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히스의 언덕』으로 독자들과 친숙한 김현숙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단편소설 7편과 스마트소설 2편을 싣고 있다. 평소 서정성 짙은 문장과 인연의 굴레에 관해 깊이 있게 천착해온 작가는 이 작품집에서도 양극단에서 벗어난 균형 감각을 적절하게 확보하면서, 혈연공동체 속 여성 의식과 사랑의 인연을 통한 세상에의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소설집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에는 많은 인물의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처럼 다성의 목소리가 일관되게 향하는 지점은 혈연공동체의 의미나 사랑의 상대성에 대한 말 걸기이다. 김현숙 작가는 특히 이들과 말 걸기에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특징을 한껏 내밀하게 빛내면서 한 시대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소재를 혈연공동체나 사랑하는 대상에서 육화하는 방식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혈연공동체가 현재의 이야기보다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과, 사랑의 대상에 대한 기억과 회상과 반추의 양식으로 단속적이고 계기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속 여행을 다니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자꾸 사라지려는 기억의 원천을 앞에 두고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많은 목소리를 통한 다양한 회상으로서의 소설 쓰기이다.
출판사 리뷰
『히스의 언덕』으로 독자들과 친숙한 김현숙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단편소설 7편과 스마트소설 2편을 싣고 있다. 평소 서정성 짙은 문장과 인연의 굴레에 관해 깊이 있게 천착해온 작가는 이 작품집에서도 양극단에서 벗어난 균형 감각을 적절하게 확보하면서, 혈연공동체 속 여성 의식과 사랑의 인연을 통한 세상에의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고운사 가는 길」은 형제들이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경북 의성 고운사를 찾아가는 소설이다. 일본 유학 중 대동아 전쟁으로 불가피하게 학업을 중단했던 아버지의 더없이 외롭고 지난한 삶과 그것을 더듬어가는 자식들의 심리가 조밀하게 교차되고 있다. 시대의 아픔과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안타까움을 핏줄을 넘어서는 공감의 언어와 아버지가 일본에서 만난 유코를 비롯해 혜인, 그녀의 어머니와 형제 등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개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시대와 혈연의 상대성을 진정성 있게 들려주고 있다.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는 여행 가이드인 하현이 남편 진성과의 이별 후 쓸쓸한 마음을 안고 떠난 쿤민행 가이드 길에서 하준우라는 남자를 만나는 인연을 통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삶을 차분하면서도 서정성 짙은 언어로 묘파하고 있다. 작가는 하현의 심리 변화를 촘촘하게 묘사하면서도, 인연으로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이란 끝없이 옮겨 다니면서 지어진 후에 다시 헐려야 하고, 인연 또한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 실려 돌고 도는 존재라는 것을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의 상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은 중학교 영어선생으로 재직하면서 만난 제자들이 나중에 작가가 되어 역시 소설가가 된 영어선생과 재회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화자부터) 자기 스타일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끝까지 가고야 마는 집요한 인간들인데,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투명한 윤리성이 특히 눈에 띈다. 이것은 어쩌면 김현숙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윤리성에 가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제목이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인 것이다.
「비누풀꽃」은 군대에서 사랑하는 민하를 잃은 아픔을 겪은 화자(시내)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민하의 쌍둥이 동생 서하의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서하를 괴롭게 바라보아야 하는 시내의 마음과 감정의 파동은 아프면서도 애잔하다. 그렇기에 ‘온당하고 유연한 도피로의 가장 적절한 계기가 무엇인가’를 두고두고 되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엔하이폰 XO」는 미국 보스톤에서 온 15세 손녀와 한국의 할머니가 만나서 세대 차이의 간격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몸과 마음의 부대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핏줄은 자기 판단이나 이해관계로 이루어지는 수익성 너머의 앞뒤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은, 혹은 계산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혈연공동체 운명의 겹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운중천의 안개」는 외로운 삶에 대처하는 60대 초반 남녀의 사랑과 생존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뒤늦게 다신 만난 첫사랑을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를 가진 남녀의 행동을 불륜이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적 활력으로 변모시켜 허무와 외로움에 맞서는 생생한 현장이다. 이 소설은 복고적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운중천의 생명체의 생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남녀의 만남을 생태학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유폐幽閉」는 세 딸이 49제를 지내고 노모의 강원도 산골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이 배경이다. 오 남매를 낳아서 키우고 부대끼며 살다간 어머니에 관한 천양지차인 회상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알아가는 현장이다. 집을 지어주면서 배려와 돌봄의 생태적인 요소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곳과 그 집은 어머니의 유폐 장소였다. 이 작품은 ‘생명줄’을 통한 혈연공동체 삶의 윤리에 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스마트 소설 「그의 세 번째 여자」는 화자의 막냇동생과 그의 여자들에 관한 삽화를, 「탈의 미소」는 30년 만에 만난 대학 4년 동안 꼬박 붙어 다니던 친구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김혐숙 작가의 소설집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에는 많은 인물의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처럼 다성의 목소리가 일관되게 향하는 지점은 혈연공동체의 의미나 사랑의 상대성에 대한 말 걸기이다. 김현숙 작가는 특히 이들과 말 걸기에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특징을 한껏 내밀하게 빛내면서 한 시대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소재를 혈연공동체나 사랑하는 대상에서 육화하는 방식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혈연공동체가 현재의 이야기보다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과, 사랑의 대상에 대한 기억과 회상과 반추의 양식으로 단속적이고 계기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속 여행을 다니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자꾸 사라지려는 기억의 원천을 앞에 두고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많은 목소리를 통한 다양한 회상으로서의 소설 쓰기이다.
그래서 김현숙 작가의 소설은 몇 겹의 시간대를 감추고 있다. 서사적 현재로 표현되는 한 겹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뒤에는 두 겹의 과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그 과거는 더 이전의 세 겹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회상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과거와 나누는 대화이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풍요로운 기억의 환유로서의 소설 쓰기라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만으로도 능히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김현숙 작가의 소설에 대한 집요함이 우리에게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고운사의 범종 소리가 들려왔다. 더없이 은은하고도 가슴을 파고드는 알연한 소리에 혜인은 긴 회상에서 깨어났다. 우화루 창가 나뭇가지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흔히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새. 주황빛 가슴에 잿빛 날개가 선명한, 사람을 잘 따르는 예쁜 새. 가슴을 찌르듯 맑고 명징한 울음이 묘한 위안과 여운을 안겨주었다. 그 옛날 어린 동자승, 아버지도 곤줄박이의 고운 울음소리에 힘겹고 외로운 수행의 길을 거뜬히 이겨낸 것은 아닐지…….
불현듯 지난 봄 J대 명예졸업장 증정식을 끝내고 일행과 함께 이곳 고운사를 다녀갔을 유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만난 지 근 3개월이 지나고 있었으나 그간 단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은 좀 너무 소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혜인은 급히 핸드폰을 꺼내 유쿄의 전화번호를 검색한 후 차분히 문자판을 두들겼다.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한국에 오셨을 때 뵌
스즈키님의 딸, 혜인입니다.
오늘 남매들과 고운사에 오니 유쿄님이 생각나
급히 몇 자 안부 올립니다. 사진도 첨부하오니
일견하시길요. 늘 안강하시고 복된 나날이시길 빕니다.
유쿄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니 혜인은 만감이 교차,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마치 자신이 아버지의 심경이 된 듯 야릇한 일체감에 휘말림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고운사 경내를 빠져나와 마악 차에 오르려 할 때였다.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유쿄의 답신이 도착했다.
잘 지내시죠. 지난 번엔 가족들 모두 만나
너무도 반가웠어요. 고운사가 어찌나
유서 깊고 아름다운지
거길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한국엘 다녀 와 무척 기쁩니다.
내년 봄, 벚꽃이 필 때쯤 일본에 한번 오시어요.
스즈키상과 걸었던 벚꽃길 함께 걷고 싶어요.
꼭 초대하겠습니다. 온 가족 늘 평안하십시오.
다정함 가득한 유쿄의 문자는 근원 모를 우울감을 털어내는 마법이었을까. 산다는 일의 허망함,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연민과 그리움, 세월의 흐름에 대한 끝 모를 허무와 슬픔 등이 일거에 사라지고 다시금 그윽한 기분이 몰려왔다.
혜인은 그러한 기분이 좀 더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고운사를 떠나왔다. -「고운사 가는 길」
이별의 빛깔이듯 유독 처연한 가을빛이 더없이 견디기 힘들어 하현은 더욱 일에 몰두하며 여행팀을 이끌곤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그러나 가이드로서 더 이상의 기쁨이 없음은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었다. 4월, 준우와 함께 한 곤명 여행 이후 그녀의 내면에서 진정한 기쁨이란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희한한 일은 1년간의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 3년 차에 접어들었던 진성과의 헤어짐보다 곤명행 단 사흘간의 만남이 가져온 이별이 훨씬 더 저리도록 가슴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 심장이 통째로 구멍이 난 듯, 아니 얼이 빠져나간 듯 그렇게 텅 빈 몸과 맘으로 그녀는 단지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을 뿐인 그런 시간이 흘러갔다. 언젠간 회복기가 오겠지. 그녀는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르며 단지 여행가이드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나날을 이어갔다.
뉴욕의 가을을 거쳐 캐나다의 몇 개 도시를 돌아보는 긴 패키지 일정을 마친 후 대형 그룹을 인솔, 지친 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저녁, 준우에게서 톡이 왔다. 이즈음 되도록 그의 전화나 문자에 응답하지 않으려 애를 썼기에 이제 더 이상은 그로부터 연락이 없으리라 예상했었다.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
소현이 장편을 연재하는 문예지 화보 사진을 보곤 긴가민가 의아해하며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소현의 소재를 확인한 민의 음성엔 짙은 반가움이 묻어났다. 샘, 저 기억하시나요. L중 1학년 마치고 전학 갔잖아요. 그때 샘께서 전학 가서도 공부 잘 하라며 안아주신 게 생각나요. 그럼 생각나고 말고! 소현도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음성은 까까머리 시절의 음성 그대로인데 그새 무려 3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니! 아득한 시간의 흐름에 소현은 가슴이 먹먹해왔다. 민은 그녀의 예상대로 매우 유명한 각자장이 되어있었다. 국내 유수 대학 행정학과를 나와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부업으로 인테리어 일을 병행하여 한때는 상당한 돈도 모았으나 타고 난 끼는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오랜 세월 꿈꿔 오던 각자를 시작하려 모든 걸 정리하곤 산골로 내려와 몇 년에 걸쳐 직접 황토집을 지었다. 남들은 돈을 들여 단시일에 완공할 것을 몇 배나 더 걸려 한 칸 한 칸 손수 지은 것이다. 강한 투지와 집념이 이뤄낸 성과였다. 작업을하는 틈틈이 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시 공부도 시작했다. 우연히 이름난 시인 두 사람이 그의 산방 이웃인 것도 큰 영향을 미쳐 은연중 그의 시작에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었고, 몇 해 전 그 또한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꽤 이름난 시인이 되었다.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현숙
서울 출생이화여대 영어교육학과 졸업일산중학교, 고양중학교에서 8년간 교직생활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 역임현 한국문인협회 감사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 「골고다의 길」)1989년 현대문학 신인상 추천완료(단편 「어둠, 그 통로」)작품 「출모」 「삼베 팬티」「어두워지지 않는 밤」 「가지 않은 길」 「꽃비 내리다」「홋카이도 3월의 눈」 「와디」 「산우」 「히스의 언덕」 「고운사 가는 길」 「운중천의 안개」 「유폐」 「베네세 하우스」 외 다수.장편 『먼 산이 운다』 『흐린 강 저편』 2002년 소설집 『하얀시계』출간 (휴먼 앤 북스) 2010년 소설집 『노을 진 카페에는 그가 산다』 출간 (도서 출판 개미)2013년 장편 『먼 산이 운다』 출간 (문학나무)2018년 소설집 『히스의 언덕』 출간 (도서 출판 개미)2018년 봄호부터 2019년 겨울호까지 계간 『리토피아』장편 『흐린 강 저편』 연재 완료2020년 9월 장편 『흐린 강 저편』 출간 (계간 리토피아)2025년 10월 소설집 『베네세 하우스』(도서출판 도화)2010년 제14회 이화문학상 수상2012년 제1회 아시아 황금사자 문학상 (우수상) 수상2013년 제10회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2021년 제11회 한국소설 작가상 수상
목차
작가의 말
고운사 가는 길 / 9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 / 35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 / 59
비누풀꽃 / 95
엔하이픈 XO / 123
운중천의 안개 / 147
유폐 / 173
스마트소설
그의 세 번째 여자 / 191
탈의 미소 /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