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재능, 흥미, 생각, 관점, 꿈, 희망, 성향, 감정, 관심, 기능, 욕구 등 아이들을 이루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교육의 주체는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교육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간다.
입시라는 명목 아래 선생이 주체가 되어 아이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이야기와 관심을 평가하고, 감정과 욕구를 규제하며, 꿈을 재단하고, 움직임을 제한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아이의 성장은 멈추어버린다. 교육의 길, 선생의 도리는 이런 것이 아니다.
출판사 리뷰
선생을 넘어 스승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간절한 목소리
학생의 삶을 빛나게 하는 선생의 길, 그리고 교육의 길을 찾아서…
자격증을 받아들고 교단에 선 뒤에도 ‘당신은 선생인가?’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을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또 그 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스쳐갔지만 ‘당신은 선생인가?’라는 물음에는 여전히 대답이 궁합니다.
가슴 속엔
아이들을 바꾸려는 의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축복하는 것이라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이의 생각과 의지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다발로 묶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각자의 향과 빛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밖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이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깨우는 것이라는
어른의 아이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이를 위한 아이의 아이를 만드는 것이라는
…
교육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이를 만나지 못하므로 자격에 대한 고민이 평생 따라다닙니다. 부실한 자격이 어떻게 아이들을 해치는지 아이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선생의 자격은 아이의 삶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열정을 피하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매일, 습관처럼 어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아이 앞에 서는 자신을 보면서 자격증에 빛은 바래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선생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아이들의 매서운 50가지 질문
“선생이 자신을 앞세울 때 아이의 성장은 멎습니다!”
재능, 흥미, 생각, 관점, 꿈, 희망, 성향, 감정, 관심, 기능, 욕구 등 아이들을 이루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교육의 주체는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교육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간다. 입시라는 명목 아래 선생이 주체가 되어 아이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이야기와 관심을 평가하고, 감정과 욕구를 규제하며, 꿈을 재단하고, 움직임을 제한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아이의 성장은 멈추어버린다. 교육의 길, 선생의 도리는 이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며 고귀한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를 학교에 그대로 대입해본다면 오늘날 선생은 아이들이 고귀하게 성장하도록 돕기는커녕 천박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강요할 뿐이다.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마라.”고 한 에머슨의 외침은 학교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왜 학교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일까? 왜 아이는 자연스레 선생에게 묻혀버리는 것일까? 왜 선생은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문제점 해결을 위해 내미는 아이의 손을 가차 없이 외면하는 선생들 때문에 학생들은 언제나 심리적 가난에 시달리고, 교육적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교사로서 잘못했던 점을 스스럼없이 공개해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한 권의 반성문을 써내려갔으며,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의 권위가 아닌 상담자의 마음으로 곁을 내어주었던 저자가 이번에는 학교 안에서 아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고자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생각 이상으로 매섭고 거칠었으며 분노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외친 50가지 질문은 상상 이상으로 날 것 그대로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와 선생을 혐오하고, 선생의 끝없는 차별에 화가 났으며, 정서적 폭력에 지쳐만 갔다. 책임져주지도 않으면서 삶에 간섭하는 선생이 지긋지긋하며, 위선적이고도 관료적인 모습에 실망만 넘쳐났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이 외친 50가지 질문에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답을 해나간다. 저자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의를 해줄 뿐이다. 그만큼 지금의 이 상황이 꽤나 진지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의견이 때로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기도 하지만 이는 충분히 들어봄직하다. 그동안 꾸준히 고민해왔던 생각을 솔직하게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겪고 있는 문제점과 아픔, 고통과 슬픔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결코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관찰자이자 청자로만 참여하는 저자의 의도가 오히려 고맙다. 그러한 시도로 인해 오히려 진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단지 선생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까지 교육의 연결고리에 함께 걸쳐져 있는 모두가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애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존재인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걸림돌이 되는 존재인지 말이에요. 그래서 지장을 주는 존재라면 아이들 앞에 설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 생활에 방해가 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국가는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적합한 존재인지 점검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흉악무도
한 짓만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 또한 제재 받아야 할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그게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종을 치시고, 현관으로 나오셔서 손짓하여 부르시곤 하셨습니다.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초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땅바닥을 뒹굴던 그 모습 그대로 경쟁하듯 달려와 어미 품속을 파고드는 새끼들처럼 교실 품에 안기곤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수업시간에 초대하는 선생은 사라졌습니다. 교실은 서로의 일터일 뿐입니다. 선생은 선생의 일에만 몰두하고 아이들은 또 자신들의 일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서로의 일에 지친 일꾼들의 만남입니다. 서로가 반가울 리 없습니다. 차갑고 거칠고 퉁명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교실이라는 노동 현장은 애들에게 불리합니다. 선생이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들은 의문을 갖습니다. “짜증나는 건 종소리가 아니라 선생님이 아닐까?”
아이들은 압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니, 할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마음이 갈가리 찢깁니다. 부당한 일 앞에서도 마음의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선생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교활한 선생은 이러한 아이의 공포심을 이용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도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 존재임을 왜 모르죠?” 애들이 쓴 의문과 답안에 대한 선생의 진솔한 대답이 그래서 시급합니다. “선생님은 좋아요? 함부로 대해도요?” 애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남기고 간 말이 진하게 가슴에 박힙니다. 교육은 그 자체로 아이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존엄한 존재이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겁니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이미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것으로부터 교육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지봉환
교육은 가장 발전된 형태의 인간 존중 방식이라고 믿는 교육자다.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이 아이를 존엄한 존재로 존중하는 내용이고 방법인지, 그리고 교육 정책이나 교육 제도가 아이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정책이고 제도인지에 관심이 많다.한국교원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원대, 청주대, 한국교통대에서 교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철학, 교육사상사 등을 강의했다. 아이를 존중하는 것은 아이를 구성하고 있는 욕구, 신념, 능력, 희망, 관점 등의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하고, 긍정하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의 교육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 이야기, 아이가 보고, 듣고, 몸으로 느낀 생생한 교육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이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교육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그동안 《교사 반성문》 《왜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할까?》(2019 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 등의 책을 썼다.
목차
프롤로그 선생이 자신을 앞세울 때 아이의 성장은 멎습니다
아픔1 | 혐오적 시선
문제아요? 문제 선생님은 없나요?
선생님도 일회용인 거 알아요?
선생님이 학교에 머무는 이유가 뭐예요?
우리가 선생님의 기쁨조인가요?
선생님 자격은 유효기간이 없나요?
선생님은 미친 개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쓸모 있는 존잰가요?
왜, 묻고 듣지는 않죠?
누가 우리를 재우는데요?
수업 종소리가 왜 짜증날까요?
아픔2 | 차별적 시선
선생님, 성적이 낮은 게 우리 탓인가요?
선생님을 어떻게 부를까요?
왜 내가 쟤처럼 살아야 하죠?
우리가 창피한가요?
우리가 보이지 않나요?
선생님은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나요?
애들이 자는 게 아니라 선생님의 열정이 자는 건 아닐까요?
존엄함을 팔아 돈과 권력을 좇는 삶이 옳은가요?
왜 떠나는지 정말 모르세요?
선생님은 애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인가요?
아픔3 | 폭력적 시선
자신의 상처로 애들을 상처 내는 일, 부끄럽지 않나요?
학교를 떠나고 싶은 이유가 뭘까요?
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는 거죠?
선생님은 우리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아요?
누가 주인공인가요?
내 꿈은 내가 꾸면 안 될까요?
교실이 전사를 양성하는 곳인가요?
식사시간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시간이에요?
쉬는 시간은 있는데 쉴 수 없는 이유가 뭐죠?
능력 없으면 그만둬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픔4 | 간섭적 시선
제 삶을 조종하는 이유가 뭐죠?
내가 왜 당신에게 예쁘게 보여야 되는데요?
선생님이 공부의 적임을 아는지요?
우리가 감시당해야 할 죄수인가요?
우린 누가 위로해주나요?
우릴 존중해준 적 있나요?
오늘이 내일을 위한 날이에요?
우리 생각이 병든 생각인가요?
아이들의 삶을 일방적으로 기획하는 건 잘못된 권위 아닐까요?
왜, 구걸하게 만드는 거죠?
아픔5 | 관료적 시선
과목에 신분을 부여한 것이 우린가요?
왜, 선생님 가까이 가야 되는데요?
성장을 위한 과제가 맞나요?
왜 선생님 때문에 삶이 구겨져야 되죠?
교무실이 취조실이에요?
우리가 임시 학생인가요?
학교, 빠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왜, 선생님에게 맞춰야 하죠?
선생님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뭐예요?
질문을 외면하는 건 우리를 회피하는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