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번 호 '산책과 관찰'은 눈과 발이 서로를 이끌며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을 상상하며 사진과 글을 모았다. 때로는 무심한 자연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또 때로는 삭막한 도시와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걷고 헤매고 바라보며 생각하는 사진들은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표정의 자연과 일상을, 도시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이와 더불어 ‘산책과 관찰’에 관해서 쓴 강화길, 정지돈, 조예은, 문보영, 김겨울의 에세이와 픽션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걷고 바라보며, 바라보고 걸으며 달라지는 기분 걷고 또 걷고 한참을 걷다 보면, 어깨에 힘이 빠지고, 손에 든 카메라도 그다지 의식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점부터는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디에 도착하려고 하는지도, 더 이상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발에 이끌린 눈은 새로운 것을 바라보게 되고, 눈에 이끌린 발은 예상치 못한 곳에 이르게 되면서 눈과 발은 점점 더 낯선 길로만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채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선을 선명하게 긋는 여정에서는 결코 발견하지 못할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카메라는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길을 곧바로 이어주는 도구이기보다는 길을 잃고 배회하게 만드는 계기를 선사하는 장치가 됩니다. 이번호에는 이처럼 눈과 발 그리고 카메라가 서로 하나로 연동된 순간에 발견한 세상과 풍경이 펼쳐집니다.
첫 번째 이미지 섹션에서는 미즈타니 요시노리, 폴 루스토, 마르탱 랭, 루이스 라조, 네 명의 사진가가 걷고 바라보았던 시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채색의 설경 속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포착하는 미즈타니 요시노리 그리고 바다를 ‘빛과 물과 공기의 덩어리’로 바라보는 폴 루스토, 둘의 사진 작업에서 오로지 자신의 감각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사진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마르탱 랭과 루이스 라조 두 명의 사진가는 사막을 헤매며 지나간 역사와 개인의 기억, 그리고 잃어버린 세계를 응시합니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텍스트 섹션에서는 ‘산책과 관찰’이라는 키워드로 쓴 흥미로운 에세이와 픽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설가 강화길과 정지돈, 조예은, 시인 문보영 그리고 북튜버 김겨울까지 다섯 명의 필자에게 걷고 바라보며, 또는 바라보고 걸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나 감정, 생각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난 여행에서, 책이나 영화에서 마주했던 ‘산책과 관찰’에 관한 각자의 경험담과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두 번째 이미지 섹션에는 카가와 켄지, 김유자, 손승재, 태평까지 네 명의 사진가가 참여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주변 공간을 배회하며 자주 마주하지만 또 자주 놓치고 마는 일상의 작은 얼굴과 낮은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서로 다른 보폭으로, 또 서로 다른 눈길로 바라본 그들 각자의 일상이 우리 눈앞에 반짝입니다. 세 번째 이미지 섹션에서는 거리와 거리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어두운 밤과 새벽 사이를 배회하고 관찰하는 사진 작업들을 모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바라보면 도시와 인간들 속에서 재빠르게 또는 유유히 자유롭게 걷고 바라보는 사진가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어쩌면 ‘걷고 보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또 사진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와 과정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그 자연스러움이란 결국, 가장 자기다운 얼굴과 모습일 때 비로소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호를 만들며 머릿속에는 자꾸만 어떤 실루엣이 떠올랐습니다. 마스크도 없이 거리두기도 없이, 또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자연과 도시,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산책자이자 관찰자. 그는 사진가일 수도 있고, 또 우리 자신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실루엣을 부러워하고 또 그리워하면서 우리에게 자연스러웠던 일들, 우리를 자기답게 만들었던 일들에 관해서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흰색 캔버스가 가장 아름답다.” 어느 화가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늘 세상을 색칠하고 싶은 쪽이다. 색채를 적극 활용해 히가시카와의 아름다움을 촬영하다 보니 저어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 촬영할 때마다 동행했던 생태 가이드 시오야 씨는 대화 중에 말했다.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우리 마음에도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죠.”
- 미즈타니 요시노리, 작가 노트
나는 여행을 위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길을 따라 이끌리듯 다니며 풍경 속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믿어지지 않은 시간의 감각이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이곳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고, 그런 탓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떠한 생의 흔적도 없이, 그저 완전한 고요함이 머물 뿐이었다.
- 루이스 라조, 작가 노트
목차
특집 | 산책과 관찰: 걷고 보는 동안 달라지는 것들
002 Higashikawa _ Yoshinori Mizutani
016 Seascape _ Paul Rousteau
030 Chicxulub _ Marten Lange
044 aTAcaMa : There Over The Horizon _ Luis Lazo
067 좀 걸어요, 햇빛 받으면서 _ 강화길
072 시계반대방향으로 _ 정지돈
077 경포산책 _ 조예은
084 브레히트와 코스트코 가기 _ 문보영
092 엽서−되기 _ 김겨울
098 SANPO | Portrait Light | ALASKA _ Kenji Kagawa
112 입김 _ 김유자
124 사진하는 일상 _ 손승재
136 얼음이 녹을 동안 _ 태평
148 Time Lapse _ Xan Padron
162 Bus Stops _ Simas Lin
174 Sorry, can I take a picture of you? _ Bennet Pimpinella
188 Ur/ban/isme _ Valentin Fougeray
200 Mysterious Light, Mysterious Shadow _ Monty Kaplan
212 You can’t walk this earth forever; someday you will have to fly _ Starry Kong
225 [영화의 장소들] 커다란 하늘, 또는 모노크롬의 유혹 _ 유운성
230 [인터뷰] 불량한 영화를 옹호하며 _ 김병규
239 [사진-픽션] 안거짓말 _ 장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