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전학년 꿈이사 시리즈 12권.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3대 정책으로 첫째, 과거의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유교주의 정치, 둘째는 농사와 농민을 으뜸으로 여기는 농본주의 정치, 셋째는 외교적으로 명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대주의 정치를 폈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의 시조로서, 그의 업적은 위대하다.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으로서의 역사와 한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서로 진행되고 또 접목되었는지, 새로운 역사의식을 함께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젊은 성계의 가슴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뜨겁기만 했다.
‘내 기어코 원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내 조국 고려를 되찾고야 말 것이다. 동시에 왜구를 무찔러 조국의 강토를 크게 넓히리라. 언젠가 그날이 올 때까지 나의 젊음을 모두 바칠 것이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 그리고 그 나라의 통치자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라는 옛말도 있다. 그만큼 임금은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과 희생도 없이 그 자리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 큰 꿈을 이룬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어릴 때부터 일찍이 남다른 지혜와 꿈을 키웠고, 또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내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李成桂)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공부와 함께 활쏘기 등 무예가 뛰어났는데 그 모든 솜씨와 능력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총명해서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성숙시켜 나갔던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는 왕건이 세운 고려 500년의 말기에 이름을 크게 떨친 용맹스러운 장군으로서, 원나라와 홍건적, 그리고 왜구를 모두 무찔러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 후,
고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울어지자,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1392년, 58세의 나이로 고려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다. 이어 1393년, 새 나라 조선을 세워 태조가 되었고 이듬해 고려의 서울이었던 개경(개성)에서 오늘의 서울인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지금의 우리 시대 역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3대 정책으로 첫째, 과거의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유교주의 정치, 둘째는 농사와 농민을 으뜸으로 여기는 농본주의 정치, 셋째는 외교적으로 명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대주의 정치를 폈다. 그러나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죽이고 유배를 보내는 등 두 차례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으로 큰 충격을 받고 얼마 후 왕위에서 물러난 불행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 왕조 500년 역사의 시조로서, 그의 업적은 위대하다.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으로서의 역사와 한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서로 진행되고 또 접목되었는지, 새로운 역사의식을 함께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조선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2의 1번지, 동구릉.
그곳에 가면 ‘작은 조선’을 만난다.
사적 제193호.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묘소인 건원릉(健元陵)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서울 청량리 로터리에서 망우리 고개를 넘어 경기도 구리시나 퇴계원 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약 40분 거리.
동구릉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길 건너 마주 보이는 곳에 동구릉 입구 표지판이 높다랗게 걸려 있다.
이곳에는 이태조를 비롯해 역대 조선 왕조의 여러 왕과 왕비를 모신 능이 자리 잡고 있다. 한양(漢陽)의 서쪽에 서오릉(西五陵)이 있듯이, 한양의 동쪽에 위치한 이곳에는 모두 아홉 군데에 능이 있다 해서 동구릉(東九陵)으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깨끗하고 조용한 길이 열린다.
이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높다란 산등성이 위 아래로, 또는 좌우로 깊숙이 거대한 능들이 ‘작은 조선’을 이루고 있다.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왕릉, 어디에선가 피를 토하듯 구슬프게 산새가 운다. 피로 얼룩진 조선 건국의 역사를 서로 나눠 읽기라도 하듯 이름 모를 새들이 번갈아 서럽게 운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거센 솔바람 소리도 옛 역사 속의 말발굽 소리로 다가온다.
조선 왕조의 숨결이 가득한 이곳 동구릉.
제1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정문에서 약 20분 거리, 맨 안쪽에 있다. 마치 왕의 자리에 앉아 신하들을 내려다보듯이 높은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왕릉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능을 보호하기 위해 주된 산을 뒤로 두고 그 중턱에 봉분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좌우의 지형이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 쪽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정한다.
왕릉의 입구에는 모두 홍살문이 있고, 금천교(돌다리)를 건너면 정자각이 있다. 정가작이란 한자의 ‘丁’자 모양으로 지은 건축물로 간소하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왕릉의 봉분은 보통 정자각 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봉분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로 만든 보호석과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그 앞에 석상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운다. 또 돌로 만든 양, 돌로 깎은 호랑이를 배치해 능을 수호하는 형상을 이루게 한다. 돌상 앞에는 명복을 빌기 위해 장명등을 세우고 또 봉분의 동, 서, 북 3면에 낮은 담을 두른다. 봉분 앞 한층 낮은 곳에는 문인석 1~2쌍, 다시 한층 낮은 곳에 무인석 1~2쌍을 세운다. 문인석은 행정 분야, 무인석은 국방 분야의 관직을 상징해서 만든 사람 모양의 돌비석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이와 같은 배치를 바탕으로 하면서 능의 비탈 바로 아래에 큰 비각(碑閣: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지은 집)을 세워 놓았다. 이 비각 안에는 두 마리의 커다란 거북이 등에 비석이 하나씩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태조의 기념비이고 다른 하나에는 왕비의 일대기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1315~1360)과 어머니 최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작가 소개
저자 : 이상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 부장 및 교통방송 보도부국장, 편성국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숙명여자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1979년《현대시학》에서 시가 추천 완료되었다.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한국문학상, 김영일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국제PEN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월간《문학과 어린이》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동시집으로《아이들은 시집 속에서 꿈꾼다》《햇빛 마을 가는 길》《휴전선 가는 길》등이 있고, 동화집으로《꽃게》《날아다니는 동화》《짝꿍》등이 있으며 위인전으로《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 김구》《하얼빈의 총소리 안중근》《조선 왕조 500년의 아버지 이성계》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작은 조선 / 함경도 영흥마을의 북소리 / 아버지와 아들의 두 갈래 소원 /
명궁의 길 / 무학대사와의 첫 만남 / 조국, 고려를 위해 나서다 / 원나라를 공격하라! /
불타는 최후의 요양성 / 황산벌 싸움의 대승리 / 역사적인 위화도 회군
고려 500년, 최후의 날 / 새 조선의 건국과 새 서울 한양 /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 /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 이성계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