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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후에
청어 | 부모님 |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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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논, 김시습 되기

나도 탐욕스럽게 사랑했던 때가 있었구나!
월남전에 참가한 기념으로 가져온 것들 중 하나였던 엘피판이 없어졌다고 난리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도 내 대학시절이 엘피판을 훔쳐다가 선물할 정도로 뜨거운 때도 있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사랑의 노래가 흐르던 그때에는 아버지의 다랑논이 한몫했다. 하지만 몸이 배고픈 지금은 빵이 문제였다.
하란은 그 엘피판을 친구에게 빌려줬다.
“하란아, 너 유학 못 가면 유흥업소에 가서 춤출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완준이가 뭐라 했다고?”
“낙타 한 마리 살 돈 마련해서 사막에 가자했지.”
“낙타는 종일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 거기다 비라도 와 봐. 눈을 껌뻑이면서 먼 하늘을 향해 제 어미를 부르는 것 같단 말이야.”

- 엄마의 가시
수 년 만에 방문하는 고향인데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고향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정의 벨트였다. 떡 한 개, 부침개 한 장이라도 이웃과 나눴다. 농촌은 나누는 것을 잘해야 평이 좋다.
내가 찾아간 방앗간은 우리 집에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방앗간은 큰 마을에 하나씩 있었다. 명절 때와 자식들 등록금 낼 때에는 방안에 꽁꽁 묶어둔 나락을 찧기 위해서 어머니는 동네 방앗간에 갔다. 나는 지금 불린 찹쌀을 차에 싣고 방앗간에 가는 중이다. 주인은 내가 건넨 불린 쌀을 받아서 사각주둥이에다 주르륵 부었다.
“탈탈, 탈탈…”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자 방앗간 주인은 기계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 의자로 가서 앉았다.
“요즘은 방앗간 수입이 그전 같지 않죠?”
“내 손으로 직접 하니께 그럭저럭 유지가 되지, 아니면 힘들지요. 내손으로 기계를 수리하고 관리하고, 쌀도 직접 도정하니께 여태 버티지요. 아님 벌세 일 났지요. 뭐, 다 자기 복 탄대로 사는 거지요. 달달달, 이제 정미소 기계도 늙어서 그악스레 소리 질러요. 탈 탈 탈…”

- 사랑한 후에

교회 지붕 위, 하얀 십자가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청색 옷을 곱게 차려입은 동고비다.
“비비비.”
“비비.”
“비비비….”
동고비는 교회 청년들이 암 수 한 쌍을 키우는 중이다. 예배당이 있는 본당보다 조용한 부대 건물 창가에 새집을 매달아 키운다. 동고비는 교회 주위를 날아다니며 논다. 가끔은 깊은 숲속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한 달 전에는 동고비가 사는 새장 쪽에다 푸른 챙을 내달았다. 청색 옷은 더 짙게, 흰색으로 치장한 배 부분은 살짝 푸른빛이 도는 동고비, 새들도 오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멀리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속으로 울고 있다. 우리 집 누렁이도 심상치 않은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들뜬 다른 개들과는 달리, 주둥이를 제 다리 사이에 박고 내 눈치만 살핀다.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교회 정문을 나온다. 멀리 고속도로와 연결된 큰 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는 큰 도시와 연결되는 길이다. 먼발치로 보이는 그 도로에 방금 대형 트럭 두 대와 자가용이 지나간다. 목련꽃, 매화, 벚꽃들로 동네가 꽃밭이다. 나는 화창한 이 봄날이 싫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경선
2004년 문학21 소설 문학상2012년 아시아 황금사자 문학상2015년 한국소설 작가상[창작집]『글루미 선데이』 시지시출판사『사막의 환』 도화출판사『사랑한 후에 』청어출판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 문학사료발굴위원국제PEN문학 한국본부 회원

  목차

작가의 말
존 레논, 김시습 되기
원 나잇 스탠드
엄마의 가시
섹시한 신이라니
사랑한 후에
어둠 속 살쾡이
향숙이, 그녀는 내게떨림이다
연희동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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