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권두언
*이 시대 소설, 그 비효율적 치열성의 반란
이영철(소설가·청어출판사 대표)
왜 소설을 쓰는가?
어느 여름날 저녁 CEO 모임 후, 창가에 서서 야경을 보고 있는데 C가 다가와 와인잔을 부딪쳤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가고 그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소설 쓰면 돈이 돼요? 나는 책만 쳐다봐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더만… 그 어려운 걸, 돈도 안 되는 걸 도대체… 뭣 땜에 쓰는 거예요?”
그는 매스컴을 자주 타는,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 사람과 사람 간에 네트웍을 용케도 잘 연결하는 유명인사였다. 그래서 그의 주변엔 항상 사람이 넘쳐났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 와인 모임도 그가 주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전문 분야 구색 맞추기로 나를 초대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평소에 별말이 없는 나를 눈여겨본 듯했다. 몇 번의 만남으로 친해졌다고, 그런 무례한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해도 이해할 거라는 것쯤은 간파한 듯했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소설이 더 이상 생계수단이 되지 못한 건 오래전이다. 전업 작가로서 소설이 생계수단이 되는 작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C의 질문에 다시 본질을 들여다본다.
소설은 원초적으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정신노동의 결과가 곧바로 실적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경제적 보상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들은 그 비효율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다. 해마다 작가들은 증가세이다. 그렇게 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생산과 효율이 닿지 않는, 비례교차점이 없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그곳에는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사회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시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대부분이 효율과 속도가 선(善), 지연과 망설임은 악(惡)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감정조차도 수치로 환원되는 시대 속에서, 소설은 그 흐름에 오히려 역행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가들은 소설이란 수단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 이 모순은 취미나 자기만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생산적 존재’이기 이전에 ‘사유하는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오래된 본능이다.
소설은 또 하나의 세계를 해석(analysis)하고, 동시에 그 세계에 저항(resistance)한다. 소설은 체제의 중심점이 아닌 아웃사이더에서, 그 변두리의 언어로 중심을 흔든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의 저항하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 가진 윤리이자 속성이자 숙명이다. 이때 소설은 지식인의 ‘취향’이 아니라, 모순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소설인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노동, 예술, 연대 혹은 침묵조차 존엄의 표현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소설은 조용하지만 혁명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표현방식이다. 소설은 말[言語]과 달리 결코 흩어지지 않고 영구적이다. 따라서 소설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관조의 침묵 속에 스스로 이정표 역할을 한다.
또한 달리보면 소설은 타인에게 닿는 일이다.
그러나 그 닿음은 즉각적이고 즉흥적이지 않다. 소설은 전방위적인 시간의 영역대를 오가며, 부재(不在)를 전제로 한다. 그 공감 속에서 타인의 자리를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자기 존재의 경험치를 나타낸다. 또한 그 경험을 전제로 한 존엄은 ‘주어진 고귀함’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애끊는 심정을 작가의 울분에 찬 필체로 ‘타인을 공감’하는 것과 같다.
소설은 그 능력을 언어로 단련하는 일이다.
소설의 가치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시대일수록, 작가는 이 ‘비효율의 치열성’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소설은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의 ‘궁뎅이 붙임’이며, 효율의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파고의 기록이다.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망설임과 포기라는 창작의 고통 속에서 작가는 냉혹한 자기의 결핍을 배운다. 이때의 이 느림과 망설임의 과정이야말로 소설가들의 고통이자 또 다른 희열이다. 그들은 결핍과 망설임 속에서 희열의 가치를 재해석해 내는 것이다.
앞으로의 소설은 어떤 방향을 가질 것인가?
방향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위나 감상적인 교훈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작금의 소설은 이 세계에서 어떤 흐름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기술이 언어를 대신하고, 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소설은 여전히 ‘인간의 체취’를 지닌다. 인간의 불안과 상실, 연대의 가능성을 한 작가의 언어로 새기지 못한다면, 소설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소설의 문장은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수사만이 답이 아니다. 한 자 한 자 각인(刻印)하듯 타인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작가의 진지함과 엄숙함이 드러나야 한다. 그것만이 인공지능이 모든 걸 대변하는 시대에서 차별화될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시간’을 되찾는 일이다.
일률적인 효율의 질서 속에서 결코 생산적이지는 않지만, 소설은 바로 그 무생산 속에서 자기 존재의 윤곽을 확인한다. 소설은 그렇게 시대의 질서에 맞서는 가장 오래된 반란으로, 이단아로 남는다. 소설이 인간 활동의 중심으로 돌아올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것이 이단아들의, 아웃사이더들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하나의 돌덩어리로 편리함을 위해 집을 짓거나 다리를 놓기(文明)도 하고,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조각을 새기거나 탑(文化)을 쌓기도 한다. ‘효율성’을 찾느냐, ‘공감’을 찾느냐는 선택자의 몫이다.
소설은 C의 물음처럼 “돈도 안 되는 걸 왜 해요?”라는 비생산적이고 무위한 일이지만, 인간으로서 내면의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소설을 읽고 깊이 공감해 준다면, 변화될 수 있다면… 거창한 담론을 제외하고, 그 단순한 이유 하나면 족하다.
그 이유 하나가, 지금도 누군가 책상 앞에 앉게 한다.
「특집 1」 해외문학
*호앙밍뜨엉과 『시인, 강을 건너다』
배양수(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
호앙밍뜨엉의 장편소설 『시인, 강을 건너다』는 개인의 삶과 역사의 격랑을 교차시켜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경험은 단순히 한 사람의 운명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시대 전체가 겪은 정신적·육체적 굴곡을 문학적으로 체험하는 일에 가깝다.
작품 속 주인공은 시인이자 지식인으로, 그는 언어와 양심으로 시대와 맞서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다. 결국 그는 ‘강을 건너는 자’로 그려지는데, 여기서 강은 현실의 공간이자 역사와 양심, 체제와 자유, 생과 사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로 제시된다.
「특집 2」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특집
*한강 작가의 아르카디아
이덕화(평택대 명예교수)
1. 한강의 삶 정치학
한강 작품에서 인간 존재가 처해 있는 부조리한 선험적 조건은 가족 내의 가부장적 폭력과 국가 폭력,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에 따른 인간 소외를 통해서 제시된다. 또한 한강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런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 인물의 과거를 추적,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국가 폭력 혹은 가부장적 폭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한강은 거대 담론보다는 개인 삶의 존재론적 토대를 추적함으로써, 실천 가능한 것들을 삶 정치학을 통해서 보여준다. 『다중』의 집필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오늘날의 평화는 고대 로마 시대처럼 실제적이며 항상적인 전쟁 상태 위에 군림하는 허위적 평화라고 했다.
한강이 인식하는 국가 폭력 혹은 가부장적 폭력,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소외의 추적은 그 인물의 현실적 토대 위에서 탐구된다. 전 지구적 가난과 불평등, 인간 소외는 이념적 갈등이나 전쟁으로 인해 악화하고 어떠한 해결책도 낼 수 없다. 이러한 삶 정치적 불만들로 인해 그런 불만들이 터 잡고 있는 삶의 조건들을 깊이 있게 사색하고 그것들과 씨름할 수 있게 한다. 푸코는 존재론적 탐색을 우리에게 부과된 한계들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가진 실험으로 언급했다.
한강은 이를 위해 작품 속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 탐색을, 과거를 통해 보여준다.
목차
권두언
이영철 이 시대 소설, 그 비효율적 치열성의 반란 2
특집
「특집 1」 해외문학
배양수 호앙밍뜨엉과 『시인, 강을 건너다』 10
「특집 2」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특집
이덕화 한강 작가의 아르카디아 18
「특집 3」 작가포럼 세미나
이덕화, 김미수, 이성아, 김보경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마중』
김미수 작가와의 대담 32
제5회 작가포럼문학상 작가 자선작
김지수 [신작] 그 바닷가 섬 그늘에 41
단편소설
성민선 늑대를 위하여 66
박지음 사막의 등대 81
안중익 손의 기억 97
이중섭 다린의 초승달 112
이언주 샴발라 127
이하언 푸른 그림자 143
제3회 작가포럼 신인상
은미준 하프 타임 163
미니픽션
안영실 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188
엄현주 반짝반짝 별들이 192
이만주 창평면 이발사 196
이찬옥 과테말라 200
최미정 오도독 204
에세이
김바롬 피사로의 타일 210
배성혜 추석 연휴에 찾아온 불청객 214
최종미 템플스테이 217
제2회 성주재단문학상 작가 자선작
서기향 [신작] 그것처럼 보이는 혹은 그것처럼 보는 221
타장르 산책하기
영화
한상훈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영화와 현실 사이의 관계를 심오한 수준으로 탐구한 걸작 244
연극
김화영 하나의 공연과 또 하나의 연습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