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인 자동차 부품 중개상으로 창업하여
직접 부품을 제조하기 시작한 동네 철공소 시절을 거쳐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들의 우수 공급업체로 성장하기까지
자동차 부품 기업 ‘센트랄’이 걸어온 70년의 발자취를 오롯이 담아내다!1952년 부산 국제시장 한편에 문을 연 자그마한 자동차 부품 가게로 시작한 센트랄은 자동차용 현가, 조향, 정밀가공, 구동 부품 등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 제조 기업이다. 현재 현대기아차, GM, 포드, 크라이슬러, 벤츠, BMW 등 명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글로벌 전기차 부품 개발을 시작하였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두고 중국, 미국, 독일, 멕시코, 베트남 등 10개국에 해외 법인 및 연구소와 생산 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센트랄과 거래하는 글로벌 고객사는 완성차 기업 43개사, 애프터마켓 기업 300여 개사에 달한다. 동네 철공소가 세계를 무대로 달리는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센트랄의 성장 스토리가 펼쳐진다!
지금의 센트랄을 만든 선택과 노력의 시간들
그리고 계속되는 혁신과 변화‘모든 이동에 안전함을 더하는 기업’을 모토로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센트랄. 70년의 세월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이 되기까지, 어떤 선택과 노력의 시간이 쌓여서 오늘의 모습을 빚어냈을까?
이 책에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청년 강이준이 센트랄의 모태인 자동차 부품 가게 ‘신라상회’를 창업한 이야기부터 제조업이라는 새로운 바다로 뛰어든 순간, 한국 자동차 업계 최초의 한일합작 기업이 된 이야기, 1990년대 미국 완성차 시장 진출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센트랄은 우리나라 초창기 자동차 산업환경에서 부품 국산화를 이루는 데 선도적으로 기여했다.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미래를 내다보고 한 발짝 앞서 대비하였으며, 다가오는 변화 앞에서 소신 있게 선택하고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오일쇼크, IMF, 세계 금융 위기, 노사 분규, 코로나 사태 등 몇 번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금세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집념과 끈기로 기술력을 축적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여 우수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등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센트랄은 여전히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시장 확장에 열정을 다하고 있으며, 시장 생태계 변화에 발맞춰 모빌리티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과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제조업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유연하고 개방된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직접 센트랄에 입사하여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정보를 모아 센트랄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였다. 센트랄을 움직인 사람들, 센트랄을 둘러싼 환경과 당시 사회 이야기 등이 생동감 있게 펼쳐져 몰입감을 높여 주며 더불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사도 엿볼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글로벌’을 지향하면서도 ‘로컬’을 잊지 않는 기업 센트랄,
지방소멸 시대의 본보기가 되다이 책은 대한민국 중견기업으로서 훌륭하게 성공 궤도에 올라선 센트랄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센트랄을 잘 몰랐던 이에게는 앞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고 있는 탄탄한 기업 하나를 새로이 알려 주며, 센트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량 기업으로 남아 주기를 응원하게 된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센트랄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고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오늘 같은 지방소멸 시대에 소중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센트랄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다. 거대한 산업 생태계의 위계적 먹이사슬 한복판에 존재하면서도 자기만의 니치(Niche)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하는 대기업이나 완전히 새롭게 형성되는 생태계(IT나 유통 같은)의 선두 주자들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의 문제점은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그런 압도적인 지위나 절호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이미 짜인 생태계 내부에서 나름의 힘으로 분투하면서 생존해야 하는데, 이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센트랄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생태계의 꼭대기에 굳이 올라서지 않아도, 동급자들과 약자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존은 물론 동반 성장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센트랄이 보여 준다. 물론 센트랄 사례가 최고라든지 최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든든한 사례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먼 길을 떠날 때 동행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큼 크다. 누구나 저질렀을 법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오늘의 자리에 이른 센트랄의 이야기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앞으로 걸어야 할 여러분에게 적지 않은 격려가 되리라 믿는다.”
- 저자의 ‘에필로그’ 중에서

기획실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자동차로부터 신차 개발에 참여해 달라는 공식 요청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 개발 프로젝트가 현대차에서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대통령 특별 지시에는 1975년까지 국산 차를 생산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명실상부한 고유 모델의 국산 차가 되기 위해서는 부품부터 국산화를 이뤄야 하는데, 현대차는 그 파트너 중 하나로 센트랄을 지목했다.
센트랄은 볼 조인트의 국산화에 성공해 그것만으로도 꽤 잘나가던 공장이었다. 그 시절 볼 조인트는 대표적인 소모성 부품 중 하나로 안전을 위해 길게는 1년에 한 번, 짧게는 두 번 이상 교체해야 했다. 택시나 승용차의 안전 검사 때 볼 조인트를 갈았는지가 중요한 통과 기준이었다. 따라서 볼 조인트 하나만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어도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굳이 신차 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막대한 돈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강이준 사장은 뻔히 보이는 시장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실을 만들었고, 때마침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제안이 왔다.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야 당연히 동참해야 할 프로젝트로 보이지만, 현대차가 어찌 될지 몰랐던 그 시절에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지 않았을까? 시발자동차, 새나라자동차, 아세아자동차 등 1세대 완성차 기업들의 수준과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던 때였다. 과연 현대자동차라고 다를까?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국산 차 개발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센트랄도 모험을 걸어야 할까?
- [2부 센트랄] ‘03 중장기 계획’ 중에서
이희방 상무는 본인이 볼 조인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영업 분야에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볼 조인트 낱개를 파는 게 아니라 볼 조인트에 대한 ‘지식’을 팔자는 것이었다.
이 상무의 논리는 간단했지만 정곡을 짚었다. 바이어가 센트랄의 영업 활동 덕분에 볼 조인트 지식을 얻게 되면 센트랄의 볼 조인트를 구매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동남아 지역 영업맨들을 모아 집중 교육에 들어갔다. 볼 조인트의 구조와 기능,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 상무는 직접 강의하면서 어떤 볼 조인트가 좋고 나쁜 것인지, 신기술이 적용된 볼 조인트와 그렇지 않은 구형 볼 조인트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등을 상세히 가르쳤다. 영업 사원들도 이 상무와 똑같이 강단에 서서 이 상무를 상대로 볼 조인트를 강의하게 했다. 습득한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영업 사원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부품의 세세한 기능과 구조를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많은 바이어를 만나 가격 경쟁을 이겨 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 상무는 영업맨들도 기술직 못지않게 볼 조인트에 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려면 바이어와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전문 지식만큼 좋은 통로는 없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이 만든 자동차 부품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까웠다. 특히 동남아 시장에선 일제 부품이 최고였고, 나머지는 짝퉁 정도의 지위만 얻을 수 있었다. 바이어들이 “일본산과 똑같이 만들어서 ‘made in Japan’만 새겨 주면 가격을 더 쳐주겠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장에 순응하기만 하면 새로운 기회가 생길 리 없다. 이 상무는 바이어들의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해 그들에게 볼 조인트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 것이다. 당시 이 상무가 바이어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물건을 팔러 온 게 아니다. 볼 조인트의 기능과 품질을 팔러 왔다. 예전에 당신들은 일본 회사에 ‘made in USA’라고 새겨 주면 돈을 더 쳐주겠다고 요구했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 회사에 ‘made in Japan’을 새겨 달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중국 회사에 ‘made in Korea’를 새겨 달라고 요구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실력이 있다. 한국을 팔러 왔고 품질을 팔러 왔다.”
영업은 공격적이었다. 현지 택시 기사들에게 프로모션용 볼 조인트를 무상 제공하는 방법도 있었다. 운행 거리가 긴 택시 운전사들은 1년에 한두 차례 볼 조인트를 교체해야만 했다. 그런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신기술이 적용된 센트랄 볼 조인트는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동남아와 중동,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러시아와 사회주의 국가들 그리고 일본중앙자공이 들어가지 않았던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이희방의 ‘지식 영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 [4부 글로벌] ‘03 대항해의 시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