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실천문학」 통권 135호에서는 현 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우행(愚行)을 선불교의 고전인 <벽암록>을 통해 진단하고 있는 이은봉 시인의 '권두언'을 비롯하여 시대적 징후를 예민하게 읽어낸 다채로운 시편과 소설 들이 독자들을 만난다. 김선향ㆍ김중일ㆍ설하한ㆍ윤임수ㆍ전호석ㆍ황인찬ㆍ휘민 시인의 신작시, 그리고 2020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덕원(문화일보)ㆍ이민희(동아일보)ㆍ이유리(경향신문) 소설가의 개성 있는 소설들이 실려 있다.
출판사 리뷰
《실천문학》 통권 135호에서는 현 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우행(愚行)을 선불교의 고전인 『벽암록』을 통해 진단하고 있는 이은봉 시인의 <권두언>을 비롯하여 시대적 징후를 예민하게 읽어낸 다채로운 시편과 소설 들이 독자들을 만난다. 김선향ㆍ김중일ㆍ설하한ㆍ윤임수ㆍ전호석ㆍ황인찬ㆍ휘민 시인의 신작시, 그리고 2020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덕원(문화일보)ㆍ이민희(동아일보)ㆍ이유리(경향신문) 소설가의 개성 있는 소설들이 실려 있다.
방금 전, 초침이 손목을 긋듯 자정을 스쳐 갔을 때
지구상의 몇 명이 숨을 내쉬고, 또 들이쉬었는지
멈췄는지,
호흡들의 부력으로 지구는 간신히 제자리에 떠 있다
- 김중일 시 「호흡의 비밀」 부분
그러니까 그건 단지 구두 때문이었다. 재식의 추락에는 딸이 선물한 구두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재식은 팔다리를 바르작거린 끝에 어렵사리 난간 안쪽으로 내려섰고, 서너 걸음 뒤쪽에 구두를 벗어 놓았다. 갑혁이 한껏 벌어진 구두는 여전히 그의 발을 감싸 쥔 모양으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거래처 부장 앞에서 혹은 은행 직원에게 추가 대출을 문의하면서, 머뭇머뭇 사직서를 내밀고 떠나던 공장 직원들 앞에서도 구두는 꼭 저 모양으로 재식과 함께 웅크리고 있었을 터였다.
(중략)
재식은 길 한가운데 서서 자신을 비껴가는 그 불규칙한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리라는 단어를 잠깐 떠올렸고 느슨하게 연결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쉽지 않으므로 당연히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들과 그럼에도 믿고 싶어지는 약속에 대해서도 헤아려 보았다. 저마다 다른 세계를 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 다르고 또 같음에 대해, 그리하여 결국은 비슷비슷한 서글픔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쩌면 그 사소하고 연약한 것이 자신을 에워싼 이 빌딩숲을, 골리앗 같은 도시의 공교함과 간교함을 낱낱이 상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재식은 그렇게 또 한 번 대책 없이 어리석어졌다.
- 이민희 소설 「다비드 동맹」 부분
<특집1> 지면에서는 “한국문단 등단제도를 진단하다”라는 주제로 고광식 시인과 김요섭 평론가가 등단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심도 깊은 제언을 내놓는다. 고광식 시인은 심사위원의 고착화와 표절 문제에 대해 비판하며, 김요섭 평론가는 “등단제도를 이미 합의된 문학성의 장으로 새로운 작가를 끌어들이는 문이라 여길 때, 제도는 문학성에 대한 질문을 가로막는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제도의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통해서 만들어 가는 문학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진 <특집2>에서는 올해 당선된 신춘문예 소설들 속에 드러난 시대적 감수성을 ‘음악’과 ‘소리’라는 키워드로 집중 조명한 김효숙 평론가의 글을 싣는다. 김효숙 평론가는 “최근 10년간 신춘문예 당선 소설의 경향을 소재의 특성으로 압축할 때, 올해만큼 여러 편에 음악 사회학을 담아낸 때는 없었다. (중략) 이 글이 소설의 음악적 사건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하는 만큼, 올해 당선작 중 네 편이 제각기 독특한 사건 안에 음악 상상력을 장착한 경우를 작품의 가장 세부적인 특성으로 포착할 수 있다. 위 작품들(「터널, 왈라의 노래」(정무늬), 「전자시대의 아리아」(신종원), 「균열 아카이브즈」(전미경), 「버스커, 버스커」(이은향))은 2010년대 당선 소설의 소재들―실종, 죽음, 질병, 장애, 폭력, 노동ㆍ소통 문제, 가족 해체, 실직, 청년 실업, 독거노인, 자폐증, 불륜, 동거, 살처분, 외모 문제, 자살 등―로부터 적극적이고 독창적으로 갈라져 나온다.”라고 평한다. 신진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통해 우리 문단의 새로운 힘을 예견해 보시길 바란다.
편집 후기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즈음에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실천문학 통권 135호를 펴냅니다.
이번 호에서는 김선향ㆍ김중일ㆍ설하한ㆍ윤임수ㆍ전호석ㆍ황인찬ㆍ휘민 시인의 신작시를 비롯해 2020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덕원(문화일보)ㆍ이민희(동아일보)ㆍ이유리(경향신문) 소설가의 패기 넘치는 소설들을 선보입니다.
신춘문예의 역사가 어느덧 105년이 되었습니다. 본지에서도 해마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내는 신인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의 등단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자명한 현실입니다. 이에 ‘특집1’에서는 “한국문단 등단제도를 진단하다”라는 주제로 고광식 시인과 김요섭 평론가가 등단제도의 두터운 벽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고광식 시인은 심사위원의 고착화와 표절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으며, 김요섭 평론가는 “등단제도를 이미 합의된 문학성의 장으로 새로운 작가를 끌어들이는 문이라 여길 때, 제도는 문학성에 대한 질문을 가로막는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제도의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통해서 만들어 가는 문학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는 묵중한 제언을 내놓습니다.
‘특집2’에서는 올해 당선된 신춘문예 소설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김효숙 평론가는 특히 소설 속에 드러난 ‘음악’과 ‘소리’에 집중하여 신진 소설가들의 시대적 감수성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산문’에서는 특집1과 궤를 같이하여 “등단의 문턱, 미끄러져 본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성다영 시인과 최미래 소설가가 ‘미끄러져 본 자로서의 소회’를 발랄하고도 재치 있게 들려 줍니다.
끝으로 이은봉 시인의 ‘권두언’ 중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참자유를 찾아 뛰쳐나온 금잉어를 떠올리며, 다음 계절은 좀 더 희망차도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다수는 이미 낡고 진부한 과거의 그물을 찢고 참자유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온, 다시 말해 오대양 육대주로 뛰쳐나온 금잉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 금잉어는 “보통의 물고기가 아니다.” 설악무산 스님의 말씀대로 고래에 방불하는 것이 이들 금잉어이다. 그들은 이미 참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운명은 물론 제 조국의 운명까지도 스스로 짊어지고 있기까지 하다. 이들이 어찌 낡고 진부한 과거의 찢어진 그물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이은봉, 「그물을 찢고 나온 금잉어를 그 그물로 다시 가둘 수는 없다」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실천문학편집위원회
<실천문학 83 - 2006.가을>
목차
권두언
이은봉 | 그물을 찢고 나온 금잉어를 그 그물로 다시 가둘 수는 없다
시
김선향 | 자전거를 타는 여자 외 1편
김중일 | 호흡의 비밀 외 1편
설하한 | 우리가 만약 통 속의 새일 뿐이라면 외 1편
윤임수 | 우수 무렵 외 1편
전호석 | 유충 외 1편
황인찬 | 고요의 풍속은 영 외 1편
휘 민 | 세류 외 1편
단편소설
이덕원 | 물속에서 걷기
이민희 | 다비드 동맹
이유리 | 손톱 조각
특집Ⅰ | 한국문단 등단제도를 진단하다
고광식 | 신춘문예, 개혁을 허(許)하라
김요섭 | 이것은 문이 아니다
특집Ⅱ | 신춘 소설에 대한 고찰
김효숙 | 음악과 소리에 침전된 암호들
산문 | 등단의 문턱, 미끄러져 본 사람들
성다영 | 미끄럼틀 타면서 시 쓰기
최미래 | 의자 없음
리뷰
황영경 | 유시연 소설 속의 공간, 그 쓸쓸함과 찬란함의 탐색
―유시연, 『쓸쓸하고도 찬란한』, 실천문학사, 2019
김신숙 | 도대불 같은 이야기들, “제주 책 사!”
―김동윤,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 한그루, 2019
―김진철, 『낭이와 타니의 시간 여행』, 한그루, 2019
편집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