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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 시선
평민사 | 부모님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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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한국의 한시 29권. 고산 윤선도는 정철 송강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을 써서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졌다. 송강이 호흡이 긴 가사를 잘 지었다면, 고산은 호흡이 짧은 시조를 잘 지었던 시인이다.

  출판사 리뷰

고산 윤선도는 정철 송강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을 써서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졌다. 송강이 호흡이 긴 가사[長歌]를 잘 지었다면, 고산은 호흡이 짧은 시조[短歌]를 잘 지었던 시인이다. 당대에는아직 시조라는 이름이 없었으므로, 글자 그대로 호흡이
짧은 단가가 그에게는 제격이었다.
원래 자연의 아름다움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에 따라 달라지므로, 철따라 바뀌어가는 경치를 다 노래하려면 가사가 제격이었다. 그런데 그는 한 편의 가사에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단가 40수를 지어 철따라 바뀌어가는 자연의 여러 가지 모습을 노래하였다. 송강의 가사에서는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임금과 정치를 잊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그의 ?어부사시사?에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즐기는 어부의 모습만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어부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고, 바다와 배를 삶의 현장으로 삼은 어부가 아니다. 해남에도 넓은 농장을 가지고 있고, 서울에서도 자주 벼슬이 주어지는, 그래서 고기잡이를 풍류로 즐기는 사대부였을 뿐이다. 그래서 흔히 고산을 가어옹(假漁翁)이라 말하기도 했다.
- 머리말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선도
조선 시대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시조 작가다. 본관은 해남(海南)이고, 자(字)는 약이(約而)이며, 호(號)는 고산(孤山) 혹은 해옹(海翁)이다. 1612년 26세의 나이로 진사(進仕)에 급제했고,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1616년 당시의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병진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이 시기 유배지에서 <견회요>와 <우후요> 등의 시조를 창작했다. 1618년 유배지가 경상도 기장으로 옮겨졌다가, 인조반정(1623) 직후 대사면령이 내려 유배에서 풀려 전라도 해남으로 돌아갔다. 남인(南人)에 속했던 윤선도는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아가기 전부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유배를 떠나는 등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42세(1628)의 나이로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를 해, 당시 이조판서이던 장유(張維)의 천거로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47세 때인 1633년에 다시 증광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해, 예조정랑에 임명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나 해남에서 생활하던 무렵, ‘병자호란’(1636)이 발발하자 향족(鄕族)과 집안의 노복(奴僕)들을 이끌고 배에 태워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 인근에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이 이미 적군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태풍을 피해 잠시 머물던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이후 윤선도는 자연 풍광이 수려한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다.52세 때인 1638년에는 병자호란 당시 서울을 지척에 두고도 ‘임금을 알현하지 않았다(不奔問)’는 혐의로 탄핵을 받고, 경상도 영덕으로 유배를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나게 된다. 이후 해남에 돌아와 집안의 대소사를 차남에게 맡겼으며, 1640년부터 해남의 금쇄동에 거처를 마련해 은거했다. 이후 10여 년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보길도와 금쇄동을 오가며 자연 속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의 나이 56세 때인 1642년에 금쇄동에서 <산중신곡> 연작 18수의 시조 작품을 창작했으며, 2년 후에는 <산중속신곡> 2수와 <증반금> 등의 시조를 짓기도 했다.윤선도가 63세 되던 1649년 인조(仁祖)가 승하하고, 세자로 있던 봉림대군이 효종(孝宗)으로 즉위했다. 윤선도는 효종의 대군 시절 사부를 지낸 바 있었기에, 이해에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요체를 논한 <기축소(己丑疏)>를 올렸다. 1651년에는 자신이 거처하던 보길도의 부용동에서 <어부사시사> 40수를 창작했다. 66세가 되던 1652년에는 왕의 특명으로 관직에 나아갔다가,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 이때 경기도 양주의 고산에 있는 별장에 머물면서 <몽천요> 3수를 창작했다. 하지만 이내 효종에 의해 다시 관직이 제수되어 조정에 나아갔고, 당시 권신인 원두표(元斗杓)의 비리를 논한 상소를 올렸다가 관직을 삭탈당해 해남으로 돌아갔다.1657년(71세)에는 조정에 불려 갔다가 다시 관직에 제수되었고, 1659년에 효종이 승하해 왕릉을 정하는 산릉의 간심(看審)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인을 대표한 논객으로 예송(禮訟)에 참여했다가 패배해, 당시 권력을 장악한 서인들에 의해 1650년 함경도 삼수에 유배되었다. 1665년(79세)에는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지가 옮겨져 백운산 아래의 옥룡동에서 거처하기도 했다. 이후 2년 후인 1667년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85세의 나이로 보길도 부용동에 있는 거처 낙서재(樂書齋)에서 운명해, 해남의 금쇄동에 묻혔다.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충헌(忠憲)이라는 시호(諡號)를 하사받았다.윤선도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부로 있었던 봉림대군이 후에 효종으로 등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중앙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비교적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애의 절반 이상을 관직보다는 유배지 은거지에서 지내야만 했으며, 반대 당파의 비방에 결연하게 맞서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사(經史)에 해박했으며, 의약과 복서 및 지리 등에도 널리 통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고산유고(孤山遺稿)≫(6권 6책)가 있다. <어부사시사>·<오우가> 등 75수의 시조를 남겼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작품들로 인해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송강 정철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목차

머리말ㆍ5
국도에서 배를 돌리며ㆍ13
안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읊다ㆍ14
운을 불러 양수재에게 지어주다ㆍ15
날 저물어 광나루 시골집에서 자며 우연히 읊다ㆍ16
하씨 집안에 시집간 당고모의 죽음을 슬퍼하다ㆍ17
남가희의 죽음을 슬퍼하며ㆍ18
수원 벽 위에 쓰여 있는 시에 차운하다ㆍ19
새벽에 길을 가며ㆍ20
여산 미륵당ㆍ21
병이 그치다ㆍ23
아버님 대신 차운해 정언 강대진의 시를 갚다ㆍ24
을묘년 섣달에 남양 큰아버님의 옛집에 갔다가 느낌이 있어 율시 두 수를 짓다ㆍ25
면숙의 유배지로 가는 면부를 보내며ㆍ27
겸보 숙장의 시에 차운하여 회포를 읊다ㆍ29
홍면숙에게 지어주다ㆍ30
길가에 있는 사람에게 장난삼아 지어주다ㆍ32
길주 가는 길에서ㆍ33
경원에 이르러 셋집에 쓰다ㆍ34
잠이 깨어 어버이를 생각하다ㆍ36
친구를 생각하다ㆍ37
정인관암ㆍ38
건원보를 나서며 지어 주다ㆍ39
다시 정인관암에 오르다ㆍ40
곡수대ㆍ41
달을 보고 어버이를 생각하다ㆍ43
진호루에 올라 처마 위의 시에 차운하다ㆍ44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5
매미 소리를 듣다ㆍ46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7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8
두통을 앓으면서 할 일이 없어 <구가>를 펼쳐 읽다가 느낌이 있어ㆍ49
다시 앞 시의 운을 쓰다ㆍ51
집을 짓고 나서 흥에 겨워ㆍ52
?김 장군전? 뒤에 쓰다ㆍ53
아우와 헤어지면서 지어 주다ㆍ55
병중에 회포를 풀다ㆍ57
장자호의 시에 차운하다ㆍ58
옛시에 차운하여 가을밤에 우연히 읊다ㆍ59
대둔사에서 놀다가 처마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ㆍ60
두무포에서 배를 거슬러 올라가며ㆍ62
환희원 주막 벽 위의 시에 차운하다ㆍ63
차운하여 답하다ㆍ64
유상주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ㆍ65
은산 객관에서 할아버지 이견당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ㆍ66
묵매ㆍ69
환희원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ㆍ70
가야산에 노닐다ㆍ71
죽은 아들 진사 의미를 슬퍼하며ㆍ72
오운대에서 짓다ㆍ73
낚싯배ㆍ74
낙서재ㆍ75
황원잡영ㆍ76
대재를 지나면서ㆍ78
하늘을 깁다ㆍ79
새 집에서 한가위 달을 바라보다ㆍ80
산속 서재에서 밤새 이야기하며 계하의 시에 차운하다ㆍ81
시름을 풀다ㆍ82
다섯 그루 버드나무ㆍ84
옛 거문고를 읊으며 아울러 시를 쓰다ㆍ85
금쇄동을 처음 발견하고 짓다ㆍ87
낙서재에서 우연히 읊다ㆍ88
이웃스님이 황무지 개간하는 일을 와서 돕기에 감사하다ㆍ89
권반금과 헤어지며 지어주다ㆍ90
책상을 마주하고ㆍ91
우연히 읊다ㆍ92
종이연에 장난삼아 짓다ㆍ93
차운하여 한화숙에게 부치다ㆍ94
인평대군께 삼가 차운하여 바치다ㆍ95
임진년 사월 이십팔 일에 비가 오는 것을 기뻐하다ㆍ97
심희성이 화답한 시에 감사하다ㆍ99
이계하가 심희성에게 차운해 지어준 시의 운을 다시 써서 세 수를 지어 감사하며 부치다ㆍ100
방장산인의 <부용조수가>?에 장남삼아 차운하다ㆍ101
옛시의 구절을 모아 부채에 써서 누구에게 주다ㆍ103
병들어 고산으로 돌아오다가 배 위에서 흥을 느끼다ㆍ106
차운하여 국경에게 부치다ㆍ108
정심암ㆍ109
계묘년 세밑에 느낀 바 있어 노소재의 시체를 본받아 짓다ㆍ110
사간 이연지의 시에 차운하다ㆍ111
사실대로 쓰다ㆍ112
시름을 풀다ㆍ113
[부록]
작품해설 / 自然ㆍ人間ㆍ藝術 / 윤덕진ㆍ117
연보ㆍ128
原詩題目 찾아보기ㆍ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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