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가 처음 육군 중위로 임관되어 6군단 사령부에 배치되었을 때는 아예 ‘군법사’라는 개념도 없었고 당연히 군법사가 일할 사무실조차 없었다. 그래서 6군단 영내에 있던 교회로 출퇴근하며 기독교인 장병들의 예배활동을 집계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일을 했던 게 당시의 실정이었다. 이런 열악하고 불교에 편파적인 환경 속에서도 저자는 군장병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치며 다방면으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군부대 최초로 법당을 창건하였다.
대부분의 군법사들이 열악하며 불교에 편파적이었던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의무연한만 채우고 전역한 것과는 달리 저자는 묵묵히 군포교의 최일선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 군법사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여 군종감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런 노력 덕분에 그토록 열악했던 군포교도 어느 정도 타종교와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 회고록은 한국의 군종장교 그 중에서도 군법사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포교현장에서 겪었던 숱한 애환과 눈물겨운 도전의 생생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뒤에도 불교의 생활화와 일상 속의 불교화를 주도해왔다.
출판사 리뷰
한국 불교계 최초로 육군 군종감을 역임한 김덕수 법사의 회고록이다. 저자는 14세에 출가해 당대 최고의 학승들로부터 경전을 공부한 승려였다. 저자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 군법사 2기로 임관해 군포교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저자가 군법사가 되어 6군단에 배치되었던 1968년 무렵 육해공군 부대에는 이미 500명의 군목과 군신부가 군종장교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군법사는 1기 5명, 2기 7명이 전부였다. 이처럼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를 보인 것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경우 해방 이후부터 정부와 군당국이 군목, 군신부를 각급 부대에 적극적으로 배치한 데 비해 불교의 군법사는 아예 군종장교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 후 1960년대 후반에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군종장교에 군법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타종교인 및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다가 한국군을 베트남에 파병할 무렵 베트남 당국자들이 한국의 군법사를 베트남으로 파견해달라며 강력히 요구한 게 군법사를 배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20명 이내에서 군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고 그 자격 조건으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덕법계 이상의 승려’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이런 자격을 갖춘 군법사 1기생 5명에 이어 2기생 7명이 발탁되어 일선 부대로 파견될 수 있었다.
저자가 처음 육군 중위로 임관되어 6군단 사령부에 배치되었을 때는 아예 ‘군법사’라는 개념도 없었고 당연히 군법사가 일할 사무실조차 없었다. 그래서 6군단 영내에 있던 교회로 출퇴근하며 기독교인 장병들의 예배활동을 집계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일을 했던 게 당시의 실정이었다.
이런 열악하고 불교에 편파적인 환경 속에서도 저자는 군장병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치며 다방면으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군부대 최초로 법당을 창건하였다.
대부분의 군법사들이 열악하며 불교에 편파적이었던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의무연한만 채우고 전역한 것과는 달리 저자는 묵묵히 군포교의 최일선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 군법사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여 군종감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런 노력 덕분에 그토록 열악했던 군포교도 어느 정도 타종교와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 회고록은 한국의 군종장교 그 중에서도 군법사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포교현장에서 겪었던 숱한 애환과 눈물겨운 도전의 생생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뒤에도 불교의 생활화와 일상 속의 불교화를 주도해왔다.
“우리 사령부에 군법사님이 새로 왔는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지금 쓰지 않는 미군 부대 퀀셋(quonset) 막사라도 뜯어다가 김 법사님이 원하는 법당을 지어주게.”
공병대장은 곧바로 지시를 수행했다. 그 결과 며칠이 안 되어 군부대 최초의 퀀셋 법당이 창건되었다.
군법사로서 아쉬웠던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그 중 타종교와 비교해 가장 절실한 게 문서포교가 아닐까 한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경우 성경을 분기별로 전 장병에게 보급하는데 그 대상엔 구분이 없다. 기독교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를 믿든 무종교이든 무조건 성경을 나눠주는 식이다.
그럼에도 강 장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멸시하는 말을 했다.
“빌어먹을 중놈이 장교가 되어 군에 들어왔어? 말세로군.”
그러더니 이번엔 내게 직접 물었다.
“당신 고향이 어디오?”
내가 공손히 대답했다.
“예, 충북 청주입니다.”
이렇게 답하자 이번엔 말투와 억양을 두고 시비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덕수
1945년 강릉 법왕사에서 청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 뒤 운허, 탄허, 용성 스님 등 당대의 고승들로부터 경전을 익혔으며 1968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졸업 후 조계사에서 수행하던 중 1969년 제2기 군승법사로서 중위로 임관해 6군단 사령부, 월남 십자성 부대, 부산 군수사령부, 김해 공병학교, 계룡대 등 여러 부대의 군법사로 임무를 다하며 군불교 포교에 매진하였다. 또한 새로 전입한 부대마다 불이사(不二寺), 불광사(佛光寺), 금련사(金蓮寺) 등 사찰을 창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국에 360여 개에 이르는 군법당을 창건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관할 부대와 지역의 불교 포교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1985년에는 불교계 최초로 육군 대령으로 진급하여 군사령부 군종참모, 육군 차감, 국방부 군종실장, 군종감을 역임했다. 1993년 4월, 명예 전역 후에는 대한생활불교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60여 개의 분원 사찰과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하여 전국적으로 불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육군 법요집』, 『국군 법요집』, 『군인정신의 샘』, 『자아발견』, 『호국승병』 등의 저술과 논문이 있다. 또한 『금강경 강의』, 『천수경 강의』 등 다수의 경전 해설서를 편찬했다. 현재 충남 논산 불이선원(不二禪院)에서 주석하며 수행 중인 저자는 군 불교 포교의 살아있는 증인이며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목차
회고록을 내며 삶은 행복한 것이다 … 6
제1장 군법사의 탄생
부처님과 맺은 첫 인연 … 12
할배 스님께 받은 사미계 … 15
군승법사 제도, 어떻게 시작되었나 … 19
최초의 군법당, ‘불이사(不二寺)’ 창건 … 26
기도에 응답하신 관세음보살님 … 34
제2장 베트남에서 보낸 22개월
십자성부대로 파병되다 … 48
불광사에서의 인연 … 55
법사를 도사로 부르게 된 사병들 … 63
군법사 활동과 문서 포교 … 70
강원채 장군 이야기 … 79
제3장 신바람 난 부산 군수사령부
부산군수사령부 군법당 창건 준비 … 92
효당 큰스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 101
부산 금련사 창건과 포교활동 … 108
경봉 큰스님의 글씨 … 113
정법심 보살님의 무주상 보시 … 120
옥련사를 일군 현진 스님의 원력 … 124
놀라운 체험 … 131
제4장 군법당을 일구는 불사의 기쁨
치악산 구룡사의 범종 불사 … 138
한마음선원 대행 스님 … 146
사단 군종참모가 되어 … 151
군종감이 되는 길 … 155
불치사에서 뵙게 된 부처님 … 164
군법사의 가정은 어떻게? … 175
일벌백계 … 185
수차례 경험한 해외여행 … 195
제5장 불교의 생활화, 대중의 불교화
계룡대 불교유치원과 영외 법당 … 206
저절로 이뤄지는 부처님 일 … 220
생활불교회관 건립 … 231
철학 강의 … 243
마음은 언제나 부자 … 251
오직 부처님만 믿고 가자 … 260
책을 마치며 …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