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폭군 라니에로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인 그를 끝장낼 수 있는 건 성녀뿐. 그러나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의 진리가 어그러지고 마는데. 이게 틀릴 줄 알았다면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하지 않았다.
출판사 리뷰
폭군 라니에로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인 그를 끝장낼 수 있는 건 성녀뿐.
“그를 만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러나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의 진리가 어그러지고 마는데.
이게 틀릴 줄 알았다면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하지 않았다.
라니에로를 배신하지 않고 그의 품에서 안일하게 살았을 텐데!
좌절한 와중, 성녀가 내게 청천벽력처럼 속삭인 말.
“악틸라의 대자를 죽일 수 있는 건 이제 제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던 나의 등을, 세계가 떠밀기 시작한다.
무기로서의 운명에 순응하여 전쟁신에게 반역하라고.
“이런 건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데.”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주친 맹수의 눈이 번득거린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나?”
그 말은 아무런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니, 정정하겠다.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터져 버린 말 같았다.
누군가 보기엔 낭만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분하고 억울해졌다. 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발버둥 칠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고작…… 내가 속삭인 사랑의 진위 여부라는 게. 그와 나 사이 힘의 불균형에 화가 났다.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다 이거지?’
내내 나를 좀먹어 가던 공포를, 갑갑함과 울분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고작 그런 게 궁금해요?”
“고작?”
“부럽다.”
그가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이 튀어나온 것처럼, 나도 부지불식간에 그에게 말을 툭 던졌다. 나도, 그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공포와 일말의 의지하고 싶은 마음 뒤에 가려진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 어쩌면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진짜 부러워 죽겠어. 태어나 한 번도 약해 본 적 없으니, 약자는 도태시켜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그의 입장이. 모두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무례하게 굴어도 반발하지 못하는 압도적인 힘이. 서러운 마음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라니에로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나를 안아 들었다. 그는 눈물을 쏟아 내는 나를 세라피나의 침대에 앉히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올 때는 손에 약병과 붕대를 들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가져가 소독하기 시작했다.
“그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단조로웠다. 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다친 손을 맡긴 채 팔뚝으로 눈두덩을 꾹 눌렀다.
“처음에는 달래 주려고 했지. 그 다음에는 화가 났고.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어. 정말 어려운 문제야.”
가장 깊이 베인 손바닥부터, 자잘한 상처로 쓰라린 손가락까지 꼼꼼히 붕대로 가려졌다.
“확실한 건, 그대도 나도 죽지 않는다는 거야. 난 그대를 죽일 마음도, 죽어 줄 마음도 없다.”
붕대 위로 그의 입술이 닿았다. 그는 내 손바닥에 입술을 묻은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그대에게 선택지를 주지.”
그가 입술 끝을 올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공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막무가내로 날뛰는 감정에 재갈을 물리느라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 나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든지.”
나는 그 진득한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감히 제국의 황후를 은닉한 이 사람들을 모두 반역죄로 죽이고…… 나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든지.”
작가 소개
지은이 : 메나닉
https://twitter.com/naanlck
목차
6. 겨울 사냥
7. 패배의 밤
8. 평화의 길
9. 운명에 순응하여 반역하라
에필로그 - 낙원
외전 1. 차수현
외전 2. 최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