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제2부 익숙함의 유혹, 익숙함의 함정
한국의 신의 직장에 속한 어느 기관의 중견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 미니 MBA과정 연수에서 있었던 얘기다. 원래는 선진국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초보적인 학습법이다.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문제를 낸다. 생수, 손거울, 양산, 비상식량! 사막에서 조난을 당하였을 때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건 어느것인지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수강생들은 각자가 하나씩 택일한다. 그런 다음 강사는 다시 똑같은 문제를 낸다. 대신 이번에는 옆의 동료들과 함께 충분히 상의해서 택일하라고 주문한다. 연수생들이 저들끼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각자가 그 중 하나를 고른다. 마지막으로 강사가 역시나 같은 문제를 놓고 이번에는 시간을 아주 충분히 주고 외부의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상의해 본 다음 그 반응들을 심사숙고해 택일하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상의한 다음 택일해 오라고 숙제로 내준다.)
짐작했겠지만 정답을 묻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풀이 과정에서 남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개중에는 세 번 모두 한 가지만 고수한 사람도 있을 테고, 또 동료나 연수장 밖 주변인들의 의견에 따라 바꾼 사람도 있을 것이다. 2,3차 때 자신의 처음 생각을 꺾었다면 그 사람은 문제의 의도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세 번 다 같은 물건을 고집하는 사람이 문제다. 병아리며 오리 등속의 짐승들은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친 상대가 곧 자기 어미인 줄 안다.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과 편협성이 의심되는 사람이겠다.
유럽 초등학교 교육 방식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한국인은 이런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매난국죽(梅蘭菊竹)이 어쩌고 하면서 지조·정절·기개가 마치 고상한 선비 정신인 양 가르치는 바람에 똥고집만 길러 왔다.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를 먼저 외우고 나면 앞서와 같은 교육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한국인이 열린 사고, 나아가 합리적인 사고를 지니기 힘든 이유다. 현실은 왜 교과서와 다른지, 그리고 삶에 정답이 없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평생 우물 안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걸 속된 말로 ‘꼴통’이라 한다.
한국인들은 그런 고집을 가진 지도자를 카리스마 있고, 소신 있는 훌륭한 지도자로 여긴다. 그렇지만 원칙이나 소신은 자칫 고집으로 굳기 쉽고, 신뢰 또한 인정(人情)이나 연정(緣情)으로 변질되기 쉽다.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인들 대부분이 정(情)적인 신뢰를 신용인 줄로 착각하고 산다. 매사를 정(감정)으로 판단하는 습관 때문일 테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신뢰란 곧 신용이다. 인간적인 신뢰가 아닌 상업적으로 철저히 검증된 신뢰를 말한다. 그리고 그게 매너로 표현되어야 소통이 가능해지고, 상대방도 즉각 수용이 가능한 솔루션 창출이 실현되는 것이다.
공적(公的)이란, 자기 생각을 버리거나 견해를 바꿀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끝까지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공(公)이 아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견해를 수용할 줄 아는 것을 공(公)이라 한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공적(公的)인 것과 사적(私的)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公)이란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이상, 국민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124. 레드 카펫의 경제학
2019년도 칸 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에 중국의 무명 배우들이 대거 올라와 뭇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주최측에 수천만 원을 내면 레드 카펫을 밟게 해준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올라온 중국 배우들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전 뽑겠다고 레드 카펫에서 뭉그적거리며 저 혼자 갖은 폼을 잡는 바람에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2012년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렌스. 45억 원짜리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이후 크리스찬 디올과 세 배가 더 오른 170억 원에 홍보 모델 재계약을 따냈다. (인터넷 캡처)
사실 칸 영화제는 수상보다 레드 카펫에서 진짜 비즈니스가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배우가 그곳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제적인 행위가 된다. 그런 사실을 한국인들만 모른다. 중국인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수천만 원씩 내고 핀잔을 들으며 레드 카펫을 밟은 중국의 무명 배우들도 그 본전의 수십 배를 뽑아낸다. 그에 비해 한국 배우들은 수상을 못하면 비행기삯도 못 건지고 돌아오면서 그래도 레드 카펫 한 번 밟은 것에 의기양양해한다.
가령 저 유명한 중국 여배우 판빙빙을 보자. 그의 수상 경력이라고 해봤자 고작 도쿄 영화제에서의 여우주연상이 최고 성적이다. 그런데도 (탈세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그는 매년 칸 영화제에 참가해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작품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으로 추대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 다른 중국 무명 배우들처럼 수천만 원을 내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수백억 원을 챙긴다.
세계적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지켜보는 한 무리가 있다. 바로 세계적인 명품 회사 홍보담당자들이다. 하여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면 벌떼같이 몰려든다. 스폰서 계약을 위해! 그런 다음 그 수상 영화제는 물론 다른 영화제에도 그 배우를 해마다 참가시킨다. 오직 레드 카펫에 세우기 위해! 제 돈 내고 레드 카펫 밟는 배우는 삼류다.
거의 매년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았던 중국의 판빙빙.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과 스폰 서십을 맺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보석이며 시계·가방·패션·화장품·구두 등 세계적인 명품 회사 홍보팀들이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려 레드 카펫에 내보낼 배우를 혼신을 다해 최고급으로 우아하게 꾸미고 또 꾸며 훈련시킨다. 그렇게 해서 레드 카펫에 올리면 전 세계 유수 잡지사·언론사 사진기자들이 모여들어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홍보는 그렇게 하는 거다. 그렇게 명품을 걸치고 명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거다. 놀면서 돈 버는 진짜 프로가 되는 거다. 웬만한 영화 한 편 찍는 것보다 몇 배 더 많이 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제 아름다운 사진이 퍼져 나간다. 남의 덕에 멋내고 돈도 벌면서 몸값을 점점 올려 나간다.
그만큼 무서운 곳이 레드 카펫이다. 영화 장면이야 마음에 들 때까지 수없이 재촬영하면 되지만, 레드 카펫이나 수상 무대는 재촬영이 없다. 단판 승부! 말 그대로 진검 승부하는 곳이다. 그곳은 현실이다. 평생 닦아 온 연기력을 오로지 자신을 위해 펼치는 곳이다. 레드 카펫 위에서의 한 걸음에 수십억 혹은 수백억 원이 걸려 있다. 해서 진짜 프로들은 레드 카펫에 목숨을 건다.
한데 한국 배우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한들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그 많은 명품 회사 어느 한 곳에서도 스폰서 제의가 안 들어온다. 매너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세가 안 되고, 미소가 안 된다. 해서 수상 무대에 올라가는 걸음 동작 하나만 보고도 한숨을 푹 쉬는 것이다. 미모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천만에! 천하의 추녀도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이 붙으면 곧바로 양귀비로 만들어낸다. 판빙빙에게 기자들이 왜 부자와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이미 부잔데, 왜 부자와 결혼해야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한다. 소문에 그의 재산은 1조를 훌쩍 넘는단다.
중국이야 시장이 그만큼 커서 그랬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라면 한국인이라 해도, 미인이 못된다 해도 적어도 재산이 천억을 쉬이 넘어야 상식일 것이다. 그래야 한국, 한국인, 메이드인코리아의 부가가치가 높아져 시민들 모두에게도 보이지 않는 혜택이 돌아갈 것이 아닌가? 그래야 존경받을 것 아닌가? 3대 영화제 주연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들 저 잘난 것이야 부러울 뿐이지 국민들과 무슨 상관? 제발이지 글로벌 매너가 안 되면서 세계 무대의 정상에 서는 것은 본인이나 국격·국익을 위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칫 재 뿌리는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싶다. 한국 스타들은 모조리 날지 못하는 촌닭들이다.
149. 진정 이 땅의 주인으로 살려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여호수아>, 제5장 6절)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와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40년을 거친 광야로 떠돈 것은 민족 개조 작업 때문이었다. 그 단련 과정은 처절해서 거칠게 표현하면 학대라 해야 할 정도였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적을 행해 마음을 돌렸지만 자신의 명령을 어겼을 적에는 가차 없이 버렸다. 하여 40년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즈음엔 처음 애굽에서 따라 나온 자들은 모두 다 죽고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심지어 모세조차도 제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고 죽어야 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레위기>, 제26장 13?15절)
노예가 그 멍에를 벗었다고 해서 바로 자기 자신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박해받았으면 그 민족은 뼛속까지 천민 노예 근성이 배었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여호와께서 수없이 기적을 보여주며 달래고 겁을 줘도 여차 하면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둥 여호와를 분노케 만들었다. 석판에다 계명을 새겨 보여주고 모세를 통해 미주알고주알 온갖 규례와 법도를 정해 실천시켜 애굽에서의 습성을 뜯어고치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서 40년간 광야를 떠돌게 하여 혹독하게 단련을 시켜야 했다. 그러면서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던 자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의 2,3세들이 온전히 여호와께서 제시한 비전과 믿음에 대한 신실함을 지니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주인장으로서의 담대하고 당당한 태도적 가치를 지녔을 때에야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했다. 매너로 사람을 만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구습과 비천한 노예 근성이 몸에 밴 채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냈더라면 어찌되었겠는가? 설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누가 비워 두었겠는가? 그곳에는 이미 다른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것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맹수는 우리를 벗어나선 살 수가 없다. 한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 싸워서 그들을 몰아내기는커녕 분명코 애굽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도 역시 다른 민족을 섬기며 자자손손 비루하게 노예로 살았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민족은 절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누백년의 사대 근성과 노비 근성, 그리고 피지배식민 근성으로 찌든 등 굽은 한민족! 스스로 독립도 못하고, 스스로 해방도 못하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하고, 스스로 통일도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허구한 날 서로 네 탓 남 탓하며 편 갈라 떼 지어 싸운다. 이대로는 죽어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아직 버려야 할 것이 많다. 새것을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버림의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는 더없이 거칠고, 참으로 무정하다. 진정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칼같이 단호하고 얼음같이 냉정해져야 한다.
바른 자세에서 올바른 태도적 가치가 나온다. 혁신이나 혁명이 모두 거창한 것만도 아니다. 진정한 혁명이란 민족의 사유와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누천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면 환골탈태로 구시대의 봉건적 유습을 버리거나 개선해야 한다. 굽은 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바로 서야 하고, 바로 걸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해내어야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신성대
1954년 경남 영산(靈山) 출생. 16세에 해범 김광석 선생에게서 조선의 국기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익혔다. 이후 50년 동안 십팔기의 전승과 보급에 힘써 2019년에 서울시무형문화제 제51호 전통군영무예로 종목 지정받았다. 현재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및 (사)전통군영무예보존회 회장으로 무예십팔기 및 도인양생공을 지도하고 있다. 1977년 한국해양대학 부설 전문대학 졸업. 해외송출선원으로 7년간 외항선을 타고 수차례 세계를 일주하며 견문과 호기심을 넓혔다. 1985년 도서출판 동문선(東文選)을 설립해 지금까지 약 8백 종의 인문학 분야의 전문서적을 펴냈다. 한중수교 전인 1990년 서울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원서수입서점을 열어 한중 간 학술 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2000년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에세이《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출판하여 한국에 ‘느림의 미학’ 붐을 일으킨 바 있다. 2012년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품격경영아카데미컨설팅 공동대표. 2014년 11월 24일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들’ 인터뷰, 2015년 월간조선 ‘글로벌매너’ 1년간 연재하는 등 데일리안?경기데일리?파이낸셜신문?한국무예신문에 문화비평을 발표, 2018 국감 외교통일위원회’ 참고인 출석하여 외교관들의 국격 디스카운트 지적하는 등 국격을 높이기 위한 품격사회운동을 이끌며 글로벌매너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덕(武德)-武의 문화, 武의 정신》, 《품격경영-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 백서》(상/하), 《자기가치를 높이는 럭셔리매너》, 《나는 대한민국이 아프다》, 《산책의 힘》, 《혼백과 귀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