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특히 '올드보이' 이후의 작품을 접한 관객은 그의 세계가 꼼꼼하고 화려한 미장센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찍어 온 사진들은 영화와는 다른 시선을 보여 준다. 그의 사진은 ‘영화감독 박찬욱’이 ‘박찬욱 월드’의 일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풍경의 형태부터 인물의 말과 행동까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또는 그래야만 하는) 영화감독이라는 전능한 역할 밖으로 나온 그는, 오직 세상이 자신에게 드러낸 광경 속에서 작지만 놀라운 순간을 선별해 포착한다. 그 순간들은 세상이 오직 그에게만 어떤 의미를, 스토리를, 아이러니를 아주 잠시 드러내 보이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널브러진 방수포가 유럽의 인물 조각과 닮아 있고, 몸을 굽힌 고양이는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덩어리처럼 보인다. 박찬욱은 어느 순간 방수포와 고양이가 고정된 심상을 뛰어넘은 순간을, 그들이 지은 ‘표정’을 포착한 것이다.
출판사 리뷰
박찬욱의 사진은 고요하다박찬욱 감독의 영화, 특히 '올드보이' 이후의 작품을 접한 관객은 그의 세계가 꼼꼼하고 화려한 미장센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찍어 온 사진들은 영화와는 다른 시선을 보여 준다. 달리 말하면, 그의 사진은 ‘영화감독 박찬욱’이 ‘박찬욱 월드’의 일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굳이 ‘조용히’라고 표현한 이유는, 실제로 그의 사진이 전달하는 감정의 진폭이 영화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찬욱의 사진은 감상자의 감각 또는 감정에 큰 충격을 주도록 연출하지 않는다. 물론 사진가 자신은 눈앞의 어떤 사물이나 풍경에 반응했기 때문에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 안에 담긴 놀라움은 강렬하거나 짜릿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도탑다. 의외의 장소에서 반가운 식물을 발견한 학자의 차분한 기쁨과 닮아 있다.
고요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결국 ‘사진가 박찬욱’이 추구하는 것은 발견의 풍부한 가치이다. 풍경의 형태부터 인물의 말과 행동까지 원하는 것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또는 그래야만 하는) 영화감독이라는 ‘전지적 시점’ 밖으로 나온 그는, 오직 세상이 자신에게 드러낸 광경 속에서 작지만 놀라운 순간을 선별해 포착한다. 그 순간들은 세상이 그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스토리를, 아이러니를 아주 잠시 드러내 보이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널브러진 방수포가 유럽의 인물 조각과 닮아 있고, 몸을 굽힌 고양이는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덩어리처럼 보인다. 박찬욱은 어느 순간 방수포와 고양이가 고정된 심상을 뛰어넘은 순간을, 말하자면 그들이 지은 ‘표정’을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영문 제목은 중의적이다. 여기 담긴 그의 사진들은 모두 ‘너의 표정Your Faces’에 관한 것이며, 그 표정들을 모은 책의 제목은 ‘너희의 표정Your Faces’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이라는 세계의 확장이런 의외의 표정-순간들은 결국 박찬욱이라는 예술가를 둘러싼 고정 관념에 도전한다. 현재 박찬욱이라는 이름은 탐미적이고 감정을 들끓게 하는 예술가-영화감독이라는 일반적인 인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진가의 집요함조차 고요함 속에 잠겨 있는 『너의 표정』은 ‘감독 박찬욱’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빠져나와 은밀하게 내보인 ‘의외의 표정’이다. 방수포가 어느 순간 조각상으로 확장되듯이, 이 책 속에서 박찬욱은 세심하게 주시하고 수집하는 예술가로 변형 또는 확장된다. 데이비드 린치의 회화나 빔 벤더스의 사진이 그들의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것처럼, 『너의 표정』은 박찬욱이라는 세계를 더 깊이 탐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해설을 「씨네21」의 김혜리 평론가가 담당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이해하면서 사진을 비롯한 시각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김혜리는 사진과 영화를 아우르는 박찬욱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최상의 화질과 물성으로 만나는 사진집을유문화사는 『너의 표정』을 더욱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세퍼레이션(분판) 기술을 보유한 유화컴퍼니와 함께 작업했다. 이 책을 위해 특별히 혼합한 잉크를 사용했으며, 부드럽고 풍부한 톤을 자랑하는 펜타톤 흑백 인쇄를 비롯해 섬세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쳤다. 용지 역시 여러 논의를 거쳐 엄선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너의 표정』은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잘 만들어진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너의 표정』을 통해 뛰어난 물성을 지닌 책이 선사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그리고 그 물성을 소장하는 기쁨까지 얻을 것이다.
영화인의 사진 작업을 ‘딴일’로 분류하기는 망설여진다. 많은 필름메이커들이 사진을 지척에 두고 부전공 내지 진지한 취미로 삼는다. 아예 사진에서 출발한 래리 클라크 같은 감독도 있고 본인의 영화를 농축한 폴라로이드를 남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도 있다. 명실상부 사진가를 겸하며 일찍이 〈도시의 앨리스〉처럼 사진이 서사와 주제의 모티브인 작품을 연출한 빔 벤더스가 있는가 하면, 영화에 비하면 조금 평범한 흑백사진을 남긴 스탠리 큐브릭도 있다. 해리스 사비데스, 로저 디킨스 같은 촬영 감독들 역시 여가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영화인의 사진은,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의 훈련인 동시에 셔터를 누른 순간 그가 지녔던 비전vision의 단면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우리를 보듯, 사진은 찍은 사람의 정체도 찍는다.
- 「세계, 표정들 -박찬욱의 사진」(글 김혜리)에서
박찬욱의 이름을 딴 CGV 예술전용관에서 상시 진행 중인 작은 사진전의 제목은 〈범신론〉이다. 만물은 신의 일부이며 모든 사물과 현상은 신의 한 존재 방식이라는 세계관을 장기 전시를 포괄하는 테마로 정한 까닭은, 박찬욱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 일상적 사물과 자연에서 성정性情을 포착하는 경험을 중요한 행복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알듯이 같은 자리에 오랜 시간 놓여 있던 사물이라고 해서 늘 고정된 감정과 심상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성정의 현현顯現은 작가가 투사하는 주관, 대상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 빛과 프레임 안의 모든 것이 맺는 관계를 순간적으로 종합한 결과다. 사진은 영화에서 인간을 투사하는 오브제나 그의 환경으로 쓰였던 존재들에게 표정을 돌려준다. 버려진 마네킹의 얼굴에도, 활엽수의 잎맥에도 표정은 있다. 귀여움, 쓸쓸함, 우스움, 그로테스크 등이 박찬욱이 자주 언급하는 사물의 표정이다. 표정과 제스처는 무생물에서 이목구비에 해당하는 형상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내는 우리의 본능 또는 게슈탈트 전환을 통해 발생한다.
- 「세계, 표정들 -박찬욱의 사진」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찬욱
'공동경비구역 JSA'(2000),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 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진지한 사진가이기도 하다. '친절한 금자씨' 촬영 현장에서 기록한 배우들의 모습을 동명의 책에 싣기도 했고, 2014년에는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자선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후 여러 전시에 참여했고, 용산 CGV 아트하우스 ‘박찬욱관’ 에서는 상설 사진전 '범신론'을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사진집으로는 영화 '아가씨'의 현장 안팎에서 찍은 사진을 묶어 출간한 『아가씨 가까이』(2016)가 있다. 2021년에 발간된 『너의 표정』은 최근 10여 년 동안 틈틈이 찍어 온 사진 중에 100여 점을 엄선하여 묶은 것으로, 그의 영화와 별개로 나온 첫 사진작품집이다.
목차
7 사진 Photographs
145 세계, 표정들: 박찬욱의 사진 / 김혜리
149 World, sum of faces : photographic works of Park Chan-wook / Kim Haery
154 작가 약력
155 Biography
156 List of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