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는 고려의 전시과를 ‘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제도’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전시과를 토지 분급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않는다. 전시과는 토지와 인구를 ‘호戶’ 단위로 결합해 조세와 국역을 조직하고, 국가가 사회를 운영하도록 만든 통치의 핵심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고려를 조선으로 가는 ‘과도기’가 아닌 한국 중세의 전형이 마련된 시대로 재규정한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고도 날카롭다. “토지를 어떻게 나누었는가”가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조직했는가.” 전시과를 다시 읽는 순간, 고려의 토지제도는 단편적 제도사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논리로 확장되며, 고려를 이해하는 기본 관점이 달라진다.
출판사 리뷰
고려 관리들에게 단순히 토지를 나눠준 제도?
전시과로 통치의 핵심 구조를 읽다
전시과, 땅이 아니라 국가를 설계하다
우리는 고려의 전시과를 ‘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제도’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전시과를 토지 분급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않는다. 전시과는 토지와 인구를 ‘호戶’ 단위로 결합해 조세와 국역을 조직하고, 국가가 사회를 운영하도록 만든 통치의 핵심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고려를 조선으로 가는 ‘과도기’가 아닌 한국 중세의 전형이 마련된 시대로 재규정한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고도 날카롭다. “토지를 어떻게 나누었는가”가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조직했는가.” 전시과를 다시 읽는 순간, 고려의 토지제도는 단편적 제도사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논리로 확장되며, 고려를 이해하는 기본 관점이 달라진다.
논점 전환: ‘식민사관 반박’을 넘어, 고려 사회 내부의 작동 원리로
저자는 기존 토지제도 연구가 식민사학의 전제를 반박하는 데 큰 성과를 냈으며, 이제는 이러한 기존 연구의 성과를 기반으로 토지제도가 고려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운용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유인가, 사유인가” 또는 “소유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토지제도가 실제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운용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 개념으로 제시되는 것이 ‘입호충역立戶充役’이다. 국가는 사람을 개인으로 직접 파악하기보다 ‘호’로 편제했고, 그 호를 통해 조세와 역을 부과하며 재정을 마련해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전시과는 바로 이 원리 위에서 기능했으며, 고려 국가 운영의 실질적 메커니즘이 재구성되었다.
‘주어진 공간’의 조건: 고려적 변용의 논리
이 책은 고려의 토지제도를 중국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고려가 처한 지형과 환경, 생산 조건이라는 ‘주어진 공간’ 속에서 조율한 결과로 조명한다. 즉 토지제도는 상층부의 추상적 설계만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의 조건, 지역 구조와 행정적 현실 속에서 구체화되며 변용되었다. 이 관점에서 토지는 단지 경제 자원이 아니라, 국가가 재원을 파악하고 배치하며 질서를 만들어가는 통치의 무대이자 권력 배분의 매개로 자리한다.
공/사와 왕토 사상: 도식이 아닌 ‘상대적 범주’
그 연장선에서 저자는 ‘공과 사’와 ‘왕토 사상’을 도식적 구호로 두지 않는다. 공과 사는 고정된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제도 운용 과정에서 서로 교차하고 절충되며 상대적으로 작동한 범주였다고 본다. 동일한 토지를 둘러싸고도 경작 주체(점유·경작), 직역자(수조), 국가(분급 권한·이념)가 서로 다른 논리로 권리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저자는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공전과 사전 논쟁보다,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조정되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시스템으로 보는 전시과: 토지–호–직역의 결합
전시과 논의는 제도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전시과의 설치·정비 과정과 더불어, 양반전·군인전 같은 지목, 전정·양전·수취 단위의 조직 방식, 직역과 토지의 결합을 함께 다루며 토지제도사를 사회경제사로 확장한다. ‘전시과=분급제’라는 단선적 이해를 넘어, 토지–호–직역이 결합된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서 전시과 체제의 내적 동학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다시 말해 전시과는 ‘나누어 준 토지’가 아니라, 국가가 재원을 관리하고 지배질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농장과 지배층: ‘재편’의 메커니즘
책의 후반부는 고려 후기의 변화로 초점을 모아간다. 농장은 흔히 ‘체제 붕괴’의 징후로 설명되어왔지만, 이 책은 이를 ‘체제 재편’의 메커니즘으로 읽는다. 지배층은 관직과 직역전의 확보, 왕실·유력 가문과의 혼인 네트워크, 그리고 농장의 확장을 결합해 정치·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기반을 재생산했다. 농장 경영 역시 단일한 형태로 환원되지 않고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며, 이러한 내적 역동성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역사학의 미래를 보여주는 선구적 학술서
이 책은 전통적인 문헌 해석(질적 분석)과 대규모 데이터 패턴 분석(양적 분석)을 결합한 ‘혼합 연구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선 방대한 데이터를 네트워크, 시각화,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물은, 고려 사회가 조선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동학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대중에게는 역사학 연구에도 디지털과 인공지능 도구가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전근대의 개인과 호는 국가의 직역·호구 정책을 통해 파악되는 동시에, 가계나 가문의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존재임을 재확인했다.
이제 ‘역사학 빅데이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축적된 디지털 자료 앞에서, 질적 분석의 장점을 유지한 채 양적 방법론을 접목하는 ‘디지털 역사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고려는 단순히 이전 시대의 혼란을 정리하거나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과도기적 사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독자적이고 견고한 정치 구조와 사회경제적 질서를 형성한 역사 공간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상국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 중세 사회경제사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족사와 역사인구학, 디지털 역사학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의 호적대장 전산화 작업에 참여했으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홍콩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다. 아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과 디지털 역사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Digital+Humanities》의 공동 편집인이며, 가족사와 역사 인구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History of the Family》의 편집위원이다. 현재 디지털 역사학의 창출과 확산을 위해 역사학 기반 학제 간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AI와 역사학》, 《The Future of Historical Demography: Upside down and inside out》(공저), 《한국 역사인구학 연구의 가능성》(공저),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사(士)》(공저), 《디지털 인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이 밖에 해외 저명 학술지인 《Social Science History》, 《History of the Family》, 《Journal of Family History》,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Scientific Data》, 《Expert Systems With Applications》 등에 여러 논문을 게재했다.
목차
책머리에
감사의 말
1. 서론
2. 재원: 토지와 인구
……… [ 1. 토지 | 2. 인구 ]
3. 이념: 소유 관계, 공과 사, 그리고 왕토 사상
……… [ 1. 소유 관계 | 2. 공과 사의 외연, 왕토 사상 ]
4. 제도: 전시과 설치
……… [ 1. 기원: 역분전 | 2. 전시과 제정 및 정비 ]
5. 지목: 양반전, 군인전
……… [ 1. 양반과 양반전 | 2. 군역의 차정과 군인전 ]
6. 운용: ‘입호충역’과 직역전
……… [ 1. 전정과‘ 입호충역’ | 2. 직역전의 경영 ]
7. 재편: 지배층의 재생산 전략과 농장
……… [ 1. 지배층의 형성과 계승: 전략적 혼인 | 2.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 농장 ]
8. 정리 및 남은 과제들
주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