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2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조혜경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다채로운 언어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시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주’게 된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시인이 아니라 무수한 내면의 파열음(소음)들이다. 그 소음의 비밀에 근접해갈 때 내면을 위한 삶을 살아주게 된다는 인식은 “가장 환한 사랑을 받고 있단 느낌”(「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느낌’을 다양한 색채 이미지로 형상화한 44편의 작품을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에 담아놓았다.
출판사 리뷰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웅숭깊은 시편!”
“색채 감각으로 그려낸 소리 이미지의 세계!”
언어 위에 덧입혀진 삶의 색깔!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는 2012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조혜경 시인의 첫 시집이다. 조혜경 시인은 다채로운 언어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시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주’게 된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시인이 아니라 무수한 내면의 파열음(소음)들이다. 그 소음의 비밀에 근접해갈 때 내면을 위한 삶을 살아주게 된다는 인식은 “가장 환한 사랑을 받고 있단 느낌”(「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느낌’을 다양한 색채 이미지로 형상화한 44편의 작품을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에 담아놓았다.
조혜경 시인의 시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소리를 색채 감각으로 채색해낸다는 것이다. 감각의 전이를 통해 감각의 겹침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방식은 시인의 내면이 중층의 비밀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다. 시인의 내면은 다각형 벌집 구조처럼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규칙과 질서를 지니고 있다. 하나의 겹이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 내면 전체가 공명하면서 소리가 증폭된다. 이러한 울림의 소리는 무의식의 껍질을 뚫고 의식의 층위로 분출된다. 이 투명한 소리의 분출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차용하는 방식이 채색이다. 조혜경 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으로 소리 이미지에 색깔을 입혀내는 것이다.
파인애플을 기르기로 했어요
오래도록 점막을 찌르며 자라나던 씨앗
시들시들 죽어가는 십이월의 자궁 속에
에왈라 아나 야쓰
얼굴에 물감을 묻혀요 튜브를 짜며 수북해지는 껍질들
하얀 이불 위에서만 엎드려 울 거예요
내 손은 지저분해요
에왈라 아나 야쓰 내 손은 지저분해요
꽃을 피울 거예요
껍질을 뚫고 도망 나온 저 꽃, 쓰다듬으며
쓰다듬으며
에왈라 아나 야쓰
이대로가 좋은데
원주민은 쫓겨 다니죠 울긋불긋 녹아내린 태양
오래 살도록,
에왈라 아나 야쓰 멀어질 거예요
―「에왈라 아냐 야쓰」 부분
시인은 꿈속에서 들었던 후렴구 “에왈라 아냐 야스”를 의식의 층위로 끌어내기 위해 “물감”을 이용한다. 색채 감각으로서의 ‘물감’은 무의식의 소리를 감각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여 의식이라는 “자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 결과 내면세계의 “껍질을 뚫고” 한 송이 “꽃”이 피어날 수 있고, 그 꽃의 무의식적 반영으로 “울긋불긋 녹아내린 태양”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소리와 색채라는 두 감각을 겹쳐 놓음으로써 시인은 무의식과 의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세계를 구축해내는 것이다.
내면의 안과 밖, 그 경계 지우기!
조혜경 시인은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하기 위해 ‘껍질’ 벗기기를 상징적으로 활용한다. 무의식의 세계, 무지의 세계, 미몽의 세계로부터 의식의 세계, 기지의 세계, 각몽의 세계로 이행하는 것을 껍질 벗기기로 형상화한다. 그리하여 미완의 세계였던 껍질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우고 완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조혜경의 시에서 자주 들리는 파열음(소음)은 껍질을 깨뜨리는 소리이다. 파열음은 분리되었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또 다른 세계를 완성해가는 전조이다. “껍질 밖으로 걸어 나간 사람을 / 시인이라 부르는 곳에서 / 삽니다”(「백석동」)라고 했을 때, ‘시인’은 내면의 파열음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자 껍질의 안과 밖을 관통하는 존재인 것이다.
기차역에서 만나 커피를 들고 와
시간은 쉽게 식고 우리들은 지루해지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에 대해 이야기하자
눈과 파도에 대해
바나나는 탁자 위에서 진지하고
우리는 다리가 없지
잘 지내고 있니?
식은 커피 아래 가라앉는 설탕처럼
우리는 섞일 수 없어
반짝, 날개라는 말이 사전에서 사라진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갈매기가 뒤뚱거리며 길바닥의 팝콘을 먹고 있어
뒷짐 지고 인사동을 성수동을
바나나는 미끄러워 껍질 밖의 일에 대해
커피를 쏟아도 우린 웃지 않지
반점이 나타난 바나나 앞에서
향기가 왜 슬플까?
아무 말 하지 말자
우는 여자의 속눈썹과 아름다운
驛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 전문
문학비평가 고종석은, 조혜경의 시에는 “명징한 불투명성”이 있으며 그 ‘명징한 불투명성’이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명징한 불투명성’이란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세계이자 아직 어떤 빛깔의 채색도 가미되지 않은 무구한 상태이다.
조혜경 시인은 “반점이 나타난 바나나”처럼 “오래 고인 슬픔이 시커먼 빛을 / 글썽이는”(「오후 여섯 시」) 순간을 자주 목격하고, “우물가의 여인처럼 내 잔을 높게 드는 꿈”(「아스피린」)을 꾼다. “꿈속의 너는 많이 아팠”(「남겨진 것들」)고, 시인은 “꽁꽁 얼어 떠다니는 꿈을 주머니에 넣고 // 울지 마, 울지 마”(「몽블랑 기차」) 달랜다. 시인이 “꿈속에서 부른 노래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어서”(「거짓말 그리고 참새」) “구겨져 있던 / 푹 젖어 작은 덩어리가 된 / 웅크리고 있는 / 나를 찾으려 / 손을 넣고 더듬”(「밤이고 막다른 골목이고 기찻길이고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어 왔던 시간의 결과물이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에 담겨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혜경
시인 조혜경은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순천향대학교와 동 대학원 및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간호학을 전공했고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있다. 2012년 시 「레위기 저녁」으로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2020년 전북문화관광재단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했다.
목차
1부 너는 여전히 아름답고
집 / 나의 개 / 생일 / 얼굴 / 나의 모퉁이, 집 그리고 개 / 예루살렘 / 백석동 / 밤이고 막다른 골목이고 기찻길이 있고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 / 너는 여전히 아름답고 / 아쿠아리움 / 해변엔 부끄러움이
2부 명랑한 얼음의 아이들
Gate 3 혹은 Gate 4 / 남겨진 것들 /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 / 원예치료사 / 주전자 / 쉬는 시간 십 분 / 산 1번지 / 레위기 저녁 / 달력 / 반짝반짝 눈은 쌓이고 / 라임라이트
3부 종아리 가는 아이가 뛰어간다
책 / 꽃 / 마마스 앤 파파스 레스토랑 / 에왈라 아나 야쓰 / 11시 59분 / 전깃줄과 까마귀 / 그 남자의 집 / 검은 스웨터를 뜨는 시간 / 그림이 걸린 벽 / 비, 비, 비 / 콩
4부 뵈뵈는 따뜻했다
종이 인형 / 몽블랑 기차 /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 아스피린 / 11시 11분 / 편의점은 잠들지 못하고 / 거짓말 그리고 참새 / 오후 여섯 시 / 휴일 / 눈사람 뵈뵈 / 내일의 집
해설 명징한 불투명, 또는 위태로운 아름다움 |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