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세기의 흥행사’ 세르게이 댜길레프,
1909년 그가 창단한 발레 뤼스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현대 예술의 선구자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전무후무한 그의 발레단 발레 뤼스를 집중 조명한 단 한 권의 책
★★★ 『뉴요커』 『텔레그래프』 선정 올해의 책“댜길레프는 일정한 예산이나 이사회도 없이 사업을 하면서 극장 흥행주 역할을 마치 신처럼 수행했다. 그의 천재성은 그야말로 실용적이었다. 필요한 인재를 발견해 불러들이고, 그들을 유능하게 만들고, 과실을 따먹었다. 그의 권위가 없었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_ 본문 중에서
세르게이 댜길레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다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사에 큰 획을 그은 세르게이 댜길레프는 역사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없을 독특한 인물로 평가된다. 발레 뤼스를 창단한 1909년부터 그가 사망한 1929년까지 그의 활동은 20년의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20세기 현대 예술의 모든 논의가 빠짐없이 그의 이름으로 시작할 만큼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는 미술가도, 음악가도, 무용가도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를 그저 사기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예술적 취향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1827년 상위 중산 계급인 지주 계층에서 태어난 댜길레프는 비교적 풍요롭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구화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그가 자란 페름 지방은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그는 ‘넵스키 픽윅키언’이라 불린 중상류층 법학도 무리와 친구가 되었다. 이들 중 한 명인 알렉산드르 브누아의 말에서 우리는 댜길레프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우리 누구도 갖지 못한 한 가지 특징, 한 가지 능력이 있었고, 그것이 결국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는 뜻한 바를 어떻게 성취해야 하는지 알았고,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댜길레프가 처음 열정을 보였던 분야는 음악과 미술이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보여준 적이 있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미술에도 관심을 높여갔다. 또한 잡지 『예술세계』를 발행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중들에게 아방가르드를 널리 알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 “거의 알려지지 않아 저평가된 러시아 문화 상품을 서구 유럽에 소개하는 사업이 더 수익성이 좋을” 거라고 눈치 빠르게 인식했다.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곳은 유행을 선도하는 빛의 도시 파리였다. 그는 1906년 파리 살롱 도톤에 러시아 현대 미술 전시를 기획해 소개했다. 시각예술에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댜길레프는 이듬해 러시아 음악으로 방향을 틀어 표도르 샬랴핀을 내세운 러시아 오페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잘 준비되어 있는 러시아 발레로 프로그램을 채우는 건 어떨까?”
발레 뤼스, 발레의 새 시대를 열다당시 발레는 젊은이들에게는 이해가 불가능한 취미이자 음탕한 노신사들의 에로틱한 환상을 채워주는, 간단히 말해 지적인 만족도 미학적 가치도 없는 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진부한 양식과 틀에 박힌 동작으로 그랜드 오페라의 막간에 잠시 등장해 긴장을 풀어주는 여흥거리로 전락한 상태였다. 지금도 ‘발레’ 하면 떠올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백조의 호수》처럼 발레레나를 중심으로 한 여성성 강한 발레와 달리,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는 높고 빠르게 점프하는 남성 무용수들의 힘과 관능미를 앞세운 러시아 발레를 유럽에 선보였다. 파리의 관객들은 무언가 혁신적인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발레 뤼스의 명성과 인기는 즉각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르미드의 별장》에서 니진스키의 초자연적인 도약은 기적처럼 보였으며, 《셰에라자드》의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색채 배합은 중산층 가정의 인테리어까지 바꾸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페트루슈카》의 창의적인 음악, 《불새》의 원시성, 《목신의 오후》의 에로티시즘, 《봄의 제전》의 모더니즘까지… 19세기 유럽이 오페라에 열광했다면, 댜길레프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발레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인재를 알아보는 댜길레프의 안목은 가히 전설이었다. 포킨, 니진스키, 마신, 니진스카, 발란신, 파블로바, 카르사비나, 리파르, 돌린 등 신진 안무가와 무용수를 고용해 만들어낸 천재적인 작품들은 모던 발레의 시작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 무대 미술의 신기원을 이룬 박스트, 브누아, 피카소, 마티스의 세트 디자인, 코코 샤넬이 참여한 의상 등 각 장르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예술가들을 동원해 종합예술로서의 발레의 가능성을 극대화했다. 발레 뤼스의 작품 하나하나가 예술 장르를 가로질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운동의 진원지였던 셈이다.
창조성이 폭발하던 20세기 초로 떠나는 문화 여행 이 책의 미덕은 책을 펼치는 순간, 20세기 초 창조성이 폭발하던 시대로 독자들을 데려간다는 데 있다. 『댜길레프의 제국』은 영국에서 30년간 무용 비평가로 활동해온 루퍼트 크리스천슨이 댜길레프 탄생 150주년을 맞아 방대한 조사와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의 일생과 유산을 재평가한 책이다. 수많은 2차 문헌 인용을 통해 댜길레프와 교우했던 예술가, 비평가, 무용수 들의 증언을 소개하며 댜길레프의 유산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오랜 무용 비평가로서의 경륜을 바탕으로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따라가며 《불새》 《페트루슈카》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 《환상 가게》 《결혼》 《르 트랑 블루》 《아폴로》 등 발레 뤼스의 주요 레퍼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작품의 내용과 의의를 서술한다. 또한 댜길레프와 발레 뤼스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가십, 스캔들을 엮어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를 완성했다.
1929년 댜길레프가 이른 죽음을 맞이한 후 발레 뤼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댜길레프의 죽음 이후 30년의 역사를 “댜길레프의 제자들과 모방자들이 그의 업적을 재현하면서도 그의 그림자를 피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라고 단언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댜길레프의 후계자들이 모나코, 파리, 런던, 뉴욕 등지로 건너가 자신들만의 무용단을 만들어 발전시켜간 스토리도 담고 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보리스 코흐노), 파리 오페라 발레단(세르주 리파), 로열 발레단(니넷 디 밸루아), 뉴욕 시티 발레단(조지 발란신)과 같은 명실상부한 세계 주요 발레단의 주역들이 모두 댜길레프의 후예였다. 그러니 발레 뤼스가 현대 발레계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스스로를 “못 말리는 발레트망”이라 칭하는 저자는 발레 애호가나 발레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발레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발레에 대한 나의 광적인 애정에 조금이라도 전염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댜길레프의 제국』은 견고한 전통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예술과 미학을 소개하고, 그들의 취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한 임프레사리오의 연대기이자, 그를 둘러싼 20세기의 예술 혁명에 관한 문화사이다.

나에게 발레는 미적 관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일종의 극시劇詩, 인체의 가능성과 한계에 끝없이 도전하는 매혹적인 투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완벽이라는 꿈이 손에 잡힐 듯하고 에로틱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신비와 미학을 자세히 묘사할 것이다. (…)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서양 문화라는 퍼즐에서 발레가 중요한 조각으로 떠오른 역사적 순간을 추적하려 한다. 그 순간은 특별한 사업과 그 사업을 추진한 한 사람 덕분에 가능했다.
발레의 부상은 전적으로 댜길레프가 주도한 현상이다. 그는 세련된 취향에 약간의 술책과 다양하고 폭넓은 경영 기술을 추가했다. 어떠한 원형이나 전범典範도 따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댜길레프를 모방했으며, 그들 중 몇몇은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이 여전히 대명사로 기능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험적인 예술 기획자들에게 널리 적용되고 있으나 그가 만들어낸 기록이나 영향권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