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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를 읽는 경비
수우당 | 부모님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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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단다. 할아버지는 어제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고 있었지. 개가 걸어가고 있더구나. 개가 혼자 걸어가고 있었냐고? 그럴 리가. 빨간 여자가 뒤따라 가고 있었지.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너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할아버지가 보기엔 네 엄마보다 더 예쁜 여자였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뒤따라가고 있었지. 그때, 그때 말이야. 저기 앞쪽에 검은 모자를 쓴 예수를 닮은 사내가 걸어가고 있었단다.그 많던 흑백클래식 음악다방이었다흑백들이 모여들었고 흑백들은 검은 차를 마시며저마다의 자세로 음악을 아는 체했다주인은 노년에 들어흑백다방보다 흑백으로 불러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흑백들은 흑백다방에서 흑백을 만나흑백사진 밖으로 떠났고베토벤 머리의 화가주인도 죽은 부인을 만나러 떠났다어두운 적산가옥에 남아 피아노를 치던 둘째 딸의 장례식에는흑백사진 밖으로 떠났던 흑백들이 마지막으로 모여들어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고 흩어졌다
뱀의 숲네가 내 숲을 다녀갔다는 것을 밟혀 죽은 뱀을 보고 알았다다시는 내 숲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며 떠난 네가 아니었던가밟혀 죽은 뱀은 나의 뱀이었다나는 이 날이 올 줄 알고 내 숲에 수많은 뱀을 풀어놓았었다숲을 비울 때 나는 내 숲의 뱀들에게 명령했었다오직 한 사람만은 물지 말고그 발아래로 기어들어가 밟혀 죽으라고내 숲에 새로 난 길이 달빛에 빛난다내 뱀의 죽음이 만든 네 길이다
타임지를 읽는 경비내 몸에는 경비의 피가 흐른다아버지는 한때 경비셨다 아니 수위경비나 수위나 내 몸에 경비의 피가 흘러들어왔다는 것을안 지 오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내 몸으로 흘러드는경비의 피를 지켜보왔다나도 경비가 되고 싶었다아버지는 경비로 일하시며 일본 성인잡지와 무협지를 읽으셨다나는 타임지를 읽고 싶었다타임지를 읽는 아파트 경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그들을 비웃었지만나는 부러웠다나도 경비가 되어 타임지를 읽고 싶었다경비가 되어 타임지를 읽는 것이나에게는 출세였다모두 잠든 밤순찰을 끝내고 경비실로 돌아와서랍 속에 숨겨둔 타임지를 꺼낸다사전을 꺼낸다 매끈한 여인의 피부같은 질감이 나를 유혹한다어둠 속에 밝힌 불빛 아래 누운짙은 화장의 여인붉은 매니큐어의 손으로 타임지를 쥐고 있는 너를 범하고 싶었다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다여기는 시간 밖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승강
1959년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리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2003년 『문학·판』을 통해 등단하여 시집 『흑백다방』 『기타 치는 노인처럼』 『어깨 위의 슬픔』 『봄날의 라디오』 『회를 먹던 가족』『타임지를 읽는 경비』와 산문집 『노인을 기다리며』를 펴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밥솥 안의 뻐꾸기 13
세상의 모든 공사는 언제 끝나나 14
부재 16
그 많던 흑백 17
원탁의 술자리 18
나의 경비 아저씨 20
피뢰침 끝에 앉은 까마귀 22
계란이 왔습니다 24
달을 쏘다 25
어느 날의 과자 26
친구의 초대 28
죽음의 형식 : 먼 벤치 위의 죽음 30
연아의 결혼 32
길 끝에는 양계장이 있었다 33

2부


37 뱀의 숲
38 내가 가끔 트로트를 듣는 이유
40 절정
42 기찻길 옆 고깃집
44 여기, 술집
45 집
46 꿈에
48 대신 개의 이름을 불렀다
49 쿵
50 시집을 돌리다
52 팔씨름 공화국 그 후
53 오늘의 실수
54 깡패 낙엽
56 위험한 오빠

3부

입춘 즈음 59
타임지를 읽는 경비 60
동생과 춤을 62
두 발로 걷는 것과 네 발로 걷는 것 64
학교는 언덕 위에 있었다66
화장실 수건 68
뒤가 나를 일깨운다 70
거울 속에서 말 찾기 72
사계, 사람들 74
잘 안 죽는 식물 75
피 흘리며 걷는 여자 76
봄, 사람들 77
청탁이 들어왔다 78
다리 79

4부


83 하류의 노을
84 문
86 일상은 계속된다
88 안민고개
89 술 사러 간다
90 나의 모든 누나
92 팔십
94 떡이 들어왔다
96 나는 넘어지고 그는 웃었다
98 사탕을 주는 여인
99 하류의 초소
100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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