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시간이 지나면서 정호의 방에는 지도가 쌓여 갔다. 정호는 방 안 벽 곳곳에 붙여 두고 밤낮으로 지도 그리기에 매달렸다. 그런데 종이 한 장에 세상의 산과 강, 육지와 바다, 큰 길과 작은 길, 그것들의 높고 낮음, 길고 짧음을 담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정호(金正浩)는 지도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그린 대표적인 큰 인물이다. 수천 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의 땅, 우리나라가 과연 얼마나 크고 어떻게 생겼는지, 세계 속 어디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도에 담긴 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누구나 가장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바로 지도이다. 한 장의 지도는 그만큼 중요하고 또 필요한 문화적 힘을 갖고 있다.
김정호는 1800년대 초, 비록 가난한 보부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지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일생을 오로지 지도 제작에 모두 바친 으뜸가는 지도 연구가였다. 또한 지리학자로서 후세의 오늘까지 그 이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는 짚신을 수도 없이 갈아 신고, 팔도강산을 누볐다. 피와 땀이 얼룩진 노력 끝에 《청구도》,《지구전후도》,《동여도》에 이어 마침내 1861년에《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완성했다. 이 지도는 그의 생애와 함께 마감된 필생의 작품이었다.
김정호는 기존의 지도들을 참고로 하면서 빠지거나 틀리거나 모자란 부분들은 전국의 방방곡곡 현장을 직접 뛰며 실제로 측량하면서 다시 다듬고, 채우고, 올바로 고쳐 나갔다.
그가 만든 지도들은 이처럼 온몸을 던져 이룩한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대동여지도》는 오늘날에 나와 있는 지도와 비교하더라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걸작이었다. 그것은 그냥 책상에 앉아 편하게 그린 지도가 아니었고, 또한 남들의 지도를 단순하게 참고해 만든 지도도 아니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밤낮 없이 전국을 누비고 뛰어온 현장 답사의 값진 결과였던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의 숨결이며, 그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치밀하고도 정확한 지도였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김정호, 그에게 자기 미래의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 의식, 그리고 이에 따른 끈질긴 집념과 갖은 고난을 극복한 인내력,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는 헌신적인 나눔의 정신이 없었다면 그의 《대동여지도》는 탄생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지도들은 자신의 피와 땀이 뜨겁게 결합된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길에 세상을 그리는 아이
골목길의 햇빛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눈부셨다.
아이는 햇빛이 좋아서 골목길 한쪽에 나와 앉았다. 아이는 혼자서 작은 나무 막대로 땅바닥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작은 막대가 그려 내는 그림은 그 누구도 쉽게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괴상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무엇인지는 아이 혼자만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그림을 무심코 밟고 지나갔다. 사람들의 발자국 때문에 그려 놓은 그림은 금방 뭉개지기 일쑤였다.
아이는 참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안 돼요, 밟지 마세요!”
아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그려 놓았기에 길을 막고 그러는 게냐?”
“그건 묻지 마세요.”
아이의 대답은 조금 퉁명스러웠다.
“묻지 말라고? 허허허! 무슨 그림인지 내가 알면 안 되겠느냐?”
어른이 길을 멈추고 궁금해서 되물었다.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어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이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다랗게 생긴 지렁이가 기어가는 모양도 아니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혹시 토끼?”
어른의 말에 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 어떻게 아셨어요?”
어른도 덩달아 빙그레 웃었다.
“그게 정말 토끼라고? 근데, 이렇게 큰 토끼가 어디 있단 말이냐?”
“토끼는 토끼인데 어마어마하게 큰 토끼라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큰 토끼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어른의 질문이 거듭되자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우리나라 지도예요. 우리나라 지도가 토끼처럼 생겼잖아요. 그러니까 마구 밟고 지나가면 안 된다니까요!”
어른은 아이를 다시 한번 보았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토끼처럼 생겼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얘기를 들어서 알았어요.”
“누구한테서?”
“어른들한테요.”
“그래? 아주 똘똘한 녀석이구나. 열심히 그리거라.”
어른은 한마디 칭찬을 남기고 지나갔다.
잠시 후,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호야, 너 여기 있었구나. 뭘 그리고 있니?”
친구들은 정호를 빙 둘러싸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응, 우리나라 지도야.”
“우리나라?”
작가 소개
저자 : 이상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 부장 및 교통방송 보도부국장, 편성국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숙명여자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1979년《현대시학》에서 시가 추천 완료되었다.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한국문학상, 김영일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국제PEN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월간《문학과 어린이》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동시집으로《아이들은 시집 속에서 꿈꾼다》《햇빛 마을 가는 길》《휴전선 가는 길》등이 있고, 동화집으로《꽃게》《날아다니는 동화》《짝꿍》등이 있으며 위인전으로《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 김구》《하얼빈의 총소리 안중근》《조선 왕조 500년의 아버지 이성계》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길에 세상을 그리는 아이 / 아버지를 기다리는 이유 / 서양에서 부는 피바람 /
단짝 친구 최한기 / 나무꾼 청년의 지도 만들기 /한양으로 가는 길 /
당시의 우리나라 지도와 지리학 알아보기 / 주막에서 배운 장돌뱅이들의 이야기 /
김정호가 처음 만든 《청구도》와 《지구전후도》 / 한기네 집을 떠나다 /
걸어 다니는 인간 지도 /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 《동여도》 /
팔도강산에 쏟은 붉은 피 / 《대동여지도》 마침내 완성 / 김정호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