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 출간 20주년 기념!
김환영 작가가 새로이 다시 그린 그림과
전문가의 작품해설까지 추가한 더욱더 풍성해진 완전 개정판 출간!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우리 시대의 영원한 고전!그림책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현덕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야기는 농사지을 땅을 빌려주는 마름집 아들 경환이와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바우의 갈등에서 시작됩니다. 바우와 경환이는 나비를 잡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한바탕 싸움을 합니다. 결국 바우네는 농사 부칠 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 유일한 해결 방법은 경환이에게 나비를 잡아다 주는 일이지요. 애초에 승자가 정해진 게임이었지만, 바우의 분노는 가난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까지 더해져 극에 달합니다.
이 작품은 차별과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는 아버지의 아픔과 뜨거운 부성애를 통해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일침을 날리며, 가슴 한편에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합니다.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인물 묘사가 탁월한 그림 작가 김환영은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등장인물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며 그림책으로 만들어 냈고,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이제,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초판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장면들을 추가하고, 아쉬웠던 장면은 다시 그리며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작가 현덕을 연구해 온 원종찬 교수의 작품 해설을 더해 우리 시대 고전이 된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아름답고 뜨거운 부성애! 서울로 공부하러 간 마름집 아들 경환이는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환이는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유행가를 부르고 한가롭게 나비를 잡으러 다닙니다. 경환이와 함께 소학교를 다니고 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땅이나 파고 있는 바우에게 그런 경환이 꼴이 곱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경환이가 곤충채집 숙제를 위해 쫓던 나비를 바우가 일부러 놓아줬고 둘은 싸움이 났습니다. 그 일로 바우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환이 집에 불려 가고, 나비를 잡아 와 빌지 않으면 땅을 얻어 부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체면은 몰라주고 경환이에게 나비를 잡아다 주라고 윽박지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바우는 야속하기만 합니다. 화가 나서 집을 나가려던 바우는 똑똑지 못한 걸음으로 자기 대신 나비를 잡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아버지를 소리쳐 부릅니다. 마름집에 불려가 한바탕 혼이 난 아버지는 소작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세 식구가 쫄쫄 굶게 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바우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하지만 잘못한 게 없다고 자존심을 세우는 바우를 보니 아버지도 속이 상합니다. 학교조차 갈 수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 지내게 한 것에 바우에게 누구보다 미안했을 아버지는 겉으로는 윽박지르며 집을 나섰지만 메밀밭으로 가 서툰 몸짓으로 나비를 쫓습니다.
이 작품에는 이처럼 비록 비루하고 곤란할지라도 돈이나 권력,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아버지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바우의 아버지가 나비를 잡는 것으로 보여 준 늘 변하지 않는 깊은 사랑은 독자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남겨 줍니다.
소년소설의 개척자, 현덕을 만나다현덕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로 당선되었고, 이때부터 1940년까지 본격적으로 소설과 동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촉망 받는 신인 작가였던 현덕은 해방이 되고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했는데, 이 단체가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되자 6.25 전쟁 때 월북을 하였습니다. 월북 이후 북한에서도 작가 활동이 금지되어 오랫동안 그의 이름과 작품은 이 땅에서 잊혀졌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현덕은 남의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으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에 뛰어난 성과를 보이던 현덕은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최고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워 1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자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배달이나 날품팔이를 하면서 돈을 벌었고, 쉬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이런 불우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잘 나타나, 가난한 소년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요. 《나비를 잡는 아버지》 속 주인공 바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바탕 시련을 겪은 바우는 더 이상 어제의 바우가 아닙니다. 바우라는 이름처럼 뚝심 있게 이 땅에 뿌리박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며 자신과 같은 억울한 일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도 힘차게 나설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삶의 진실을 누구보다 뼛속 깊이 느꼈을 테니까요. 당장 무엇이 중요하고 또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꿰뚫는 깨달음을 얻었을 테니까요. 독자들은 비루해 보이는 아버지의 삶을 껴안은 바우에게 공감하며 우리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한편,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김환영 작가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진 그림과
전문가의 깊이 있는 작품해설을 더해 새롭게 태어난 《나비를 잡는 아버지》!《나비를 잡는 아버지》 초판이 출간된 후 스무 해가 지나고, 작가는 짐을 옮기다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바우 그림과 마주했습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이 서울로 상급학교를 간 경환이들이 아니라, 대개는 학교를 제대로 이어갈 수 없어 그 마을의 농사꾼이 된 바우들이었기 때문일까, 작가는 이 장면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고 종이를 펼쳐 새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책 《나비를 잡는 아버지》 개정판은 작가가 그려 낸 흙 냄새와 사람 냄새 가득한 원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본문 종이를 무광지로 교체하여, 먹과 황토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 종이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액자 구조 안에 그림을 가둔 디자인 대신, 모든 그림을 풀컷으로 시원하게 펼쳐 보여 줌으로써 한 장, 한 장 아름다운 그림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기존에 노란색으로 표현했던 아버지가 나비를 잡는 마지막 장면은 새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인 푸르른 자연 그대로의 생생한 색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며 독자로 하여금 더욱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 ‘작품해설과 함께 보는 작가앨범’ 시리즈의 특징을 살려 ‘현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원종찬 교수의 작품 해설을 더해,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누구나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개울 건너 길가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섰고, 그 뒤로 지게를 진 어른들도 섰다. 바우는 낯이 화끈 달았다.
“뭐, 인마?”
하고 대뜸 상대의 멱살을 잡고,
“그래서 남의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 나빈 우리 집 참외밭에만 있구, 다른 덴 없어, 인마?”
경환이는 멱살을 잡히고 이리저리 목을 저으며,
“이게 유도 맛을 보지 못해 이래. 너 다 그랬니, 다 그랬어?”
하고 으르다가 날래게 궁둥이를 들이대고 팔을 낚아 넘겨치려 하나 그러나 원체 나무통처럼 버티고 섰는 바우의 몸은 호리호리한 경환의 허릿심으로는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바우가 슬쩍 딴죽을 걸고 밀자 경환이 자신이 쿵 나둥그러졌다. 그러나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설 때 경환이는 손에 돌을 집어 들고 그리고 얼굴에 울음을 만들고는 “이 자식아, 남 나비 잡는 사람, 왜 때리고 훼방을 노는 거야, 왜!” 하고 비겁하게 돌 든 손을 머리 위로 쳐들어 겨누는 것이다. 결국 싸움은 이때껏 아이들 등 뒤에 입을 벌리고 서서 보고만 있던 동네 어른 하나가 성큼성큼 개울을 건너가 사이를 뜯어 놓고 그리고 경환이를 참외밭 밖으로 이끌어 나간 것으로 끝났으나, 그러나 경환이가 손목을 이끌려가면서 연해 뒤를 돌아보며,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던 그 말이 허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우는 어머니가 밥상을 날라 오기 전에 자기가 먼저 슬며시 집 밖으로 나갔다. 밥을 열 끼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경환이 앞에 나비를 잡아 가지고 가서 머리를 숙이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아들의 그만한 체면쯤 보아줄 줄 모르고 자기네 요구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바우는 무척 야속했다. 노여웠다.
바우는 동구 밖 아랫마을로 가는 길가 축동, 버드나무 그늘 밑을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며 걷는다. 아침부터 요란스레 매미는 울고 그리고 속상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풀 위로 너울거리는 나비다. 바우는 그 나비를 피해 가는 듯 문득 걸음을 바꿔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바우는 일상 하던 버릇으로 풀을 베어 널고 그 위에 벌렁 나둥그러져 하늘을 쳐다본다.
집에서보다 갑절 어버이에게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사무친다.
‘아버지 말대로 정말 집을 나오고 말까. 그러면 아버지도 뉘우칠 때가 있겠지. 그리고 서울 같은 도회로 나가서 어떻게 고학이라도 해 볼까.’
작가 소개
지은이 : 현덕
1909년 2월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현동철(玄東轍)과 전주 이씨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현경윤(玄敬允)이고 본관은 연주(延州)다. 제일고보 학적부에는 아버지의 직업은 상인이고, 출신 성분은 양반이며, 본적은 경성부 통의동 38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현덕의 조부 현흥택은 민영익의 수행인 자격으로 1883년 최초의 대미 외교 사절단 보빙사에 참여했고, 1895년에는 시위대 연대장에 임명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정동구락부의 일원으로 독립협회에도 참여했다. 현덕이 쓴 <자서 소전>에는 출생 당시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의 출생 후 가세가 기울어 사글세를 면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불화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사업의 꿈을 포기할 줄 몰랐던 아버지 탓에 살림은 어머니가 도맡아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사 횟수가 이십여 회에 달했으며,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헤어지길 수삼 회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인천 가까운 대부도(大阜島)의 친척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현덕은 1923년 인천의 대부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으나, 1924년 중퇴하고 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다녔다. 1925년 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그해에 중퇴했는데, 학적부에는 전체 수업 일수 245일 가운데 165일을 결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주소는 경성 관수동 45번지였다.현덕은 192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달에서 떨어진 토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반적으로 현덕의 등단작은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가작 입선한 <고무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등단 지면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다. 이 무렵 현덕은 수원 발안 근방의 매립 공사장에서 토공 생활을 했고, 이후 현해탄을 건너가 교토, 오사카 등지를 떠돌며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흙 바구니를 짊어지지 못하고 쓰러지는 통에 공사장에서 쫓겨났고, 그 일을 계기로 문학의 길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기에 이르렀다. 1936년 막노동판을 떠돌다가 문학에 뜻을 둔 후 작가 김유정을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현덕은 <자서 소전>의 말미에서 김유정과의 관계를 “지기 고 김유정 형을 얻어 문학을 향한 뜻을 굳게 하고 그 길을 밟던 중, 금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그 길에 자신 같은 것을 가져보며 현재에 이르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정식 등단했으며, <경칩>(1938), <층>(1938), <두꺼비가 먹은 돈>(1938)을 연이어 발표했다. 1939년 1월 월간 ≪조광≫에 실린 <신진 작가 좌담회>에서 현덕은 등단작 <남생이>가 인천에 있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보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로 미루어 당시 현덕의 거주지는 인천이었고, <남생이>의 배경 또한 인천 해안의 빈민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39년 인천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동대문 부근의 빈민촌인 경성부 창신정 600의 9번지에 거처를 정했고, 이해에 <골목>(≪조광≫), <잣을 까는 집>(≪여성≫), <녹성좌>(≪조선일보≫)를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그의 수필과 소설에는 변변한 생업마저 없었던 청춘의 불행한 운명과 극도로 위축된 인텔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 이후 현덕은 임화와 교제하며 문단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소설부, 아동문학부, 대중화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소설집 ≪집을 나간 소년≫(아문각), 동화집 ≪포도와 구슬≫(정음사) 등을 간행했다. 1947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의 편집 겸 발행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서울지부 소설부 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소설집 ≪남생이≫(아문각), 동화집 ≪토끼 삼형제≫(을유문화사)를 출판했다. 현덕은 1950년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했다. 호적부에는 1951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38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951년 북한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월북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62년 북한에서 한설야가 숙청될 때 그의 추종 세력들과 함께 숙청되었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