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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바다, 한때
이자규 시집
학이사(이상사) | 부모님 |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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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돌과 나비》 이후 육 년 만의 시집이다. 이자규 시인은 달빛같이 서늘하고 고묘한 사람이다. 차갑고도 신중한 시인에겐 하나에 대한, 시와 삶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다. 이번 시집의 시는 개성과 개인적 상징이 유달리 강하고, 의식의 저변엔 도저한 정신과 “난폭한 언어들”이 있다. 어둠과 밤이 깊이로 시 속에 녹아 있다.

  출판사 리뷰

『돌과 나비』 이후 육 년 만의 시집이다. 이자규 시인은 달빛같이 서늘하고 고묘한 사람이다. 차갑고도 신중한 시인에겐 하나에 대한, 시와 삶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다. 이번 시집의 시는 개성과 개인적 상징이 유달리 강하고, 의식의 저변엔 도저한 정신과 “난폭한 언어들”이 있다. 어둠과 밤이 깊이로 시 속에 녹아 있다.

나는 달빛의 근육이다
차고 서늘한 관념이다


이자규의 시에는 심연처럼 어둠이 가로놓여 있다. 유배의 섬에 갇혀 울대 제거된 짐승, 먼지, 피투성이의 달빛, 쓰레기 같은 하늘 등속의 이미지가 잘 말해준다. 사찰 마당의 커다란 무쇠종이 짐승처럼 포효하는 소리에는 석양조차 살이 발려 나간다.

으슥한 뒷골목에서/ 살해된 식욕이/ 창자를 드러낸 채/ 쓰레기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만찬을 그리는 내일이/ 가끔씩 정체를 드러내며/ 차갑고 날카롭게 지상을 쓸고 간다/ 반짝이는 빌딩 숲의 뒷길을 지나다가/ 피투성이 된 달빛이 형이상으로/ 함께 쓰러진다
-‘달빛 정크아트1’ 중에서

그 어둠 속에 달이 빛을 발한다. 서늘한 시어는 달빛과 어우러져 시 위에 싸늘하게 내려앉는다. 시인은 순간의 영원과 아우라를 가진 달빛의 이미지를 편애한다. 도심의 뒷골목에 버려져 터진 봉지에서 새어나온 온갖 악취와 부패의 온상은 인간의 욕망이자 동물에 가까운 야생의 본능이다. 그 살해된 식욕 위로 쓰러지는 달빛은 죽음처럼 밝다.

달빛과 정크가 만나 새롭게 생성된 세계는 『아득한 바다, 한때』의 절정이자 유니크한 지점이다. 정크아트junk art가 폐품·쓰레기·잡동사니를 뜻하는 정크junk와 아트art의 합성어라면, 일상의 부산물인 폐품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으로서 일종의 폐-예술이다. 폐廢와 예술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부서지는 파도는 위험하고도 아름답다. 저마다의 빛과 소리, 색과 향기, 음영을 지니며 죽은 듯 살아있는 들꽃은 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신체를 매개로 한 죽음과 생명의 시편들도 많다. ‘장루腸瘻’를 “일인용 집”으로 상상하기도 한다. 이자규 시인만의 독창적인 언어와 문법,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일말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서로 대립적인 것들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새롭게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종합적이면서도 분석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표현주의 시나 초현실주의 회화를 마주하는 듯하다.

글씨를 삼키고 그림자를 삼키고 입을 막았다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려면 매우 조급해지는 날개를 기다려야 한다 잉크 덜 마른 종이 성별 따지지 않는 하마단 낙타 걸음마로 기다려야 한다/ (중략)/ 캄캄할수록 자라나는 묘혈, 그 누구도 여기를 찾지는 못할 터, 펄프 냄새와 잉크와 기저귀의 모래언덕 검푸른 언어들에 누구나 두 귀를 세워야 한다
-‘어둠 현상학’ 중에서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하마단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은 사막이고 묘혈이며, 죽음과 생명, 하혈과 해산이다. 그리고 무한과 신생에 대한 기다림이며 어둠의 빛이다. 사막과 흰 눈, 서늘한 기운과 몸 속 온기의 대비는 너머와 여기의 경계로서 묘혈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이자규 시인의 묘혈은 절망이라는 희망이자,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장례식장 옆에 들어선 예식장을 보며 십 년 후에나 읽힐 시를 쓰는 밤, 그 견고한 시간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인은 “발칙하고 비린내 나는 진창의 살과 뼈/ 내 몸을 통과한 시를 쓰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살아 있는 쓰레기더미 같은 시편들은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시야 구석에 걸려 무시할 수 없다. 대조되는 이미지로 채워진 시는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갈치속젓 같은 극빈의 삶을 매콤짭짤하게 비비고 있다.

[머리말]

발칙하고 비린내 나는 진창의 살과 뼈
내 몸을 통과한 시를 쓰고 싶었다

구걸이고 기도이면서 私娼인 존재형식의 노래
살아 있는 쓰레기더미를 쓰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 나누고 싶은 페르세포네의 방
재활의 시를 쓰고 싶었다

내 본성은 어둠이다/ 유기견, 반려견이다/ 개뼈다귀 시간의 축제다

치차에서 이탈된 쇳조각아 녹이 슨 바퀴살아/ 몽당 빗자루 끝 쓸려 나간 반짝이들아

프레스기 옆에 밟히는 피스들/ 못대가리들을 달빛이 세우고 있다/ 시간의 산물은 달빛에 있다/ 빛을 먹은 樂아/ 내 머리핀과/ 내 브로치와/ 내 안경테/ 내게 온 선험적 탄생아

나는 달빛의 근육이다/ 차고 서늘한 관념이다

- 1부 ‘달빛 정크아트·2’

글씨를 삼키고 그림자를 삼키고 입을 막았다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려면 매우 조급해지는 날개를 기다려야 한다 잉크 덜 마른 종이 성별 따지지 않는 하마단 낙타 걸음마로 기다려야 한다

푹 자고 싶은 잠이거나 혹은 깨여 있고 싶은 의식의 혼례가 시작되는 검은 장막 자모를 잉태한 만삭으로 그 정원에 머물렀던 것 같다 납작 돌에 앉아서 돌이 된 사람의 검고 검은 세포분열이 확장되어 꼼지락거리는 무한대의 신생

산재한 조산아들의 언어들 그리고 하혈 터진 온도가 천천히 먼지를 쓸고 간다 비로소 빛을 발하는 친절한 것들에 신세지고 싶은 현상

무릎을 세우고 젖동냥을 기다리는 낭하의 시간 무한히 큰 포대기에 싸여 훨훨 날아오르는 쪽방, 훌쭉한 뱃가죽에 꼼지락거리는 묘비명도 가능하리라

캄캄할수록 자라나는 묘혈, 그 누구도 여기를 찾지는 못할 터, 펄프 냄새와 잉크와 기저귀의 모래언덕 검푸른 언어들에 누구나 두 귀를 세워야 한다

- 1부 ‘어둠 현상학’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자규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시와 삶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으로 지극한 긍정과 성찰의 과정을 담은 시를 역동적으로 쓰고 있다. 비린내 나는 진창의 살과 뼈를 갖춘 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 나누고 싶은 페르세포네의 방과 같은 재활의 시를 쓰고 있다.《시안》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독창적인 언어와 상상으로서 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시집 『우물치는 여자』, 『돌과 나비』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너의 마지막 입술
먼지들 / 달빛 정크아트·1 / 달빛 정크아트·2 / 마스크 물고 달리는 핏자 / 어둠현상학 / 달아, 아픈 달아 / 너의 마지막 입술 / 서술적 관능 / 분홍꽃무늬팬티를 널다가 / 드론시첩 / 흰 개를 보냈던 기억 / 무덤은 철학가 / 맛있는 말의 마구간 / 야생의 분석 / 일그러진 티브이

2부 연지 찍은 황혼이 취한 노을을 안았다
사문진, 내 어깨에 껌이 / 오디와 번데기의 계보학적 고찰 / 물구나무 / 필름을 풀다 / 순록이 있는 창밖 / 암괴류 스케치 / 개의 비명이 들려주는 문장 / 에스프레소 / 서랍을 열 때마다 번식하는 것들 / 허 씨는 매일매일 / 바닥은 지렁이 뇌를 가졌다 / 아득한 바다, 한때 / 개는 개가 아니다 / 빈 구두와 날짜들 / 다섯 징검돌의 강물

3부 꽃피어라 김밥
벚꽃통신 / 두견이를 위한 헌사 / 무아 명명법 / 옵스큐라 / 보헤미안나비로 / 무반주행성으로 나는 / 백구의 책 / 방황하는 고독 / 꽃피어라 김밥 / 바늘겨레 / 들키지 않게 또 보다 / 너는 해파리일까 달일까 / 그와 쇼난 바닷가를 걸었다 / 붉은 원근법 / 낙엽

4부 불굴의 그늘이 될 귀환이므로
벌레잡이 제비꽃 / 찻잔 / 늙고 푸른 재봉틀 이야기 / 하모노그래프 / 이럴 땐 네가 보여 / 완전한 사건 / 안개지형도 / 유리벽 에세이 / 술 익는 소리가 내 귀를 달라 했다 / 나는 SOUL이다 / 새와 나 / 날 좀 안아줘 / 바늘구멍 풍경으로 모는 낙타 몰기 / 버펄로에서 버펄로 윙을 / 일인용 집

발문_달빛, 십 년 후에나 읽혀질 _김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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