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은 청년 노작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였다. 근대문학을 주도한 문예지 『백조』(1922.1)를 야심차게 창간하였으나 일 년 반 동안 절간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노작의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식민지하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지고, 자금줄이었던 재종형 홍사중마저 수해를 입어 문화사의 출간 자금이 끊겼던 형편을, 지금의 편집후기인 「육호잡기」에서 노작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출판사 리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은 청년 노작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였다. 근대문학을 주도한 문예지 『백조』(1922.1)를 야심차게 창간하였으나 일 년 반 동안 절간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노작의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식민지하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지고, 자금줄이었던 재종형 홍사중마저 수해를 입어 문화사의 출간 자금이 끊겼던 형편을, 지금의 편집후기인 「육호잡기」에서 노작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불행한 일개인(一箇人)의 사고(事故)가 죄 없는 이 집에까지 미쳐서, 빛바랜 문화사의 간판은 바람에 불 적마다 마음 없이 근드렁근드렁, 동인들은 난산(難散)하고, 사무원은 도망하고…… 이 다음의 구절은 차마 붓으로는 더 그릴 수가 없다. 슬픔이거나 기꺼움이거나…… 다만 끝끝내 하려고 할 뿐이다.
- 「육호잡기 3」에서
동인들이 흩어지고, 사무원은 도망하고, 여기저기서 “입으로 말 못 할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노작은 시골 땅을 팔아 간행비를 마련한다. 그리하여 그해 가을, 노작은 ‘혈한(血汗)을 흘리’는 노력을 다해 『백조』 3호를 속간한다. 그리고 동시에 토월회의 창립공연에서 생긴 부채까지 자금을 동원해서 갚으며, 토월회의 문예부장으로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한다.
“차마 붓으로 더 그릴 수 없”는 사정들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시인 노작은 산문적 시도와 연극적 시도로 예술 세계를 확장해나갔다. 1920년대 식민지의 교묘한 문화통치로 예술적 교양이 확산되던 시기에 대비하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예술의 테두리를 끊임없이 갱신하였다. 동시에 노작은 그 다른 쪽에서 예술의 문턱 밖으로 ‘터전 없이’ 밀쳐진 자들, 즉 “대개는 피 묻은 곳을 입고, 대개는 남루한”(「저승길」, 『백조』 3호) 이들 모두를 예술장에 끌어들이는 정동의 문화정치에 기투하였다.
100년 전, 노작의 문학적·예술적 실천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위치를 어떤 테두리 안에 상정하고 있는지 고민해본다. 예측하건대 무참히 연속되는 외부의 전쟁을 무력하게 구경하거나, 고양이 쥐놀이 하듯 문학장을 유린하는 권력 앞에 단순히 보호받기 위해 문학을 선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문학은, 기성의 관념을 뛰어넘은 언어가 세계를 새롭게 구성해낼 때의 설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끝끝내 하려고 할 뿐이”었던 문학 안팎의 운동성에 매료되던 순간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엄혹한 시기, 청년 노작이 구성하려던 그 예술 세계가 어떠한 힘들을 배태했었는지를 기억하며, 이번 『백조』의 겨울호는 사회의 위기와 문학의 위기 속에 ‘도래할 문학’의 형태를 조망해보는 작업을 특집으로 삼았다. 먼저 최진석의 글은 문학예술이 ‘매체와 맺는 관계’ 속에서 어떤 문학적 실천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공동체와 정치, 언어 사이의 상호작용을 실현해온 사례를 한국 문화장의 형성사를 통해 세심하게 훑는다. 서구 근대의 시민적 공론장이 한국적 형태로 자리잡게 된 과정에 문학잡지라는 매체의 독특한 기능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문학 잡지가 수행해온 사회적 기능을 되짚어 이를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도출해내는 방식이다. 그는 자본과 이념이라는 것이 문학이 성립하기 위해서 붙잡아야 하는 현실이었음을 주지시키면서도, 대문자 단수로 표지된 근대의 ‘문학(Literature)’이란 거대한 역사적 생성 과정의 한 단면에 불과하며, 오히려 근대 이전의 문학적 형식들, 가령 일상의 잡설이나 사소한 글쓰기 같이 소문자 복수형으로 표기되었던 ‘문학들(literatures)’이 다양하고 거대한 글쓰기를 배태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한 거대한 생성의 운동 속에 존재하는 문학의 미-래적 형식이라는 것은 어떤 얼굴로 도래할지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어떤 변곡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익할 정도로 애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서 그는 그럴듯한 미래의 문학을 함부로 예측하기보다 ‘지금-여기’에서의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박수연의 글은 변화하는 현실에서 근대 이후 문학예술이 권력과 맺는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현재 한국 문학장의 많은 논의들이 현실의 여러 정치적 경제적 미시권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그에 따라 그 문학과 예술의 수동적 주형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글은 문학과 예술의 노동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을 세계 구성의 능력을 이제는 다시 불러올 때라는 점을 환기하면서 예술에 대한 현대적 사유의 경향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최진석이 근대의 대문자 ‘문학(Literature)’에서 소문자 ‘문학들(literatures)’로의 생성적 이행에 주목한다면 박수연은 근대문학의 문단적 기준이나 법적 제도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외부를 재구성하려고 분투하는 예술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친다. 그는 작금의 제도권 언어와 자신을 둘러싼 권력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야말로 미래의 입법자로서의 예술이 되는 조건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기성 체제의 억압적 언어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내부에서 폭발하는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는 정치 권력이 문화예술의 창작 환경을 적극적으로 운운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 섬세하게 숙고되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결을 이어가며 이번 겨울호에서는 흥미로운 연속기획을 내보인다. 근대문학에서 담당해온 매체사적(媒體史的) 역할을 복기하며 본지에서는 ‘연속기획1 : 잡지를 발굴하다’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지난 가을호에 허민이 서술한 「『실천문학』의 시대 : 역사 인식의 전환과 문학의 변혁」이라는 글을 읽고, 전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김남일이 이어 쓰는 글로 응답하였다. 허민의 글이 『실천문학』 창간 당시의 취지를 재생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김남일의 글은 한 신생 잡지의 창간 정신을 기억하며 『실천문학』이라는 잡지가 갖는 사상적, 사회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형태다. 한국문학사와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실천문학』이란 잡지는 부인할 수 없는 공공적 의미를 지니지만, 최근 『실천문학』과 관련된 이슈와 논쟁들은 그 역사적 가치를 바래게 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 현재 잡지의 홈페이지에는 현 운영자가 강조하는 『실천문학』의 매체사가 공개되어 있다. 그곳에 표현된 언술 또한 역사의 일부겠지만, 실천문학사가 가진 고유한 역사가 특정인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는 공공적 자산이라는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자본의 침식과 실천문학사의 내홍 속에서 밀려난 관계자의 목소리 하나를 여기에 기록하여 둔다. 신중하게 여러 번 고민한 후, 어려운 마음으로 실은 글이다. 김남일의 말처럼 한 매체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정확히 기록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바란다.
백조 동인들을 연재하고 있는 ‘연속기획2’에서는 박종화, 이상화에 이어 ‘김기진’을 다룬다. 김기진이란 문인을 다루는 것에도 숙고가 필요했지만, 필자인 오태호의 말처럼, 과거의 문예활동은 상찬이나 비판의 대상으로서 확정된 의미망을 가진 ‘고정된 박제품’이 아니라 ‘현재적 재해석의 대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조』 3호에서부터 합류한 김기진의 초기작들을 오태호가 공들여 읽어주었다. 『백조』에 실린 김기진의 시는 물론 『백조』에 실으려다가 발간이 지연되어 싣지 못한 산문에 관한 내용도 만나볼 수 있다. 근대문학 초기 『백조』의 경향성과 영향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특집2에서는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현장을 글쓰기의 영역으로 매개하고 있는 두 필자의 글을 실었다. 하나는 제도권의 대학과 결별하고 성 프란시스 대학에서 홈리스들의 글쓰기 교육에 매진해온 박경장의 글이며, 다른 하나는 장애문학과 관련 도서들을 다양한 매체 형식으로 소개하고 아카이빙하여 장애문학의 저변 확대에 관심을 가져온 최지인의 글이다. 박경장은 기성의 아카데미와 다른 방식으로 홈리스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당사자의 고유한 경험들을 글쓰기로 특성화시키는 일을 돕고 있다. 생부(生父)아버지로부터의 폭력과 법부(法父) 사회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정신적 외상을 앓으며 가정이라는 성소를 잃어버린 홈리스들의 절절한 생 체험의 글은 물기 없는 기존의 문학들에게 새로운 야생성을 촉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최지인은 비장애인으로서 장애문학에 접근하는 과정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상 형식의 글을 보내주었다. 그는 기성문학의 문법이 다른 형식과 다른 감각의 글들을 억압하고 있는 측면에 주목한다. 필자 스스로도 기성문학에 복무하며 문학 제도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반성 속에서 그는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장애문학이란 프레임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최지인의 말처럼, 우리가 사회 내 최소수혜자들의 문학을 대하는 태도는 기성 문법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혜적으로 조그만 자리를 ‘증여’하는 형식이 될 때가 많다. 당사자들의 감각을 온전히 ‘환대’하고자 한다면 단지 ‘당사자’를 기성문학에 ‘초대’하여 아주 조금의 파이를 분배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 자신에게 ‘주는 힘’ 자체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번 호에 실린 두 매개자의 글은 ‘받는 사람’을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상호간에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글쓰기의 노력이 문학적 공공성의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환기하게 해준다.
이번 호에서는 유사한 고민들을 서평이 이어가고 있어 더욱 의미 있다. ‘서평-담론’에서는 김원영, 곽형덕, 김지윤, 세 명의 필자가 수고해주셨다. 당사자로서 장애예술과 장애학을 깊이 있게 천착해온 김원영은 기성의 학문적 풍토 속에서 장애를 정치학의 중심주제로 끌어온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바버라 아네일·낸시 J.허시먼, 김도현 역)라는 책을 꼼꼼히 분석해준다. 그는 ‘정치학 전통에 대한 장애학적 개입’조차 만나기 어려운 한국의 정치학계를 비판하며, 우리 사회의 학문적 공백과 이 책이 가진 정치적 좌표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곽형덕은 허은실의 시집 『회복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주었다. 그는 허은실의 시가 울림을 주는 이유를 시인이 광의의 당사자성을 체현해내고 있는 것에서 찾는다. 김시종, 김석범의 문학과 허은실의 제주4·3을 연결하며, 타인의 고통을 매개하는 기존의 방식들과 허은실의 언술 방식이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의 섬세한 독해를 통해 독자들은 시인이 “타인의 삶을 나누어 가진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윤은 주디스 버틀러의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팬데믹 현상학』(김응산 역)과 김지혜의 『가족각본』을 연결하여 읽어주었다. 팬데믹을 지나며 우리가 공동의 세계에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질문하는 작업은 이제 필수불가결해졌다. 필자는 차별 없는 ‘공동의 세계’에서 우리가 거주할 수 있게 되려면 김지혜가 지적한 것처럼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각본’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언급하며, 공동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사유하고 꿈꾸는 일이 ‘시작하는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 김지윤의 글을 읽노라면 세계의 깊은 병증을 보듬어가는 작업에 무엇보다 언어의 일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절감하게 된다.
결국 언어의 일에 매진할 일이다. 이번 겨울호에도 세계와 깊게 호흡하며 언어의 미감을 끌어올린 탁월한 작품들이 게재되었다. 시란에서는 강호정, 고명재, 김미소, 김승일, 김연화, 안찬수, 이면우, 이소연, 조창규, 최명진, 최정진, 최호빈, 홍순영 13인의 시가 소개되었다. 소설란에서는 박현주, 서성란의 매력적인 단편이 선을 보인다. 서늘한 겨울을 풍성한 언어로 채워주신 필자분들께 극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본지는 화성지역의 아름다움을 탐사하는 일과 문학의 아름다움을 연결하는 것에도 관심을 둔다. 지면을 통해 펼쳐지는 경이로운 사진들은 화성시 서해 매향 갯벌과 습지의 풍경들이다. 백조(白潮)가 일렁인 덕분인지 화성지역에는 먹이가 풍부한 갯벌 습지가 발달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희귀종으로 꼽히는 새들이 수천, 수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이국의 땅까지 순례를 온다. 김종경 작가는 이러한 멸종위기종들의 화려한 날갯짓을 포착하고, 그들의 기착지인 화성의 땅이 어떤 방식으로 무수한 생명들과 호흡해왔는지를 순간의 예술을 통해 보여준다.
어쩌면 이 사진들처럼 우리가 애쓰는 문학이라는 것도 오래된 생태를 글로써 담아두는 일이 아닐까. 사라져가는 것들이 우리 미래와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비상하고 낙하하는 것들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는 것, 이미 와 있는 것들과 다시 올 것들을 믿어나가며 그 자리에서 흰 파도로 일렁이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 오래전 노작이 꿈꿨던 예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다만 끝끝내 쓰려고 할 뿐’인 나의 일, 그렇게 하려 하는 우리 모두의 일을 우리는 문학이라 부른다.
목차
책머리에
노지영 다만 끝끝내 하려고 할 뿐이다
너머 : 경계
김종경 지구 반대편의 생명까지 불러들이는 화성시 서해 매향 갯벌과 습지 생태 보고(寶庫)
특집 1
도래하는 문학
최진석 문학에서 문학들로
박수연 예술의 능력과 법의 규정
시
강호정 고양이의 감정 외 2편
고명재 종종 외 2편
김미소 있다 외 2편
김승일 우리 모두와 관계없는 제대 외 2편
김연화 농섬으로 가는 길 외 2편
안찬수 휘휘풍촉(輝輝風燭) 외 2편
이면우 처서 뒤에 오는 것 외 2편
이소연 관람 외 2편
조창규 조선 별다방 외 2편
최명진 하루하루 살이 외 2편
최정진 공원 호수 외 2편
최호빈 거북이 외 2편
홍순영 카오스 옆집에는 코스모스가 산다 외 2편
특집 2
‘다른’ 감각들의 글쓰기
박경장 북어와 가재미
최지인 장애문학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소설
박현주 쓸려가는 것들
서성란 숨은 아이 찾기
연속 기획 1
잡지를 발굴하다
김남일 독재의 시대를 견뎌냈지만 자본의 간지(奸智)에는 기어이 무릎을 꿇다
연속 기획 2
백조동인연재
오태호 ‘『백조』 시대’청년 김기진 문학의 현장성
서평 | 담론
김원영 어떤 한계를 상상하고 포괄하는 이론이든, ‘장애’는 언제나 그 한계의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곽형덕 타인의 고통을 살아가는 문학
김지윤 공동의 세계, ‘각본’ 없는 세상을 사유하기
기고
홍승준 최초의 세계여행가 고(故) 김찬삼 교수를 아시나요
필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