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도시의 끝자락에서 산촌·어촌까지
김시덕이 바라본 현재진행형 한국
저자 김시덕은 문헌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현대 한국의 ‘현재사’를 들여다본다. 거의 눈여겨보는 사람 없는 고문헌 뭉치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발굴하듯, 전국 곳곳의 골목을 걸으며 집과 비석 등에 숨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낸다. 도시문헌학자가 바라보는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가난하지만 허술하게 살아가지 않겠다는, 어떻게든 아름다운 삶을 꾸려 보겠다는 의지가 낳은 동네 여기저기의 포인트. 곳곳에서 문명 충돌이 일어나며 남겨지고 사라진 것들이 전하는 이야기.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은 우리 앞에 살아온 존재들을 되짚고, 우리 뒤에 살아갈 존재들을 호명하며 지금 우리가 선 자리를 비춘다.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은 저자가 전국을 누비며 직접 찍은 풍부한 사진 자료가 돋보이는 책이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주요 답사지를 구글 지도에서 볼 수 있는 QR 코드를 배치해, 가까운 곳부터 하나하나 걸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들고 동네 곳곳을 답사해 보면 어떨까? 혼자서도 좋고, 여럿이면 더 좋다. 그리고 저자처럼 내 지역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기록한다면 금상첨화다. 다음에 올 ‘미래 한국’의 독자를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새로이 획득하면,
일상 공간이 ‘탐험’의 영역으로 바뀐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수원, 울산, 용인, 고양…. 당신은 이 가운데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 울릉, 영양, 장수, 양구, 진안, 무주, 구례, 청송, 화천, 양양…. 당신은 이곳들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전자는 대한민국의 군 단위 이상 지방자치단체 중 인구수 상위 10개 도시이고, 후자는 하위 10개 지역이다(2022년 11월 인구 기준). 어디에 살든 어디를 가든,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별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출퇴근과 등하교, 돈벌이와 살림살이의 고단함 가운데 눈 돌릴 틈도 없이 하루하루 바삐 ‘목적지’를 향해 가기 일쑤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아파트’로 상징되는 안락한 보금자리인가? 또는 ‘인스타’를 도배하는 꿈의 휴양지인가?
꼭 시간을 내어 멀리 떠나야만, 돈을 많이 들여야만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헌학자의 시선으로 도시 곳곳을 들여다보는 저자는 우리에게 ‘답사’를 즐길 거리의 하나로 제안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일상을 바꿔 놓을 탐험의 비법을 속속들이 알려 준다. 답사라니, 어디 유적지라도 가서 안내판 읽고 기념사진 찍고는 주변 맛집을 찾아 주린 배를 채운 뒤 막힌 길을 되돌아오는 여행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유적은 바로 내 곁에, 우리 동네에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발견’하는 일
제1부 ‘산책하며 발견하는 현대 한국’에서 저자는 크게 12가지 답사 포인트를 제시한다. 간판, 문화주택, 시민 예술, 화분과 장독대, 냉면과 청요리와 누룩, 민가, 개량 기와집, 공동주택, 아파트, 상업 시설과 공공시설, 철도, 버스 정류장 등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길을 오가며 매번 접하면서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여기는 존재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늦추고 거기에 눈길을 던져 보자. 전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전국 곳곳의 사물과 동네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테니.
도시 안에 숨은 답사 포인트를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도시의 경계를 성큼 넘을 차례다. 제2부 ‘현대 한국에서 일어난 문명 충돌’에서 저자는 농민 대 어민·화전민, 도시 대 농촌 등 이 땅에서 치열히 부딪친 두 집단 혹은 세력을 들여다본다. 공업 도시 울산의 망향비들, 열차가 달리던 섬 제주도, 세종시를 둘러싼 지역민의 정체성 문제, 택지 개발과 전통 마을, 옛길의 흔적을 따라 걷는 도시 안팎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한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널리 인기를 끌던 문화주택은, 1970년대 말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977년에 한국주택은행(오늘날 KB국민은행)이 서울, 인천, 경기도 수원시, 충청북도 청주시, 경상남도 마산시(오늘날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제주도 제주시에서 융자 주택 입주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3%가 “40~60평(대지) 규모에 방 수 4~5개, 입식 부엌, 수세식 변소를 갖춘 현대식 문화주택”에 살고 싶다고 답했지요(《매일경제신문》 1977년 7월 26일 자 「단독주택 희망 96%」). 그 점을 보면 그때까지는 문화주택에 대한 수요가 전국적으로 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71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강맨션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시범아파트를 필두로 하여 1974년에 서초구 반포동(당시 관악구 동작동)의 반포주공아파트, 1978년에 송파구(당시 강남구) 잠실동의 잠실주공아파트, 1982년에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 등이 잇달아 건설되며 문화주택의 강력한 경쟁자가 속속 나타납니다. 그 당시 서울 강북의 중산층 시민들은 ‘문화주택을 구매할지, 아파트 단지에 입주할지’를 두고서 고민했고 바로 그때의 선택이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이들의 경제적 상황을 결정지었음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문화주택)최근 들어 타이완과 일본 등지에서는 창문을 미적으로 감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타이완에서는 창을 장식하는 창살을 가리켜 ‘철화창’(鐵花窓), 즉 창문에 피어난 철의 꽃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지요. 한국에서는 타이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다양한 창살 디자인이 확인됩니다. 창문의 창살 하나하나가 미적인 감각에서 선택되어 설치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특히 하나의 벽에 뚫린 여러 개의 창에 각각 다른 창살이 설치되어 있다면 이는 좀 더 뚜렷하게 미적 감각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창틀의 사방을 튀어나오게 만든 경우도 보이는데, 이 방식은 근대 일본 건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난 뒤로도 한국 각지의 집 장사들은 한동안 식민지 시기에 배운 대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식 가옥 양식은 충청북도 충주나 경상남도 진해 등 전국 곳곳에서 널리 확인됩니다.
(시민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