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낭만주의 시인이자 참여문학가, 사상가였던 하인리히 하이네가 인생 마지막 시기, 자신의 삶을 지배한 고통과 감정, 그리고 시대와 역사에 대한 지적 통찰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원래 자신의 대표 사상서인 《독일에 관해서》의 개정판에 싣기 위해 쓴 글로, 그 책에서 보여 준 급진적 사상을 수정하고 자신의 마지막 입장을 고백한다.
출판사 리뷰
하이네, 인생 마지막 고백을 담다
《고백록》은 하이네가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며 쓴 자서전적 작품이다. 이 책을 쓸 당시, 그는 척추 결핵 또는 납 중독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인해 소위 ‘매트리스 무덤’에 갇혀 지냈다. 거의 눈이 멀고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비서에게 구술하여 받아쓰기로 완성한 《고백록》. 그럼에도 이 책에는 하이네의 날카로운 시선이 살아 번득인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밝힐,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그 권리를 주저하지 않고 행사할 것이다.”
본래 하이네는 이 글을 자신의 대표 저서인 전작 《독일에 관해서(De l’Allemagne)》(1834)의 개정판(1855, 파리)에 실으려고 쓰기 시작했으나, 서문으로 담기에 넘치는 생각을 모두 펼치기 위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독일에 관해서》(1834)는 스탈 부인의 동명의 책 《독일에 관해서》(1813)의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 같은 제목을 사용한 책이다. 스탈 부인은 이 책에서 몽상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독일을 묘사해 유럽의 독일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하이네는 낭만주의의 끝을 고하고 독일의 역동적인 철학적·혁명적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한다.
《고백록》에서도 하이네의 낭만주의 비판은 계속된다. 스스로 낭만주의의 서정성을 극치로 끌어올린 시인이었던 하이네는 이 책에서 자신을 “낭만주의의 마지막 시인”이라 말한다. 이와 함께 “독일의 서정시는 나와 함께 끝났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독일 현대시가 나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선언한다. 중세적 향수와 비현실적 환상에 침잠한 과거의 유물, 낭만주의로부터 벗어나 첫 근대인을 자임한 것이다.
그런 한편, 《독일에 관해서》에서 보인 신에 대한 생각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아, 내가 한때 독일 철학에 관해 출판한 것 모두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없앨 수 있다면!”
《독일에 관해서》에서 하이네는 판테이즘, 즉 범신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신이 가장 장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곳은 인간”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20년 후, 병으로 인해 눈이 멀고 몸이 마비되어 “매트리스 무덤”에 갇힌 그는 이제 고통의 시간을 신과 함께 보내며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기독교적 연민이 묽은 수프처럼 빈약하다 할지라도 헤겔의 변증법이라는 끓는 갈색의 거미줄보다 쇠약해진 인류의 마음을 더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고백록》에서 하이네는 자신의 질병과 임박한 죽음마저도 냉소적이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성찰한다.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담긴 자기 객관적 서술 방식이 죽음 앞에서도 녹슬지 않은 것이다. 그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아이러니'라는 무기를 놓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고통스러운 삶을 지적인 예술 작품으로 변주해 냈다. 이 책은 시대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 낸 지식인의 가장 솔직하고도 우아한 고백이다.
광기 어린 2월의 사건으로 현명한 자의 지혜가 곤두박질하고 선택받은 자들은 바보로 여겨졌다. 끝에 있던 자들이 제일 앞으로 오고, 밑에 있던 자가 가장 위로 오르고, 사물과 생각이 뒤집혔다. 정말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었다. 거꾸로 뒤집혀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기에 내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그 사건으로 나는 이성을 잃었을지 모른다. 또한 내가 광기에 휘둘리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반대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가 광기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다시 이성을 되찾지 않았던가! 혁명 시기에 나는 다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이었다. 나는 신의 피조물이라는 울타리로 돌아와 세계의 운명을 정하시고 나의 세속적인 일도 처리해 주시는 높은 곳의 전능하신 분에게 다시 경의를 표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완성된 원고를 보던 나는 이상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원고가 낯설고 아이러니하며, 심지어 사악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섬뜩하고도 당혹스러웠다. 저자와 책이 더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는 무신론에 대한 혐오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즉 무신론자들 모두에게 헤겔 철학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당시 나는 젊고 자부심이 강했다. 할머니가 말했던 주님은 하늘에 계신 그분이 아니라 이 지상에 있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헤겔에게서 배우며 오만한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 나 자신이 살아 있는 도덕률이고 모든 권리와 권한의 원천이었다. (…) 그러나 인색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몸도 지갑도 아끼지 않는 신의 모습을 연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엄청나다. 그런 역할을 품위 있게 수행하는 데 특히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돈과 건강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848년 2월 어느 날 나는 이 두 가지 소품을 모두 잃어버렸고, 나의 신성은 처참한 상황에 부닥쳤다. (…) 나는 가난한 사람일 뿐이고 게다가 더는 건강하지 않으며 심지어 중병에 걸렸다. 그래도 나는 축복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는 고통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탄식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정 이후,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마틸데가 휴식을 취할 때 그렇다. 감사합니다, 주님!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마음껏 기도하고 흐느낄 수 있다. 또 지극히 높은 분 앞에서 나는 온 마음을 열고 아내에게도 숨기곤 했던 많은 것을 그분께 말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나의 고백을 들어 주시는 독자 여러분은 왜 내가 헤겔 철학에 관한 작업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지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출판하는 건 독자에게도 저자에게도 유익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내가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연민이 묽은 수프처럼 빈약하다 할지라도 헤겔의 변증법이라는 끓는 갈색의 거미줄보다는 쇠약해진 인류의 마음을 더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모두 고백하겠다. 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물론 미신이겠지만, 나는 두려웠다. 어느 고요한 겨울 저녁, 벽난로의 불이 강렬하게 타오를 때였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헤겔 철학에 관해 쓴 원고를 타오르는 불에 던졌다. 불붙은 원고가 끽끽 이상한 소리를 내며 굴뚝으로 날아 올라갔다.
그렇다, 거장께서 내게 퍼부으신 조롱과 신랄한 풍자는 끔찍하고, 그분의 농담은 두렵고 잔혹하다. 나는 그분의 우월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그분 앞에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내게 그런 최고의 창조력이 없다 하더라도, 내 영혼 안에서 이성은 영원히 빛을 발하고 있다. 게다가 법정에서 경건성 여부를 따지며 신의 장난을 비판받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무엇보다 겸손한 제안 하나를 감히 드리고자 한다. 불쌍한 제자를 괴롭힌 신의 그 잔혹한 농담은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년이 넘지 않았는가, 이제는 지루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하인리히 하이네
괴테, 실러와 더불어 독일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낭만주의풍의 시를 쓴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여러 작곡가가 그의 시를 노랫말로 삼아 아름다운 성악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서정시인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하이네는 ‘3월 이전’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서 신문과 잡지 기사를 비롯하여 소설, 드라마, 수필, 여행기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당대의 현실을 질타했던 참여 지식인이자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 비판, 즉 독일의 정치와 정신세계에서 나타나는 반동적 요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에 직면하게끔 했고, 프랑스 7월 혁명(1830)에 열광했던 그는 결국 1831년 독일을 떠나 파리로 이주했다. 그는 곧 파리의 살롱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고,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조르주 상드, 외젠 들라크루아, 프레데리크 쇼팽, 프란츠 리스트 등 당시 파리 문화계의 인사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하이네는 늘 독일을 그리워했고 그리움은 매번 고통으로 남았다. 그의 작품은 독일에서 검열과 압수의 대상이었고, 프로이센 정부는 하이네를 추방할 것을 프랑스 정부에 꾸준히 요구했다. 향수병에 더해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에 시달리던 하이네는 1856년 2월 17일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여행 화첩》, 《노래의 책》, 《로만체로》, 《파우스트 박사. 무용 시》, 《고백록》, 《망명 중의 신들》, 《루트비히 마르쿠스》, 《1853년과 1854년의 시》, 《루테치아》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목차
들어가며
고백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