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는 언제부터 쉬어 가는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제4회 포플라사 소설 신인상을 수상한 데라치 하루나의 데뷔작 《비올레타》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바치는 담담한 찬가다.
갑작스러운 파혼과 퇴사 이후 삶의 한복판에서 멈춰 선 다에는 작은 잡화점 ‘비올레타’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상처를 애도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나아간다. 비올레타의 작은 ‘관’에는 쉽게 버릴 수도, 계속 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기억과 슬픔이 담긴다.
이 소설은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신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목표한 곳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삶이 버거운 순간 잠시 기대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의자 같은 이야기가 되어준다.
출판사 리뷰
우리는 언제부터 쉬어 가는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바치는 담담한 찬가
한동안 ‘쉬었음 청년’이라는 국가통계 용어가 화제가 되었다. 학업, 질병, 가사 등의 사유 없이 별다른 구직 활동도 하지 않으며 ‘쉬고’ 있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올해 초에는 쉬었음 청년이 48만 5천 명에 이르며 사회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을 숫자와 통계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각자에게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 누구에게는 실패를 추스르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다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숨 고르기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4회 포플라사 소설 신인상을 수상한 데라치 하루나의 데뷔작 《비올레타》는 바로 그런 시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다에’는 통계가 지칭하는 ‘쉬었음 청년’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파혼과 퇴사 이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삶의 한복판에서 멈춰 서 있다. 이 작품은 다에가 우연히 일하게 된 작은 잡화점 ‘비올레타’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상처를 애도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모두가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비올레타》는 잠시 멈춰 있는 시간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어제를 애도하는 법
비올레타 잡화점은 조금 특별한 상자를 판매한다. 손님들은 그 물건을 ‘관’이라고 부른다.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소품함이지만, 그 안에는 쉽게 버릴 수도, 그렇다고 계속 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것들이 담긴다. 가족과의 복잡한 추억, 전하지 못한 사과, 오래된 슬픔과 후회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관을 비올레타의 정원에 묻으며 지나간 시간을 애도하고, 다시 지금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관에 무엇을 넣을까?”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질문이 아니다. 어느 기억을 잊고 싶은지, 무엇을 끝내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지, 그중 무엇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비올레타에서 관에 무언가를 넣는 일은 과거를 지워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정성껏 마주한 뒤,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과정에 가깝다.
《비올레타》는 이 독특한 설정을 통해 상실과 애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상처나 고통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작품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없애는 게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비올레타를 찾은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과 화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다에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과 삶의 방향을 찾아간다.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애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들려준다.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서로의 곁에 머문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비올레타 잡화점 주인 ‘스미레’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치토세’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지나칠 만큼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주인공 다에 역시 파혼과 실패를 겪으며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흔들린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들의 결핍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상처를 껴안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곁에 머물며 조금씩 삶의 동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다에는 비올레타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워간다. 왜 타인의 평가에 흔들렸는지, 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는지 돌아보면서도 갑자기 달라지거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비올레타》는 누구나 길을 잃고 흔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작품 속 ‘의자 이론’은 이 소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칠 대로 지쳤을 때는 역 플랫폼의 의자처럼 눈에 띄는 자리에 무심코 몸을 기대게 된다. 그것은 오래 머물 곳도, 인생의 정답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수는 있다. 다에에게 비올레타와 그곳의 사람들이 그랬듯, 이 소설 역시 삶이 버거운 순간 잠시 기대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의자 같은 이야기가 되어준다.
목표한 곳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비올레타》가 특별한 이유는 행복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이 작품은 안정적인 직장이나 결혼, 사회가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을 행복의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저마다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행복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음을 보여준다.
작가 데라치 하루나는 인터뷰에서 “목표로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버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이, 나에게 있어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장소가 되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비올레타》는 바로 그 믿음에서 출발한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예상하지 못한 만남, 그리고 우연히 도착한 장소가 때로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완벽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법,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그런 다양한 관계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소중하지만 더는 품고 있기 어려운 기억이 있는 사람,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잠시 길을 잃은 사람에게 《비올레타》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목표했던 장소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가장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다고.
■ 시리즈 소개
삶에는 주목받는 A사이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볕이 닿지 않는 어두운 나날, 실패와 망설임,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마음은 언제나 뒤편에 남는다. B사이드 아카이브는 그 뒤편에 남겨진 목소리를 수록한 시리즈다. LP와 테이프의 B면에 보다 진실하고 실험적인 트랙이 실리듯, 이 시리즈는 청년들의 서툰 선택과 불안, 아직 완성되지 않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간을 기록한다.
아버지가 어렴풋이 고개를 갸웃하며 공포에 떠는 나를 바라본다.
“안 가도 상관없어.”
“아냐, 괜찮아. 갈게.”
외가 쪽 친척들은 모두들 시끄럽다. 어쨌거나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배려가 없다. 눈곱만큼도 없다. 그런 놈이랑 왜 파혼한 거야? 새 남자 친구는? 일은? 이런 식의 질문 공격으로 쩔쩔매는 나, 울면서 소형 버스 창문을 열고 주행 중에 뛰어내리는 나, 혹은 한창 제사를 지내는 중에 정신 착란이 와서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의 머리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는 나, 절에서 쫓겨나는 나 등등을 잇달아 떠올리면서도 필사적으로 허세를 부린다.
“근데 외롭다는 건 기본 사양이잖아. 뭐랄까. 인간의 기본 사양 말이지.”
치토세 씨가 이상한 말을 한다.
“기본 사양?”
“응. 외롭다는 건 평범한 거야. 당연한 거라고.”
이렇게 둘이 있어도 외로워. 근데 그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단 한순간이라도 누군가랑 서로 마음이 통하면 기분 좋지 않아?
아빠는 글쎄 그 사람은 어떨까, 하고 팔짱을 낀다. 녹차를 끓여다 주려고 일어섰는데 등 뒤로 아빠의 목소리가 따라온다.
“그래도 다에, 강하다는 건 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냐. 그런 사람은 그냥 둔감한 사람이야.”
‘강하다’는 건 ‘약하다’는 말의 반대말이 아니야. 자신의 나약함에서 눈길을 피하지 않는 게 강하다는 거야, 라는 아빠의 말을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영 모르겠어서 머리가 멍해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데라치 하루나
1977년 사가 현에서 태어나 오사카에 거주 중이다. 2014년 이 작품 《비올레타》로 제4회 포플러사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2021년 《물을 수놓다》로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을 수상했다. 2023년에는 《강기슭에 선 그 사람은》으로 서점대상 9위에 올랐다. 그 밖의 주요 작품에 《오늘의 벌꿀, 내일의 나》, 《헬로 마이 보이스》, 《카레의 시간》, 《밤이 꼭 어두운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날개는 필요 없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