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내 안의 행복을 찾아서….별 것 아닌 진리인데도 잊고 살고 있는 것들이 있다.
『행복, 철들어 사는 재미』는 그런 소소한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쁜 현대사회, 복잡한 일상사들, 외적인 건강도 내적인 건강도 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갈망하고, 현대인들의 높아진 삶의 질에 따라 강구하는 행복의 질 도한 높아졌다.
과거에는 따스한 밥과 안락한 거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히 어떤 종류의 행복을 구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애매한 자리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럴수록 본질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행복은 무엇인지,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다.
본서에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담담하고 정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삶에 대한 한 편의 시를 풀어서 쓴 듯한 글이 마음에 와 박힌다. 잠시 힘들고 바쁜 삶을 멈추고, 내 안을 지켜보며 나를 둘러싼 환경을 주시하기를 권하는 글의 흐름을 차분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전하는 소소한 진리에 대한 가치가 어느샌가 마음에 맴돌다 자리 잡는다.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단상들,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가벼우면서도 깊숙이 터치하고 있는 작가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다.
명상하듯 삶을 음미하는 글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나가며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게 만드는 힘을 받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알고 있어야 할, 그리고 이미 내면적으로는 태생부터 알고 있는 진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작업이 충만함을 가져다준다.
지금 바로 내면의 여행을 떠나가 보도록 하자. 어느 순간 행복의 근원을 잃어버린 듯한 이 시대의 ‘어른이’들에게 따스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 줄 책으로 손색이 없다.
[출간후기]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은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그저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앞도 뒤도 없이 달려오기만 하지 않았나요?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외면한 채 세상의 헛된 눈높이에만 맞춰 산 건 아닌가요?
그 때문에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겹겹이 쟁여놓지 않았나요?
이 책 『행복, 철들어 사는 재미』의 박종구 저자는 ‘행복’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멈추고 바라보고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삶이라고 하는 이름의 패키지여행을 하고 있다. 나라고 하는 몸뚱이를 마음이라고 하는 실체도 없는 가이드가 안내 중이다.
이제는 따지고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지점 어느 곳에서는 포기하거나 좌절할 것이다. 아니면 삶의 종착지인 죽음 앞에서 심한 상실감으로 몸부림을 치게 된다.”
만약 저자의 얘기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바라보면서, 욕심은 내려놓고, 지금 여기 이 순간을 더없이 소중히 여겨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땅을 치며 후회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테니까요.
박종구 저자는 또 말합니다.
“어른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이가 들었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가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와중에 ‘깨달으며 사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행복, 철들어 사는 재미』로 결정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늘 반짝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몫인 것입니다.
부디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행복을 나누기 위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진심이 100퍼센트 전해져서, 독자여러분 모두가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 태어나 철들어 사는 재미인 행복을 찾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 책이 행복의 씨앗이 되어 더 활기차고 팡팡팡 행복에너지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세상은 행복 그 자체다.
세상이라는 행복 속에서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건만, 행복하지 않은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에 안타깝기만 하다.
묻지도 않고 답을 얻으려 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물음이 있어야 답을 얻을 수 있다. 물음표가 필요한 모든 이들과 묻고 답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은 간절함이 글을 쓸 수 있게 했다.
2018년 5월의 한낮, 봄볕은 따스함을 지나 약간은 더위를 느끼게 한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벚꽃으로 분홍빛 분단장을 한 안양천 제방을 걷고 있다. 흐르는 물결의 반짝거림은 가던 길을 멈춰 세웠다.
여울목에선 간간히 잉어들로 인해 솟구치는 물방울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산란을 위해 한강에서 거슬러 오는 잉어들의 힘이 전해져 왔다.
자연과 하나임을 확인하는 순간,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명상수업이 예정되어 있는 고등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내뱉는 우렁찬 외침들, 현관 앞 공터에서 펼쳐지고 있는 댄스연습 중인 아이들의 현란한 몸동작들, 복도와 교실에서 들려오는 청춘들의 재잘거림 등 아이들의 생동감이 벅차게 다가온다.
아!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그 어디에 천국이 있으랴.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얼마나 가슴이 벅찬 위치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를,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선생님들은 알고 있을까?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는 동시에 교실이라는 사각의 링에는 부정의 아이콘을 대표하는 선수들만이 가득했다. 그렇게도 생동감으로 타오르던 청춘은 반항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무기력하거나, 도전적이기를 선택한다.
여기에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공부, 성적, 대학, 성공, 취업, 돈 등의 대답이 주로 나왔다. 진리, 자유, 행복, 자아실현, 완성 등 거창한 수식어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에 빗대어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고뇌 섞인 답변 하나쯤은 있으리라는 작은 바람이 있었기에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언감생심 철학 과목은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예체능 과목마저도 빈약하기 그지없는 칠판 옆에 붙여진 이들의 수업시간표, 지금의 상황을 불러온 원인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했다. 이들을 사각의 링에 올린 것은 어른들이다. 부모와 교사와 지도자인 어른들이 우울하고, 불안하고, 화가 나 있으니, 아이들을 자신들의 싸움터에 참전시켜 대리전을 치르게 하고 있는 모양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행복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행복하지가 않다. 더욱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각의 링은 더더욱 싫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도 답이 없으니, 답을 줄 수가 없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이런 난감함을 어찌 헤쳐간단 말인가?
인간은 누구나 육체를 정리해야 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 지점은 대부분 호스피스 병동의 베드 위가 될 것이다.
숨이 멈춰버리는 순간, 나라고 하면서 붙들고 있던 몸뚱이는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아주 하찮은 물질의 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하물며 몸뚱이도 이럴진대 돈, 명예, 가족, 친구 등 내 것이라고 하면서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그때 가서야 물을 건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고. 어리석다 함은 시기를 거스르는 일이다. 씨 뿌리는 시기를 놓친 농부는 가을에 거둘 것이 없는 법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는 날, 거둔 것이 없으니 허허로움뿐일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회한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겠는가?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어른이라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어른인지를 생각할 때가 많다. 어릴 적, 어른이 되면 세상의 모든 일에 막힘이 없어 행복해지는 줄 알았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상황이 정리가 된다.
어른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이가 들었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가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와중에 ‘깨달으며 사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위의 질문은 철학의 3대 질문이자, 우리 삶의 3대 물음표임에 틀림이 없다.
물음표로 답을 고뇌하는 사람,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는 중에도 문득문득 질문을 떠올리는 사람, 어린 후배들과도 자연스럽게 질문에 교감하는 사람, 삶에 지쳐 견디기 힘들 때에도 질문을 생각하며 다시금 일어서는 사람은 어른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나를 구성하는 주체는 몸과 마음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하고 마음이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자 ‘내 마음’을 가지고 산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는 게 아니라, 끌려다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내 마음’에서 누구나 행복을 그린다. 그린다는 것은 마음이 원하고 있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화의 결과로 흥분과 쾌감이 주어진다. 이를 이름 붙여 행복이라고 한다. 흥분과 쾌감은 수명이 아주 짧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음은 그 달콤함에 취해 계속해서 원하는 것을 그려가며 구체화시키길 반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삶은 끝없는 탐욕에 항상 허허로울 수밖에 없다.
‘허허로운 마음에서 벗어나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연이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른으로 항상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순리와 지혜 자체인 자연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너무나도 단순 명료한 답이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사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