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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른 외곽 이미지

빛바른 외곽
선 | 부모님 |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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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선 시인총서 14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현대사회의 외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과 직업에 대해 깊게 천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에 두려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주지한다. 시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획득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생의 핍진성, 그 가능성을 향한 서정의 구도(構圖)

김나영(시인)


이우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빛 바른 외곽』 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의 축은 직선과 곡선이고, 또 하나의 축은 높이와 낮이라는 기하학적 요소로 지탱하고 있다. 이 요소들의 조합을 이우근 시인은 시어로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메타포로 드러내기도 한다. 서로 대치되는 이 요소의 결합이 흥미로운 것은, 현대사회의 아이콘으로 표상되는 속도와 욕망, 경쟁의 대치적 국면을 형상화하며, 세계(관계)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식적으로 선취해서 웅숭깊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또 이 요소들은 중심과 외곽 그리고 문명과 자연의 문제로 옮겨가며, 바른 삶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이우근 시인의 올곧은 성정을 드러내는 역동적 구도가 되고 있다. 특히 이우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현대사회의 외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과 직업에 대해 깊게 천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에 두려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주지(主旨)한다. 이우근 시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획득하고 있다. 우선 직선과 곡선으로 드러나는 그 구체적 작품부터 살펴보자.

1.

죽도시장 새벽 세 시
자연산 잡어를 받아
여섯 시에 좌판 아지매들에게
소매로 넘기고 나서 해장술 하면
하루의 생업은 대충 마무리
그러나, 수줍게 한 할머니 다가오셔
아재, 혹시 죽은 거, 경매 안 되는 거
좀 주면 안 되것나
망설임 없이 즉답(卽答) 한다
알았니더, 슬그머니 골목 뒤에 가서
남은 활어를 기절을 시키거나 아예 분질러
선뜻 팔라고 내어준다
시장의 교란이긴 하나 물러섬이 넓다
경쟁은 비교의 우위가 아님을 몸으로 설파
뜻 모를 살생으로 하루를 구축함
오만 원이 이만 원이 되어도
그 잔잔한 거래,
그것이 적절한 환희가 된다
먹고 사는데
지름길이 있는가,
직선이 곡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다.

-「죽여줄게 -포항 이상민」 전문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시는 죽도시장 새벽 세 시 의 거친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제로 보아 이 시는 포항의 이상민 이란 지인을 대상으로 쓴 시로 짐작된다. 포항 죽도시장 은 바다 옆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바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을 않는다. 왜냐하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 바다는 거칠고 고된 작업 현장(바다는,/풍경일 때는 다정하다/노동일 때는 거칠고 야속하다 「몰개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에는 바다를 등장시키지도, 미화시키기 않는다.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의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새벽 죽도시장 에는 생선 비린내보다 더 진한 인간 비린내만 일렁이고 있다. 돈이 오가는 곳이면 어디든 뒷거래도 이루어지는 게 시장의 생리다. 죽도시장 에서도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시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런데 이 시에 표현된 시장의 교란은 우리의 짐작을 빗나가게 한다. 오만 원 하는 활어를 일부러 죽여서 이만 원에 파는 아재의 계산법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교란이 일어나는 죽도시장 이 포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장면이다. 한 할머니와 아재 의 행위는 자본시장의 논리가 해제되는, 인간적인 정(情)과 안쓰러움이 통하는 역설의 현장이다. 이 현장에서 이우근 시인은 직선과 곡선의 의미를 포착한다. 공적인 경매가 일어나는 현장이 직선이라면, 공매가 끝난 다음 이루어지는 한 할머니와 아재 사이의 잔잔한 거래를 일컬어 이우근 시인은 곡선으로 비유한다. 그러니까 이 거래(남은 활어를 기절을 시키거나 아예 분질러/선뜻 팔라고 내어주는)는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 논리로 볼 때 일종의 교란인 셈이다. 맞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한 할머니처럼 삶의 기반이 허약한 소시민에게 아재는 마음을 열어 보탠다. 좌판 아지매들은 일정한 수입원이 있는 제도권 내의 사람이라면 한 할머니는 여기에 편입되지도 못하는 제도권 밖에 있는 소시민이다. 자본시장의 구조 밖으로 밀려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보여주는 이타적 삶의 실천이 이우근 시인이 생각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삶의 원리(직선이 곡선을 염두에 두지/않을 리 없다.)이고 바른 이치다. 다시 말해 이 시에 드러난 직선과 곡선의 의미는, 옮고 그름을 가리는 척도가 아니다.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려면 직선의 삶도 곡선의 삶도 평형수와 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우근 시인은 물리적인 속도 자체를 직선과 곡선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라이더」 에서 다른 건 몰라도/죽도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제일 잘 아는 중국집 배달원이 시적 화자로 등장한다. 중국집 배달원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지름길을 잘 아는 사람이다. 골목을 누비는 일에 능숙한 사람이다. 여기서는 빠른 배달을 위한 시간 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내세우며 직선과 곡선으로 풀어낸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배달을 끝내야하는 것이 직선의 시간이라면, 지름길로 통하는 골목은 곡선의 시간이다. 이 시에서 라이더는 노동의 고달픔(땀 냄새야 어떠리/그것도 향기인 걸)까지도 건강한 노동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골목과 골목을 누비는 곡선의 삶에 대해서는, 위태롭게 살아가지만 자신의 직업에 긍지(나는 도시의 라이더/고속도로는 없어도/곡선과 직선의 조화로운 날들)를 갖고 스스로를 위무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 치고 직선의 삶을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시는 시적 화자는 라이더라는 직업에 자족하고 살아가는 듯 표현한다. 하지만 사람은 욕망하는 동물이라서 골목을 누비며 살아가는 그의 내면에는 잘 닦인 고속도로를 타고 도시의 중심에 닿고 싶은 욕망도 있는 것이다. 그 욕망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고속도로라는 단어의 선택이다. 고속도로는 직선 코스의 길 중에서도 빠르게 사회의 중심에 닳을 수 있는 직선의 또 다른 말이라는 뜻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는 제도권 내로 편입되고 싶은 시적 화자의 욕망의 속도 를 대신하는 말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자신의 욕망을 함부로 발설하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회적 위치와 직업에 담담하게 순응하며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서 빠르게 출세하길 원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소시민이 욕망할 줄 몰라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욕망이, 일탈이 삶의 무게보다 한 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삶보다 무서운 직업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각 짊어진 삶과 직업을 쉽사리 벗어던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다. 고속도로로 유추할 수 있는 욕망의 속도는 「고속도로 1톤 트럭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속도와 경쟁의 궤도 위에서 이우근 시인은 속도에 성급하게 편승하지 않는다. 서늘한 시선인 듯, 달관한 시선인 듯 그 장면을 포착하고 그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쉽게 읽히지만 차량의 종류를 신분이나 직업으로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가 갖는 시사성과 사회성이 확보되고 있다.


죽어라 달리는 미끈한 차들 속에서도
제법 잘 달리는 작은 트럭들 보고 있으면
즐거워라
배추나 양파와 마늘 기타 등등
양(量)으로 뭉쳐야 돈 되는 거 잔뜩 싣고
가끔 돼지나 소도 싣고
공구(工具)나 잡물들을 싣고
무조건 짊어지고 그 한계까지 싣고
열심히 달리는 트럭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어라
생업의 현장이면 좀 고통스럽겠지만
풍경으로 지그시 보는
그 알싸한 위안
더러 싸가지 없이 끼어드는 승용차를 보며
우리의 용서를 스스로 학습하자
오죽 갈 길이 바쁠까
그들의 도착지가 어디이건
그곳에는 사람의 꽃이 피고
희망이라는 것이, 별 볼일 없는 것이라도
그런대로 부대끼며 창궐하면
미망(未忘)의, 창궐의 숲이라도 일굴 것이다
개구멍도 문이니 열심이면 큰 문 열릴, 하여
자신이 점령할 성(城)으로의 당당한 개선,
그것이 수백 번 거듭되어 강물로 흐르면
그것의 결과
그것은 정말 즐거운 일,
사는 일에 가속(加速)을 붙이면,
꽃필 날 멀지 않을 것이다
꽃필 날 멀지 않아 이미 꽃이다.

-「고속도로 1톤 트럭들」 전문

어떤 차를 모는가가가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가늠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예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고속도로 1톤 트럭들」은 사회에 반영된 심리와 장면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 시는 질주하는 장면만 빌려온다. 얼핏 보면 미끈한 승용차와 1톤 트럭을 비교의 대상으로 놓고 욕망의 속도를 견주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우근 시인은 1톤 트럭을 더 옹호(?) 하는 편파적인 입장이다. 왜냐하면 1톤 트럭들은 죽어라 달리는 미끈한 차들 속에서도/제법 잘 달리고, 또 무조건 짊어지고 그 한계까지 싣고/열심히 달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삶과 노동에 성실하게 부역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트럭을 바라보고 있으면/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노동의 끝에는 사람의 꽃이 피어난다는 그 가능성 때문에 미끈한 차를 보고 분노하기보다는 용서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속도로 위에 달리는 차량들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다. 싸가지 없이 끼어드는 승용차를 보며/우리의 용서를 스스로 학습하자라니! 욕을 하기보다는 오죽 갈 길이 바쁠까 라고 일축해 버리는 태도는 속도와 경쟁으로부터 몇 걸음 물러나 있다. 시인의 두 발은 세상에 다 담그고 살면 안 된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이우근 시인이 생각하기에 속도와 경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사는 일에 가속(加速)을 붙이는 일이다. 이우근 시인이 바라보는 이런 관점이, 현대 사회가 부추기는 획일적 가치에 동조도 편승도 하지 않으려는 가치와 차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로써 이우근 시인은 삶의 가치가 속도가 전부가 아니며, 삶의 또 다른 가치가 있음을 돌올하게 드러내 보인다. 시인은 시대의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자가 아니라, 연어처럼 원천을 찾아 역류하는 존재다. 문명은 우리 삶의 모습은 그 원천으로부터, 절대적 진리로부터 오염되어 있거나 멀어져 가고 있다. 문학은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한 사회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라고 했다. 이우근 시인도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만연하는 획일적 가치와 통속성, 그 대열에서 생업에 힘쓰는 소시민들의 건강한 삶, 그리고 이를 밀착해서 바라보는 이우근 시인의 이타적 관점을 넉넉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침에 뒷좌석과 적재함에
콘돔을 가득 싣고
모텔과 편의점을 돈다
부피가 작아서 힘도 덜 든다
물과 음료수 장사 땐 부피에 비해 마진이 박했는데,
이건 괜찮다
은밀한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을 위해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리라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을 제어하는 일에
일조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배설물을 방어하기 위한
물건을 공급하는데,
한 사람의 뜨거움이 무위(無爲)로 판명된다는 것,
그것 때문에 먹고 살기에 쏠쏠하다

사람들은 모르더라,
다들 폼나는 일만 하려 하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돈 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더라
비록 배운 거 없어도
본질에는 접근하게 되더라
비록 콘돔을 팔아도
새끼들 키우는 데 정말 알짜배기더라
나는 장막 뒤의, 무대 밖의 배우라 할까
그렇다,
질기고 탄탄하기만 하면
그렇게 세상을 견디며 건널 수 있다
또 스스로 투명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콘돔 장사 내 후배」 전문

앞의 작품에서도 보았듯이 이우근 시인은 소시민들의 삶을 최단거리에서 밀착해서 풍자하거나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들을 바라보는 이우근 시인의 감정이 일관된 하나의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감정의 구조는 특정한 시기 사회적 주체들의 습관화된 사고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감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주장처럼 감정이란, 과거 시제로부터 현재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경화되어 있지 않은 연속적이고 살아있는 현재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변화와 변용의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다. 이우근 시인도 소시민들에 대한 감정을 사회적 문맥에 올려놓고 우리 사회의 단면을 짚어낸다. 「콘돔 장사 내 후배」의 경우도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입으로 발설하기 민망한 후배의 직업을 시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문제가 안 된다. 시인이라면 일반인들이 민망해하는 문제도 시의 전면에 올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단 독자들의 통념과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지경까지 인식의 폭을 확장시켜야 한다.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이 시를 만나고 우리는 콘돔을 배달하는 직업도 다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그리고 흔치 않은 직업의 특성 때문에 사실 당혹과 불편, 호기심으로 읽게 되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 직업과 관련된 특별한 체험에 눈길을 쏠리게 된다. 모텔과 편의점을 돈다/부피가 작아서 힘도 덜 든다 는 부분을 봐도 그렇다. 이 후배는 이 직업을 갖기 전 부피가 큰 물건을 배달하며 마진을 남기는 일을 했다. 부피가 크면서 마진이 적은 일보다는, 부피가 작으면서 큰 마진을 남기는 일이 배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최적의 조건이리라. 이를 증명하듯이 이건 괜찮다라고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을 제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살기에 쏠쏠하고 새끼들 키우는 데 정말 알짜배기라는 고백 앞에서 그만 먹먹해지고 만다. 이 민망한 직업을 견디는(?) 후배라는 사람이 더 이상 불편하지가 않다. 콘돔 장사라는 직업보다 더 견디기 힘든 삶, 앞에 선 아버지라는 직업만이 강하게 부각되고 마는 순간이다. 이우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도 아마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질기고 탄탄하기만 하면, 또 스스로 투명하다면 이라는 후배의 바람은 콘돔의 속성과 자신의 미래를 중첩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성실한 노동의 근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로써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은밀한 성(性)을 상품화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는 통속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은밀하게 자생하고 있는 이 시대 육욕과 욕망의 상품화와 소비 방식, 그리고 그 그늘이 먹여 살리는 소시민의 직업과 애환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풍자하며 아이로니컬하게 직조해내고 있다.
이처럼 이우근 시인이 대상으로 삼는 타자들, 그중에서도 소시민은 근래 우리 시에서 깊숙이 조명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죽도시장 할머니, 중국집 라이더, 콘돔 장사, 고속도로 트럭 기사 등이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소시민으로 분류되며, 배제되고 소외된 존재들이다. 길에서 쉽게 만나지만 무시하거나 지나치기 쉬운 존재들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낙인처럼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직업으로 존재의 가치와 신분을 평가받는 현대 사회에서 조명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조연들이다. 이우근 시인은 이들을 편집증적(?)으로 조명하며 시의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이우근 시인의 시선은 시혜적(施惠的)이지 않다. 시선을 낮추고 또 낮다. 그들의 눈높이만큼 내려가서 그들의 몸에 육화된 세상의 불온성을 투사하고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우근 시인의 시선은 권위에 물들지 않았다. 직업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평가하지 않는다. 직업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존엄이 우선한다. 인간의 가치를 직업으로 분류하는 관행이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신분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우근 시인은 위 작품들로서 반증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문밖만 나가면 사회적 위치나 직업으로 평가를 받는다. 직업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받는, 아니 대접받는 세상은 오지 않을 텐가, 그 가능성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쌍봉댁이 젤 좋아
외로움을 아니까

귀동이도 좋아
탈탈 털리면서도 웃을 줄 알거든

응삼이도 좋아
겉절이 양념이어도
외로워서 행복하거든

별 거 있는가
행주 없이 상(床)이 빛나는가
바탕이라는 거
외곽이어도
빛 바른 양지.


*쌍봉댁, 귀동, 응삼은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온 캐릭터.

-「조연(助演)」 전문

우리나라의 청·장년 세대들치고 「전원일기」를 안 본 사람이 있을까. 부제의 쌍봉댁, 귀동, 응삼을 떠올리면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얼굴도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민 드라마, 최장수 드라마라는 수식을 받으며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정취와 정서를 실감 나게 반영한, 이 드라마에서는 농촌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농촌 드라마가 아니다. 보통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직조해내는 희로애락과 삶의 무늬에 초점을 둔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속성상 이 드라마에도 주연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주연 만큼이나 비중 있는 조연들의 역할 또한 돋보이던 드라마였다. 지금도 「전원일기」를 떠올리면 양촌리라는 그 가상의 장소에서 그들이 소소한 입씨름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은 특별하지도 잘 나지도 않았다. 각각 흠이 있는 성격을 가진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을 보며 사회생활에 지친 수많은 한국인들의 저녁이 양처럼 순하게 저물기도 했다. 이우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도 그게 아니었을까. 외로움을 아는 쌍봉댁이 그렇고 탈탈 털리면서도 웃을 줄아는 귀동이가 그렇고 겉절이 양념이어도/외로워서 행복한 응삼이도 호칭부터가 편안하다. 보다시피 이들은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적 위계에 편입되지 않은 자들이다. 정(情)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들은 외로움도 나눌 줄 알고, 좀 손해를 본다 해도 웃을 줄 알고, 외로워도 행복 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정직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가 높다고 행복지수가 높은 것이 아니다. 도시의 외곽에서 조연처럼 살아가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정작 바른 삶이라는 그 가능성. 이우근 시인의 인본주의적 믿음이 시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가늠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여기서도 강조되고 있다. 쌍봉댁, 귀동, 응삼은 누구인가, 이들은 우리 이웃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소시민들을 대신하는 보편 다수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존재와 그 가치를 행주 없이 상(床)이 빛나는가라고 묻는 이 문장으로 전경화시키고 있다. 이 문장 하나로 이 세상에서 조연처럼 살아가는 보편적 다수의 조연들의 역할과 자격을 단번에 격상시켜 놓는다. 게다가 외곽이어도/빛 바른 양지라는 이미지까지 병치함으로써, 이 시는 언어의 응축과 절제, 행간의 단속적 구성까지 톡톡히 실현하고 있다.

2.
앞에서 살폈다시피 이우근 시인은 타자들, 그중에서도 소시민들의 직업과 상황에 초점을 모으고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우근 시인은 왜 이토록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현실이 만든 사회적 제도와 질서는 인간을 계급화하고 지배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도태되거나 소외와 배제되어 생의 사각지대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이 사회적 시스템은 인간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되어 인간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피로감에 지친 이우근 시인은 인권 회복의 가능성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을 자연의 현상을 빗대거나, 식물에 비유(민들레의 사소함/애끼똥풀의 빈번함/잡풀 으뜸 질경이의 길의 점령/그 번식의 힘 「소시민」)하며 그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꽃은,
자기 자리가 좋으면 얼른 씨를 뿌려
그 자리를 내어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계절을 넘어 더 좋은 꽃으로 피고
들판은 무상으로 임대를 내어주고

그 대부분의 배경과 풍경인 잡풀들은
더욱 생식력이 좋아 더불어 번성하면서
혼자인 듯, 모두 다인 듯
어깨동무할 이유가 없지 않아서
그 아래의 자잘한 것까지
거듭 거두어가며 지평을 넓힌다
창백하나 검소한 겨울이 가면
본능적으로 포실한 봄이 오는
없어도 많은, 넘치는 공간
순환이 순한 곳

그것이 들판의 권력

널브러져 있는 사소한 것들
미세하게 산소를 공급하는 존재들
잊혀진 것들
그러나 아무도
평등이나 계급을 요구하지 않으니,

그 충만한 무욕(無欲),
구름의 미끄럼틀이라 낄낄거리고
바람의 정거장이기도 해서,
그냥 오줌 막 누고 싶은 들판
그렇게 갈망이 팽팽해도 해소가 되는 곳
그러한 마음의 권력이 들판이지.

-「들판의 권력 」 전문

들판은 힘이 세다. 사시사철 새와 곤충을 키우고, 꽃과 풀을 먹이고 입힌다. 훼손되더라도 복원하는 자생력(自生力)을 곧 발휘한다. 들판은 차별과 경계를 짓지 않는다. 중심과 외곽으로 구획 짓지 않는다. 차별이 없으니 그 들판에 깃들어 사는 동종(同種)의 나무와 풀들도 서로 개입하지 않고 조합과 연결하고 푸른 연대를 형성(「풀의 정치학」)한다. 들판에 깃든 온갖 생물에게 평등이나 계급을 요구하지 않으니 진정으로 평등(들판은 평등하고 「반민특위1」)하고 민주적이다. 이만큼 평화롭고 공평한 정치가 없다. 이우근 시인이 위의 시를 「들판의 권력」이라고 붙인 까닭을 여러 편의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이 시를 보면서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인공낙원을 만들고 자연은 부리고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무상으로 임대를 내어주고 자잘한 것까지/거듭 거두어가며 지평을 넓히는 자연의 운용 논리와 비교하면, 인간이 넓히는 지평은 치졸하고 근시안적이다. 그래서 들판이 베푸는 그 충만한 무욕(無欲)이 편재(遍在) 하는 지경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문명과 함께 축조된 욕망의 계단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욕망의 카르텔을 이탈하는 순간 소외와 배제만 기다릴 뿐이다.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틀려먹은, 괴물로 진화(?)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우근 시인이 체감하는 문명은 편리한 것이기보다는 불편과 괴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우근 시인은 자연을 통해서 삶의 이치와 흐름을 배우고, 문명을 가늠하는 척도로 세우기도 한다.


우리는 걸어서 가고/강물은 흐르고/바람은 구른다/나무는 길을 밀어내면서/배타적이면서도/효율적으로/가장 경제적으로 걷는다/긴 세월을 걷고도/그 자리에 있다/천 리를 가도 그 자리의 효용이다//서울 그 서러운 곳에서 살면서/더더욱 지하철에서,/서서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나무의 보행법을 배웠다/그리운 것은 잎으로 틔우고/꽃이 아니라도/더 깊은 푸르름을 학습하는 것/두터운 인내를 곱씹는 것

-「서서 가는 것, 지하철, 혹은 나무의 보행법」 부분


이 시는 사람의 보행법과 나무의 보행법, 그 물리적인 차이를 서울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람이 길을 확장하는 방법은 수평의 길을, 나무는 그 자리에서 천 리를 가는 수직의 방법을 비교해 보인다. 그런데 이 시는 나무의 보행법에 대하여 사람의 보행법을 비교의 대상으로 드러내 보인다. 서울 그 서러운 곳에서 살면서/더더욱 지하철에서,/서서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서울에서의 입지가 녹록지 않음을 암시한다. 지하철은 서울 소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서서 흐른다는 표현에서 보다시피 시적 화자가 체감하기에 편한 길이 아니다. 반면에 나무는 길을 밀어내면서/배타적이면서도/효율적으로/가장 경제적으로 걷는다/긴 세월을 걷고도/그 자리에 있다, 는 인식에는 나무가 만들어내는 길은 사람이 만드는 길(지하철)보다 우위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 인식의 흐름은 나무는 그 자리에서 수직의 길을 내며 더 깊은 푸르름을 학습하는 것/두터운 인내를 곱씹는 것이라는 성찰에 이른다. 이 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입지와 비애를 정서로, 자연과 문명 사이의 괴리감을 가시화하고 있다.


도솔암 가는 길은 굽이마다 형편대로 눕는다/그리고 불시에 일어나 하늘까지 닿는다/바람소리의 해조음(海潮音)이 들린다/산은 조바심 없이 밭은기침으로/자신의 벽을 연다, 아무도 모른다/마음이 바르다면/젖은 것과 마른 것이 무슨 상관이랴/높낮이의 위치가 무슨 상관이랴/낙엽과 해초가 이웃이지 말란 법도 없다
-「남해 도솔암」 부분


「서서 가는 것, 지하철, 혹은 나무의 보행법」이 나무(자연)과 지하철(문명)이 도시에서 길을 내는 속성을 차이로서 보여주었다면, 「남해 도솔암」 은 산(자연)과 바다(자연)의 속성과 장소의 특징을 높낮이와 젖은 것과 마른 것로 비교·대조한다. 이우근 시인은 어느 날 남해 도솔암에 오르다가 산 위로 들려오는 해조음(海潮音) 소리를 듣고 이 시를 쓰게 되었을 터이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을 자연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충만한 무욕(無欲)(「들판의 권력」) 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우근 시인은 현대사회가 구축한 위계질서의 높낮이와 신분의 위치가 야기하는 괴리감을 동시에 떠올리고 만다. 이처럼 이우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은 단순히 물리적인 자연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불온성을 판단하고 진단하는 준거 기준으로 삼기 위해 불러오는 자연이다. 산과 바다로 지칭되는 젖은 것과 마른 것 그리고 높낮이의 위치 가 이웃할 수 있는 조건 앞에 마음이 바르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우근 시인의 말마따나 자연이라는 권력은 유사 이래 만물에 평등하고 공평하다. 차별과 경계를 두지 않고, 계급을 요구하지 않(「들판의 권력」)는다. 이우근 시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절대적 권력의 전형, 혹은 표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우근 시인이 이번 시집에 자연을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이우근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자신을 직접 시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우근 시인이 도시 소시민들과 자연물에 투사한 사회적 경향과 방향성을 통해서 시인의 강직한 성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시는 자신에 대한 반성적 어조로 전개된다. 시적 화자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때 반성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우근 시인은 자기 자신을 사물과 상황에 투사하여 감정이입을 하고 성찰한 후,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재귀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


내 천박한 것들을
부처의 모서리에서 털어버리려
절하고 나오는데
배롱나무 활짝 핀 꽃 때문에
더 천박해졌다
저리 만개할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지전(紙錢) 몇 푼으로 땜빵할
내 인생이 아닌 모양이다
햇살이, 맑은 하늘이,
공양주 보살의 까칠한 뒤꿈치가
나를 저격한다
집에 가야지, 해우소(解憂所)에서
물건 바라보며
무얼 해소하는지는 모르지만,
재촉 당하는 식은 욕망,
결국엔,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다

- 「배롱나무」 전문

한 편의 시에서 종교적 장소나 상징물 등을 시의 배경이나 소품으로 배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시는 종교의 시녀로 전락하고 만다. 문학은 특정한 종교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의 장(場) 안에서 특정 종교를 부각시키거나 강요하게 되면, 그 작품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실로 시는 철학과 윤리가 끝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종교적 장소나 제재는 불러오되 특정한 종교의 틀을 벗어나는 지경으로 시가 나아간다면, 특정한 종교를 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가능해진다. 윤동주의 「십자가」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이 시들은 각각 기독교와 불교를 제재로 다루고 있지만 종교시의 한계를 벗어나 포괄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배롱나무」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삶이 불안할 때 특정한 종교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 이 시의 자전적 화자로 분한 이우근 시인도 절(寺)로 짐작되는 장소를 찾아 절을 하고 지전(紙錢)도 바치는 의례적인 종교 행위를 마친다. 영락없는 불자(佛者)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불자(佛者)는 종교적 태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햇살이, 맑은 하늘이,/공양주 보살의 까칠한 뒤꿈치가/나를 저격한다 라는 부분이 그렇다. 이 부분에서 시에서 종교적 색채를 확! 걷어버린다. 그리고 시의 범위를 종교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따지고 보면 햇살과 맑은 하늘은 종교가 생기기 전부터 스스로 있어왔던 종교 이상의 우위(優位)의 존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우근 시인이 공양주 보살의 까칠한 뒤꿈치 까지 같은 대열에 올려놓는다. 가장 자연적인 것과 가장 인간적인 것이 종교보다 더 종교적일 수 있음을 인식한다. 사람들은 삶이 불안해서 종교를 만들었고,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에는 인간을 구속하는 율법이 있다. 때로는 그 율법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재촉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우근 시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은 종교까지 초월한다. 이우근 시인이 이 세상에서 믿는 믿음의 대상은 종교가 아니(부처를 거부한 것이/최고의 공부였다 「반성」)다. 자연(햇살과 맑은 하늘)과 사람(공양주 보살의 뒤꿈치)에 대한 믿음이 종교보다 더 우위에 있다. 여기에는 자연에 깃든 신성(神性)과 인본주의적 관점이 종교를 앞선다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또 이 사고의 바탕에는 인문학(人文學)의 기원과 닿아 있다. 기원전의 책, 『주역(周易)』에서는 인문(人文)은 천문(天文), 지문(地文)과 비슷한 계열의 말로 쓰였다. 이 단어에서 문(文)자는 글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늬를 뜻했다. 즉 옛사람들은 하늘에도 무늬가 있고, 땅에도 무늬가 있으며, 자연의 무늬들은 삶의 무늬와 서로 동등하게 연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문(人文)은 그 말의 무의식에서 복수로서의 삶을 지시하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 군상의 다양한 생각과 삶을 모아야 사람들의 무늬가 생긴다. 이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정상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이우근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소시민과 자연을 왜 그토록 시의 대상으로 빈번하게 끌어들였는지 의문이 풀린다. 이를 암시하듯 시집의 제목도 『빛 바른 외곽』인 이유도 수긍이 된다.
짐작건대 다음 시집에서도 이우근 시인은 사람과 자연에 대 관심의 밀도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런데 자연이나 자연물을 시의 제재나 대상으로 불러와도 사람만큼 비중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우근 시인에게는 밤새 길을 걸어도/마을에는 결국 도착하지 못(「반성」)한 숙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을로 가는 외곽 그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 이우근 시인을 그려본다. 그 마을로 가는 길에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더라도, 더디게 가더라도 꼭 도착하길 바란다. 그 마을에 도착해서 서정의 본령에 이르기 위한 그 가능성을 내내 타진하길 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현대사회의 외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과 직업에 대해 깊게 천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에 두려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주지(主旨)한다. 시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획득하고 있다.
-김나영(시인), 해설 ‘생의 핍진성, 그 가능성을 향한 서정의 구도(構圖)’ 中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우근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문학·선>으로 등단했다.낮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 생활을 공유하고자 하면서, 비록 몸과 마음이 따르지는 못했지만, 불교적 관점의 이타성과 사회적 시선에서 비켜난 이들의 소중한 생활을 기록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결국에는 그 자신을 위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시를 썼다.사람이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의 희망과 연대에 대해, 회피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고 노력은 진행형이라, 말한다.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산문집으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가 있다.

  목차

1부.
강물은 더욱 먼 곳으로 흐르네.


똥개 혹은
해피 버스데이
서울의 비
당신의 계엄령
어떤 가을비
죽여줄게요
음악다방
밤기차
사람에 관하여
라이더
오일장 나이키
춘성 스님
남해 도솔암
전우익
굴뚝새의 겨울
반민특위 1
반민특위 2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을 위한 루카스 노동자들의 계획*

2부.
개구멍도 문이니 열심이면 큰 대문 열릴 일.

경강선
몰개월
학생부군신위
고속도로 1톤 트럭들
먼 산
정선 동강
수화(手話)
화순에 가서, 고인돌에 기대어
배롱나무
속리산 법주사
묵호 북항(北港), 멸치국수
원일 아재
이월(二月)의 강물
남한산성
구룡포 바다
들판의 권력

3부.
스스로 목표가 되는 순절(純絶)에의 지향


노을
눈사람의 일생
화순적벽
국립표지
마을 이름 생극(生克)
마을 이름 무극(無極)보약(補藥)풀의 정치학
상옥에서 1
상옥에서 2
해인사 통신
콘돔 장사 내 후배

4부.
사랑이 독약이라 그래도 사람이 해독제인 걸


소시민 2
비 내린 겨울 숲
좌선
大雪注意報
다시, 대성막걸리에서
약장수
그리운 설산(雪山)
이별은 다정하다
정선 깊은 곳에서 하늘을 보네

소시민
저, 공장의 불빛
부재증명
참선
구멍 난 양말
난 절대 배고프지 않아
낮달을 본다는 거
이장 移葬
‘노산군 부인 별급문기’ 외전(外傳)
비전향이라는 것
조연(助演)
반성
공부한다는 거
서서 가는 것, 지하철, 혹은 나무의 보행법
천상병
어머니는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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