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화려한 언변과 난해한 수사학에서 거리를 두는 점에서 성희는 또한 지성적 예술가다. 『속수무책을 읽다』 시편들 거의 모두가 초월성이 아닌, 삶의 내부를, 혹은 삶의 ‘가장 안쪽’을 보여주는 점에서, 내재성의 승전가를 말하게 한다. ‘좋은 시’의 본령을 드러냈다.
출판사 리뷰
깨끗하다. 정갈하다. 세계에 대한 측은(지심)이 대종을 이루는 가운데, 세계에 마냥 휩쓸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개별화의 원리’에 휩싸인 개별자의 한계성─비극성을 보여줄 때도 감정의 동요를 억제, 담대하게 행과 행을 이어간다. 중립적 자세 및 객관적 자세가 예술가의 기본 덕목인 한 성희는 예술가다.
화려한 언변과 난해한 수사학에서 거리를 두는 점에서 성희는 또한 지성적 예술가다. 『속수무책을 읽다』 시편들 거의 모두가 초월성이 아닌, 삶의 내부를, 혹은 삶의 ‘가장 안쪽’을 보여주는 점에서, 내재성의 승전가를 말하게 한다. ‘좋은 시’의 본령을 드러냈다. 시편들 각각이 군더더기를 보여주지 않은 점, 혹은 많이 쳐낸 점이 고맙다.
꽃의 숨
산에서 안고 온
산국 한 다발
거실 창가에 앉혀놓고
볼 때마다 미안하다
줄 게 물밖에 없어
물만 갈아주는데
낯가림도 않고
유리잔 속 발 담근 꽃
새소리 바람소리 들려주지 않아도
달뜬 숨 몰아쉬며 파르르르
꽃 이파리 흔들며 향기 깝친다
몇 날 며칠 노랑 꽃등 밝히며
풀었다 머금는 넌
작은 몸 다 풀어
온 생, 향기로 몰아간다
천국의 계단
통유리 바깥에서 나는 그녀를 본다
반쯤 눈을 감고 반쯤 고개 숙인
가만히 오른쪽 뺨에 갖다 대는 엄지와 검지는
업의 무게를 모두 덜어낸 듯 날렵하다
몇 세기 동안 그렇게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걸치고 앉아 있어도
척추는 유연하고 사유思惟는 자유롭다, 아니
그녀의 혼은 자유롭다
출구가 없는 통유리 안에서
시간에 갇힌 나를 그녀가 본다
그 여자는 생각이 많다
또 속았다
잘살고 싶어 지문 닳도록 일했다, 우리는
닳으면 갈아 신는 신발이 아니다
아이 젖 물리던 엄마고 한 집안 가장이다
공장 지킨 사람 헌신짝 버리듯 하는 닛토덴코
인적자원 소중히 여긴다는 달콤한 구라,
믿었다
희망퇴직 강요하고 사람 버리고 돈만 챙겨가는
백 년 전, 일제강점기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신 수탈방식 닛토
호구 정부 나서서 그들에겐 특혜 주고 먹튀 눈감아주는
이상한 나라, 아 대한민국
참담한 하루가 충만한지 갑진년 이월 하늘, 푸르고 너그럽다
붙잡을 오라기 하나 없는 허공에 사람들 던져 놓고
아슬아슬 고공농성 개 닭 보듯 구경하시는 평안한 눈들
칼바람에 밥그릇 잡고 쿨럭거리는 목숨
하찮은가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저 계단 내려가고 싶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성희
대구 출생. 2015년 『시에티카』 등단.시집 『괜찮아 괜찮지』가 있음.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작가회의,시에문학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목차
제1부 오래 아프다
08 “살자”라는 경고
10 공정 거래의 무게
12 쓸쓸하게 아름다운
14 고향의 봄, 그 막막하고도 생생하던
16 瓦탑
18 할머니의 코드블루
20 갈고리달
22 속수무책을 읽다
24 엄마는 변신 중
25 재스민
26 밥벌이
28 행복한 날
30 오! 지랄퍼
32 쉿, 대치 중
34 낙장불입
36 빈집
38 지풍기미
40 참을 수 없는 萬 풍선
42 톳재비의 주문
44 쥐 쫓는 법
46 철들이기
48 화순이의 봄
제2부 액정 깨진 핸드폰같이
52 기도
53 꽃의 숨
54 쇠기러기
56 봉선화 뉴스
58 공포
60 집게 핀
62 빛의 유기
64 깨꽃
66 동심
68 돌아가는 중
70 깡그리
72 천둥벌거숭이의 그림일기
74 정구지꽃 피다
76 애기똥풀꽃들의 대화
78 천국의 계단
80 체크무늬 집
82 흔들리는 그루터기
84 나비의 소풍
86 엿 같은 날
88 명자 유혹
90 달그림자
해설
92 마이너리티 보고서│박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