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 그리움의 발자취를 따라 그림 속을 걷다 저자는 직업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해외 근무를 하던 중 우연하게도 빈센트가 살고 활동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에서 적게는 3년 많게는 6년 동안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던 중?어릴 때 머리속에 새겨져 있던 빈센트라는 화가의 발자취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는 의도적으로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다가 아예 그가 머물렀던 모든 지역을 찾아가보겠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빈센트가 태어난 쥔더르트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닌 네덜란드의 각 지역, 벨기에 보리나주 지방의 탄광촌, 파리 몽마르트르와 남프랑스의 아를, 그리고 정신병원이 있었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마지막 혼을 불태운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시간 날 때마다 찾아다녔다. 심지어 빈센트가 화가가 되기 전에 잠시 머물렀던 영국의 마을들까지 모두 찾아내 답사했다.
저자는 마지막 해외 근무를 한 암스테르담에서는 걸어서 20분 내외의 거리에 ‘반 고흐 미술관’이 있었기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미술관을 방문하여 빈센트의 그림을 보고 또 보는 행복한 행운을 누렸다. 또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암스테르담 시립현대미술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러던 중 반 고흐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빈센트의 일대기를 정리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빈센트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그림에 얽힌 이야기뿐만 아니라 빈센트와 얽힌 여러 주변 이야기들, 그리고 빈센트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을 충실히 취재하여 들려주고 있다. 또한 최근의 소식까지 취재 노트에 정리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2. 우리들 내면 속 영혼의 친구 화랑 점원, 교사 생활, 서점 점원, 선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1881년 안톤 마우베와의 인연으로 27세에 헤이그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본격적인 화가로의 길로 들어선 빈센트는 37세로 죽기까지 10여 년 동안 수백 점의 그림과 드로잉을 남겼다. 특히 죽기 몇 달 전에 그린 그림들은 병마와 싸우며 정신적 고통 속에서 그려졌다는 점에서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준다. 그러한 삶의 열정이 빈센트를 우리들 내면 속 영혼의 친구로 받아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살아서 몇 점의 그림을 판 것이 고작이지만, 그는 언젠가는 그림이 팔리고 화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시시포스와 같은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우울을 선택했어. …희망을 품고 탐구하는 우울함 말이야.”
이러한 삶의 고난과 그 고난을 벗어나고자 애썼던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의 발자취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소외 받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고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부으며 그린 그림들은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라지 않고 우리들 곁에 머물러 있다.
3.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의 여정서양미술사상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어린 시절 벨기에와 국경 지역인 브라반트라는 농촌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브라반트의 들판과 수풀은 평생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빈센트는 자연과 예술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했으며, 어디에서보다도 시골과 전원에서 많은 영감과 평화와 위안을 받았다. 빈센트는 예술가란 진정으로 자연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테오에게 보낸 1884년 어느 편지에서도 “항상 자연 속을 거닐고 자연을 사랑하도록 해. 이는 예술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1883년 어느 날 시엔과의 헤이그 생활을 청산하고 오염되지 않은 시골을 찾아 네덜란드의 북쪽 지방 드렌테로 갔다. 그곳은 토탄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빈센트는 농민들이 빈곤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고되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어둡고 칙칙한 드렌테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1883년 말 부모가 있는 뉘넌으로 돌아와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을 탄생시켰다. 이곳 역시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빈센트는 시골 풍경과 자연을 배경으로 많은 드로잉과 그림을 남겼다.
1886년 2월 파리로 활동 공간을 옮긴 빈센트는 존 피터 러셀, 툴루즈 로트렉, 에밀 베르나르, 폴 고갱 등과 친분을 맺었고, 당시 파리의 인상파, 점묘파,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번잡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 그는 1888년 2월 빛과 평화를 찾아 남프랑스의 조그만 도시 아를로 떠났다. 봄에는 과수원의 만발하는 꽃들을 부지런히 그렸고, 가을에는 황금빛 들녘의 추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또한 아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몽마주르 수도원 터를 50번 이상 찾아다니며 많은 그림과 드로잉을 남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간다.
아를에서는 예술인촌에 대한 꿈을 꾸며 고갱과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각한 다툼 끝에 귀를 자르는 소란을 피운 뒤 그의 꿈은 망가졌고, 1889년 5월 제 발로 생 레미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시골 풍경에 꽂혀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활동이 제약된 빈센트는 울타리 안의 올리브 나무 풍경과 정원을 그리거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나방이나 풀들도 스케치했다. 이곳에서 빈센트는 고향 브라반트의 자연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890년 5월 아를을 떠나 파리 근교 오베르로 가서 마지막 몇 달을 보내면서 빈센트는 더블 스퀘어 캔버스에 상당수의 휘몰아치는 풍경화를 그렸다. 그것은 시골에 대한 어떤 송가였으며, 거기에 그는 보다 깊은 감정을 실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빈센트는 1890년 7월 27일 마지막 순간에 오베르 주변의 밀밭으로 걸어 나가 자기 가슴에 권총을 쏘았고, 이틀 뒤에 죽었다.
전 생애를 통해 자연은 빈센트 예술의 출발점이었다. 동시에 일본 판화는 빈센트가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빈센트는 현대적이면서도 보다 원시적인 그림을 찾으려 했으며, 그 점에서 일본 목판화는 그의 출발점인 자연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새로운 색상 실험 및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후기 인상주의의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이따금씩 나는 풍경화를 무척 그리고 싶어져. 마치 사람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긴 산책을 하고 싶어 하듯이 말이야. 그리고 자연의 모든 곳에서, 예를 들면 나무에서도 나는 그 나름대로의 표정과 영혼을 본다.”
빈센트는 야코프 얀 반 데르 마텐(Jacob Jan van der Maaten, 1820~18789)의 <마지막으로 교회 가는 길Going to Church for the Last Time>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밀밭을 지나 장례 행렬이 교회로 가고 있고, 길목의 농부는 일을 멈추고 모자를 벗어 삶과 죽음의 중재자인 하느님과 망자에 대해 경의를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빈센트는 자연과 시골생활, 하느님과 죽음에 대한 깊은 경외감에서 이 그림에 무척 많이 끌려했다. <마지막으로 교회 가는 길>과 같은 그림은 신교의 네덜란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개혁교회 목사였던 빈센트의 아버지는 서재에 이 그림을 가지고 있었고, 빈센트는 이 인쇄물 그림 여백에다 죽음과 시골생활에 관한 복음의 몇 구절과 함께 시 한 수를 작은 글씨로 써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