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0대에 서도소리를 배운 박기종 선생은 95세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서도소리를 놓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쟁 중에도 가사를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닐 정도로 서도소리를 계속하고자 노력했다. 그 종이는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며 비에 젖어 지키지 못했지만, 36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서도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가사와 악보를 정리하고 끝없이 배움을 찾아다녔다. 대전에 정착한 후에는 서울 국립국악원을 다니며 여러 선생님께 남도소리, 정가, 경기민요 등을 배웠고, 30여 년간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진짜 서도소리를 들으려면 대전의 박기종 선생을 찾아가시오”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고, 201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그의 서도소리 사랑과 집념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 전통의 소리, 남북으로 갈라져 잊혀질 수 있었던 서도소리에 온 인생을 매달려 지켜내고 책과 음반으로 남겨둔 집념과 열정을 담은 한 소리꾼의 이야기다. 또한 역동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한 실향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판사 리뷰
평생 서도소리만 고집하며,
전통서도소리를 다시 찾아내고 지켜낸 이야기!
서도소리의 본고장에서 시작된 서도소리 90년 인생!“나는 1926년생입니다. 내 고향은 황해도 벽성군 고산면 원평리 임정동 436번지입니다. 오래 살아 고향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소리꾼, 박기종 선생의 이야기다.
황해도 그의 고향에서는 놀기 좋아하고 소리 좋아하는 사람을 봄 춘(春), 바람 풍(風), 춘풍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당패가 번성했던 마을에는 어느 집에나 장구나 북은 몇 개씩 있을 만큼 흥을 즐겼다. 이런 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자질을 타고났고, 소리꾼을 꿈꿨다. 한 번 들은 음은 잊지 않고 잘 불렀기에 학교와 마을에서 ‘베토벤’이라 불렸다.
그는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난 첫 번째 스승 산홍 선생과 5~6년 공부하면서 서도소리의 장절민요 1절, 2절, 3절, 4절, 이렇게 절을 구분하고 마디마디 끊어서 하는 민요는 거의 다 배웠다. 그때 배운 장절민요만 해도 4,50곡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간 평양에서 이정근 선생에게 <수심가>를 배웠다.
서도소리란“서도소리는 고려청자와도 바꿀 수 없다.”
“대동강 물을 마시지 않고는 수심가를 논하지 말라.”
“난봉가를 모르고서는 황해도 땅을 밟지 말라.”
서도소리에 관하여 전해오는 빛나는 명언들이다.
서도는 평양의 옛 이름이고,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부르던 노래로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잡가 등을 포함한다. 대표적인 서도소리에는 <수심가>와 <난봉가>, <산염불>, <공명가> 등이 있다. 남도소리에 비해 청이 높고 중간 음에서 격렬하게 떨려 하강하는 듯한 선율로 진행되며, 창법은 속청과 본청을 사용하여 부른다. 서도는 오랫동안 대륙과의 통로지점으로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서도소리는 지식인들의 노래였던 가곡, 가사, 시조의 영향을 많이 받아 때에 맞게 변모하면서도 민족 고유의 전통을 꿋꿋이 지키며 잘 보존되고 발전되어왔다.
서도소리는 격식을 벗어난 불규칙한 곡이 많고 부르기도 어렵다. 곡조 또한 그 고장 태생이 아니면 표현해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도소리는 선율 진행상 중간중간 곡조의 변화가 심하여 악기 반주도 어려운 편이라 곡조를 모르면 장단을 잡는 것도, 소리를 배우는 것도 어려움이 많은 독특한 민요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서도소리하는 박기종입니다“서도소리의 본고장에서 태어난 나는 이 고귀한 소리가 좋아서 불렀다. 들어도 좋았고 부를수록 그냥 미친 듯이 좋았다.”
10대에 서도소리를 배운 박기종 선생은 95세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서도소리를 놓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쟁 중에도 가사를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닐 정도로 서도소리를 계속하고자 노력했다. 그 종이는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며 비에 젖어 지키지 못했지만, 36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서도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가사와 악보를 정리하고 끝없이 배움을 찾아다녔다. 대전에 정착한 후에는 서울 국립국악원을 다니며 여러 선생님께 남도소리, 정가, 경기민요 등을 배웠고, 30여 년간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진짜 서도소리를 들으려면 대전의 박기종 선생을 찾아가시오”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고, 201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그의 서도소리 사랑과 집념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 전통의 소리, 남북으로 갈라져 잊혀질 수 있었던 서도소리에 온 인생을 매달려 지켜내고 책과 음반으로 남겨둔 집념과 열정을 담은 한 소리꾼의 이야기다. 또한 역동의 대한민국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한 실향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8년 10월 24일,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 박기종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훈장을 받으러 식장으로 향할 때, 걸음걸음마다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어른거리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생전에 이런 소식을 들으셨다면 부모님은 몇날 며칠 동네가 떠나가라 잔치를 하셨겠지요. 하늘에서 제 모습을 지켜보셨다면 저보다 더 기뻐하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홀로 떨어져 온갖 고생을 다하며 공부하고, 또 열심히 일하며 소리를 가르친 평생의 모습도 다 짐작하실 테니까요.
산홍 선생님과 5,6년 공부하면서 서도소리의 장절민요 1절, 2절, 3절, 4절, 이렇게 절을 구분하고 마디마디 끊어서 하는 민요는 거의 다 배웠다. 유년시절에 동네 문화판에서 자연스럽게 얻어듣고 흥얼거렸던 서도소리를 산홍 선생님은 정식으로 가르쳐주셨다. 그때 배운 장절민요만 해도 4,50곡이니 산홍 선생님의 지도로 나는 본격적인 소리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기종
1926년 황해도 벽성군 고산면 원평리 임정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소리를 좋아하고 잘해 학교와 동네에서 ‘베토벤’으로 불렸다.10대 초반 우연히 산홍 선생을 만나면서 서도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광복 후 평양에서 이정근 선생과 서원준 선생에게 서도소리를 배웠다.가족과 헤어지고 홀로 남으로 내려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전투경찰이 되어 6.25전쟁을 겪었다. 그 후 서울 문리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가 되어 국공립 중고등학교에서 36년간 봉직했다. 명지대학교 국문과에 편입하여 졸업했다. 퇴직하면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교사생활을 하면서도 서도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서도소리를 정리하고, 서도소리와 남도소리, 정가, 경기민요 등을 배웠다. 서울에서 최경명, 이반도화 선생께 사사했고, 남원에서 진평섭 선생께 남도민요를 사사했다. 이후 이양교 선생께 정가를 사사했다.퇴직 후 목원대학교 및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서도소리 제자를 길러냈다.199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201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30년간 수십 차례의 서도소리 개인발표회를 했고, 각종 국악공연에서 서도소리를 알렸으며, 국악경연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경·서도소리 가사선집》 《서도소리 가사집》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을 펴냈으며, <박기종 西道소리_서도민요전집(CD 총8매)>을 발매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_부모님께 올리는 편지
1장 나의 살던 고향은 언제나 봄
흥이 넘치는 마을 | 베토벤 박기종 | 금쪽같은 외아들 | 봄바람처럼 찾아온 운명 | 첫 스승 산홍 선생님 | 유일한 친구, 선생과 제자 | 아들아,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거라 | 소리 유전자 |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라 | 이별과 만남
박기종의 서도소리 특강_1강 서도소리의 탄생
2장 소리 찾아 삼만 리
짧은 만남 긴 이별 | 스승 찾아 삼만 리 | 취업이라는 샛길 | 사리원 방직공장 | 나를 일깨운 사각모들의 합창 | 평양에서 또 한 번 헛바퀴 | 평양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해 | 지성이면 감천, 드디어 이정근 선생님을 만나다 |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 목마른 사람이 샘 파기 | 와이야! 선생님 | 짧은 만남 굵은 배움, 서원준 선생님 | 예정된 이별 | 진정한 소리꾼 | 수심가의 대가, 이정근 선생님
3장 전쟁 속으로
삼팔선은 넘었지만 | 서울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 서울은 넓고 갈 곳은 없어 | 정감록의 예언에 빠진 친구들 |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 비에 젖은 피난길 | 남쪽으로 가는 기차 | 시장에는 그래도 인정이 넘치고 | 기차는 떠났고 | 입대하기 딱 좋은 나이 | 인연의 은혜를 입다 | 노느니 염불한다고, 에너지 발산에는 청소가 최고 | 살기 위해 전투경찰이 되다 | 다시 북으로 | 꿈같은 재회, 영원한 이별 | 내일을 위해 내 길을 찾다 | 막 벌어먹기는 장타령이 제일?
박기종의 서도소리 특강_2강 서도소리의 특성
4장 남도로 떠나다
경찰공무원에서 교육공무원으로 새 출발 | 가지 않은 길 | 과한 욕심은 상처를 남기고 | 여학생이 무서웠던 김제여중고 | 쫓겨간 곳이 무릉도원 |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된 평생의 인연 | 돌아보니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 | 육자배기가 남긴 상처 | 헛된 욕심을 접고
5장 충청남도에 정착하다
타향의 설움 | 연무대에서 맺은 인연들 | 한 번 들은 건 절대 잊지 않는다 | 돌고 돌아 대전에 정착하다 | 서울로 가는 길을 포기하다
박기종의 서도소리 특강_3강 서도소리의 분류
6장 다시 출발점
진짜배기 소리꾼 | 소리를 학문으로 만들다 | 서도소리의 본기둥 | 서도소리를 음반에 기록하다-서도민요전집 | 기억 저편의 소리들을 찾아서 | 일생의 집념을 담은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
7장 나는 전통서도소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박기종이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 | 지나친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 서도소리에는 성숙한 민족혼이 담겨 있다 | 아직도 세상은 호기심 천국 | 나의 건강 비결 | 정통파가 아니라 전통파 | 서도소리의 뿌리를 찾아서
박기종의 서도소리 특강_4강 서도소리의 창법
8장 치열했던 소리꾼의 삶을 위로하다
서도소리로 대한민국에서 훈장을 받다 | 가문의 영광
9장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던 삶
나를 견뎌주고 지탱해준 가족 | 서도소리는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 제자의 성장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 | 마음에 영원한 빚을 남긴 고마운 분 |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친구 | 인연의 소중함 | 마음에 새긴 은인들
박기종의 서도소리 특강_5강 서도소리와 악기반주
에필로그_말로 전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쉬움
주요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