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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1861년 5월 7일 인도 콜카타에서 출생. 아버지 마하리시 데벤드라나트 타고르(Maharishi Devendranath Tagore)의 열네 번째 막내로 출생함.1873년 그의 첫 장시 〈동경(Abhilash)〉를 씀.1876년 어머니 영면함(첫번째 육친의 죽음을 체험).1878년 영국을 방문하고 벵골로 돌아옴.1879년 시〈난파선〉 완성.1883년 12월 9일 바바타리니(Bhavatorani)와 결혼, 결혼 후 음리날리니(Mrinalini)로 개명.1884년 장시 〈봐누싱하 타쿠르의 노래의 꽃다발〉 출간.1887년 잡지 《실습(Sadhana)》를 창간.1891년 서간집 〈벵갈의 섬광(A Glimpse of Bengal)〉 씀.1892년 희곡 〈치트랑가다(Chitrangada)〉 출판.1896년 시집 《차이탈리(Chaitali)》 출판.1901년 산띠니께딴에 학교 설립. 《벵골평론》 창간.1902년 아내가 사망하고 두 아들을 잃음.1910년 희곡 〈암실의 왕〉 출간.1911년 희곡 〈우체국〉 출간.1912년 국의 인도협회에서 <기탄잘리> 출판(Yeats의 서문), 미국 방문.1913년 시집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 수상. 〈정원사〉 〈생 의 실현〉 〈초승달〉 〈치트라〉 출판.1915년 간디와 처음 만남. 영국의 조지 5세로부터 나이트(Knight) 작위 받음.1916년 일본 방문, 미국 방문, 〈시들〉 〈열매 모으기〉 〈굶주린 돌〉 〈길잃은 새들〉 출판함.1917년 〈나의 회상기〉 희곡 〈봄의 윤회〉 〈국가주의〉 〈인격론〉 출판.1918년 단편 〈애인의 선물〉 〈교차로〉 〈이모〉, 단편집 〈타고르 단편집〉 〈앵무새 훈련〉 출판.1919년 영국의 대학살 감행을 보고 나이트 사임. 〈가정과 세계〉 〈망명자〉등 출판. 로맹 롤랑과 만남.1920년 뷔슈바 바라티의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감.1921년 〈운명의 난파〉 〈상상의 유해〉 등 출판함. 산띠니 께딴 대학 설립, 불란서에서 강연.1922년 〈창조적 통일〉 출판함. 일본 방문.1924년 〈고라〉 〈작별의 저주〉 출판함.192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 희곡 〈붉은 유도화〉 〈사 중주〉 등 출판함.1926년 이탈리아 방문. 크로체, 듀아벨과 만남.1927년 동남아시아 여행. 싱가포르, 말라카,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자바 등지를 방문.1928년 〈반딧불〉 〈교류〉 〈최후의 시〉 〈모화〉 〈숲의 소리〉 출판.1929년 캐나다 방문, 일본 방문. 〈노래의 꽃다발〉 출판.1930년 파리 방문. 앙드레 지드와 만남. 옥스포드 대학에 서 〈인간의 종교〉 강연. 러시아 방문. 파리의 삐가르 화랑에서 개인 미전.1931년 독일 방문. 아인슈타인과 대화. 〈어린이〉 〈인간의 종교〉 출판. 벨린 모래르 화랑에서 개인 미전.1932년 페르시아 방문. 간디가 단식으로 빈사상태에 이르자 감옥으로 그를 방문. 〈황금의 배〉 출판.1940년 〈나의 소년 시절〉 출판. 간디 부처가 산띠니께딴 방문. 옥스퍼드대 명예 박사학위 수여.1941년 시 〈그대의 창조의 길을〉을 마지막으로 구술함. 8월 7일 타계함. 기타 수많은 작품들(문학, 미술, 음악, 논문 등)을 남기고 있다.
지은이 : 마크 트웨인
미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대략 75년 주기로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핼리 혜성이 지구에 출현했던 1835년에 태어나서, 그가 예언한 대로 역시 핼리 혜성 이 출현했던 1910년에 사망함으로써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는 ‘미국 문학의 아버지,’ ‘미국문학의 링컨,’ ‘가장 위대한 유머작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적으로도 존경받고 있는 대문호이다. 그는 미주리 주에 위치한 미시시피 강변의 조그만 소도시인 한니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미시시피 강과 많은 추억을 쌓으며 성장한다. 또한 그는 남북전쟁 전에 미시시피 강에서 성업 중이던 여객선의 수로 안내인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들을 자신의 작품에 사실적으로 재현하였다. 특히 그는 아동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순수한 눈에 비춰진 인간본성과 미국문명의 왜곡과 타락 현상들을 유머와 풍자기법을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아동 소설 중에는 미시시피 강의 추억을 소재로 한 가장 유명한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있다. 그리고 16세기 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왕자와 거지』, 6세기 영국 역사를 배경으로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와 문명을 비판한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15세기 프랑스의 역사를 배경으로 정치와 종교를 비판하고 있는 『잔 다 르크의 개인적인 회상』 등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 외에도 『유랑』, 『미시시피 강에서의 삶』, 『적도를 따라서』,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 『도금시대』 등 많은 여행기와 『바보 윌슨』, 『신비한 이방인』, 『세균들 사이에서 3,000년』 등 역사와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많은 소설을 발표했다. 또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지구로부터 온 편지』 등 다양한 에세이 방식의 작품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와 종교 등 문화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보여주었고, 특히 노예제도폐지, 제국주의 반대, 동물권보호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지은이 :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잊을 수 없는 언어, 역사·정치·페미니즘·예술 문제에 관한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놀랍도록 왕성한 작품활동, 소설의 기존 형식을 깨부순 그녀의 실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으로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문인이자 영국 국가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자로,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인 울프를 지도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빼어난 미모와 빅토리아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희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가인 줄리아 마거릿 카메론을 숙모로 둔 만큼 저명한 사회적, 예술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1905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때 발병한 울프의 신경질환이 평생을 괴롭힌다.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네 남매(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는 런던의 보헤미안적인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즐겁게 지냈다. 곧 미술·문학·사회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주간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최하는데 거기서 교제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한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인쇄기를 구입하고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한다. “사람들을 조각과 모자이크로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획일적이며 일관된 전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일기에 쓴 것처럼 현실을 “떨리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로 창조하고 “마음의 비행을 포착하는 데 전념”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그녀 최고의 소설들은 깔끔한 해결책이나 명확한 구분 없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이를 오가며 시간, 경험, 성격의 불확정성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미적 탐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예술 이론, 문학사, 여성의 글쓰기, 권력의 정치에 관한 선구적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남겼으며 전기문과 일기, 서신도 썼다. 정신 질환이 재발하면서 1941년 3월 28일 서섹스 우즈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향년 59세).
지은이 : 샬럿 브론테
영국 요크셔주의 브래드퍼드에서 성공회 목사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살 때 네 자매가 함께 카우언브리지 기숙학교에 입학했으나, 극도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듬해에 두 언니마저 폐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어린 샬럿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남긴 이 경험은 훗날『제인 에어』(1847)의 로우드 기숙학교로 재현된다. 남은 세 자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는 자신들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해 놀이처럼 글을 쓰며 성장한다. 1831년 로헤드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 샬럿은 1835년부터 1838년까지 그곳에서 교사로 일한다. 1842년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품고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나,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 겸 영어 교사로 2년간 지낸다. 이때의 경험이 『빌레뜨』(1853)의 바탕이 되었다. 1846년 에밀리, 앤과 함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펴내고, 1847년 『제인 에어』를 출간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아그네스 그레이』도 출판되어 1847년은 브론테 가족에게는 물론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됐다. 『제인 에어』에서 마지막 소설인 『빌레뜨』까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독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불온한 책’으로 취급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선구적인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장편소설 『셜리』(1849), 처음으로 집필한 장편이지만 사후에야 출간된 『교수』(1857) 등을 남겼다. 독신을 고집했던 샬럿은 1854년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컬스와 결혼하지만, 이듬해 봄 임신 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서른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 : 에밀리 브론테
1818년 영국 요크셔주 손턴에서 태어났다. 2년 후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가 브래드퍼드 근교 하워스 교구의 종신 목사로 임명되었다. 1821년 어머니, 1825년 두 언니 사망 후 남은 네 남매(샬럿, 브란웰, 에밀리, 앤)는 하워스의 황량한 목사관에서 이모 엘리자베스 브란웰 손에 자라며 자기들만의 끈끈한 사회를 형성했다.『폭풍의 언덕』의 1850년판 서문에서 언니 샬럿은 쓰기의 유혹을 설명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했고, 책과 공부만이 삶의 낙이요 업이었다. 어릴 적부터 우리가 알았던 가장 큰 자극제이자 가장 생생한 즐거움은 문학 창작이었다.’ 브론테 남매는 이야기, 판타지, 시, 일기, 소설을 써서 월간지로 만들었다. 특히 에밀리가 앤과 합작한 ‘곤달 이야기’는 이후 그녀가 지은 시들에 영감을 주었다. 에밀리의 시 노트를 발견한 샬럿이 출간을 제안했고, 에밀리 본인은 내켜하지 않았으나 결국 브론테 자매는 1846년 필명으로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펴냈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그녀가 남긴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이다. 작가가 결핵으로 사망하기 1년 전인 184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아마 영어로 나온 가장 격정적인 고전 소설일 것이다.
지은이 : 월트 휘트먼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월트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휘트먼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 병원, 인쇄소, 신문사 등에서 잡일을 하면서 영국 낭만주의 소설과 시, 고전문학, 성경 등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17세가 되던 1836년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후,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으며, 1842년에는 신문사 <뉴욕 오로라>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해에 그는 에머슨이 뉴욕에서 행한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에머슨이 예언해 준 “미국의 시인”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은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그가 36세 되던 1855년 7월 4일에 첫 시집인 ≪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또한 휘트먼은 1862년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동생 조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군 병원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865년에 출간된 시집 ≪북소리와 1875년에 출간된 ≪전쟁 회고록≫은 이때의 경험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2년에는 그의 인생 초기의 생활, 남북전쟁 당시 간호사로서의 경험, 노년기의 일상생활, 그의 문학관 등을 담은 산문집인 ≪표본적인 나날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판 및 판매 금지를 당한 덕에 오히려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풀잎≫ 제6판과 ≪표본적인 나날들≫의 판매 수입으로, 그는 1884년에 뉴저지 캠던의 미클 가에 2층짜리 건물을 구입해 이 집에서 1892년 3월 26일 죽을 때까지 살았다. 휘트먼의 신념과 비전을 통해 나온 시가 미국 시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는 주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 독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미국 최대의 시인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시집 ≪풀잎≫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지은이 : 장 자크 루소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소설가, 교육이론가, 음악가, 극작가이다.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열 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유럽을 떠도는 생활을 했다. 그 방랑의 길에서 만난 바랑 부인은 연인이자 후원자로서 루소의 지적 성장을 도왔고, 이후 그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루소는 파리에 정착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한다. 1750년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학문예술론》으로 명성을 얻은 후 문명과 사회 및 사유재산 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 근대 교육론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에밀》, ‘인민 주권’을 창안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는 《사회계약론》 등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인간과 세계의 모형을 제시한다. 1761년에는 낭만적인 연애소설 《신엘로이즈》를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며 독자들과 교감한다.인간 존재의 근원적 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으로의 회귀를 설파한 루소는 이성과 지성을 중시한 계몽 철학자들과 대립하게 됨으로써 혹독한 비난과 핍박을 받는다. 또 절대왕정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급진적 사상으로 인해 저작들이 판매 금지되고 프랑스에서 추방당했으며,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긴 것에 대한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망명 생활이 이어지며 불안과 박해 망상에 시달리던 루소는 말년에 식물의 세계에서 안식을 찾고 《고백》,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대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 자신을 성찰하는 집필 활동을 계속하다 1778년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 : 제인 오스틴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에는 직접 경험한 사랑의 아픔을 바탕으로 《첫인상》을 집필하였는데, 소설 집필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그녀의 아버지는 《첫인상》을 한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후에도 습작과 초기 작품의 개작을 계속했다. 1805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3년간 형제, 친척,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811년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1814년 《맨스필드 파크》, 1815년에는 《에마》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다음 해 《설득》을 탈고한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1817년 《샌디션》을 집필하고 있었으나 건강 악화 때문에 중단해야 했고,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같은 해 7월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사후에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을 비롯해 개작된 작품이나 생전의 습작품, 편지 등이 출간되었다.
지은이 :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은 19세기 영문학 사상 중요한 작가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엘리엇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황무지(The Waste Land)>를 쓴 T. S. 엘리엇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자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며 후자는 20세기 영국 시인이다.19세기는 영문학사상 유례없이 소설 장르가 융성한 시기이며 그 시기에 활약한 많은 작가 중 조지 엘리엇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엘리엇은 1819년 워릭셔 아베리에서 태어났으며, 36세라는 늦은 나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 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인 메리 에번스(Mary Evans)라는 이름 대신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의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몇 작품이 발표될 때까지 독자는 물론 평론가까지도 모두 그녀를 남성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 작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Silly Novels by Lady Novelists)>이라는 에세이에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상투적 로맨스나 쓰는 당시의 여성 작가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은 그런 작가들과 다름을 천명했다.그녀는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라는 비중 있는 잡지의 부편집장을 지냈으며, “남성처럼 생각하는 여자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지적인 작가였다. 이처럼 그녀는 여성 작가라기보다 당대의 어느 남성 작가에 견주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작가로 평가된다.20세기 저명한 문학 비평가 리비스(F. R. Leavis)는 그의 저서 ≪위대한 전통≫에서 위대한 영국 소설의 전통이 제인 오스틴→조지 엘리엇→토머스 하디→데이비드 로런스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그녀는 여성의 감성을 뛰어넘은 탁월한 지적 작가이자 도덕적 작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천착한 작가이자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 작가, 그리고 여성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지닌 작가로서 평가되고 있다.지금은 엘리엇이 더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엘리엇보다 훨씬 더 저명한 문학 비평가였던 루이스(G. H. Lewes)의 격려로 그녀는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엘리엇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유부남인 루이스와 동거한 문학 외적인 사실로 더 유명했다. 이 동거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오빠 아이작과 의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이 사건에 대해서는 루이스의 아내가 자유연애주의자로 이미 남편 친구와 동거 중이었지만, 가톨릭교도인 루이스가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다는 점,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루이스의 아내가 낳은 아이들까지 엘리엇이 부양했으며 루이스가 엘리엇의 남편이자 문학적 스승이었다는 사실 등을 참작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조지 엘리엇의 작품 활동은 1878년 암으로 인한 루이스의 사망과 더불어 끝났다. 메리 앤 에번스를 소설가 조지 엘리엇으로 만든 루이스는 엘리엇이 자기 불신과 고독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격려해 주곤 했다. 루이스의 병을 알지 못했던 엘리엇은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를 잃은 슬픔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두문불출한 채 루이스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다음해 2월 말에 가서야 존 크로스의 방문이 허락되었다. 엘리엇이 크로스를 처음 만난 것은 1869년 4월 18일 로마에서였고, 당시 크로스는 29세의 키가 큰 미남이었다.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성공으로 수입이 증가해서 1873년에는 약 5000파운드의 돈을 갖게 되었고, 루이스가 이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루이스가 전담해 오던 재정 관리에 문제가 생기자, 크로스를 불러 자주 의논하게 되었다. 루이스를 잃은 엘리엇과 어머니를 잃은 크로스는 함께 단테를 읽으며 문학을 토론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1880년 5월 5일 엘리엇은 20년 연하인, 조니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크로스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엘리엇은 이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이 결혼으로 다시 한번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 결혼을 통해 30년간의 공백을 깨고 오빠 아이작과 화해했다.신혼여행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엘리엇과 크로스는 12월 런던에 새집을 마련하고 이사했지만, 시골 출신의 지적이며 진보적인 작가 조지 엘리엇은 그해 12월 22일 목의 통증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12월 29일 런던 교외에 있는 하이게이트(Highgate) 묘지에 루이스와 나란히 묻혔다.조지 엘리엇은 모두 여덟 편의 장편 소설을 썼는데, 평자들의 통상적인 구분상 전기의 ≪목사 생활 풍경(Scenes of Clerical Life)≫, ≪애덤 비드(Adam Bede)≫(1859), ≪플로스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1860),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1861)와 후기의 ≪로몰라(Romola)≫(1863), ≪펠릭스 홀트(Felix Holt)≫(1872), ≪미들마치(Middlemarch)≫(1871∼1872), ≪대니얼 데론다(Daniel Deronda)≫(1876)로 나누어진다. 이 여덟 편 외에 노벨라 <들춰진 베일(The Lifted Veil)>과 드라마 <스페인 집시(The Spanish Gypsy)>, 시 <암거트(Armgart)>가 있다. 이 중에서 ≪미들마치≫는 단연 대표작으로 꼽힌다.
지은이 : 찰스 디킨스
1812년 영국 포츠머스의 해군 경리국에서 근무하는 하급 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열두 살 때, 호인이었으나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가 빚을 지고 투옥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구두약 공장에서 열 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다섯 살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환,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기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이 문학에 눈을 떴고 이에 기자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이 더해져 풍부한 관찰력과 식견을 갖추었다. 1833년 잡지에 단편을 투고해 당선된 데 힘입어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836년 발표한 단편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를 출간했다.그는 스물네 살에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 해에 완성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에는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이 발현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1838)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했다. 그 후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의 호응에 보답해 《니콜라스 니클비》 (1839)《골동품 상점》(1842) 〈크리스마스 캐럴〉(1843) 등 중.장편소설을 연이어 발표해 명성을 떨쳤다. 몸소 체험한 사회 밑바닥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비판했던 그는 1850년부터 이전 작품과 성격이 조금 다른《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황폐한 집》(1852) 《위대한 유산》(1861) 등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남겼다. 작품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잡지사 경영, 자선 사업, 연극 상연, 자작품 공개 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870년 6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 있는 사람들, 빈민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동감하는 작품을 써서 생전에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그는 현재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은이 : 토머스 하디
《테스》와 《귀향》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하이어보캠프턴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당시 도체스터는 농촌 지구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긴 했으나 다소 외진 곳으로, 하디의 어린 시절에는 철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농촌 풍경, 농촌 사람들의 미신이나 풍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훗날 그가 소설을 쓰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1910년에 국왕으로부터 공로대훈장을 받았고,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애버딘·브리스틀 대학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자신의 저택 맥스게이트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기도 한 하디는, 1925년에는 황태자의 방문까지 받는 영예를 누렸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플로렌스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 달라고 부탁해 이를 듣고선 밤 9시경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은 도싯의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에마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 하디의 대표작으로는 웨섹스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란의 무리를 떠나》, 《귀향》, 《숲의 사람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테스》, 《무명의 주드》 등이 있고, 장편 극시 〈제왕들〉 외에 많은 웨섹스 시편들이 있다. 하디의 작품들은 특정 지역, 즉 영국 남부 지역 농촌을 다루고 있어 지방색이 강하지만 결코 지역 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그의 소설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적 가치들과 당대의 핵심적 문제들을 제시하는 데 특출한 작가적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 E. M. 포스터
187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톤브리지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그곳에서 휴 메러디스를 비롯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케임브리지의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월간지 『인디펜던트 리뷰』에 에세이 「마콜니아 상점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으며 다음 해, 같은 잡지에 단편소설 「목신을 만난 이야기」를 게재하여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7년 첫 장편소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을 발표한 이후, 『기나긴 여행』(1907), 『전망 좋은 방』(1909), 『하워즈 엔드』(1910)를 연이어 내놓아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하워즈 엔드』 발표 당시 영국 문단의 찬사는 대단했다. (“앞으로 그가 한 줄도 더 쓰지 않는다 해도, 그의 자리는 보존될 것이다.” - 『스탠더드』).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과 함께 <위대한>라는 수식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포스터는 로저 프라이, 버지니아 울프 등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20세기 초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1927년 대표작 『인도로 가는 길』을 발표하여 역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포스터는 소설가로서보다는 지식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71년에 출간된 『모리스』는 1914년에 완성되었으나 작가 사후에 출간된 작품이다. 1949년 기사 작위를 서훈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1970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91세로 사망했다.
지은이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토목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아버지 뜻에 따라 에든버러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전공을 법학으로 바꿨다. 1875년에 자신의 여행담을 기록한 첫 작품집 《내륙 기행》을 펴냈다. 여행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창작의 원천이 되었으며, 이후 꾸준히 여행에 관련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가족과 함께 결핵 치료차 스위스 다보스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의붓아들 로이드를 위해 《보물섬》 집필에 몰두했다. 1883년에 《보물섬》이 출간되자마자 그는 단번에 인기 작가로 명성을 높이게 되고, 이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등 많은 화제작을 발표했다. 1888년, 건강이 악화된 스티븐슨은 아내와 함께 고국을 떠나 남태평양의 사모아 제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베일리마’라고 이름을 붙인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에게 추장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주요 작품으로는 《유괴》 《발란트래 경》과 말년에 사모아 제도를 여행하며 쓴 《팔레사의 해변》 《썰물》 등의 여행기가 있다.
지은이 : 윌리엄 워즈워스
1770년 4월 7일 영국의 코커머스에서 아버지 존 워즈워스와 어머니 앤 쿡선 워즈워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과 이웃의 보살핌 속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1787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문에는 뜻이 없었다. 잠시 프랑스혁명을 지지하기도 했으나,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을 겪은 후 자신의 시적 재능과 소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동생 도러시 그리고 벗 콜리지와의 문학적 교류로 유명하며, 그 결실이 바로 낭만주의 영시의 기폭제가 된 『서정담시집』이다. 1843년 계관시인이 되었고, 1850년 4월 23일에 사망할 때까지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저녁 산책」 『서술적 소묘들』 『변방 사람들』 『폐허가 된 오두막』 「틴턴 사원」 『루시 시편들』 「솔즈베리 평원 기행」 『그래스미어 고향집』 『서곡』 「마이클」 「결심과 독립」 「의무에 부치는 송가」 『영혼불멸의 송가』 『소요』 『라일스톤의 하얀 암사슴』 『마부』 『피터 벨』 등이 있다
지은이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찰스 디킨스와 더불어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풍경화가였던 윌리엄 콜린스의 아들로 18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성장해 법률학교에서 변호사 공부를 했으나 1847년에 죽은 아버지를 회고한 <윌리엄 콜린스의 회고록>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로 변신한다.당시 선정소설이라고 불렸던 수수께끼로 얽힌 기괴한 이야기를 담은 고전 추리소설 계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복잡하고 불안한 인물 심리와 사건을 교묘하게 그려내는 재능을 가감 없이 발휘했는데, 특히 1851년 찰스 디킨스의 주간잡지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심리사회파 미스터리 작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그의 대표작인 《흰옷을 입은 여인, The Woman in White》(1860)과 《월장석, The Moonstone》(1868) 등은 발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히 《흰옷을 입은 여인》은 복잡한 서스펜스와 매력적인 이야기 전개로 지위고하와 관련 없는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의 궁정 주요 인물들도 전전긍긍하며 그의 다음 연재를 기다릴 정도였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 모순에 대한 대중의 주목을 요구하는 동시에 20세기에 두드러진 심리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원조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환상과 추리적 요소들은 이후 코난 도일을 비롯한 많은 추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은이 : 프레더릭 더글러스
181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더릭 오거스터스 워싱턴 베일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남부 메릴랜드 주 해안의 이스턴 인근 애런 앤서니 소유의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더글러스는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며 유년기에는 주인의 아이 돌보기와 심부름, 청소년기에는 밭일과 조선소 일 등을 거치며 노예가 겪어야 했던 채찍질과 극심한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인의 아내로부터 알파벳을 배운 이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일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글을 읽고 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더글러스는 이후 동료 노예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1838년 단독으로 북부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탈출 직후 뉴욕에서 자유 흑인 애나와 결혼해 매사추세츠 주의 뉴베드퍼드에 자리 잡은 뒤 미국노예제반대협회의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권유로 반노예제 집회에서 노예로서의 경험담을 강연한 것을 계기로 노예제반대협회 소속 연사가 되어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로 인해 동료 백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부터 질시를 당하기도 했다.이후 더글러스는 신문 편집인, 연설가, 저술가, 정치인, 외교관, 그리고 개혁가로서 1895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립심을 지키며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다.더글러스는 세 권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각각의 제목과 출간 연도는 다음과 같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1845), ≪내 속박과 내 자유(My Bondage and My Freedom)≫(1855),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애≫(1881). 더글러스는 노예제 폐지 운동 신문 발행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발간한 신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가장 유명한 ≪북극성≫(1847∼1851)을 비롯해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주간지(Frederick Douglass Weekly)≫,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신문(Frederick Douglass' Paper)≫(1851∼1860) 등이 있다.
지은이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들 중 한 사람이며, 빅토리아기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작가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은 1806년 3월 6일 영국의 더럼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몰턴 배럿(Edward Moulton Barrett)과 어머니 메리 그레이엄 클라크(Mary Graham Clark) 사이에서 열두 명의 형제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남동생들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존 밀턴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읽었으며, 곧 고전문학과 형이상학에 지적으로 심취하게 되었다. 여섯 살인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열네 살이던 1820년에 그녀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그녀가 쓴 네 권으로 된 서사시집 ≪마라톤에서의 전투(The Battle of Marathon)≫를 출간해 주었다. 정식으로 출간된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은 1826년 ≪마음에 관한 에세이와 기타 시들(An Essay on Mind, with other poems)≫인데, 이 시집의 출간으로 인해 그녀는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서신 왕래를 하게 되었고, 그리스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1844년에 출간된 ≪시≫로 인해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열렬한 구애 편지를 받게 된다.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터 당시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희귀병으로 인해 병마와 싸워 온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로버트의 구혼을 거절했으나 결국 로버트의 진심에 감동하여 부친의 반대를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쳐 결혼한다. 엘리자베스는 1861년 6월 29일 1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마치고 죽었다.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그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쓴 상태였지만, 그와 만난 이후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소네트(Sonnets from the Portuguese)≫와 ≪오로라 리(Aurora Leigh)≫라는 유명한 작품들을 쓰게 되었다. “포르투갈어(Portuguese)”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부르던 애칭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시 소네트는 남편인 로버트의 주장에 따라 다음번 시집에 포함되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더 높아지고 확고해졌다. 워즈워스가 죽은 후인 1850년에 그녀는 계관시인 승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계관시인의 영예는 테니슨에게로 갔다. 1856년에 출간된, 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로라 리≫는 그녀의 야심적인 장시 작품으로 인기가 많았다.1860년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의회 이전의 시(Poems before Congress≫라는 시집을 남편에게 헌사하며 출간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은 ≪악기(A Musical Instrument)≫로, 그녀가 죽은 후에 남편이 출간한 것이었다.
지은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년, 미국 독립운동의 발상지인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직업 없이 다양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외딴 숲속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1845년 7월~1847년 9월)간을 살았다. 월든 호수에서 실험한 생활을 이야기한 열여덟 편의 에세이를 다듬어 1854년에 『월든, 또는 숲속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그는 이 책이 자연과 함께한 나날에 대한 충실한 기록으로, 삶다운 삶의 요체를 보여주기 위한 글임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월든은 자연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한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소로가 제시한 자발적 간소화, 노예제 폐지, 시민 불복종, 자본주의적 개발 비판, 개인의 양심과 자유, 직접 행동, 비폭력 저항 등도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크다. 소로는 생전에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훗날 레프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존 F. 케네디, 법정 스님 등에게 두루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월든』, 『시민 불복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케이프 코드』 등이 있다. 1862년, 마흔네 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 : 존 클레어
1793년 영국 헬프스턴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에 시달리다가 한때는 군대에서 복무했다. 열세 살 때 J. 톰슨의 시집 <사계절>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으며, 27세 무렵부터 시집을 발표했다. 클레어의 작품은 영국 농민의 일상생활을 직접 경험한 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애환을 담은 것들로, 특히 지방 속어 속에 담긴 생명력을 중시하고 있다.그는 시 속에서 자유자재로 속어를 구사하며 작품을 창작했다. 그러나 클레어는 무지한 농민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로 인해 심각한 고독을 느낀 나머지 우울증에 걸렸고, 죽을 때까지 약 28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주요 시집으로 <전원생활과 풍경서술의 시집>, <마을의 악인>, <양치기의 달력>, <전원의 시신> 등이 있다.
지은이 : 앨프리드 테니슨
1809년 영국 랭커셔의 서머스비에서 태어났다. 테니슨 경(Lord Tennyson)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기도 하다. 문학적으로 조숙해서 다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0대가 되기 전에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월터 스콧(Walter Scott), 존 밀턴(John Milton)의 문체를 흉내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다. 1828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하여, 1829년 ‘팀북투’로 총장상 메달을 받았다. 1827년에 이미 형 찰스와 <두 형제 시집>을 익명으로 내놓았다. 이어서 <서정시집>을 발표했고, 아버지가 죽자 대학 공부를 그만두었다. 테니슨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로 역사가 헨리 핼럼(Henry Hallam)의 아들이며 후에 테니슨의 여동생과 약혼을 한 아서 헨리 핼럼(Arthur Henry Hallam)을 들 수 있다. 그와의 교제는 테니슨의 생애에서 가장 깊이 있었으며, 두 사람은 열렬한 지적 흥미를 가진 학부생 클럽인 ‘케임브리지 사도들(Cambridge Apostles)’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핼럼이 1833년 9월, 22세의 나이로 오스트리아의 빈을 여행하다가 갑자기 죽자 테니슨은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절망에 빠졌고 후에는 그를 위해 많은 헌시를 썼다. 1850년에 걸작 <인 메모리엄>이 출간되었으며, W. 워즈워스의 후임으로 계관시인이 되었다. <인 메모리엄>은 그가 17년간 생각하고 그리워하던, 죽은 친구 핼럼에게 바치는 애가로, 어두운 슬픔에서 신에 의한 환희의 빛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 시이기도 하다. 테니슨의 명성은 생전의 바이런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으며 수입도 넉넉한 가운데 시골집에서 한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1844년에는 그의 시를 좋아하고 그를 열렬히 찬미하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으로부터 남작의 작위까지 받아 테니슨 경이 되는 영예까지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인 성공과 인기는 그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거나 대중의 기호에 지나치게 영합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창작력을 감소시켜 말년에는 중요한 몇 편의 작품을 빼고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는 영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83세의 나이로 1892년 10월 6일 세상을 떠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지은이 : 도로시 워즈워스
영국의 시인, 박물학자. 편지와 일기를 포함한 다양한 기록을 남겼고 사후에 출판되며 재조명되었다. 그래스미어의 소박한 오두막집 도브 코티지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그녀의 일기는 오빠인 윌리엄 워즈워스와 종종 긴 산책을 하며 사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은이 : 프랜시스 버니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제인 오스틴 등 후대의 여성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가정 소설가로 패니 버니라고도 불린다. 영국 귀족의 생활상을 드러내고 허세를 풍자했으며, 작품 안에서 여성의 주체성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풍속 소설 장르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이블리나》(1778)를 익명으로 출판했다.
지은이 : 해리엇 마티노
영국의 소설가, 수필가, 언론인.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경제평론가이자 영국 여성 최초의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빅토리아 시대에 정치경제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확보한 마티노는 짧은 일화로 경제학을 설명한 《정치경제의 실례》(1832)로 유명해졌다. 소설 《디어브룩》(1838)을 썼다.
지은이 : 윌리엄 쿠퍼
영국의 시인, 성가 작곡가. 당대 손꼽히는 유명한 시인이었으며, 영국 시골의 일상과 풍경을 생생하고 독창적으로 묘사하면서 18세기 자연시의 흐름을 이끌었다. 노예제 폐지를 위한 다수의 시를 쓰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 장시집 《과제》(1785)가 있다.
지은이 : 로버트 사우디
영국의 시인. 1813년 계관 시인 칭호를 받았다. 학자이자 수필가, 전기 작가 겸 소설가이기도 하다. 낭만주의 시인이며 윌리엄 워즈워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함께 ‘호수 시인’이라고 불렸다.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아 서사시 《잔다르크》를 썼다.
지은이 : 존 다이어
영국의 시인. 웨일스 출신으로 화가이며 목사이기도 했다. 대표작은 묘사적이며 명상적인 시 <그롱거 언덕>(1726)으로, 시골을 회화적이며 고전적인 풍경으로 그려냈다. 훗날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은이 : 레슬리 스티븐
영국의 작가, 비평가, 역사학자.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디자이너 버네사 벨의 아버지다. 열성적인 등산가로 유명했다. 방대한 《영국 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장이었으며, 《18세기 영국 사상사》(1876) 등을 집필했다.
지은이 : 로사 N. 캐리
영국의 소설가, 아동문학가.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며 소녀들에게 교훈을 주는 작품을 써 인기를 누렸다. 여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시작된 첫 소설 《넬리의 추억》을 비롯해 마흔한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지은이 : 존 버로스
미국의 자연주의자, 철학자. 이 수필집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지만 미국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 작가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구적인 자연보호 실천가로 추앙받고 있다. 1837년, 뉴욕의 캐츠킬산맥 밑자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존 버로스는 해마다 봄이 되면 돌아오는 새들과 농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구리라든가 호박벌 같은 야생동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온 가족의 주일 행사였던 교회에 가는 대신 들판과 산을 헤매다니고 냇가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시골에 존재하는 ‘미물’들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어린 시절 “숲속을 거니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종교의식이었으며, 냇가에서 멱을 감을 때마다 안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1860년 당시 새롭게 출간된 「애틀랜틱 먼슬리」지에 에세이를 발표하며 등단, 1871년 첫 번째 수필집 『연영초』를 발표한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 산자락에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 평생 그곳에서 살며 셀러리와 베리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면서 글쓰기를 이어간다. 이후 30년 동안 오두막은 충실한 독자들과 조류학자 프랭크 채프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기업가 헨리 포드 등 각계각층의 저명한 친구들을 끌어모아 땅과 야생생물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집 바깥의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을 불어넣는 명소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운동을 위한 윤리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03년에는 「애틀랜틱 먼슬리」지에 “진짜와 가짜 자연사”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 대대적인 “자연 사기꾼 논쟁”을 촉발하며 자연사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운동을 이끌어내었다. 야생동물의 생태에 작가 자신의 환상을 심어 넣었으면서도 마치 자연사의 일부인 것처럼 표현하는 작가들에게 “숲의 옐로우 저널리즘”이라며 비난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 논란은 4년간 지속되었다. 주변의 땅과 하늘에서 흔히 보는 새와 꽃, 동물, 산골 풍경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에세이의 주제는 종교,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우주의 기쁨,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그것이 나의 종교”였던 문필가이자 농부, 자연주의자이자 추상적인 사상가, 은둔자이자 사교계의 명사였던 그는 1921년 자연으로 돌아갔다. 현재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여러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존버로스협회가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존 버로스의 오두막을 보호구역으로 유지하며 매해 자연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를 선정 “존 버로스 상”을 수상하고 있다.
지은이 : 엘리자베스 개스켈
영국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1810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어머니가 사망하자 이모 댁에 맡겨져 자라다가 젠트리 계층의 기숙학교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1829년 아버지를 여의고 1832년 목사 윌리엄 개스켈과 결혼해 북부 공업도시 맨체스터에 정착했다.여섯 아이를 낳아 키우며 교육봉사와 자선활동에 힘쓰던 개스켈은 1845년 외아들을 잃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글쓰기에 열중했다. 184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메리 바턴』으로 주목받아, 이를 계기로 찰스 디킨스가 펴내던 주간지 〈하우스홀드 워즈〉에 『크랜퍼드』와 『북과 남』을 연재하고 각각 1853년과 185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이외에도 당대 여러 계층의 삶을 세심히 그려낸 『루스』 『사촌 필리스』 『실비아의 연인들』 같은 장편은 물론, 공포·미스터리·연애·심리 등 다양한 성격의 단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두터운 친교를 나누던 샬럿 브론테 사후에 집필한 전기 『샬럿 브론테의 생애』(1857)는 2017년 〈가디언〉이 선정한 ‘역대 최고 논픽션 100권’에 꼽혔다. 1865년 『아내들과 딸들』의 탈고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둔 개스켈은 산업화에 따른 문제와 계급 갈등, 종교, 페미니즘 등의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가로 오늘날 재평가되고 있다.
지은이 : 샬럿 레녹스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 배우로 활동하다가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비틀어 쓴 대표작 《여성 키호테》(1752)는 당대에 인기를 끌었고, 사후에 문학적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지은이 : 앤 래드클리프
영국작가로 고딕소설의 선구자이다. 래드클리프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이는 사건을 설명가능한 일로 풀어내는 방식을 도입해, 18세기 후반 당시 황당무계하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치부되는 고딕장르에 품위를 세운 공적을 받는다. 그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1790년대 원고료가 가장 비쌌던 작가였다. 당대의 비평가에 의해 “로맨스 작가들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얻었다. 런던에서 상인의 딸로 태어난 앤 워드는 런던과 첼시, 바스에서 비교적 조용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1787년 옥스퍼드 출신 언론인 윌리엄 래드클리프와 결혼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은 없었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글을 쓰는 데 보냈다. 소설로 벌어들인 돈으로 남편과 반려견을 데리고 여행을 즐겼다. 다섯 권의 소설을 쓰고 나서 창작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정신이상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애슬린과 던베인의 성』(1789), 『시실리안 로맨스』(1790), 『숲속의 로맨스』(1791), 『우돌포의 미스터리』(1794), 『이탈리아인』(1797), 『개스턴 드 블론드빌』(사후 출간, 1826), 이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지은이 : 윌리엄 해즐릿
영국의 문학비평가, 수필가.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도 알려져 있다. 워즈워스 등 낭만주의 시인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남겼다. 《셰익스피어극의 인물들》(1817), 《영국시인론》(1818) 등의 뛰어난 평론, 《원탁》(1817), 《시대정신》(1825) 등에 수록된 수필로 명성을 얻었다.
지은이 : W. B. 예이츠
아일랜드의 시인, 수필가, 극작가. 20세기 영문학, 아일랜드 문학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어린 시절부터 신화 등 초월적 주제와 아일랜드적 정체성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그의 문학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엮은이 서문
1장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걷기>
장 자크 루소 《고백록》
윌리엄 쿠퍼 <정오의 겨울 산책>
존 버로스 <길가의 환희>
존 클레어 <여름 분위기> 외
윌리엄 워즈워스 <구름처럼 외롭게 나는 헤맸네> 외
레슬리 스티븐 <걷기 예찬>
윌리엄 해즐릿 <홀로 가는 여행>
버지니아 울프 <밤 산책>
2장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도보 여행>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벵골의 모습》
도로시 워즈워스 《스코틀랜드 여행 회상기》
윌키 콜린스 《철길 너머 산책》
마크 트웨인 《떠돌이, 해외로 나가다》
로사 N. 캐리 《다른 소녀들과 다르게》
존 다이어 <시골 산책>
W. B. 예이츠 <방황하는 잉거스의 노래>
3장 걷는 존재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오로라 리》
토머스 하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프랜시스 버니 《방랑객 또는 여성의 어려움》
에밀리 브론테 《워더링 하이츠》
앤 래드클리프 《우돌포성의 비밀》
해리엇 마티노 《디어브룩》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프레더릭 더글러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 이야기》
4장 도시를 걷는 산책자
샬럿 브론테 《빌레트》
로버트 사우디 《영국에서 온 편지》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샬럿 레녹스 《여성 키호테》
엘리자베스 개스켈 《남과 북》
앨프리드 테니슨 <인 메모리엄>
이 책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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