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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한국학자료원 | 부모님 |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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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율곡이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으며, 내용은 제1장 >입지<에서부터 >처세<의 항목으로 나누어 제10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이 책머리에는, 정조 12년(1788)에 이 책을 친히 열람하고 제목에 글을 지어 문신 이병모(1742∼1806)에게 명해 이를 책머리에 붙이게 하였다. 『격몽요결』은 조선 중기이후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어『동몽선습』과 함께 초학자의 입문서로 근세에까지 많이 읽혀져 왔다.

※ 누드 제본 도서입니다.

  출판사 리뷰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은 율곡이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으며, 내용은 제1장 >입지<에서부터 >처세<의 항목으로 나누어 제10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이 책머리에는, 정조 12년(1788)에 이 책을 친히 열람하고 제목에 글을 지어 문신 이병모(1742∼1806)에게 명해 이를 책머리에 붙이게 하였다. 『격몽요결』은 조선 중기이후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어『동몽선습』과 함께 초학자의 입문서로 근세에까지 많이 읽혀져 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이
1536년, 중종 31년 강릉 오죽헌에서 이원수와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태어나다.1551년, 모친 신 부인의 상을 당하다.1554년,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교제하다. 이 해 3월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가의 선학(禪學)을 탐구하다.1555년, 속가(俗家)로 돌아오다.1556년, 책문(策文) 시험을 보았는데 한성시(漢城試)에서 장원으로 뽑히다.1557년, 성주목사(星州牧使)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결혼하다.1558년, 예안으로 퇴계 선생을 찾아가다. 퇴계 선생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고 율시(律詩) 1편을 지어 드리다.1561년, 부친 찬성공(贊成公)의 상을 당하자, 사임당 묘소에 합장하다.1564년,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고, 다시 명경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을 제수받았다. 이때부터 관직 생활에 접어들었다.1569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선조에게 바치다.1571년, 해주에서 파주 율곡으로 돌아오다. 이조정랑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 해에 향약을 짓다.1572년, 우계 성혼과 더불어 이기(理氣), 사단칠정(四端七情),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논하다.1574년, 우부승지로 승진되고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리다.1575년,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지어 바치다.1576년, 파주 율곡으로 돌아오다. 관직에서 은퇴할 것을 결심하다.1577년, 『격몽요결(擊蒙要訣)』이 이루어지다. 초학자들의 학습을 위하여 저술한 책이었다.1578년,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다.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에 견주어 지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원근의 학자들이 더욱 많이 찾아왔다. 이 해에 다시 「만언소(萬言疏)」를 올리다.1579년, 『소학집주(小學集註)』가 완성되다.1580년, 『기자실기(箕子實記)』를 편찬하다. 이 해 대사간으로 부름을 받고 나갔으나 사은(謝恩)하고 곧 돌아오다.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치다. 또 『김시습전』을 짓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다.1583년,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다.1584년, 정월 16일에 병환으로 한성 대사동에서 작고하다.1610년, 선생과 퇴계 선생을 문묘에 배향하자고 주청하다.1611년, 문집이 간행되다.1624년, 문성(文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다.

  목차

입지(立志)
혁구습(革舊習)
지신(持身)
독서(讀書)
사친(事親)
상제(喪制)
제례(祭禮)
거가(居家)
접인(接人)
처세(處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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