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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B 세트
교과서 수록 작품 Ⅰ
문학과지성사 | 부모님 |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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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큐레이션 세트가 출시되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인 문학전집이 수험생 독자를 위해 더 섬세한 기준으로 재구성되었다. 문학 연구자 중에서도 해당 저자의 전공자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교수진이 책임 편집자로 참여하였으며, 참신한 기획과 엄밀한 텍스트 확정으로 명실공히 국내 대표 문학전집이라 소개할 수 있겠다. 독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성과 해설 및 부속 자료의 전문성을 갖춘 것은 물론이며, 세련된 편집으로 가독성 또한 높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세트 B는 국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별되다 보니 대부분 단편선으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창작된 이상 『날개』, 한설야 『과도기』부터 해방과 전쟁 이후의 혼란스럽고 피폐한 사회상을 담은 이범선 『오발탄』, 염상섭 『두 파산』, 전광용 『꺼삐딴 리』 등 총 12편이 묶였다. 아래 각 도서에 관한 소개가 이어진다.

  출판사 리뷰

한국 근현대문학을 관통하는 명작 한눈에 읽기
수능 국어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 세트

엄선된 대표작, 친절한 어휘,
깊이 있는 해설에 세련된 편집까지
한국 문학 명작들을 이제 새롭게 만나보세요!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큐레이션 세트가 출시되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인 문학전집이 수험생 독자를 위해 더 섬세한 기준으로 재구성되었다. 문학 연구자 중에서도 해당 저자의 전공자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교수진이 책임 편집자로 참여하였으며, 참신한 기획과 엄밀한 텍스트 확정으로 명실공히 국내 대표 문학전집이라 소개할 수 있겠다. 독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성과 해설 및 부속 자료의 전문성을 갖춘 것은 물론이며, 세련된 편집으로 가독성 또한 높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세트 B는 국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별되다 보니 대부분 단편선으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창작된 이상 『날개』, 한설야 『과도기』부터 해방과 전쟁 이후의 혼란스럽고 피폐한 사회상을 담은 이범선 『오발탄』, 염상섭 『두 파산』, 전광용 『꺼삐딴 리』 등 총 12편이 묶였다. 아래 각 도서에 관한 소개가 이어진다.

1) 감자 | 김동인 단편선 (숙명여대 최시한 책임 편집)
극단적인 상황과 비극적 운명에 빠진 인물 군상들을 냉정하게 서술해낸 한국 근대 단편 문학의 선구자 김동인의 대표작 12편 수록. 인간과 환경에 대한 근대적 인식을 빼어난 문체로 서술해냈다.

2)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단편선 (서울시립대 한형구 책임 편집)
역설과 반어의 작가 채만식의 대표 단편 8편 수록. 지식인의 자의식을 날카롭게 투시하며 지식인소설의 독자적 면모를 획득한 작가가 1920~30년대의 자본주의적 현실 원리와 민중의 삶을 풍자적으로 포착했다.

3) 사하촌 | 김정한 단편선 (성신여대 강진호 책임 편집)
리얼리즘문학과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김정한의 대표 단편 11편 수록. 민중들의 삶을 통해 누구보다 먼저 ‘근대화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제기하고 예리하게 포착한 작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4) 등신불 | 김동리 단편선 (서울시립대 이동하 책임 편집)
김동리의 후기 단편 9편 수록 탁월한 문체의 매력, 빈틈없는 구성의 묘미, 인상적인 인물상의 창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라는 김동리 단편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다.

5) 동백꽃 | 김유정 단편선 (강원대 유인순 책임 편집)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순박한 촌부에서 사기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문학 속에 그대로 재현한 김유적의 주옥같은 단편 23편 수록. 인물의 토속성과 해학성, 생생한 삶의 언어와 희비가 한데 담겼다.

6) 날개 | 이상 단편선 (경북대 김주현 책임 편집)
근대근대와 맞닥뜨린 당대 식민지 조선의 기념비이자 자화상 역할을 했던 이상의 대표 단편 11편 수록.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리로 한국의 모더니즘문학사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7) 두 파산 | 염상섭 단편선 (서강대 김경수 책임 편집)
한국 근대사를 증언하는 염상섭의 단편 11편 수록. 망국의 지식인으로서 허무적인 자기 진단과 구체적인 사회 인식, 해방 후와 전후 시기에 대한 사실적 증언과 문제 제기를 담아냈다.

8) 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단편선 (이화여대 김미현 책임 편집)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강신재의 중단편 10편 수록.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관조적 시선, 탁월하고 지적인 분석력이 돋보인다. 운명의 폭력성과 존재론적 한계를 줄기차게 탐문해온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9) 오발탄 | 이범선 단편선 (서원대 김외곤 책임 편집)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전후 작가 이범선의 대표작 14편 수록. 실향 문제와 이상향 동경을 다룬 초기작에서부터 전후 궁핍상을 전통적 사실주의로 그린 후기작까지 균형감 있게 수록했다.

10) 꺼삐딴 리 | 전광용 단편선 (세종대 김종욱 책임 편집)
1950년대 전후 사회와 60년대의 척박한 삶의 리얼리티를 ‘구도의 치밀성’과 ‘묘사의 정확성’을 통해 형상화한 작가 전광용의 대표 단편 15편 수록. 휴머니즘적 주제의식과 객관적이고 냉철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11) 과도기 | 한설야 단편선 (한양대 서경석 책임 편집)
식민지 시대 신경향파 카프 계열 작가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가 한설야의 문학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단편 17편 수록.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노동과 계급 문제를 평생 과제로 삼아 창작에 몰두한 작가의 열정을 살펴볼 수 있다.

12)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중단편선 (서강대 우찬제 책임 편집)
위험한 시대에 불안하게 살면서도 그 위험한 자유의 상태를 즐기는 방식으로 소설을 택한 나도향의 대표작 11편 수록. 초기 낭만주의 경향에서 사실주의의 변모 여정까지가 한눈에 담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신재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1949년 단편 소설 「얼굴」, 「정순이」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1959년 단편 소설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수상했다. 1967년 장편 소설 『이 찬란한 슬픔을』로 여류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장편 소설 『사도세자빈』으로 중앙문화대상, 1988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의 정회원이자 한국소설가협회 대표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젊은 느티나무』, 『파도』, 『황량한 날의 동화』, 『밤의 무지개』, 『간신의 처』, 『사랑의 아픔과 진실』 등의 책을 출간했다.

지은이 : 김동리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당선되고, 1935년과 1936년에는 각각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와 「산화(山火)」가 당선되었다.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5), 대한민국예술원상(1958),3·1문화상(1967), 국민훈장 동백장(1968), 서울특별시문화상(1970)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등신불』 『무녀도』 『황토기』 『귀환장정』 『사반의 십자가』 등이 있다. 1995년 사망했다.

지은이 : 김동인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데뷔작「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목숨」「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발가락이 닮았다」「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4년 첫 창작집『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지은이 : 김유정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지은이 : 김정한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은 1908년 음력 9월 26일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현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집안에서 세운 서당에 나가 한학을 배웠고, 1919년 열두 살이 되자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명정학교(明正學校)에 입학했다. 입학 직후 그는 3·1운동에 참여했는데,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식민지시대 항일 노선을 유지했던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1923년 열여섯 살 때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으나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학비를 탕진한 까닭에 유학 생활은 1년 6개월 만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1924년 9월 동래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동래고보 재학 중 동맹휴학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민족적인 울분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문학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28년 3월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9월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의 교원으로 부임했으나, 교원 생활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인 교사와 한국인 교사의 차별 대우에 분개해 조선인교원연맹 결성을 추진하다가 피검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따라서 스물 즈음까지 그의 의식을 거칠게나마 정리한다면, 굳건한 민족의식으로 무장해 자신의 세계를 지탱해 나갔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김정한이 애초 관심을 보인 문학 장르는 시였다. 예컨대 경상남도 양산에는 그의 외가와 왕고모 댁이 있었고, 1927년 스무 살에 양산의 조분금(趙分今) 씨와 결혼했는데, 이곳을 취해 <수라도>를 비롯한 여러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해 나간 것은 몇십 년이 지난 후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는 소설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양산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신 이때 몰두했던 것은 시 창작이었다. 1928년에는 목원(牧園) 혹은 김정한(金汀翰)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와 <조선일보>에 시·시조를 투고했으며, 1929년 10월부터 1930년까지는 목원생(牧園生), 김목원(金牧園), 김추색(金秋色)이라는 명의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시단>, <대조> 등에 다수의 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31년을 기점으로 해 그는 소설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11월 무렵 <구제사업>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잡지에 투고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결국 게재될 수 없었다고 훗날 술회했던 데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다.시 창작으로 출발했던 김정한이 소설 분야로 나아간 까닭은 계급 사상의 영향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계급/계층의 대립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시 장르보다는 소설 장르가 적합하다. 다시 말한다면, 각각의 계급/계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건을 구성하고, 이로써 현실의 갈등을 긴박하게 제시하는 데 맞춤한 장르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가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은 일본 유학 때다. 1929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30년 4월 와세다대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 문학부에 입학했다. 이 시절 그는 독서회에 가입해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하는 한편, 이찬, 안막, 이원조 등과 교류하며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31년 11월 결성된 동지사(同志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정한이 품었던 계급 사상의 열도는 대단했다. 재일 조선인 예술 연구 단체인 동지사는 계급의식으로 뭉친 단체였다. 일본 유학을 그만두게 된 계기도 계급 사상과 관련이 있다. 1932년 3학년 여름방학 때 귀향한 후 농민 조직 활성화를 위해 사업을 펼치다가 경찰에 피검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9월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 12월 그의 데뷔작 <그물(?)>이 <문학건설>에 발표되었다.학업을 중단한 후 김정한은 다시 교사가 되어, 1933년 9월부터 남해공립보통학교에서 근무했고, 1939년 5월에는 남해군 남명심상소학교로 발령받아 1940년 3월까지 교직을 이어나갔다. 그가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교직 생활을 펼쳐나가면서였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寺下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거머쥐었던 것.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한편, 이에 편승하는 타락한 불교계의 한 단면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현실에 자각해 나간다는 관점은 다른 작가들과 크게 변별되는 요소였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사하촌>이 사찰을 비방하는 소설이라고 하여 그는 장학사의 조사를 받았으며, 귀향했을 때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1940년 교직을 그만두고 난 후 김정한은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맡아 8개월여 간 운영도 해보고, 경남 면포조합에 서기로 취직해 사무도 보다가 드디어 해방을 맞이했다.해방 정국에서 김정한은 좌익 계열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여나갔다. 1945년 경남인민위원회 문화부에서 활동했고,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회원으로 이름도 올렸으며, 1946년 2월 조선문학가동맹 부산지부장에 이어 부산예술연맹위원회 회장에 피선된 전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의 활동으로 인해 김정한은 두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1946년 4월 미 군정은 이러한 활동을 ‘정부 행세’로 규정해 노백용(盧百容), 김동산(金東山) 등과 함께 그를 검거했으며,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정부는 사상 문제로 그를 체포했던 것이다. 그가 김동산으로부터 ‘요산(樂山)’이라는 아호를 받은 것은 1950년 8월 감옥 안에서였다. 아호 요산에는 ‘오래도록 지조를 지키며 살아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후 김정한이 보여준 삶의 궤적을 보면, 아호 ‘요산’처럼 살아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화를 향한 방향으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 통일운동을 역설하고, 민주화운동을 옹호하는 등 수차례 강연을 했다가 1961년 군사 쿠데타를 만나 쫓겨 다녔고, 예순일곱 살이었던 1974년에는 개헌 촉구 서명에 나섰으며, 1985년 5·18민주혁명 기념사업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1987년 6월에는 개헌 촉구 33인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힌 바도 있다.마지막까지 아호 요산에 담긴 의미를 지켜 나갔던 김정한은 1996년 11월 28일 타계했다. 살아서 그가 꿋꿋하게 이어온 삶의 궤적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지은이 : 나도향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稻香)은 호이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을 계획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나도향은 1922년 1월에 낭만주의 동인지 『백조』의 창간 동인으로서 한국 낭만주의의 문을 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낭만주의는 시 장르가 강세였기 때문에 낭만주의 소설가로서 나도향은 더욱 희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도향의 낭만주의 소설은 감상적이지 않다. 비애나 한이 넘치는 작품일지라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면 그 감정이 개인적 감상으로 퇴행하지 않는다. 그 눈물과 아픔 속에는 모순된 외부세계를 향한 화살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짧은 문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이」 「뽕」 「의사의 고백」 「계집 하인」 「물레방아」 「꿈」 「한강변의 일엽편주」 「피묻은 몇 장의 편지」 등 수준 높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는데, 아쉽게도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하였다.

지은이 : 염상섭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귀국1920년 2월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1920년 7월 동인지 『폐허』를 창간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1922년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종합지 『동명』의 기자로 활약1929년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활동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임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1945년 8.15광복 후 귀국1946년 경향신문 창간과 동시에 편집국장으로 활동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한때 해군 정훈국에 근무1954년 한국전쟁 중의 서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편 『취우』로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1955년 서라벌예대 초대학장 역임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1957년 예술원공로상 수상1962년 삼일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1963년 3월 14일 직장암으로 사망

지은이 : 이범선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태어나 고향의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주, 풍천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거제도로 옮겨가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서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며, 1956년에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57년에 「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서정성 짙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1959년에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오발탄」을 발표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발탄」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주인공의 자의식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후진 양성에도 힘썼고, 수많은 단편과 15편에 달하는 장편을 연재하는 등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한국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대한민국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 1982년 2월 28일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경희의료원에 입원한 뒤 3월 13일에 사망하였으며, 이후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용인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지은이 : 이상
(본명 : 김해경)1910년 경성부 사직동에서 출생.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입학.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 축과 기사로 근무.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자화상>으 로 입선.1932년 처음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1933년 폐결핵으로 총독부 기사직 사임. 배천온천에서 요양하던 중 기생 금홍을 만남. 1934년 구인회 참여.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나 독자들의 항의로 15회를 마지막으로 중단. 1935년 경영난으로 다방 ‘제비’ 폐업. 금홍과 이별. 1936년 창문사에 들어가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하지 만 1집만 내고 퇴사. 1937년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요절.작품 : 소설 ; 「날개」 「종생기」 「지주회시」 「봉별기」 등. 시 ; 「오감도」 「이상한 가역반응」 등.

지은이 : 전광용
1919년 함경남도 북청군 거산면 성천촌에서 태어나 경성경제전문학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1953년 같은 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국문학자로서 신소설을 연구하는 동시에 평생을 교육계에 몸 바쳤다. 1939년 동아일보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가 입선, 1955년 조선일보에 단편 「흑산도」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62년에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권력에 아부하며 카멜레온처럼 살아남는 인물을 풍자한 단편 「꺼삐딴 리」로 제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5년부터 약 11년간 『사상계』에 「신소설 연구」를 연재하는 한편, 1965년 장편소설 『나신』, 1967년 전작장편소설 『창과 벽』을 발간했다. 창작집으로는 1959년 『흑산도』, 1975년 『꺼삐딴 리』, 1977년 『동혈인간』 등이 있다.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1971년 국제 펜클럽 주최 제38차 세계작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56년 『사상계』 논문상, 1979년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으며 1988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지은이 : 채만식
소설가·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했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 소설과 희곡·평론·수필 등을 썼다.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천하태평춘」(1938)· 「금(金)의 정열」(1939) 등과 단편「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1938)·「패배자의 무덤」(1939)·「맹순사」(1946)·「미스터 방(方)」(1946) 등이 대표작이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 영령 방문 행사와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등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지은이 : 한설야
1900년 8월 3일 함흥 지역 한씨 집성촌인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하구리 503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직연은 청주 한씨 안양공파 31대손이며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문하생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고, 1918년 함흥고보로 전학했다. 1919년 함흥법전에 진학했지만 같은 해 동맹휴교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제명당한다. 1920년부터 1년 남짓 베이징의 이즈(益智)영어학교에서 사회과학을 수학했으며, 중국 육군성 조선인 관리의 집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1921년 귀국한 후 북청 학습강습소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시 <부벽누에셔>를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정식으로 등단할 때까지 10여 편의 창작시, 번역시, 소개문, 추도문 등을 발표했다.1923년 도쿄의 니혼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사회과학 공부와 문학작품 습작에 열중하던 중 관동대지진이 나자 대학을 휴학하고 가을에 귀국했다. 1924년 북청에 있는 대성중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북청자전거운동회사건’을 계기로 북청을 떠나게 된다.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그날 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다. 1926년 봄에 부친이 타계하자, 중국 동북 지방의 대표적인 탄광 지대인 푸순(撫順)으로 이주한다. 이 시기에도 문학평론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데 전념하며 창작을 지속했다.1927년 1월에 귀국한 후 카프에 가입한다. 가입과 동시에 아나키즘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 김화산을 강력 비판한다. 제3전선파의 이북만과도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후에도 여러 편의 문예학 및 사회과학 원론들을 발표한다. 1928년 문예운동의 방향 전환과 관련하여 박영희 등의 카프 지도부를 비판하는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를 발표한다. 이후 카프 내의 논쟁에서 패배한 후 낙향하여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한다. 이 논쟁을 통해 한설야는 계급문학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옹호자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1929년 여름에는 압록강과 백두산 일대의 국경 지방을 여행하기도 한다. 1930년 경성에 올라와 조선지광사에 입사하고, ≪신계단≫, ≪대조≫, ≪조선지광≫ 등의 편집에 관여한다. 193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고, 간도에 특파돼 공산당의 경찰서 습격 사건인 ‘팔도구 습격 사건’을 취재하기도 한다. 1934년 신건설사 사건(카프 제2차 사건) 때 체포되어 전주 감옥에서 영어 생활을 한다. 1935년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함흥으로 귀향한 후, 동명극장과 인쇄소를 동시에 경영한다. 1940년 6월경에 베이징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 1943년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받고 문석준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받아 투옥된다. 1944년 5월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나 자전적 장편소설 ≪해바라기≫를 집필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1945년 9월 이기영 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결성하고, 12월 10일 분열된 문학계의 통합 논의를 위해 상경하여 아서원 좌담회와 봉황각 좌담회에 참여한다. 서울에 조선문학동맹이 결성되는 것을 보고 12월 말에 북한으로 귀환한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함경도 대표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당시 문인 중에서 가장 발빠르게 김일성 형상화에 착수했다. 1947년 7월부터 9월까지 소련을 여행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이듬해 ≪쏘련 여행기≫를 발간했다. 1949년 4월 ‘평화 옹호세계대회’ 참석차 파리를 방문하여, 세계적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51년 어머니가 타계했고, 1953년 임화를 중심으로 한 월북 문인의 숙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교육문화상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력사≫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한설야 선집이 15권 계획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1962년 김창만 등이 주축이 된 김일성 세력은 한설야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12월 10일 당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숙청이 결정되었다. 1963년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강도 시중군의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다가 1976년 별세했다.

  목차

감자
레디메이드 인생
사하촌
등신불
동백꽃
날개
두파산
젊은 느티나무
오발탄
꺼삐딴 리
과도기
벙어리 삼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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