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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은둔 사이
벽장 안팎에서 쓴 글들
오월의봄 | 부모님 |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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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벽장’이라는 말은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를 뜻한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 ‘커밍아웃’이 ‘벽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말에서 유래한 데 기인해 그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벽장에 머물다 서른 살에 이르러 게이 커뮤니티에 ‘데뷔’한 저자는 게이로서 체험한 세상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심중을 가감 없이 고백한다.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아서, “사회니 구조니 하는 덩치 큰 것들의 책임”이 “소수자 개인의 짐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슬프면서도 익숙해서 그는 글을 쓴다. 그렇게 5년 동안 써 내려간 글들 중 일부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살고자 발버둥 친 한 사람의 몸부림이자 차별금지법 없는 이곳에서 어쩔 수 없이 유별난 이야기다. 시인 황인찬은 “퀴어의 존재론적 들썩임”이라는 말로 이 책을 정의하며, “그 맞지 않음, 그 낯섦, 그 어색함, 그 부대낌이 애당초 우리 모두의 몸속 어딘가에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추천의 말을 보탰다.

  출판사 리뷰

“긴 세월 동안 나는 내가 게이임을 확신하지 못한 채
어중간한 상태로 나를 놓아두었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연구자이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인 저자는 현재의 활발한 행보와 달리, 서른 살 이전까지 자신이 게이임을 확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남자에 끌린다는 걸 알면서도 “어중간한 상태로 나를 놓아두”는 것을 ‘은둔’으로 정의하는 저자는 긴 세월의 은둔이 내면에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당연한 이성애’의 세상에서 은폐되는 방식으로 존재한 그는 수시로 몸을 들썩인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퀴어함’은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뉴스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명절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몸을 들썩이게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당장에 무슨 티가 나지도 않는 이 은근한 고통은 ‘은둔’의 일상 그 자체로 저자의 이야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삼십 대에 게이 커뮤니티에 ‘데뷔’했다. 하지만 ‘은둔’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정체화와 커밍아웃 이전의 은둔이 ‘정상성’에 부합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면, 그 이후의 은둔은 게이 커뮤니티 안에도 존재하는 위계와 차이, 그리고 자신이 겪는 억압이 다른 소수자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싶은 무지의 욕망이다.
그러나 차별과 혐오는 그런 무지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안다. 따라서 그는 계속 ‘알고자’ 한다. 모르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삶을 가꾸고 정치적 가능성을 도모하기도 하는 가운데, 수시로 좌절하고 아주 가끔씩만 희망을 보면서도, 기어이 “다른 세상”을 그린다.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아서, “사회니 구조니 하는 덩치 큰 것들의 책임”이 “소수자 개인의 짐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슬프면서도 익숙해서 그는 글을 쓴다. 이 고립감과 슬픔을 “내 탓 내 팔자라” 여기게 하는 피해에 “싸먹히지” 않으려 수많은 자료들에서 자신과 같은 이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5년 동안 게이로서 체험하는 세상을 써 내려가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에 연재했고, 그 글들 중 일부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공적인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이 책은 에세이이지만, 저자의 심중을 다루는 글만큼이나 자료를 다루는 글이 동등한 무게로 이어진다. 각종 연구논문, 기사, 간행물, 단행본, 인터넷 게시글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엮어가며 산문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이 지니는 무게와 사회적ㆍ역사적 사실의 무게를 동등하게 두고자 한다.
가령, 커밍아웃 이전의 마음과 올랜도 성소수자 클럽 총기난사 사건을, 게이로서 입은 피해를 헤아려본 날과 1965년 발행된 어느 잡지 기사의 한 단락을, 코로나19 확진자의 게이클럽 방문으로 언론의 혐오적 보도가 쏟아졌던 나날과 클럽의 역사를 다루는 식이다. ‘세상과 은둔 사이’를 오가는 저자의 시각에서 두 종류의 글은 분명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독자는 자주 행간에 머물며 숨을 고르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여러 감정과 상황이, 성소수자들이 오랫동안 겪어온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의 문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자신의 삶이 HIV/AIDS 감염인, 여성, 장애인 등 다른 이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핌으로써 연대를 말한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안에 자신의 경험을 배치하는 이 에세이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어떻게 공적인 이야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세상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현재는 분명 과거의 누군가가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다. 이러한 미래가 오는 데 분투했던 많은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말하고 움직였고, 낙담하면서도 ‘다른 세상’을 꿈꿨다. 세상은 “어느 순간 그렇게 변해” 있다.
“누군가의 현재가 어째서 문제적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에서, 문제를 계속해서 외면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그 ‘누군가’는 때로 정말로 사라진다. 비교적 성소수자 인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은 이성애자 청소년보다 5배 높다. 201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조사 결과다. 국내에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무지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이가 여기 있다. 왜 어떤 삶은 벽장에 있는가, 함께 묻자는 요청이 여기 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성소수자는 언제 어디서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어떻게 더 이상 ‘죽게 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그 이야기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 책의 글들은 성소수자로서 내 경험과 정체성이 어떤 의미이고, 그것이 다른 존재와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그걸 내가 얼마나 들여다보기 싫어하고 무서워했는지를 써 내린 기록이다.

인간이 인간 같지 않게 취급되는 이 험난한 시국에 거의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그런 현재를 겪는 내 상태를 낱낱이 기술하고, 이 모든 사태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줄 과거와 현재의 자료에 골몰하여 그것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나 역시 여느 인간일 수 있다는 고요하고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호방하게 갈라놓은 삶과 섹슈얼리티 사이, 그 평온한 질서 속에 무언가 비어 있다는 것을, 머리는 몰라도 마음은 알아챈다. 사실 은둔은 상시적인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대현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연구자. 성적 지향의 문제로 오래 방황하다 서른 살에 게이 커뮤니티에 ‘데뷔’했고, 이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으며, 커밍아웃을 전제로 몇 번의 강연을 치렀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현장에 있으면서 세상의 다양한 운동과 당사자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었다. 한국의 성 관련 지식·제도의 형성과, 그것과 연결된 성적 억압·낙인의 형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서로 《사랑의 조건을 묻다》(2015)가 있고, 공저로 《그런 남자는 없다》(2017), 《한뼘 한국사》(2018), 《원본 없는 판타지》(2020)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1부 은둔 사이의 세상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오래된 피해
후레자식들
기대하지 않음
진짜 사나이가 본 〈진짜 사나이〉
앎의 공포
불가능한 게이
공감의 한계
게토의 생식

2부 세상 사이의 은둔
여성스러움의 낙인
어떤 120%의 인생―故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위험취약군
인생의 부작용
어느 감염인의 이야기―故 오준수의 유고
코로나 시대의 사랑
자가격리의 계보
음압병동의 귀신
명월관의 기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3부 다른 세상의 꿈
문빠 게이의 자긍심
이성애의 배신
사회성의 피안
오염된 슬픔
사적인 영역에 도달하기까지―수전 팔루디, 《다크룸》
강제적 동성애
슬픔 너머의 세상
근본 없는 즐거움
퀴어의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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