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파랑이 일고』(제4회 넥서스경장편작가상 우수상) 임은희의 두 번째 장편소설. 당신도 나도 어떻게든 뒤얽힌 세상. 나와 내 밖을 칼같이 갈라 채우는 욕심. 퍽 가까워 쉬 저지르는 폭력. 상처 입힌 가족, 상처받은 가족. 과거에서 서성이는 자들. 죽음으로 나뉜 이들이 빨려 든다. 안전지대 010 폐가로. 얽매일 시간도 막막한 시간도 아닌 생생한 시간으로 와.
출판사 리뷰
몸빛 만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진, 글쎄?
죽은 요리사와 산 버섯이 차린 아슬한 식탁.
준비됐나요, 첫 피실험자가 될?
당신도 나도 어떻게든 뒤얽힌 세상.
나와 내 밖을 칼같이 갈라 채우는 욕심.
퍽 가까워 쉬 저지르는 폭력.
상처 입힌 가족, 상처받은 가족.
과거에서 서성이는 자들.
죽음으로 나뉜 이들이 빨려 든다.
안전지대 010 폐가로.
얽매일 시간도 막막한 시간도 아닌 생생한 시간으로 와!
『파랑이 일고』(제4회 넥서스경장편작가상 우수상) 임은희의 두 번째 장편소설
『몸빛 만찬 사라ㅈ』경기문화재단 2025 경기예술지원 <경기문학 출간지원> 선정작
제물로 바쳐져 죽고 태어나기만 일곱 번 반복한 아기.
드디어 달리 환생하다, 은비버섯으로!
모두가 분별을 허물고 하나의 몸이 된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폐가를 품은 안전지대에서.
죽은 요리사와 산 버섯의 아찔한 접촉.
이제, 버섯의 소망이 이루어질 시간!
죽은 자와 산 자가 하나 둘 셋 홀린다.
지금 당신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현재의 길을 잃고 과거에 잠긴 채 초여름에 떠난 자들.
일고 여덟 아홉… 모여든다
눈보라에 휩싸인 당근케이크 폐가에.
당신은 몸을 내주고 은비버섯은 여로에 오른다.
여행을 마친 당신의 현재는 당신 몫.
지난날에 쥐인 채로든 놓여난 채로든.
결국 만찬에 어릴 빛은 당신 몸빛.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어떻게 가닿는가
생과 사를 잇는 목소리가 들려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영화 「Ser Isla(섬이 되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 수상, 임은희 작가의 신작!
『몸빛 만찬 사라ㅈ』에는 생과 사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얼핏 죽은 듯하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은 한동안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또 어떤 생은,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이 모호하다. 다만, 지금이 몇 번째 생인지만 알 뿐이다.
이번만 견디면 되리라는 예감이 들어.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 어떤 쓸모로 태어난 것인지 아직 모르겠어.(24p)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쓸모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 ‘쓸모’는 누구에 의한 것일까. 소설은 때로 ‘쓸모’에 집중한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어떤 이는 자신을 잃는다. 다른 이는 폭력의 그늘 안에서의 삶을 익숙함으로 채운다.
어느덧 산 자와 죽은 자는 각자의 이유로 갈피를 잃는다. 목적 없이 발길이 이끄는 곳으로 걸으니 보이는 것은 폐가. 그곳에서 은빛 만찬을 한다. 삶과 죽음이 마주한 식탁에 앉아 빛은 그림자를, 그림자는 빛을 품는다.
갈기갈기 찢기고 푹 익어 물크러진 나는, 열한 개의 존재 속을 떠도는 중이야.(271.p)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만찬 속에 기묘한 위로가 흐른다. 살아 있는 것은 살아있는 그대로, 죽은 것은 죽은 것 그대로 자신만의 빛을 내뿜는다. 모두 다른 듯하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삶.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반짝이는 무언가를, 서로를 잇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직 소설가 임은희만이 할 수 있는 낯선 연대,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 본질에 관한 탐구. 작가의 만찬 초대에 응하는 순간,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코가 붉다.
얼핏얼핏 뺨이 빛난다.
감긴 눈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지하철의 긴 좌석 중앙에 어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반듯이 세우고 앉아 눈물짓는다. 바로 맞은편에 방금 착석한 윤오는 의문스럽다. 교실에서 예의 2교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여기에서 저러고 있는지. 더구나 저 나이에 눈까지 감고 소리도 없이 울다니.
하도 조용히 우는 나머지, 아이 양옆의 승객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긴 흑발을 얼굴에 휘장처럼 드리운 여자는 긴 다리를 내뻗고 깊은 잠에 빠졌다. 반바지 아래로 허벅지를 드러낸 근육질의 청년은 손바닥 크기의 휴대전화에 빠졌고. 딴 세계에 빠진 둘 사이에 아이가 책갈피처럼 껴 있다. 윤오가 머리를 갸웃한다. 워낙 아이가 가늘어서, 있는 줄도 모르고들 앉은 것인지.
지금 나의 발치에 돋은 식물이 그 버섯이라면?
부위마다 내가 들은 대로이다.
영롱한 은색 갓에 연보라색의 우둘투둘한 점들이 솟았다. 갓 밑면은 미묘한 색이 어우러져 복잡하고도 세밀한 미로를 형성하였다. 걀쭉한 흰색 자루에 달린 턱받이는 작은 구슬이 알알이 박힌 모양이다. 진주 목걸이를 건 것 같다. 밑동은 통통한 물고기가 자루를 덥석 문 듯한 형태이다.
내 눈길을 특히나 사로잡은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갓에 형광 물질을 발라 놓은 양, 둥근 갓만 동동 뜬 것처럼 보인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 버섯도 어스름 속에서 땅 위에 살짝 떠 있다. 앙증맞은 우주선 모형 같다.
무시하고, 가던 길로 내처 가는 것이 나을까.
죽을 쑤려면 곡식이 필요하겠으나 나에게는 버섯과 물뿐이다. 고로 이 두 가지만으로 죽을 만드는 중이다. 은비버섯은 9인분의 죽이 되기를 원하였으니까. 우물에서 길어 온 물을 버섯이 담긴 큰 솥에 반쯤 차게 붓고, 긴 나무 주걱을 한 방향으로 저었다. 그리하자 신기하게도 차츰차츰 점성이 생기어 제법 죽의 됨됨이를 갖추어 갔다. 어쩌면 제 몸에 으늑히 곡식을 품은 버섯이었는지도.
반 뼘밖에 안 되던 버섯은, 다 찢고 나니 제 몸체의 스무 배쯤으로 불어났다. 찢으면 부피가 늘었다. 몇 번 더 찢으면 늘기를 그쳤다. 스스로 9인분을 어림이라도 하듯이 적당한 양에 이르면 더 이상 붇지 않았다. 가리가리 찢길 적마다 가지각색의 향을 뿜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은희
한국에서 나 멕시코와 한국에서 살았다. 멕시코국립영화제작학교(Centro de Capacitacion Cinematográfica) 영화연출학과 졸업 후, 영화감독 및 멕시코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ACC) 회원으로 활동했다. 스페인어로 쓴 대본 <파문>, <갑각류를 요리하는 빨간 조리법>, <섬이 되다>, <뚫어!>, <할머니 맘보>는 멕시코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직접 연출했다. 영화 <Ser Isla(섬이 되다)>로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 및 멕시코영화아카데미상인 아리엘Ariel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파랑이 일고』로 넥서스경장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몸빛 만찬 사라ㅈ』로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학 출간지원에 선정됐다.
목차
만찬 초대장 5
시점 9
쓸모 있기 13
두고두고 되씹게 되는 25
흩어져 하나 되다 37
닫힌곡선 43
첫 피실험자 68
죽음 앞의 말 70
생의 질 84
꺼지려 켜진 불 87
시간 그물 103
돋을새김된 죄 107
단꿈에 빠진 아홉 숟가락 120
특이 손상 125
끝마저 지워질 끝 133
냉장고에 보관된 고래 135
천사의 자전거 타기 150
검게 먹혀든 거울 155
같이 보고 싶어 164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할 순간 169
무엇과 겨루고 있니 186
나를 위해 너를 씻기다 190
부패 그 본연한 흐름 195
제자리걸음의 방향 200
두려움을 나눌 존재 207
어긋난 제구실 214
나도 모르는 나의 꼬리 220
눈 맞기 224
취한 폐가 229
잃었기에 만나는 232
호수의 제안 239
무거운 발 가벼운 머리 241
손님 감상 246
길 잃은 자를 위한 식탁 253
은빛 만찬 262
은비버섯의 여행 271
통과 283
잠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