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스벨트 자서전
히스토리아 / 엘리너 루스벨트 (지은이), 송요한 (옮긴이) / 2023.03.03
18,000
히스토리아소설,일반엘리너 루스벨트 (지은이), 송요한 (옮긴이)
미국 Harper & Brothers 출판사가 1961년 출간한 『The Autobiography of Eleanor Roosevelt』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서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이자 유엔 인권위원회 초대 의장을 지낸 엘리너 루스벨트의 자서전이다.
1부 ‘나의 이야기’에는 여덟 살에 어머니를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을 미운 오리새끼로 생각했던 엘리너가 런던 알렌스우드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로운 인격체가 되어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결혼을 하고 다섯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2부 ‘나는 기억한다’는 13년에 걸쳐, 대공황에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다스린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동반자로서의 엘리너의 삶을 담고 있다. 그녀의 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다사다난했던 시기로 그녀의 활동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 시기이다.
3부 ‘나만의 삶’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은 뒤에 엘리너가 세 대통령(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에 의해 유엔 대표로 임명되어 초창기 유엔이 자리를 잡는 데 기여했고, 특히 인권위원회 의장으로 세계인권선언문 제정을 이끈 과정을 보여준다.
4부 ‘이해를 찾아서’에 실린 글들은 엘리너가 숨지기 2~3년 전에 쓴 칼럼들이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까지 세계 평화의 바탕인 상호이해를 넓히기 위해 일했다.1부 나의 이야기
꼬마 넬 / 사춘기 / 집으로 돌아오다 / 신혼 / 나의 정치 입문 / 워싱턴 / 홀로서기 /
변화하는 존재 / 더욱 단단해진 나 / 1920년 선거운동 / 시련
2부 나는 기억한다
공직자의 개인적 삶 / 막간(1921~1927) / 주지사 시절(1928~1932) / 대통령 부인으로 살기
/ 대통령 임기 첫 해(1933) / 평화의 시간(1934~1936) / 두 번째 임기(1936~1937) / 귀빈들 / 두 번째 임기(1939~1940) / 전쟁의 시작(1941) / 영국 방문 / 계속되는 전쟁(1943) /
태평양 방문 / 테헤란과 카리브 해 / 마지막 임기(1944~1945)
3부 나만의 삶
끝과 시작 / 따분할 수 없는 시간들 / 유엔에서 행동하는 요령을 터득하다 /
소련의 책략에 대해 배우다 / 인권위원회 / 외국 여행 / 유고슬라비아와 티토 대통령 /
스티븐슨 선거운동 / 발리와 모로코 / 소련 땅에서 / 흐루시초프와의 대담
4부 이해를 찾아서
두 번째 소련 방문 / 아메리칸 드림 / 이정표 / 끝나지 않은 일들
미국인들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엘리너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퍼스트레이디로 늘 첫손에 꼽혔다. 그녀는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싸웠다. 사람들은 엘리너가 자신들의 삶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걱정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들을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마주했으며, 그들은 엘리너를 자신들의 친구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퍼스트레이디로만 가둬두려 했던 사람들을 향해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외쳤던 엘리너는 외려 미국인들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불리게 되었다. 전쟁의 종식을 눈앞에 두고 루스벨트가 서거했을 때 미국은 비탄에 잠겼는데, 대공황과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지도자의 타계로 인한 상실감뿐 아니라 엘리너의 퇴장을 믿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이 컸다. 엘리너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
국민 속으로 파고든 퍼스트레이디
엘리너는 대중에 다가가려는 단호한 노력에서 30년이 넘도록 해마다 50회 이상의 강연을 했으며 달마다 질의응답 칼럼인 ‘당신이 내게 묻는다면’을 썼다. 특히 ‘마이 데이(My Day)’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은 1936년부터 숨지기 얼마 전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독자들과 만났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역사를 엘리너 전과 후로 구분하는데, 엘리너에 이르러서 비로소 백악관 밖으로 나온 영부인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 같은 소통 노력은 오로지 사람들의 삶을 낫게 하려는 진심과 열정에서 비롯했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대중과의 소통 욕구는 루스벨트 여사에게 과시를 위한 것도, 정치적인 점수를 얻기 위한 계산된 행동도 아니었다”고 썼다. 그녀의 전기 『엘리너』를 집필한 작가 데이비드 마이클리스는 “여사는 백악관에서 차를 따르는 대신 차를 타고 전국을 누볐고, 종종 혼자 운전해 예고 없이 시민들을 만나 어려움을 듣고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남다
2013년 엘리너 루스벨트의 공식적인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그녀의 삶은 인류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엘리너의 칼럼 등은 그녀 개인의 활동만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전까지의 미국의 정치사와 사회사를 연구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녀가 ‘세계인권선언’의 제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그것의 성립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2013년에 ‘엘리너 루스벨트 페이퍼 프로젝트의 상설 컬렉션(Permanent Collection of the Eleanor Roosevelt Papers Project)’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나는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는 한 인격체가 되어갔다. 그러지 않았다면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실수들조차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들 모두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나는 궁극적으로 더 참을성 있고 너그럽고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기존의 틀 속에 머물렀다면 불가능했을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을 즐겼다. (‘1920년 선거운동’)
그 자신이 공부한 미국의 역사에서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프랭클린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수립한 견제와 균형의 가치를 더없이 높게 평가했다. 그는 결코 의원들의 건설적인 비판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성을 냈던 것은 국가에 꼭 필요한 것을 어떤 의원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과 폭 좁은 관점에서 지역적 이익을 국가 및 국제적 이익에 앞세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지도자들은 지지자들을 멀리 앞서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민과 더 가까운 의회가 자신의 제안에 대해 보이는 반응을 언제나 존중했다. (‘대통령 임기 첫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