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지우개 따먹기 법칙》에 이어 독자 마음을 사로잡을 또 하나의 이야기
놀이의 즐거움이 제대로! 짜릿한 승부!
스스로 알아 가는 놀이의 법칙 속에 스며든 우정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한 놀이는 아니었다. 적어도 예준이한테는 그랬다. 그런데 수찬이가 자꾸 연필 따먹기를 하자고 졸랐다. 틈만 나면 놀리면서 가끔 친한 척을 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는데, 우연히 연필 따먹기에서 수찬이를 이기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수찬이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생각에 승부욕이 슬슬 차오른다.
수찬이는 공부를 잘하고 수학 문제 푸는 것도 좋아하지만 엄마의 극성과 학원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힘들어한다. 뭐든 원하는 대로 돼야 직성이 풀리는데 예준이한테 연필을 잃고 말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상하게 예준이랑만 하면 번번이 지니까 오기가 생긴다. 놀이 방법을 멋대로 바꾸기도 하고, 직접 제조한 기이한 연필로 맞서려고 한다.
전학 온 해나는 성격이 활발하고 친절해서 금세 아이들과 친해졌고, 소극적인 예준이도 해나에게 마음을 연다. 무적함대처럼 친구들의 연필을 모조리 따 간 수찬이가 수집한 연필들을 못살게 굴자 이를 보다 못한 해나가 수찬이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보란 듯이 승리를 거둔 해나는 연필을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자기가 딴 연필들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 준다.
어느 날 돌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일로 크게 꾸중을 들은 수찬이는 모든 게 예준이와 해나 때문이라고 여기며 복수를 마음먹는다. 억지로 연필 따먹기에서 이긴 뒤 두 사람에게 엉뚱한 벌칙을 주었지만 도리어 자기가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우연한 기회에 수찬이는 예준이에게 사과할 용기를 얻고, 뜻밖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예준이는 수찬이에게 뾰족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연필이 아이들을 연결해 주는 또 다른 친구가 되었다.
연필 따먹기 놀이라 쓰고, 우정이라 읽는다놀이는 재미가 있다. 재미있으려고 노는 것이다. 어떤 놀이든 재미있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다. 한마음으로 깔깔대며 웃다가도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갈등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게 놀이의 현장이다. ‘연필 따먹기 놀이’ 역시 친구랑 맞붙어야 제맛이다. 연필 따먹기를 해 본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거리를 가지고 있다. 당시 어떤 연필이 유행이었는지부터 시작해 어떤 연필로 이기고 졌는지, 어떤 전략으로 대결을 펼쳤는지…… 에피소드가 넘쳐 난다. 그런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그 안에는 언제나 ‘친구’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예준이와 수찬이도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아니, 예준이 입장에서는 수찬이가 영 불편한 존재였다. 알고 보면 수찬이도 예준이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말을 걸어도 별 반응이 없자 무시당하는 것 같아 괜히 약점을 잡고 놀려 댔던 것이지만. 아무튼 어쩌다 연필 따먹기 대결을 펼치게 된 두 사람이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될 때까지 연필이 분명 톡톡한 역할을 했다. 처음엔 단순한 대결이었다가 점차 즐거운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놀이를 하는 동안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까? 한강변으로 나들이를 간 세 아이가 나무 돌고래를 강물에 띄울 때, 서쪽 하늘에서 낮달이 웃고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짜릿한 승부, 건전한 승부욕코로나로 인해 재택 수업,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참 속상한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단둘이 할 수 있는 놀이, 가족과 할 수 있는 놀이가 풍부하면 좋을 텐데 ‘연필 따먹기 놀이’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놀이는 단순히 노는 데 그치지 않고 승부를 가림으로써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누구나 이기면 신나고 지면 속상할 테지만,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랑 노는 게 훨씬 즐겁고 승부를 가리는 놀이일수록 긴장감이 고조되다 보니 승패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수찬이는 승부욕이 강한 아이로 보인다. 여러 방면에서 성취도가 높은 편이고,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를 중시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연필 따먹기라는 재밌는 놀이를 발견한 뒤 잘하고 있었는데, 예준이한테 자꾸 지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화도 내고 박박 우기면서 놀이 규칙을 멋대로 정하는가 하면 자기가 이길 때까지 친구에게 놀이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로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규칙을 지키고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 또 자기반성을 통해 결점을 보완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물론 수찬이 같은 어린이에게 이 모든 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비록 수찬이가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승부를 가리려 하고 결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긴 해도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연필을 만들어 가며 경쟁을 즐기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아무쪼록 수찬이가, 그리고 모든 어린이가 친구들과 실컷 어울리면서 짜릿한 승부를 맛보면 좋겠다. 승리를 기뻐하고 실패도 배우면서 건강한 승부욕이 샘솟기를!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기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마음을 살피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마음은 사람이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서 스스로 또는 상대방에게 애정이 없으면 마음을 쓰기 어렵다. 예준이가 수찬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을 때는 수찬이의 상황이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걸음 가까워진 뒤로
예준이는 수찬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업 스트레스로 갑갑해하는 수찬이를 보면서 자기가 마음 터놓을 친구 없이 갑갑했던 순간의 마음이 겹쳐서 보이고, 친구인 수찬이를 도와주려고 한다. 해나는 예준이를 처음 보았을 때 한껏 웅크리고 있는 예준이 마음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어릴 때 아팠던 경험이 있으니까. 친한 친구 없이 외롭고 마음 한구석이 아픈 예준이가 신경 쓰이지 않았을까? 용기가 없어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 수찬이는 사과해야 할 상대인 예준이를 보고 비로소 사과하는 태도를 배운다. 그리고 용기를 내 사과한다.
스스로 부족함을 채워 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기대어 마음을 주고받는 모습이라니. 글 작가의 말 끝에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소개되어 있는데, 별것 아닌 듯 짧은 하나의 문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찬찬히 떠올려 본다.
“야, 김예준! 나랑 연필 따먹기 다시 하자.”
“당번이라 식당에서 우유 상자 받아 와야 해. 바빠.”
예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건 핑계였다. 매번 자기 유리한 대로만 하려는 수찬이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수찬이가 이죽야죽 약을 올렸다.
“왜, 내가 이길까 봐 겁나서 그래? 네가 이긴 건 순전히 운이야. 힘이 세거나 기술이 좋아서 그런 게 절대 아니라고.”
지호도 부추겼다.
“그래, 다시 해 봐. 이번에 진짜 승자가 누군지 가려 보라고.”
예준이의 생각도 바뀌었다. 두 번이나 수찬이를 이겼기 때문에 가슴 언저리까지 자신감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이번에야말로 늘 잘난 척하는 수찬이의 콧대를 확실히 눌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찬이도 연우와 지호 앞에서 예준이의 연필을 갈고리로 긁어 오듯 가져오고 싶었다.
“아싸! 내가 둘 다 이겼다. 이제 벌칙 받을 준비나 하시지!”
수찬이는 좋아서 방방 뛰었다.
예준이와 해나는 우기기 대마왕 김수찬이 어떤 벌칙을 줄지 걱정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찬이가 벌칙 쓴 종이를 예준이와 해나에게 각각 내밀었다. 예준이가 먼저 종이를 펼쳤다. ‘선생님 실내화에 왕껌 붙이기’라고 적혀 있었다.
“야, 이건 너무해. 다른 걸로 바꿔 줘.”
예준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해나도 벌칙 종이를 펼쳤다. 그런데 예준이가 무슨 벌칙이냐고 물어도 입을 꼭 다문 채 가만있기만 했다. 수찬이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해나를 쳐다보았다.
“이해나, 벌칙 바꿔 줄까? 대신 나한테서 따 간 연필을 몽땅 가져와. 그럼 벌칙 바꿔 줄게.”
해나는 갈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마음을 정한 듯, 벌칙을 받겠다고 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