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상가로서 이병주의 산에 대한 성찰과 고백“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이 사상이라는 의미에서는 모두가 사상가이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는 사상가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주는 사상가이다.”
이병주 에세이 『산(山)을 생각한다』는 사상가로서 이병주의 산에 대한 성찰과 고백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병주의 박식함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그의 대부분의 저술이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과장이나 근거가 부족한 말을 하다는 혐의를 가질 법 하다.
그런데 수필인 이 글은 당연히 황당한 과장이나 허구가 없으며 이병주가 세계의 이러저러한 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뚜렷이 드러난다. 근 삼백 년 최고의 박식가인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 필적할 정도라 평할 수 있을 정도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고문헌과 한시까지 섭렵해 산에 대한 심오한 사색을 이끈다.
산을 다시 만나다“이병주는 산책(散策)과 등산(登山)과 등반(登攀)의 차이를 간명하게 알려준다. ‘발의 힘만 쓰는 게 산책, 팔의 힘까지 합쳐야 하는 건 등산, 발의 힘과 팔의 힘은 물론 용기 있는 두뇌까지 활용해야 하는 것이 등반’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적실한 개괄인가!”
이 책에는 이병주는 산책(散策)과 등산(登山)과 등반(登攀)의 차이를 간명하게 알려주는 부분이 있는데, 설악산에 갈 때 혹은 다른 산을 오를 때 이병주가 말한 다음과 같은 심정이라면 그는 이미 등산인을 넘어서 등반인이다. “설악산에 간다는 것은 설악산만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설악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신비에 참입(參入)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는 또 “산을 오를 때엔 심장의 운동이며 내릴 때엔 신경의 운동이 란 것을 깨달았다.”라고 하거나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면서 “칸트의 철학이 공소(空疏)하고, 마르크스의 철학이 달갑지 않는 것은 그 사상이 육체를 무시한 정신의 추상(抽象)에서만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으니 산을 통해 깊어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산을 생각한다』는 이병주가 산을 위대한 대학이라고 말한 것처럼 산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책이다. 따라서 산에 대한 감상을 적인 기행문이나 정보를 전하는 안내서를 넘어 우리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는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사람이란 문에서 문으로 옮기는 하나의 생명 현상이다. 학교에 가기 위해선 집의 문을 나서야 하고 학교의 문을 들어서야 한다. 학교의 문이라고 해서 단순하지가 않다. 국민학교의 문이 있고, 고등학교의 문이 있고, 대학의 문이 있고, 대학원의 문이 있다.
문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의 문이란 것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 보면 관청의 문을 드나들어야 하고, 통하고 싶지 않은 문도 통해야 하고, 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닫혀 버리는 문을 바라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생존경쟁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문을 선택해야 하고, 선택한 문에 비집고 들어서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갖가지의 문을 만든다. 문 가운데 또 문을 만들고, 그 문 가운데 다시 문을 만든다. 심지어는 사형장의 문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시 인생이란 무엇이냐.
사회가 만들고, 역사가 만들고, 스스로가 만든 그 무수한 문을 드나들다가 이윽고 저승의 문으로 해서 영영 퇴장해야 하는 ‘메멘토 모리’, 즉 죽어야 할 존재이다
다음에 가는 곳마다에서의 감회의 풍경을 적겠지만 미리 이곳에 서 적어 두고 싶은 것은 8월 8일 밤 오세암의 뜰에서 본 성좌(星座)의 장관이다.
나는 일찍이 그러한 천체의 호화를 보지 못했다. 짙은 감색의 바탕에 크게는 주먹 크기만 하고 작게는 모래알 같은 별이 찬란한 다이아몬드 빛깔로 하늘 가득히 깔려 있는 광경은 영원히 잊지 못할 호사였다.
그래서 비로소 알았다. 설악산에 간다는 것은 설악산만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고 설악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신비에 참입(參入)하기 위해 가는 것이란 사실을.
사람이 살아 수유라고 하지만 그 장엄한 신비에 참입하고 나면 영혼의 빛깔이 달라질 것이란 사실이 나의 솔직한 감회이다.
확실히 우주엔 신비란 것이 있고, 뜻만 있으면 그 신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설악산은 신비의 문(門)이며, 신비의 성(城)이며, 신비, 바로 그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병주
192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일본 메이지 대학 문예과에서 수학했다. 1944년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쑤저우에서 지냈다.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과 해인대학(현 경남대)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가르쳤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다.1961년 5·16이 일어난 지 엿새 만에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는 내용의 논설을 쓴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아 2년 7개월을 복역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1992년 지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을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로 80여 권의 작품을 남겼다.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했고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로 이어지는 대하 장편들은 작가의 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소설 문학 본연의 서사를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애정의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들은 세대를 넘어 주목받고 있다.1977년 장편 『낙엽』과 중편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