수한 마음/ 찬 이슬/ 구름은 까마귀 따라 흐르고/ 두려움/ 나의 벗 나의 님/ 되새김질/ 내 이민 생활의 성적표/ 인생 별곡/ 계절이 오고 감도 시절 인연/ 마음 속 거문고는 저 홀로 우는데/ 14년, 그리고 또 다른 14년/ 나 죽거들랑/ 가을의 초상화/ 만유가 시간의 눈물/ 버려진 허수아비/ 지칠 날/ 나 조는 동안에/ 그리움이라는 병/ 낙조/ 시간의 밥/ 그때 시간이 거기서 멈추었더라면/ 내 인생의 서사시 1/ 인생의 역설/ 버려진 존재/ 지옥으로 가는 길/ 생각하는 허수아비
<잠언> 내 마음의 나침반
02 갈잎의 노래
내 인생의 서사시 2/ 프로메테우스의 방화/ 죄없이 죽은 거지와 까마귀의 대화/ 게눈은 사팔뜨기/ 사랑과 미움과 망각 그리고 저주/ 내 고향 경기남도 그곳에는/ 이(利)의 남침반/ 시인의 해학/ 비 그치니/ 버섯 따기/ 무녀/ 내가 죽기전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은/ 가을 잠자리/ 시간의 고향/ 오가는 세월의 마디마디/ 비온 뒤/ 무덤가에도 봄이 오는데/ 소복/ 해풍에 실려가는 것은/ 부는 바람조차도/ 물질하는 처녀/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를/ 만남이 있어 헤어집니다
검정 넥타이/ 내일이 내년인데/ 사계절의 윤회/ 불귀(不歸)/ 교수님께 드리는 참회의 변/ 가을의 문턱에/ 지뢰밭/ 무명시/ 부엉이가 우는 밤/ 같은 길/ 황금의 나라 엘로라도와 / 새크라멘토 이야기/ 단풍과 낙엽
시조
운수납자 / 홍시 / 채우고 비우기/ 가을빛/ 가을의 강 / 인생의 성형수술 / 돌아갈까/ 달빛 나그네 / 혼자 사는 늙은이 / 머무는 순환 / 서늘한 바람 / 해와 달 / 수도승/ 가야하는 슬픔 / 무지의 신비 / 갈잎의 노래/ 취중 문답 / 아이들 생각 / 가을 사내 / 나무아미타불/ 빗물처럼 / 아침이슬 / 기다리는 여심 / 오고 감/ 사노라면 / 쥐구멍 / 둘이서 / 담배연기 / 불길/ 바보의 노래 / 허전함 / 내일은
고마움을 전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