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정원 한구석의 선인장부터 보이저호 소식까지 아우르는 533일의 사유.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한 세스 노터봄에게는 50여 년 동안 꾸준히 찾는 장소가 있다. 한 해의 여름에 방문하여 몇 달을 머무르는 스페인의 메노르카 섬이다. 그곳의 작은 집에서 노터봄은 정원을 돌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일상을 관찰하고 세상을 생각한다.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기 위해 선택한 자발적 고립 속에서 한없는 사고의 자유를 즐기는 노터봄에게는 스쳐 지나는 바람도 드넓은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 책은 2014년 8월 1일부터 2016년 1월 15일까지의 533일 동안, “내가 생각하고 읽고 보는 것들의 흐름에서 이따금 무언가를 붙잡아놓기 위한 쓴” 글이다.
출판사 리뷰
정원을 가꾸며 떠오르는 삶과 죽음, 역사와 정치, 꿈과 문학의 단상을 낚아채는
세스 노터봄의 충실한 일상 기록.
세스 노터봄은, 글을 통해 느낀 바로는, 참 욕심 없는 사람인 듯하다. 이 책에서도 그는 세상과 적당히 떨어져서, 그러나 현실이라는 땅에 확실히 발을 딛고서, 여차하면 자신도 그 속에 섞여 돌아갈 수밖에 없을 세상을 규칙적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나름의 규칙과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립 덕택에 그는 세상을 좀 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미 출간한 《유목민 호텔》이 여러 곳을 주유하며 바라본 세상 이야기라면 이 책 《정원 일상》은 한곳에 머물며 느낀 일상 기록이다.
스페인 동쪽에 있는 섬 메노르카.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매년 여름 그곳의 정원으로 돌아온다. 그 섬을 방문한 지 50년이 넘었다. 자동차 지붕에 짐가방을 올려놓지만 않았을 뿐, 불가리아 집시마냥 넉 달 치 짐과 컴퓨터, 책, 옷을 차에 가득 싣고 어딘가에서부터 섬을 향해 출발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배로 9시간이 걸리는 메노르카, 그곳에 있는 작은 집에 들어서면 노터봄보다 오래 이 땅에 터를 잡은 선인장과, 노터봄에게 길든 거북이들과, 그가 없을 때만 꽃을 피워 괘씸한 생각이 드는 백합이 그를 맞이한다.
노터봄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정원부터 살핀다. 폭풍우와 바람에 선인장의 잎들은 무성한지, 종려나무는 나방의 공격을 잘 버티고 있는지, 무화과나무와 고무나무는 얼마나 자랐는지. 그렇게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마을 친구들도 찾아와 그의 부재 동안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준다. 지난겨울의 폭우와 새로 나타난 해충과 소소한 사건들에 관해. 그렇게 몇 개월의 공백이 정원에 미친 영향들을 손보고 나면, 이제 일상의 독서에 몰입할 시간이 된다. 읽다가 두고 간 책들과 새로 싣고 온 책들을 마주할 시간.
“조국의 현실을 떠나 섬의 경치와 바다 풍경, 책과 음악 속에 틀어박혀 사는 것. 이미 오래 산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중요성을 잃는다. (…) 일본 노인처럼 어느 승원에 칩거하고 싶겠지만, 세상은 당신에게서 이런저런 것들을 원한다. 당신은 자신을 내려놓은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고 타인들은 당신을 다시 불러낸다. 예전에 한 말이 있고 쓴 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이 선택한 타협은 여름에는 섬에서, 겨울에는 알프스 근처에서 지내는 것이다.” _ 163p
노터봄은 이따금 여러 작가의 《일기》를 뒤적거리며, 한 시점의 한 사건에 대해 각자가 어떤 생각을 표명했는지 비교하곤 한다. 그런 용도 때문에도 그는 ‘일기’에 특별한 기준을 부여한다. 533일의 일상을 기록한 이 책에 대해서 노터봄은 “사실 이 글이 정말 일기인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고 읽고 보는 것들의 흐름에서 이따금 무언가를 붙잡아놓기 위한 것, 그저 나날의 기록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은 바깥의 소음을 배제하려고 떠나왔지만 어쩔 수 없이 바깥의 사건들로 돌아가는 사색적인 서사시이며, 서로 끊임없이 불화하는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숙고하는 노트이다.
노터봄은 곰브로비치의 ‘탐정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다 어느 자연 보호 구역에 서식하는 늪파리의 특징을 묘사하고, 스페인의 섬까지 납치된 ‘두꺼운 판달레’를 탐독하다 갑작스레 프루스트의 원전이 가지는 구태의연함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 ‘세상 돌아가는’ 일들, 거대한 정치‧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글 곳곳에서 물 위로 솟아오르는 고래처럼 불쑥 나타났다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일기란 절대로 솔직할 수 없”으나 《정원 일상》에서 느껴지는 노터봄은 실로 솔직하고 매력적이다. 볼테르의 정원, 베른하르트와 베케트, 암스테르담의 갈매기와 메노르카의 갈매기 등 한없는 지엽성에서 길어 올리는 그의 몽상과 성찰은 문학, 언어, 정치의 무게를 산뜻하게 받쳐 낸다.
바깥 세계의 단편斷片이 그의 의식에 문득문득 끼어들고, 선인장 꽃과 작은 새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다가 다니엘서를 인용하고 여러 작가와의 일화를 되새기는 노터봄. ‘바람의 섬’ 메노르카의 정원에서 선인장·곤충·새·나무·날씨·태풍을 관찰하고, 책을 읽고, 함께했던 작가들과의 기억을 되새기고, 무언가 붙잡고 싶은 소소한 것들을 기록하는 작가. 그러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다시 알프스의 산자락으로 옮겨 가 50도의 기온 차이를 실감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작가. 스스로 선택한 고립 속에서 한없는 사고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
“6개월 동안 책들은 스스로를 읽었고, 내게 보이는 것은 책을 읽는 내 자화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읽지 않은 것은 나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속이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있는 모든 책과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의 자의로 책 안팎을 배회한다.” _186p
이 책을 뭐라고 정의하든, 그의 글과 시선은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현재에 충실하니, 덕택에 우리는 반짝이는 지성과 열정으로 여전히 짱짱한 노작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카네티는 자신을 팽개치지 않는 사람이기에 조이스 근처에 묻히면 자신은 기분이 좋을 것인지도 자문하며, 결국 자신이 다루는 대상인 존재에 대해 말한다.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솔직하자면, 나는 조이스가 옹호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문학에서 말보다 우위에 있는 다다이즘의 허영심에 반대한다. 나는 온전한 말을 숭배한다.” 책의 민족의 일원이 여기서 말하고 있으며, 계속 읽어보면 이 점은 명백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꿔야 합니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볼테르는 《캉디드》의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다르거나 그 반대라면? 내가 식물은 아니지만, 혹시 정원이 나를 가꾸어준다면? 예상치 못한 형태의 조심성을 내게 전해준다면?
독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들이 서로를 높이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보코프에게 경탄하는 프로이트주의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그는 나보코프가 자신의 영웅 프로이트를 ‘빈의 돌팔이’라며 모욕하는 것을 견뎌야 한다. 토마스 만의 팬이 나보코프가 만을 탐탁지 않아 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세스 노터봄
1933년 7월 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생했다. 가톨릭 신자인 의붓아버지에 의해 수도원 소속 학교들에 보내졌으나 전학을 거듭하다 위트레흐트의 야간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마쳤다. 유럽 전역을 유랑하듯 여행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1955)을 출간했다. 이 작품으로 안네 프랑크 상 최초 수상자(1957)가 되면서 유럽 문단의 스타로 부상했다. 시집 『죽은 자들이 고향을 찾는다』(1956), 희곡 『템스강의 백조들』(1959), 여행기 『브뤼에에서의 어느 오후』(1963) 등으로 다채로운 글쓰기를 선보였다. 작품 중 최초로 장편소설 『의식』(1980)이 영미권에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고, 장편소설 『계속되는 이야기』(1991)가 20여 개국에 번역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1992)을 비롯해 20편이 넘는 여행기를 써내며 여행문학의 심오한 지평을 연 작가로 손꼽힌다. 미국의 페가수스상(1983), 유럽의 아리스테이온상(1993), 독일의 괴테상(2002), 네덜란드의 페이 세이 호프트 상(2004) 등을 수상하고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1991)을 수훈했으며, 베를린예술아카데미와 미국현대어문협회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세스 노터봄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체득한 경험과 고전·역사·철학·예술에 대한 해박함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 에세이와 여행기, 희곡과 시사평론 등을 집필하며 폭넓은 사유와 통찰 위에서 고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