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달아실시선 22권. 2016년 「강원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한 임인숙 시인의 첫 시집이다. '설해목', '말을 하고 싶다', '문득', '생트집', '배를 찍다', '서 있는 가을', '해넘이', '이명耳鳴', '첫눈', '정년', '낯선 시간-정년', '엉겅퀴 사랑', '낮술', '벚나무 아래서'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잘 숙성된 포도주는 그저 음미하면 된다
― 임인숙 시집 『몸은 가운데부터 운다』
임인숙 시인의 첫 시집이다. 1955년 출생이니까 올해 우리나이로 65세다. 등단을 2016년 그러니까 62세 때 했으니, 등단도 첫 시집을 내는 것도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하긴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는 이런 말을 했다.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닷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물론 이 말이 단순히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좋은 시는 시를 쓰는 이의 삶이 충분히 숙성되고 발효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시의 언어 또한 충분히 숙성되고 발효된 것이어야 한다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삶도 숙성되지 않고, 시(언어) 자체도 숙성되지 않은 시집들이 도처에 널리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이번 임인숙의 첫 시집은 놀랍다. 충분히 숙성된 삶이 빚어낸 문장들이, 충분히 발효된 시어들이 마치 잘 빚어 오랜 시간 숙성되고 발효된 포도주처럼 향을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조금의 주저 없이 시집 뒷표지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었다.
“시라는 것이 어쩌면 잘 빚은 포도주와 같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포도주는 포도로 만들었으나 맛도 향기도 그 화학적 성질도 포도를 넘어선 어떤 것이다. 시도 그렇다. 말(언어)로 빚었으나 말을 넘어선 것이다. 포도주 빚기가 그러하듯 시 쓰기란 말의 발효와 부패의 경계에서 벌이는 위태로운 줄타기 같은 것이다. 언어와 문장이 시가 되기까지 발효와 숙성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거쳐야 하는 법이다. 임인숙 시인의 첫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시인이 참 오랫동안 말(언어)을 묵혀왔다는 생각, 아주 오래 숙성의 시간을 건너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시는 해석과 분석이 아닌 음미의 대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독자들은 그저 이 훌륭한 포도주를 곁에 두었다가, 어느 날 삶이 조금은 쓸쓸하거든, 문득 누군가 그립거든, 한 잔 따라 드시라.”
시집의 해설을 쓴 이홍섭 시인은 또 이번 시집을 일러 이렇게 얘기한다.
“첫 시집은 시인으로서의 존재 증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 증명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잠든 나의 내면을 흔들어 깨우고, 이를 통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 증명은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임인숙의 이번 첫 시집도 이러한 존재 증명의 지난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나온 시간과 공간에 켜켜이 둘러싸인 채 잠들어 있던 내면의 저 깊은 곳을 흔들어 깨우고, 홀로 질문을 던지고 또한 홀로 답을 얻으며 자신의 일으켜 세우는 이번 시집은 불화(不和)에서 화해(和解)로, 화해에서 따뜻한 연민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도정을 보여준다. 이름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아래 시는 그 도정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시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다. 이렇다 저렇다 따질 필요가 없다. 좋은 음식, 좋은 포도주가 그렇지 않은가. 임인숙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종의 정찬 코스라고 하겠다. 그가 차려준 대로 하나씩 천천히 그저 음미하시면 되겠다. 에피타이저로 시 한 접시 올리니 먼저 입맛을 돋우시면 되겠다.
종일 나를 서성이게 하는 이
잠가둔 시간 틈으로, 문득
온다
해풍 속으로 종일
날 끌고 다니는 한 문장도, 문득
햇살 깔깔거리는 오월의 정향 숲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도, 문득
눈바람 부는 날
홍매화 움트는 것도, 문득
생전에 미워했던 아버지
그리운 것도, 문득
네가 보고 싶을 때 걸려오는 전화도, 문득
지쳐 돌아오는 저녁
외로움도, 문득
발끝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도, 문득
켜진다
― 「문득」 전문
에피타이저를 드셨으니 본격적으로 정찬을 즐기셔야 할 텐데, 그것은 이제 순전히 독자들의 몫이겠다. 다 드신 후 그 소감을 꼭 전해주시기 바란다.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인숙
1955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났다. 충북대학교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 가정학 석사를 받았으며, 2017년 중등교사를 정년퇴임했다. 2016년 <강원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하였고, 강원작가회의 회원, 시동인 시림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설해목
말을 하고 싶다
문득
생트집
배를 찍다
서 있는 가을
해넘이
이명耳鳴
첫눈
정년
낯선 시간-정년
엉겅퀴 사랑
낮술
벚나무 아래서
걸어온 길 보인다
허방
봄바람
해안선
봄이 간다
코스모스
2부
산비
오월 어판장
대관령 옛길
옹님이 엄마
윤사월
뒷문을 열다
꽃눈
화부산花浮山
독백 ― 요한이는 두 번 파양되어 성당에서 살고 있다
멍
꽃을 꽂은 여자
3부
몸은 가운데부터 운다
호박죽
무심천無心川
바람 부는 날
아쁘깡
이별 준비
대구
마늘을 심다
밸런타인데이
은행나무
배추를 씻으며
큰이모
튜브 속 세상
고사목
생일
아우성
먼 별
돌무덤
4부
이명고개
숨은 꽃 ― 소녀상
어판장 커피집
연당蓮堂
몽돌
검은 숲이 젖어 있다
이슬
봄 마중
처서
눈 오는 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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