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문에도 멍이 든다
누가 저 방문에 목숨 한 숟가락 꽂았을까
추위는 검은 두루마기 같은 구름 두르고 찾아왔다
안방이 단단히 잠겨 있다
나비장석에 걸려 있는 놋쇠 빼다가
왜 목숨 하나가 갇혀 있는지를
네발로 기어 다닐 때 암죽을 먹여주고
두 발로 걸어 다닐 때 도시락 챙겨주고
두레상 펼쳐놓고 함께 밥을 먹던
그 숟가락을 생각한다
곰팡이 푸르게 슬은 모진 쇠붙이 하나
겉과 속을 나누는 문 앞에서
늙은 숟가락이 늙은 사람을 붙들고 있다
명치 끝 방에 피멍이 드는 밤이다
삭은 문이 흔들리며 몸서리치고 있다
휠체어 바퀴 테두리가 반짝인다
뼈만 남은 반달 숟가락에 얼굴이 비친다
평생을 한 몸처럼 입속에서 살아온 쇠붙이
아버지의 목숨 한술 뜨고 있다
부부송
우두두둑 뚜두둑
봄기운에 잔설을 털어내는 소나무 가지들
관절 풀리는 소리가
악양 평야의 마디마디를 깨운다
겨우내 두꺼운 추위 껴입고서
황량한?들판 지키느라?잔기침도 많았겠다
온기 없는 빈방에서?선잠 자느라
삭은?몸이 얼음장 되었겠다
이웃도 경로당도 없는 외딴 들녘에
적막 한 칸 세 들이며 사느라 밤도 길었겠다
금싸라기?알곡들?방앗간으로 밀려간 뒤
제비가 낮게 뜨니 비가 오겠구나
두 눈을 비비니 더욱 침침하구나
들 끝에 바람을 얹고 삭정이로 흔들리는
앙상한 부부송
섬진강 따라 매화꽃길 따라
평사리로 시집왔던 봄
그때가 좋았다고
송홧가루 날리며
예순네 해를 서로에게 뿌리내렸다
올비*
잠든 아기 머리맡에
뻥튀기 옥수수 한 바가지 놓고?
호미 들고 나간다
해마다 하천이 넘쳐 물에 잠긴 너였다?
죽 한 그릇이면 살 수 있다는 올비밭
쌀 한 말 이고 가서 건졌다
자고 나면 번지고 자고 나면 커지고
뽑아도 자라고 찍어도 내리고
아래로 위로 시퍼런 등줄기가 들불처럼 번졌다
가난은 뿌리에서부터 찾아오는가
네 뿌리를 잘라 먹으며 가난을 캤다
해도 깨지 않은 첫새벽부터 별 뜨는 밤까지
목숨보다 질긴 올비를 캤다
세 살배기 아들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사람들과 사수재를 넘고 와룡산을 뒤졌다
사흘 만에 집 앞에 있는 못에서
낮달이 떠올랐다
싸늘한 달을 품에 안고 애장터에 묻었다
뿌리 하나 뽑는데 한 생애가 지나갔다
*뿌리가 깊고 번식력이 좋은 잡초의 일종.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여운
대구 출생.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졸업.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2013년 《한국수필》에 수필, 2020년 《서정시학》으로 시 등단.2019년 불교신문 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ywpoem79@daum.net
목차
1부 문에도 멍이 든다
하늘
올비
문에도 멍이 든다
부부송
찔레꽃조기
향나무지팡이
봄볕에 뜨락에 나와 앉아
콩나물과 예술 사이
동막 마을
여우와 늑대의 오감도
불치
함부로 밀지 마라
어떡하니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2부 달리는 펑크
달리는 펑크
툇마루에 걸터앉아 달을 보며
燕鴻相違연홍상위
풍경이 살풍경을 말하다
배롱나무
매화가 나에게
눈치
가슴벽
물싸리꽃을 기다리다
땅은 내려다보고 있는 멍든 하늘이다
공생
북한강에서
시의 힘
산문散文에 기대어
3부 매괴화 두 송이
발견자 양금숙
넝쿨아내
매괴화 두 송이
홍시 1
무쇠솥
강 쪽으로 굽은 소나무
도모지塗貌紙
목련 아동 꿈터
공터에서 낚아 올린 것들
불면
사 살려 주 주세요
금남로錦南路
꽃무덤
영혼을 적시는 시
4부 녹두죽이 먹고 싶다 했더니
달밤
번개엄마
활과 휠체어
녹두죽이 먹고 싶다 했더니
꽃물
검은 도마
동짓날
눈꽃
가방
절망
사친별곡思親別曲 1
이자이李滋伊
유서
매화꽃 말씀
해설 전천후와 열망을 향한 헌사 이정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