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지은이 : 이행기
・1962년 부산 수정동 출생・부산금성고등학교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 및 동대 학원 중남미지역연구학과 졸업(석사)・(주)대우 무역부문 근무・페더럴-모굴 코리아 근무
서문
1800년 ~ 1849년 조선의 역사
10세의 순조 즉위와 수렴청정/“장차 몇 시절이나 지탱”할지 걱정한 대왕대비/‘애절양’/1810년의 굶주린 백성의 수/홍경래의 난/“소방의 미약한 힘으로 어떻게 제때에 초멸할 수 있었겠습니까?”/세자 책봉에 관한 청 황제의 ‘칙서’와 ‘고명’ 내용/급격히 줄어든 강화부의 군량/과거제의 폐단/“얻은 것은 항아리 하나의 저축”/“반드시 망하게 될 뿐입니다”/왕이 불태우게 한 흉서/“속국 중에서 가장 공순하다”/왕세손 책봉의 칙서와 조서/궁중의 사치와 탐관오리/순조가 지적한 과거제의 문제점/7세의 헌종 즉위와 수렴청정/헌종 책봉의 칙유/프랑스 신부 처형/아편전쟁 정보를 입수한 조선/1848년의 과거제 실상/18세의 철종 즉위와 수렴첨정
1800년 ~ 1849년 일본의 역사
막부, 쇼군, 번, 번주/‘산킨고타이’/조정과 막부의 관계/서양 지식에 개방적이었던 막부/인구조사/인체 해부도 ‘해체신서’/국방강화와 해외진출/오사카와 에도 농민들의 생활/종합세계지리서와 대백과전서/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청국의 외국 정보 수준/‘대일본연해여지전도’/《신론》/쇄국책/지볼트 사건/해외팽창론/아편무역이 중요한 영국과 인도/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모리슨호 사건/데키주쿠/아편전쟁/고도칸/백과사전 《후생신편》/포술교육, 반사로, 내화벽돌/덴포개혁/신수급여령/난징조약/‘해방팔책’/네덜란드 국왕의 개국 권고/대형 선박 건조허가 요청/미국 함대의 에도 출현/석탄 중간 공급지/혁명의 해 1848년/조선의 연호 사용
1850년 조선
암행어사도 눈물을 흘렸다/“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백성/
왕릉과 묘지 수리비
1850년 일본
대총제조방/함풍제 즉위와 태평천국의 난/빛의 속도 측정
1851년 조선
인구의 3%가 죄수/“고리대금업자가 이자놀이” 하는 것 같은 세금징수/조운선 고의 침몰/이명섭 모반사건
1851년 일본
사쿠마 쇼잔/일본 최초의 신문/해저 케이블, 지구자전 증명, 세계 박람회
1852년 조선
우의정과 좌의정의 호소/“당장 무슨 변이 일어날 듯” 불안해하는 좌의정
1852년 일본
슈세이칸/요시다 도요/미국함대의 방문 계획을 통보받은 막부/러시아의 사절단 파견/나폴레옹 3세 즉위/《해국도지》
1853년 조선
“궁핍한 백성을 보는 것은 어찌 그리도 야박하단 말입니까”/“모두가 죽음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는 영의정/경상북도에서 발견된 흉서
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출현한 ‘구로후네’/미국 대통령의 국서/총의 도면을 그리게 한 번주/번주들의 의견을 물어 개항을 결정한 막부/인재육성과 해군건설론/이사가와지마 조선소/대형 선박 건조 허용/러시아 사절단의 방문/요시다 쇼인의 밀항 실패/대외교섭 사료집 완성
1854년 조선
영의정의 호소/고향을 떠나는 백성들/“백성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병조가 한심한 병조판서/싸움판이 된 과거장/러시아 제독의 조선 방문 보고
1854년 일본
일미화친조약/페인트, 증기기관차, 전신/밀항에 또 실패한 요시다 쇼인/일영화친조약/함선 제조 기술 습득 노력/러시아와 국경선 확정/네덜란드 국왕의 해군교육 제의/네덜란드 장교의 일본해군 창설 건의/후쿠자와 유키치와 사카모토 료마
1855년 조선
신하를 만나지 않는 왕/돈이 없는 병조와 경기도/호조의 재정난/옛날과 싸우는 유생들
1855년 일본
해군교육 시작/‘양학소’
1856년 조선
탐관오리의 처벌을 호소하는 대신들/호조판서와 병조판서의 상소/능을 옮기는 비용/가구당 2냥 이하의 구휼금/조선 점령을 건의한 프랑스 제독
1856년 일본
33세에 곱셈, 나눗셈을 배웠다/지중해 진출이 좌절된 러시아/애로우호 사건/미국총영사 부임/‘쇼카손주쿠’/네안데르탈인 화석
1857년 조선
“미치광이” 좌의정의 절규/궁전 수리비 등/칙사 대접에 군량미까지 동원
1857년 일본
아무르 지역을 탐내는 러시아/일미화친조약 개정/통상조약 체결 의사를 표명한 막부/제2차 네덜란드 군사교관단
1858년 조선
여전히 곤궁한 병조와 호조/재산을 뺏기는 부자들/궁전 수리비와 구휼비
1858년 일본
안세이 5개국 조약/안세이 대옥/암살 시도, 에도 유학, 영어 공부/일미수호통상조약/톈진조약/아이훈 조약
1859년 조선
“조석을 보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철종/“극한 지경”에 이른 진주/침묵하는 언관과 신하를 만나지 않는 임금/조선인 범죄자는 조선에서, 일본인 범죄자는 쓰시마에서 처벌/상소하면서 돈을 뜯는 유생들/군량미까지 동원한 궁전과 왕릉 수리
1859년 일본
네덜란드 해군교육 완료/초대 주일 영국공사 부임/톈진조약 무효를 선언한 청/《종의 기원》
1860년 조선
“매질하고 긁어내어 흩어지고 쓰러지는” 백성들/군기고에 화약이 없었다/전국 관청의 돈을 동원하여 궁전 수리/안세이 5개국 조약 체결 통보/‘열하문안사’ 파견 결정
1860년 일본
미국방문 사절단의 충격/사절단의 기록과 건의/‘사쿠라다문 밖의 변’/함풍제의 피신과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만엔킨’
1861년 조선
“피맺힌 간절한 마음을 토로”한 좌의정/왕의 문란한 생활을 직언하는 영의정/“흉년이든 풍년이든 불쌍한 사람은 백성”/병조의 1천 냥도 궁전 수리비에/“참으로 예의의 나라이다”/러시아와 조선의 국경선 확정
1861년 일본
해군의 해외 유학 건의/러시아군의 쓰시마 점령/‘항해원략책’과 존황양이파/‘도사근왕당’/외국군의 요코하마 주둔/‘총리아문’/동치제 즉위와 서태후/남북전쟁, 농노해방
1862년 조선
진주민란/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민란/“눈물을 닦아도 그칠 줄을 모릅니다”/“그토록 맹목적인 헌신과 존경, 복종을 배우지 않았더라면”/창고가 빈 호조와 병조
1862년 일본
분큐사절단과 런던각서/분큐사절단의 문명 탐방/네덜란드에 최초의 유학생 파견/계속되는 암살. 습격. 방화 사건/비스마르크 수상
1863년 조선
경상도의 가장 작은 고을/사망 3개월 전 “다급해하는” 철종/좌의정의 사직상소에 나타난 실상/프랑스 선교사가 본 조선인의 정신 상태/고종 즉위와 수렴첨정/동학의 실상과 최제우의 체포/1863년의 회계부
1863년 일본
‘상락’과 시모노세키 포격 사건/‘조슈 파이브’의 영국유학/사츠에이 전쟁/8.18사변/사카모토 료마의 각오/이홍장의 편지
1864년 조선
1월부터 돈이 없는 호조/대왕대비가 본 조선/도고를 폐지하라/조운선 고의 침몰/나태한 무관과 잡과의 실상/27만 냥을 횡령한 관리/최제우 사형
1864년 일본
‘이케다야의 변’과 ’금문의 전투’/제1차 조슈정벌/사쿠마 쇼잔의 암살/시모노세키 전쟁과 히코시마/가이텐 궐기/27세 외교책임자의 헌책/‘막부는 유한하지만 일본은 무한하다’/《만국공법》
1865년 조선
대보단과 만동묘/“생산이 모조리 텅텅” 비었다/경복궁 중건 결정/원납전 515만 냥/장부에는 16만여 석, 실제는 1만여 석/강화부의 군사 대비 태세
1865년 일본
시바타사절단과 조선소 건설 계약/주일 영국공사의 포함외교/사츠마번의 유학생 파견/‘만국공법’ 학습 열풍/청국 세관 총세무사의 상주문
1866년 조선
수렴첨정 철렴/병인박해/병인양요/왕비 책봉 의식/제너럴셔먼호 사건/“상국(上國)”의 공문이 있어야 교역을 할 수 있다/전선(戰船) 수리 비용/강화도 백성들에 1만 냥/원납전 액수와 수령직, 초사직/전선수리비와 강화도 구휼금의 규모
1866년 일본
《서양사정》/삿쵸동맹/요코스카 제철소 건설 시작/개세약서/민중들의 봉기/제2차 조슈정벌/막부 내부의 ‘대정봉환(大政奉還)’ 의견/“이 한 목숨 이슬같이 사라진다 한들 무슨 한이 남으랴”/붕괴되기 한 해 전에도 유학생을 보낸 막부/빈춘사절단/보오전쟁과 북독일 연방 탄생
1867년 조선
슈펠트 제독의 방문/야도 마사요시의 정한론/문을 무보다 더 중요시하는 왕과 대신들/원납전과 무기 수리비/구휼금 1만 4천 냥/당백전 주조 중단과 호전의 폐해
1867년 일본
파리로 간 시부사와 에이이치/프랑스 장교의 부국강병 건의/조선과 프랑스, 미국 간의 화해를 추진한 막부/삿도맹약/대정봉환/‘왕정복고의 대호령’/미국, 알래스카 매입
1868년 조선
미국 군함 쉐난도호의 방문/포격을 받은 쉐난도호/5개월간 원납전과 인건비 비교/사형 집행의 사례들/국경선에 대한 고종의 지식/일본 외교문서 접수 거부
1868년 일본
도바-후시미 전투/열강의 신정부 승인/조약 체결권자는 천황/조선의 ‘인신무외교’/쇼군의 항복/‘정체서’와 태정관 제도/에도 무혈 입성/‘5개조어서문’/막부 지지세력의 저항/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저항/청의 벌링게임 사절단/조선, 청, 일본의 인재육성
1869년 조선
“나라가 나라로 유지되지 못한다”/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처참한 주거환경/함경도 백성들의 러시아로의 집단탈주/종친의 과거 특채와 난장판이 된 과거장/경상도와 전라도의 민란/외교문서 접수 거부 이유/정현덕과 안동준
1869년 일본
판적봉환/전신 부설과 전신망/‘쇼콘사’와 ‘야스쿠니 신사’/국력배양 우선론/일본 최초의 주식회사와 ‘엔’/관제 개혁, 징병제/대륙간 철도, 수에즈운하, 주기율표
1870년 조선
왕릉과 종묘 수리비와 조총 제작비/“서양오랑캐”들도 “중국 성인의 가르침에 다 감화될 것”/월급도 못 주는 경상감영/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러시아로 넘어간 백성들, 잘 살고 있었다/서계를 수정한 일본 외무성/조선과의 조약 체결 의사를 표명한 미국
1870년 일본
공부성, 공부대학교/가쓰라 다로/대(對)조선 강경론/청국과의 수교 결정/미국의 재정 · 통화정책 조사/농민봉기/보불전쟁
1871년 조선
신미양요/로우 공사의 철수 결정/척화비 설치와 우의정의 ‘정신승리’/서원 철폐와 유생들의 저항/영해민란/군기조성소에 10만 냥/‘외무성’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조선
1871년 일본
해외유학생 규칙과 우편제도/조폐공장, ‘신화조례’, 금본위제, ‘엔’/폐번치현/‘일청수호조규’와 조선의 지위/류큐인 피살 사건/이와쿠라 사절단의 출발/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탄생한 독일제국/‘파리 코뮌’
1872년 조선
외무성 관리 접촉을 거부하는 조선/계속되는 일본 외무성의 회견 요청/‘관왜난출’/외무성 관리들의 조선 철수/외무성의 왜관 접수와 ‘대일본공관’/경복궁 중건 비용 783만 냥/9개 고을 수재민에 3천 냥
1872년 일본
기상관측 시작/프랑스 군사고문단, 도미오카 제사장/백성들 간에 도는 소문/‘학제’/일본 최초의 철도/‘국립은행’ 조례/이와쿠라 사절단의 미국 방문/일본의 반성을 촉구/정치제도, 운하와 물류비, 마찰과 도로/영국 방문 기록/일본의 낙후 원인/이홍장의 중국 사대부 비판
1873년 조선
궁전공사에 반대하는 상소/사신들의 허위 보고/일본을 모멸한 동래부사/최익현의 대원군 비판 상소/“이미 300년 동안을 신하로서 섬겨” 온 조선
1873년 일본
징병령/농민폭동/잿더미가 된 황궁/심각한 재정적자/청국 대신의 답변 내용과 양계초/목례로 청 황제를 알현한 외무경/조선에 군대파견과 특사파견의 대립/사이고 다카모리의 낙향/비스마르크의 충고
1874년 조선
역관 오경석과 영국 서기관의 대화/중국어를 모르는 사신들/백만 냥이 드는 전각 세 채 건설/“시를 지어서 적을 물리치겠습니까?”/군인명부는 빈 장부/수재민 구휼금 규모/세금이 아니라 약탈이었다/아내를 팔고 아들을 팔게 만드는 환곡제도/우의정의 일본에 관한 인식과 정보 수준/고종과 암행어사의 대화/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일본에 서계 수정을 요청
1874년 일본
일본군의 대만 출병/대만 출병에 대한 일본 측 논거/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한 청/‘민선의원설립 건백서’/‘사가의 난’/육군사관학교, 의사시험제도 등/서계를 수정한 외무성/광서제 즉위, 몰트케의 연설, 캐번디시 연구소
1875년 조선
연호를 ‘광서’로 사용/“작은 나라”의 감격/청국 황제에게 곡하고 “만세”를 외치는 고종/서양대례복과 행사장 정문 출입을 거부/서계 접수 거부 결정/일본공관원의 귀국/운요호 사건/일본 전권대신의 부산도착/강화도 복구비 75%는 현지 조달/세입의 3배를 지출하는 호조/방납과 도고의 문제점/“모든 법도가” 무너졌다는 고종
1875년 일본
대조선 정책/‘입헌체제 수립에 관한 조칙’/사할린과 쿠릴열도/거문도 점령을 건의한 주일 영국공사/조선에 특사 파견 결정/조선 정벌을 주장하는 건백서들/폐도령/이홍장의 중국 유학자 비판
1876년 조선
강화도조약 체결에 대한 청의 충고/세 차례의 회담/‘서술책자’에 나타난 조선의 입장/강화도조약/서계 접수거부에 대한 조선의 해명/일본의 무기류 기증/고종과 신헌의 대화/조약 책자 전국에 배포/최익현의 강화도조약 반대 상소/고종도 개탄한 무기상태/수신사 김기수 임명/김기수의 귀국 보고/〈무역규칙〉 조인 및 수출입세 면세/“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가는 사람들”/가뭄, 경복궁 화재
1876년 일본
조선의 ‘속방’ 논쟁/김기수의 방문 일정/외무성이 준비했던 일정/김기수의 조선 내 위치/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마음껏 시찰하라는 일본과 곧 돌아가야 한다는 김기수/김기수의 고뇌/이노우에의 충고/김기수의 방문 소감/수신사의 귀국/회계학 연구서, 서양식 부기법/오가사와라제도 편입/헌법기초제정 칙어 발표/‘질록처분’과 사무라이들의 불만/사무라이들의 반란/일본, 청, 조선의 철도/민간기업 독려/과학사/타자기, 탄산음료
1877년 조선
궁궐의 절제를 호소하는 영의정/1876년의 회계부/거지에게 5전씩/서울 관아에 곡식이 바닥났다/계속되는 조운선 침몰/급여를 못 받은 훈련도감 병사들/일본의 개화 지원 의사
1877년 일본
세이난전쟁/박람회, 전화, 콜레라/공부대학교, 동경대학 등/이홍장과 곽숭도의 사대부 비판/러터전쟁과 일본의 정보력
1878년 조선
서원 복설을 요구하는 유생 1만 명/“머리끝부터 다 병들었다”/리델 신부 석방을 명령한 청 황제/“상국 지휘”/리델 신부가 본 조선 감옥/군의 실상과 치안 상태/암행어사가 보고한 삼남 지방/일본 수입품에 대한 과세 시도/이동인
1878년 일본
농민반란/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일본공사의 시베리아 횡단 기록/다케바시 사건과 ‘군인훈계’/《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러시아의 지중해 진출 좌절/곽숭도의 한탄
1879년 조선
“단 하루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부자와 부부가 하염없이 서로 바라볼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백성들/사신과 고종의 ‘정신승리’ 대화/일본군함 시찰을 거부한 훈련대장/“차라리 외교란 말을 하지 말고 앉아서 제 나라나 지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고종이 본 위급한 조선
1879년 일본
콜레라로 10만여 명 사망/홍콩과 일본 신문 내용/청에서 나온 조선의 개국 문제/전 미국 대통령의 청과 일본 방문
1880년 조선
미국의 조선과의 조약 체결 시도/수신사 김홍집의 출발/무기제조술을 배우려는 “작은 나라”/김홍집의 복명/고종과 영의정의 《조선책략》 대화/《조선책략》 비판 상소/함경도 백성들에게 내린 교서/열 집에 아홉 집은 빈 북방/“상하가 빈곤에” 허덕였다/일본공사의 부임과 무기류 기증
1880년 일본
미야코제도와 야에야마제도/‘흥아회’/김홍집의 일본 도착과 외무경의 조언/《조선책략》의 내용/재정악화와 마쓰가타 마사요시/참모본부장의 군사력 증강 강조/이홍장의 슈펠트 초청
1881년 조선
유생 1만 명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김홍집의 사직상소/황재현과 홍시중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홍재학, 신섭 등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청국 칙사에 은 7천 냥/별기군/수구파비판 상소/조사시찰단의 귀국 보고/“가난을 편안히 여기게 만드는” 안빈낙도/이재선 사건/김윤식의 상소/세자 결혼식비용은 12만 냥/“나라 일은 날로 잘못되고”/대궐 내의 문제점과 기강. 치안
1881년 일본
국회 개원 조칙 발표/가네코 겐타로와 우에키 에모리/조선의 방문단/‘마쓰가타 디플레이션’/미국과의 협상을 피한 조선/이리 지방을 획득한 청/알렉산더 3세
1882년 조선
조미수호조약 체결/조미수호조약의 내용/‘속방조회문’/속방조회문을 무시한 미국/임오군란/어윤중과 김윤식의 대원군 제거 건의/대원군 납치/“대국과 너희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청국군, 왕십리와 이태원 습격/제물포조약/묄렌도르프, 마건상/30세 고종의 결의/척양비 제거/27세 지석영의 상소/“마음으로는 옳게 여기면서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조중상민 수륙무역장정〉/고종의 하유
1882년 일본
이토, 헌법연구를 위해 유럽 방문/“귀국 일은 언제나 토할 듯 토하지 않을 듯하니, 이러고서 일이 될 것인가”/‘속방’ 조항을 둘러싼 이홍장과 슈펠트의 대립/불공정조약 개정 회담과 주일 영국공사/일본의 조선 파병 결정/청국의 조정 제의를 거부한 일본/미국, 조선이 독립국임을 일본에 통보/군비확장 논의/청 내부의 대일 주전론/임오군란 사죄사 파견/무라타 총과 탄약 5만 발 기증/37세의 ‘일본은행’ 초대 총재/군비확장 계획과 증세/박영효를 만난 주일 영국공사
1883년 조선
무너지는 공권력/배로 귀국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조선 사신/보빙사 파견/‘조일통상장정’과 관세권 회복/청국인이 남대문에 내건 ‘방문’/‘조영수호조약’/“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므로 본토와 같이 본다”/한성순보, 전환국, 혜상공국, 해관
1883년 일본
4년 전 유학생과의 약속을 지켜 세운 회사/22세의 기술자가 입안한 비와호 건설/주청 영국공사 파크스/‘조일통상장정’에 대한 유럽 공사들의 불만/보빙사의 미국 시찰과 귀국/배에서 유교 서적만 읽은 민영익/영국, 조선에 총영사 파견 결정/‘만국공법’ 번역가가 본 청과 일본의 차이점
1884년 조선
‘한성순보’ 사건/세계표준시 확정 국제회의/청국군 1,500명 철수/민영익의 귀국 보고/“광명세계로 들어갔다가 이제 또다시 암흑세계로 돌아왔다”/좌절된 고종의 의복간소화 시도/거의 공석이 된 주진독리/변리공사로 강등된 미국공사/2천 년 전 중국 사람에 대한 시험을 치는 조선/호조판서와 영국 총영사/갑신정변/청국군과 일본군의 교전/부친들의 자결/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졌던 김옥균/한성조약/고종의 결의/유학을 떠난 윤치호
1884년 일본
1년간 유럽시찰에 나선 육군경/헌법제정을 위한 조직 구축/화족령/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청불전쟁/세계표준시 확정/주청 영국공사와 갑신정변 해결 방향/주청 영국공사, 거문도 점령을 건의/청국의 갑신정변 해결 방침/일본의 갑신정변 해결 방침/조선의 개혁을 주장한 주청 영국공사/조러조약과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일본 해군 식단에 고기, 빵, 우유 등장
1885년 조선
거문도 점령/이홍장과 일본 공사의 서한/조선의 영국 비난/청국과 일본 군대의 철수/민란과 활빈당의 준동/월급이 없는 지방 하급관리/“세상에 우리나라처럼 가난한 나라는 없습니다”/당오전 문제와 조운선 고의 침몰/“군량이 없는 몇 길이나 되는 빈 성을 지키며”/대원군 귀국 저지와 이홍장/제1차 조러밀약설과 원세개 파견/대원군이 귀국하던 날에 사형집행/대조선 강경책으로 전환한 이홍장/원세개와 메릴, 조선 해관
1885년 일본
NYK, 무라타 총, 하와이 이민/반청 감정과 ‘오사카 사건’/예조참판의 일본 방문/‘탈아론’/펜제 점령과 거문도 점령/주청 영국공사의 청국 설득/톈진조약/제1차 조러밀약설과 일본 외무성/청불전쟁의 종식과 손문의 결의/내각제도 실시/서아프리카 회의
참고 사항
조선과 일본의 연혁/1800년 ~ 1891년 조선의 남녀별 인구 및 가구 수, 가구당 인구/1800-1905 회계부 내역 중 주요 항목/ 원납전 내역
주석
상권 참고 자료 리스트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