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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반성
시인동네 | 부모님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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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시인동네 시인선 187권.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곽경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곽경효 시인은 이 시집에서 처음에서 끝에 이르는 사랑의 알파벳들을 모두 소환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집은 사랑의 거대한 아카이브이고 완성된 지도이다. 침묵의 주름에 갇혀 있던 사랑의 나비들이 폴폴 날아올라 시집을 온통 황홀한 언덕으로 물들인다. 그곳을 어떻게 헤맬지는 독자의 몫이다.

  출판사 리뷰

에로스의 거처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곽경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에 대한 반성』이 시인동네 시인선 187로 출간되었다. 곽경효 시인은 이 시집에서 처음에서 끝에 이르는 사랑의 알파벳들을 모두 소환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집은 사랑의 거대한 아카이브이고 완성된 지도이다. 침묵의 주름에 갇혀 있던 사랑의 나비들이 폴폴 날아올라 시집을 온통 황홀한 언덕으로 물들인다. 그곳을 어떻게 헤맬지는 독자의 몫이다.

■ 해설 엿보기

사랑은 어디에나 있으며 (무의식적일지라도) 누구나 사랑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랑은 도처에 편재하므로 마치 부재하는 것 같다. 사랑은 행복 혹은 쾌락의 근원이고 불행 혹은 불쾌의 씨앗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사랑에서 출발해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이 생명을 낳고 사랑이 죽음을 가져온다. “초록 도관으로 꽃을 몰고 가는 힘이/나의 초록 나이를 몰고 간다.”(딜런 토마스 D. Thomas) 이런 맥락에선 성장의 최후가 죽음이다. 에로스가 없는 곳엔 생명도 죽음도 없다. 리비도가 흘러가며 생의 다양한 지도를 그린다. 리비도가 지나가는 곳마다 에로스의 복잡한 방정식이 가동된다. 에로스는 보편-현실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시들의 절반 이상이 사랑에 대한 것이다. 이 시집은 제목 그대로 “사랑에 대한 반성”이자 성찰이다. 사랑처럼 보편적인 것이 없으므로, 곽경효 시인은 매우 보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랑을 성찰하는 것이 보편적인 행위는 아니다. 사랑이 너무나 흔하므로 대부분은 사랑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랑은 대체로 명상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흔한 것을 흔치 않게 다루고 있다. 시인은 사랑을 소비하지 않고 사유(思惟)한다.

내 몸에는 가시가 돋았다
당신이 가시에 찔리는 불온한 상상을 했고
잊고 싶은 기억과 잊을 수 없는 기억 사이에서
갈팡질팡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불면의 밤을 견디는 동안
어느 사이 당신의 이름은 맹목(盲目)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너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 「너라는 이름은」 부분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상계의 산물이다. 사랑은 상징계로 진입하며 상상계를 복기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본질적으로 반체제적 욕망이다. 사랑은 대문자 아버지의 법칙을 조롱하며 상징계의 벽에 균열을 낸다. 사랑은 타자를 나와 동일시한다. ‘사랑’만이 “너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진술을 가능하게 한다. 서로 다른 나와 타자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거울상 단계(mirror stage)의 오인(misrecognition)이다. 나와 당신이 동일시될 때, 그리하여 하나로 포개질 때 당신은 나의 “가시”에 찔린다. ‘나’가 아닌 ‘당신’을 나와 동일시하므로 사랑은 “맹목(盲目)”이다. 사랑은 맹목 혹은 비논리로 로고스(Logos)에 저항한다. 시스템의 눈으로 볼 때 사랑이 “불온한 상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은 논리에 포위된 비논리이므로 긴장과 소음을 유발한다. 사랑이 “불면의 밤”을 가져오는 것은 그것이 상징계 안에서 상상계의 문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적들에 포위되어 있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

그리운 이름 하나쯤 지워져도 좋겠다
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파했던 날들을
하마터면 사랑이라 부를 뻔했다

사랑의 무게가 이리 가벼운 것을
눈물 흘리며 견딘 시간이
잠시 지나가는 한 줄기 소나기였음을

겨울처럼 차갑지만 가끔은 따뜻한 사랑이여
다시는 내게 오지 말기를

아름답고 찬란한 그 폐허,
이제는 견딜 수 없으니
― 「사랑에 대한 반성」 전문

롤랑 바르트(R. Barthes)를 빌려 말하면, “취소된 대상으로부터 내 욕망을 욕망 그 자체로 옮기기 위해서는, 어느 섬광 같은 순간에 그 사람을 일종의 무기력한, 박제된 사물도 보기만 하면 된다.”(『사랑의 단상』) 위 작품에서 화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욕망 자체이다. 대상은 단지 그 수단에 불과하다. “하나쯤 지워져도” 좋은 “그리운 이름”은 그런 의미에서 “취소된 대상”이다. 대상이 취소되면서 그것과 더불어 일어났던 온갖 소소한 일들(“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파했던 날들”)도 사랑 그 자체가 아닌 것이 된다(“하마터면 사랑이라 부를 뻔했다”). 그러므로 시인이 “아름답고 찬란한 폐허”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대상-이미지이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다시는 내게 오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이미지이다. 상징계 안에서 상상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상상계의 이미지들을 희생하는(지우는)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견딜 수 없는 것’ 뒤의 ‘견딜 수 있는 것’을 응시한다. 시인의 “사랑에 대한 반성”은 결코 사랑을 떠나지 않는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꿈을 깨고 나서 알았다

지구의 모든 시간이 하루라는 것
사랑은 먼지보다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

당신을 꿈꾼 적이 있다
성긴 그물의 어느 코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당신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초승달 혼자 조용히 건너간다

여전히 내 잠 속에는
당신이 총총하다
― 「미몽」 전문

현관문을 열다 말고 멈칫거린다
반쯤 열린 문 안쪽 세상이 낯설다
가만히 집 안을 들여다본다
닫혀 있던 공간이 만들어내는 내밀한 무늬들이
수런거리며 일어선다
익숙한 일상의 뒷모습이 또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으니

보이는 것을 향해 손을 내밀었는데
허공이 먼저 다가온다
익숙하다는 것은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것
덫에 걸린 짐승처럼
마음이 자꾸만 바스락거린다

내 속의 오래된 나를 돌아본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가
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아직 그쪽의 풍경은 괜찮은가

문을 열다 말고
문 밖에서 잠시 또 다른 세상과 겨루고 있는 사이
또 누군가 나를 열어놓고 사라진다
― 「문 밖에서」 전문

하루 첫 생각 중에서
나에게 건네는 말
마음에게 지지 마

저녁에 잠자리 들기 전
나에게 묻는 말
오늘 몇 번이나 흔들렸니?

다시는 마음에게 지지 말자
흔들리지도 말자 다짐하지만
자꾸 넘어지고 또 흔들린다

지나간 시간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모든 순간
네가 있었으니
― 「동행」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곽경효
2005년 《시와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의 정원』이 있다.

  목차

제1부
미몽•13/상사화•14/아직•15/자기 앞의 생•16/벽오동 심은 뜻•18/너라는 이름은•19/갈증•20/달팽이 문장•21/그물을 쳐야 할 때•22/봄•24/꽃피는 봄이 오면•25/문 밖에서•26/존재의 이유•28/그날•29/사랑에 대한 반성•30

제2부
폭풍의 계절•33/이별의 조건•34/꽃의 뒷면•35/아집을 깨물다•36/거기에 당신이 있었네•38/빛나는 오후•39/제자리에서•40/바람에게•41/자작나무, 흰 뼈로 서다•42/대청호에서•44/밤을 잊은 그대에게•45/콧등치기 국수를 먹는다•46/달빛슈퍼에서 설레임을 샀다•48/불영사•49/후회•50

제3부
예각의 힘•53/다시, 바람이•54/보이지 않는 사랑•55/독기라는 말•56/길 찾기•58/단풍 들다•59/새장 밖으로•60/등 뒤에 서 있는•62/안면도•63/그 여자가 사는 법•64/달이 뜨는 언덕•66/당신이 온다면•67/하루 2•68/실연•70/여름날•71/화양연화(花樣年華)•72

제4부
죽비•75/권태를 읽다•76/그곳•77/흐르는 강물처럼•78/나무 밑에서•79/겨울 풍경•80/거리 재기•81/또 다른 고백•82/간절함에 기대어•83/산정호수•84/아버지•86/종소리•87/너 없이도•88/달빛 사냥•89/동행•90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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