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한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돈이 돈을 벌었죠”
빈털터리 청년이 세운 세계 최대 면세점 제국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모기업인 LVMH가 소유한 세계적인 면세점 체인 ‘DFS’. 현재 소유주는 분명 LVMH이지만 이 기업을 창업한 이는 다르다. 전 세계에 면세점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지금의 면세점 개념을 세우고 하와이와 홍콩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수십 개의 면세점을 만든 사람은 바로 DSF의 창업주 척 피니와 그의 친구다. 『척 피니』는 이 어마어마한 면세 쇼핑 제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주 상세하게 담고 있다.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척 피니는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어릴 때부터 용돈을 벌었다. 그는 늘 주변을 살피고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돈벌이와 연결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엇을 할지 결정되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세상은 점차 경제 대공황의 먹구름이 걷히고 세계 전쟁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젊은이 척 피니에게 미국은 좁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었던 그는 프랑스에 갔다가 새로운 돈벌이를 만나게 된다. 바로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이 제대할 때, 유럽산 술을 면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사업이었다.
처음은 보따리상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지만, 면세품 시장 전망을 확신한 그는 과감하게 하와이와 홍콩 공항 면세점에 입찰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일본의 경제 호황과 맞물려 DFS는 외국에서 엔화를 가장 많이 받는 주요 업체가 되기도 한다. 또 70년대 초 벌어들인 엔화는 엔화 가치 상승에 따라 부동산 혹은 단기 국채에 투자하여 사업 외에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후 괌, 사이판, 알래스카, 캐나다 등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DFS가 세워지면 유명 관광지가 되는 등 DFS는 승승장구했다. 1970년 즈음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 베트남 전쟁, 석유 파동과 인플레이션 등 각종 이슈로 미국의 평균 주가는 70%나 폭락했다. 그러나 오히려 관광객 인구는 증가하여 척 피니가 소유한 DFS의 현금 배당은 수백 %씩 뛰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청년의 사업이 만개한 것이다.
“누구도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
맹목적으로 부를 쫓는 사람들에게 진짜 부자가 전하는 메시지『척 피니』는 인간 척 피니의 일생을 소개하고 있다. 젊은 시절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공한 그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지만, 그의 삶 전체를 이야기할 때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진짜 이야기는 부의 축적 이후다.
척 피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빌 클린턴 등이 찬사를 마지않는 존재다. 워런 버핏의 말을 빌리자면 “척은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되어 왔다. 척 피니는 우리의 영웅이다.”라고 했다. 이런 그에 대한 찬사는 그가 맨손으로 일군 거대한 부(富)가 아니라, 이를 이룬 후 그가 보인 남다른 행보를 향한다.
그의 재산은 면세업으로 눈덩이가 굴러가듯 불어났다. 그의 친구들은 화려한 저택과 파티, 휘황찬란한 사교계 인사가 되어 그 부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척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큰 재산 앞에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이토록 많은 돈을 가질 권리가 있는가?’그에게 사업은 마치 예술가가 창작품을 만들 듯이 자기 생각을 펼쳐 구체화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돈은 그 결과물이었다.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는 그에게 「포브스」가 선정한 400대 부자 23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부는 필요 없었다.
그는 재산과 비례하여 책임감을 느꼈다. 이 돈을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다른 이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곳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성격의 그는 자신의 부를 제대로 쓸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자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요청해서가 아닌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척 피니는 세계적인 기부 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Atlantic philanthropies)’를 설립했다. 그는 이곳에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넘기고 본격적으로 베트남, 호주, 아일랜드,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 비밀리에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
“돈이 넉넉하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돈은 내 삶의 원동력이 아닙니다. … 우리는 삶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사업, 가족, 배우고 가르칠 기회의 균형을요.”
“9조 4,000억 평생 기부를 마칩니다”
가진 돈을 모두 기부한 진짜 부자의 결론“억만장자, 생전에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38년 만에 달성하다!”
2020년 9월 14일. BBC, 「포브스」, 「가디언」 등 세계 유수의 미디어에서 대서특필하였다. 척 피니가 드디어 생전에 가진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그의 행보는 너무 거창해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한 사람이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거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기부 대부분이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부계의 ‘제임스 본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가 기부를 진행할 때의 척도는 금액이 아닌 ‘가치’였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아일랜드라는 국가가 교육 혁신을 할 수 있도록 1.25억 달러(1997년 당시 아일랜드 GDP 약 828억 달러)를 기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베트남의 의료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대학교를 짓는 등 현지에서 지속해서 인재가 나와 자생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것, 또 뉴욕의 버려진 땅에 꽃 피울 첨단 기술을 위해 3.5억 달러를 기부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31년생인 그는 아흔이 넘은 나이까지 이코노미석을 탄다. 성공의 상징이라는 흔한 명품 가죽 시계 하나가 없다. 제대로 된 가방도 없어 무언가 넣어야 한다면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다닌다. 그런 모습으로 그는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른 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했다. 이제 모든 기부를 마친 그는 부인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방 2개짜리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치 있는 명분들을 지원해서 많은 좋은 일이 이뤄진다면 안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게다가 어디에 지원하는지 모르게 내가 죽었을 때 하는 것보다 사는 동안 지원하는 것이 훨씬 재미잖아요.”

호놀룰루와 홍콩 두 곳의 공항 면세점 영업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부수 사업일 뿐이었다. 면세점에 상품을 갖추고 관리자를 뒀지만, 태평양 지역 관광이 걸음마 단계일 때라 홍콩과 호놀룰루의 자그마한 면세점에는 거의 파리만 날렸다. 큰돈을 버는 곳은 군인에게 자동차를 팔고 미국인 관광객에게 술을 파는 사업이었다. 이들은 계속 자동차와 술 판매에 주력했다. 그래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성공할 희망을 놓지 않고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리된 전략이나 계획이라곤 없이 기회가 닥치는 대로 덤볐는데도, 사업이 날로 커졌다.
_ <5장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 중에서
면세 자동차 판매와 주류 판매 사업이 주저앉았으므로, 척과 밀러는 투어리스트 인터내셔널과 카 인터내셔널이라는 간판도 내렸다. 홍콩 공항과 호놀룰루 공항의 소매 사업으로 규모가 줄자, 척이 뉴욕에서 사들였던 회사명을 쓰기로 했다. 척과 밀러가 널리 이름을 알릴 듀티프리쇼퍼, 즉 DFS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_ <6장 벼랑 끝에 몰리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