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누구보다 혹독하게 시를 쓰고 있는 류근홍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245로 출간되었다. 류근홍 시인의 시에서는 유쾌하고 정의롭고 순수한 시인의 품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타인의 생로병사와 인생살이의 희로애락과 자연의 영원회귀를 잘 지켜보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출판사 리뷰
쉴 새 없이 솟아나는 언어의 샘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누구보다 혹독하게 시를 쓰고 있는 류근홍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245로 출간되었다. 류근홍 시인의 시에서는 유쾌하고 정의롭고 순수한 시인의 품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타인의 생로병사와 인생살이의 희로애락과 자연의 영원회귀를 잘 지켜보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우선 시편이 어렵지 않아서 좋고, 시인의 생생한 체험이 느껴져서 좋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뚜렷해서 좋다. 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시인은 종종 지상의 뭇 생명체에 대해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또한 시인의 추억담, 즉 지난 세월의 삶과 꿈에 대한, 투병과 치유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독자 여러분은 어느새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해설 엿보기]
류근홍 시인은 시단에 나오기 직전, 산문집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를 낸 적이 있다. 네 가지 암과의 사투와 여섯 번의 암 수술을 극복한 저자가 펴낸 신앙 간증집이다. 이 책을 낸 이후 여러 교회와 모임에 가서 신앙 간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늦깎이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그이기에 회복 이후 시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와서 시 창작의 방법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선 등단도 하고 시집 고통은 나의 힘과 당신 덕분입니다를 펴내 두 차례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 3권의 책은 하나님 여호와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준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천국 문턱까지 갔었던 나를 살려내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한 신앙적 탐구였다고 할 수 있다. 생사의 기로를 헤매면서 류근홍 시인은 시를 썼고, 그 시는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들 3권의 책은 정말 눈물겹다. 생각을 한번 해보시라. 말이 쉬워 네 가지의 암과 여섯 번의 수술이지 투병의 과정은 혹독하였고 치열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암세포의 준동을 체크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20년 2월 26일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그간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시를 썼다. 그런데 어떤 시를? 해설자는 이것이 너무나 궁금하였다. 신앙시를 많이 썼겠지만 그런 시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궁금증이 이번에 보내온 시집 원고를 통독하면서 풀렸다. 그는 자신의 삶과 꿈을, 일상과 사유를 이런 식으로 풀어가고 있었구나,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감동하였다. 이 해설문은 그 감탄과 감동에 대한 기록이다.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놓인 시부터 보자.
나는 늘 꿈꾼다
사랑이 곁에 있어 주기를
그리고 생각한다
가까이 있어도 온전히 품을 수 없는
부족한 내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표현이 사라진 것에 대하여
무뎌진 마음의 거리에 대하여
― 「당신을 꿈꾸다」 전반부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부모·자식 관계, 형제지간, 친척, 배우자, 학교 친구, 직장 친구, 동네 친구, 동료…….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면서 지내다가 결국은 사별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당신과의 사랑을 꿈꾼다. 안타깝게도,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별이 아닌 이별이라 다시금 사랑의 꽃을 피우기를 염원한다.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것에 미안해하면서 다시금 그 열렬했던 때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고백한다.
각자의 영역은 늘어나고 점점 틈은 벌어진다
안전한 지점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가
첫 만남은 덤덤해지고
화려했던 꽃들은 무색하지만
당신 밖에서 이토록 서성이는 것은
여전히 내 안에 당신이 살고 있기 때문
― 「당신을 꿈꾸다」 후반부
당신을 알게 된 지도 꽤 오래되어 어느덧 무덤덤해지거나 무심해진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화자는 나는 당신으로부터 멀어진 적이 없다고 새삼스레 고백하고 있다. 표현은 살갑게 하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그대를 보고 싶어 하였고,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고백은 시인이 자기 아내한테 하는 것일까? 아니, 긴 세월 동안 간병을 해준 아내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지인들에게 하는 사랑 고백일 것이다.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시인의 산문]
추위가 한 뼘이나 늘어졌다.
도시의 그늘은 이제 고드름을 키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심장이 흘러내릴 것이다.
나는 늘 꿈꾼다
사랑이 곁에 있어 주기를
그리고 생각한다
가까이 있어도 온전히 품을 수 없는
부족한 내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표현이 사라진 것에 대하여
무뎌진 마음의 거리에 대하여
각자의 영역은 늘어나고 점점 틈은 벌어진다
안전한 지점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가
첫 만남은 덤덤해지고
화려했던 꽃들은 무색하지만
당신 밖에서 이토록 서성이는 것은
여전히 내 안에 당신이 살고 있기 때문
― 「당신을 꿈꾸다」 전문
노인은 죽은 듯 의자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계절의 속도감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붉게 물들어 머물러 있다
시간을 먹어치운 노인은 대개
지혜롭다
어리석고 파괴적인 바깥세상에 대해
함구하지 않는다
부정과 폭력과 살인 속에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구부정한 어깨와 주름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은퇴를 했다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비껴 앉아 묵묵히 볕을 쬐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자는 척한다
― 「노인 되기」 전문
1
말의 고삐를 움켜쥔 채 말몰이를 하는 기수
휘두르는 채찍이 기수의 말이다
들을 수 없는 말
다 할 수 없는 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흘러만 가고
온몸에 땀이 흘러내린다
울부짖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돌고 있는 말이 조금은 알아들은 걸까
고삐를 바짝 움켜쥔 사내
길을 이탈하지 않고 한곳만을 향해 달린다
2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조심하라는 말
잔소리로만 들렸던 그 말
어머니 나이가 되어도
입속에 머문 하늘 같은 그 말들
저장된 그 말로 자식을 말몰이하고 있다
― 「말몰이」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류근홍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2018년 《미래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고통은 나의 힘』, 『당신 덕분입니다』, 『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 산문집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등이 있다. 성호문학상, 경기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제1부
당신을 꿈꾸다13/노인 되기14/바늘16/습작의 시절18/제비꽃19/말몰이20/지렁이22/여름의 끝자락24/장맛비25/조급한 꿈26/기다림28/슬하29/지금처럼30/물망초32/텃세34
제2부
고백37/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38/기둥40/흙42/뿔44/난청45/성묘46/거울48/김장하는 날50/처형52/훈장54/발을 묻고 듣는 이야기56/당신은 블랙홀58
제3부
감시카메라61/손62/소 잡는 날64/몸65/검진66/새벽 두 시68/빈집70/태풍71/그대라는 선물72/그래도 새날은 온다74/돌아오지 않는 것들76/코뚜레77/태풍의 눈78/마네킹80/바리캉의 시대82
제4부
이 세상이 아직 아름다운 이유85/봄의 주연86/지게88/늦여름90/능수버들91/승화루 홍매화92/한해 끝자락94/혓바늘이 입속을 지배할 때96/그리움97/동백꽃 종갓집98/나비의 생100/흙수저101/봄날102/아버지104
해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