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인문,사회
극우의 시대  이미지

극우의 시대
정의를 외치는 극단적인 사람들
이글루 | 부모님 | 2026.03.31
  • 정가
  • 20,000원
  • 판매가
  • 18,000원 (10% 할인)
  • S포인트
  • 1,000P (5% 적립)
  • 상세정보
  • 15.2x22.5 | 0.525Kg | 404p
  • ISBN
  • 9791199457171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품절된 상품입니다.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지난 반세기 동안 공화당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화해왔는지 추적하면서,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지배된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정치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뉴트 깅그리치와 조지 W. 부시에서 코크 형제와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며 공화당이 극우 정당으로 치닫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정파 대결로 혼란을 겪던 공화당과 분열되어 있던 미국 기업계가 서로 갈등하며 얽히고설켜 있었던 과정에 주목한다.

사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기업계가 선호하는 정당이었고, 20세기 내내 기업계의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폴 하이드먼은 공화당의 역사에서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공화당은 훨씬 더 보수적인 정당으로 변화했다. 둘째, 공화당 내에서 훨씬 더 심각한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 셋째, 공화당은 미국 기업 지도자들과 점점 더 빈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또 폴 하이드먼은 미국의 정당 체계와 미국 기업계의 핵심 조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주목한다. 이것이 공화당이 실질적으로 변화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출판사 리뷰

매카시에서 트럼프까지,
극우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 돈이 정치를 좌우하는 시대
★ ‘메이베리 마키아벨리’의 시대
★ 뉴트 깅그리치의 ‘공화당 혁명’
★ 히스패닉 유권자와 ‘히스팬더링’
★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간 애국자들
★ ‘레이건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 ‘공화당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
★ 트럼프의 선동 정치, 티파티의 반동 정치
★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한 ‘레이건 민주당원’
★ 트럼프는 공화당의 극우화가 빚은 정치적 산물이다

1950년, 매카시는 자신이 국무부에 근무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십자군 운동’을 의심하는 자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순진한 앞잡이 혹은 공산주의의 음모에 적극 가담한 공범으로 몰아세웠다. 공화당 버몬트주 상원의원 랠프 플랜더스는 상원 본회의장에서 매카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히틀러의 등장이 연상된다며 매카시의 ‘선동 정치’를 규탄했다. 결국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매카시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상원은 매카시가 동료 의원을 경멸했다는 혐의로 매카시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상정해 가결했다. 그 후 매카시는 약 2년 반 동안 상원에서 외면 받으며 떠돌다가 1957년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약 60년이 지난 뒤, 또 다른 극우 선동가가 더욱 강경한 태도로 등장하게 된다.
2015년, 트럼프는 대선 출마 직후부터 미국 기업 엘리트들과 ‘정치적 성장클럽’과 코크 형제 같은 보수 성향의 친(親)기업 단체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기업계 내 반대 기류는 계속되었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국회의사당 폭동으로 트럼프는 매카시처럼 공화당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물로 낙인찍혔다. 수많은 사람은 트럼프가 정치적 파멸을 맞으리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했고, 전국적으로 각 주의 당 조직은 이전보다 더욱 트럼프주의적으로 변모했다. 2024년,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공화당을 자신의 통치 체제에 적응시켰고, 공화당 전체를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전례 없는 과정을 이어갔다.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개인 중심 정치’를 구축한 것이다.
『극우의 시대』는 지난 반세기 동안 공화당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화해왔는지 추적하면서,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지배된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정치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뉴트 깅그리치와 조지 W. 부시에서 코크 형제와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며 공화당이 극우 정당으로 치닫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정파 대결로 혼란을 겪던 공화당과 분열되어 있던 미국 기업계가 서로 갈등하며 얽히고설켜 있었던 과정에 주목한다. 사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기업계가 선호하는 정당이었고, 20세기 내내 기업계의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폴 하이드먼은 공화당의 역사에서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공화당은 훨씬 더 보수적인 정당으로 변화했다. 둘째, 공화당 내에서 훨씬 더 심각한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 셋째, 공화당은 미국 기업 지도자들과 점점 더 빈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또 폴 하이드먼은 미국의 정당 체계와 미국 기업계의 핵심 조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주목한다. 이것이 공화당이 실질적으로 변화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제1장은 미국 기업가 단체의 해체와 분열을 살펴본다. 이 분열은 정치적으로 쪼개진 자본가 계급을 낳았고, 그 일부는 공화당 내 반란 세력을 후원하게 된다. 제2장은 미국에서 정당이 힘을 잃게 된 배경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빈껍데기 정당’으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제3장은 뉴트 깅그리치가 ‘공화당 혁명’을 일으키며 공화당을 극단적으로 변모시킨 과정을 살펴본다. 제4장은 조지 W. 부시가 공화당을 재편하고 당 주류 세력과 우파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지만, 부시 2기 행정부 말기에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한 당내 분열을 겪었던 과정을 살펴본다. 제5장은 보수 정치 네트워크가 세력을 확장하며 공화당을 지배하고, 당의 공식 조직이 아닌 ‘그림자 정당’들이 공화당의 의제를 주도하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제6장은 공화당과 그 정당을 지배해온 기업 엘리트들이 트럼프에게 굴복하게 된 과정과 트럼프가 ‘개인 중심 정치’를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본다.

‘레이건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공격적인 보수주의 정치 스타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뉴트 깅그리치는 레이건 행정부의 타협적인 노선에 불만을 품고 공화당을 훨씬 더 완고하고 보수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공화당을 보수 이념에 기초한 당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깅그리치는 레이건이 재정적자를 일부 메우기 위해 민주당 주도의 세금 인상 법안에 서명한 것과 1982년 중간선거에서 레이건 행정부와 연준 의장 폴 볼커가 추진한 긴축통화 정책으로 인해 공화당이 하원선거에서 참패했다고 주장했다. 깅그리치는 레이건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레이건의 예산안이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거기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정책에서도 레이건이 자유주의에 물들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깅그리치에게 1980년대는 ‘레이건 혁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였다.
1994년 ‘공화당 혁명’은 절정의 순간으로, 깅그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이 1952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 과반수를 차지했다. 1990년대에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금을 모으고 당내에 재분배하는 깅그리치의 능력 덕분이었다. 당 조직의 해체와 선거자금 조달 체계의 혁명적인 변화 이후 바뀐 게임의 규칙을 꿰뚫어본 깅그리치는, 확고한 모금 체계를 구축해 수많은 하원의원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공화당을 ‘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적 도구’로 삼겠다는 깅그리치의 비전을 열렬히 따르는 추종자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자신들의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깅그리치는 단순히 ‘공화당 혁명’을 이끈 것이 아니었다. 법적·경제적 현실에 완전히 적응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깅그리치가 만들어낸 정치 모델이 확산되자 하원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깅그리치의 시도는 그의 리더십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자금‧후보 네트워크의 등장은 의원들의 깅그리치 의존도를 줄였고, 그의 리더십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깅그리치를 ‘미국 정치의 로드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이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깅그리치보다 더 극우적이고 강경하게 보수 노선을 주장했다. 결국 ‘공화당 혁명’을 이끈 깅그리치는 자신을 하원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당내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 즉, 깅그리치는 당을 한층 더 극단적인 우파로 몰아가려는 공화당 내 반란 세력과 맞서야 했다.

부시의 ‘따뜻한 보수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2000년 대선 당시 부시는 ‘따뜻한 보수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신을 조지 H. W. 부시의 후계자가 아닌 로널드 레이건의 후계자로 홍보했는데, 그는 『뉴욕포스트』에서 ‘조지 W. 레이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시는 딕 체니를 부통령으로 내세워 우파 표심에 호소했다. 부시는 1기 행정부 동안 ‘소유의 사회’라는 국내 정책과 미국의 세계적 패권과 군사력, 가치의 적극적 재확립이라는 대외정책을 의제로 내세워 공화당의 주류와 우파를 하나로 모았다. 부시는 임기가 시작되면서 공화당 우파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부시 1기 행정부 동안 양 진영 모두가 공화당이 영구적으로 다수당을 유지하려는 꿈을 위해 노력했고, 이 통합은 그렇게 잘 유지되었다. 기업계가 오래도록 요구해온 법인세 감면 법안을 통과시켜 ‘1986년 이후 최대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단행해 기업계의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부시는 루스벨트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정치적으로 성공적인 1기 행정부를 보낸 인물로 남았다.
부시 2기 행정부에서는 당내 합의가 서서히 무너졌는데, 특히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이라크 전쟁, 이민 정책, 금융위기 대응을 둘러싼 갈등이 도화선이 되었다. 사회보장제도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전미제조업협회, 금융서비스포럼 등의 지지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사회보장제도 민영화를 월스트리트를 위한 특혜로 인식했다. 공화당 우파가 일관되게 지지했던 이라크 전쟁의 참담한 실패는 당 전체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켜 당의 분열은 가속화되었다. 이민 개혁 법안이 부결된 것은 공화당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공화당 의원 대부분은 대공황 수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기업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던 구제금융 법안을 반대했다.
구제금융이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동안, 공화당은 심각한 분열을 겪었다. 이제 당내 상당수 세력은 기존의 주요 후원자인 기업 단체들과 확연히 거리를 두었다. 공화당 우파는 상공회의소나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의 의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부시 2기 행정부가 겪은 고난이 성경의 ‘욥의 슬픔’에 비유한다면, 금융위기의 도래는 요한계시록에 쏟아진 재앙과 같았다. 부시는 이미 리더십이 크게 약화되어 임기만 채우는 ‘레임덕 대통령’에 불과했다. 대기업들의 선호와 충돌하는, 공화당의 완강한 토착주의 정서는 이민 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번번이 이를 좌절시켰다. 공화당 내 다수는 부시 행정부를 ‘가짜 보수주의’의 전형이라며 거부하고, 자신들을 ‘티파티 공화당’으로 재규정하며 더욱 강경한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코크 네트워크와 티파티 운동

코크 형제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미국 보수 우파에서 중요한 인물로 활동했다. 코크 형제는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화당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2012년 무렵에는 코크 형제가 이끄는 네트워크가 공화당 내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코크 네트워크의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1년 한 해에만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 밋 롬니를 지원하는 슈퍼팩, 오바마 헬스케어 반대 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했다. 2015년에는 ‘자유 파트너스 행동기금’을 설립해 정치 광고를 직접 집행했다. 코크 형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중요한 자본가 집단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극단적인 자유시장 정치세력을 지원했다. 그러나 코크 네트워크는 공화당의 부흥에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공화당의 입지는 더욱 주변으로 밀려났다.
부시 행정부의 붕괴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공화당은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리브랜딩하기 위해 당 밖의 사회운동인 티파티를 활용해 ‘자유시장 보수주의 정치’를 다시 정당화하고자 했다. 2009~2010년에 수천 개의 지역 티파티 그룹이 조직되었는데, 경제위기로 압류와 소득 감소가 심각하고 인종적으로 분리가 강한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들 티파티 그룹은 2009~2014년에 수천 건의 시위를 조직해 수백만 명의 참여자를 끌어모았다. 이 과정에서 티파티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반대를, 실패한 공화당의 투쟁에서 부활한 보수 운동의 과제로 리브랜딩했다. 티파티는 오바마의 헬스케어 개혁법을 막지는 못했지만, 보수주의를 부흥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로써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티파티는 당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정치세력이 등장했음을 보여주었고, 공화당이 자체적으로 부활하지 못하고 외부 세력에 의존하게 되어 공화당의 조직 역량과 쇠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불길한 신호가 되었다.

슈퍼팩과 ‘돈의 정치’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의 후원 조직을 구축한 정치 전략가 마크 해나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돈이고, 둘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정치에서 핵심은 정치자금이다. 2010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슈퍼팩’이 합법화되었는데, 이 슈퍼팩은 후보자 선거운동위원회나 정당과 직접 협력하지 않는 한, 기부자들에게서 무제한 자금을 받을 수 있는 독립 조직이 되었다. 이로써 완전히 새롭고 방대한 정치자금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미국 정당 쇠퇴의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정당은 후보자에게 선거운동 서비스(유권자 접촉, 메시지 조언, 모금 활동 등)를 제공하는 유일한 조직이 되었고, 이로 인해 ‘서비스 정당 모델’을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서비스 정당 모델’은 정당이 당의 방향을 결정하기보다는 후보자들의 선거 활동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제 슈퍼팩이 난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화당은 자금과 인력과 권력을 두고 슈퍼팩과 경쟁해야 했다. 이 변화는 2010년대 공화당의 정치적 성공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극심한 당내 갈등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특히 2012년 공화당 대선 예비경선에서 슈퍼팩들은 선거 구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2014년 중간선거에서는 94개의 단일 후보자 슈퍼팩이 활동했다. 2010~2016년에 공화당은 칼 로브가 이끄는 네트워크와 코크 형제가 이끄는 네트워크 사이에서 슈퍼팩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각축장이었다. 슈퍼팩과 그와 연계된 재단‧비영리단체 등의 급증은 보수 엘리트 내부의 정치적 분열을 보여주었다. 이 슈퍼팩의 성장으로 인해 2012년 대선은 정당들이 직접 지출한 금액보다 외부 단체들이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한 최초의 선거가 되었다. 2015년 초, 코크 형제는 2016년 대선에 9억 달러 가까이 지출할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지출 규모를 훨씬 넘어서며, 대선캠프 전체 지출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트럼프의 시대’는 몰락하지 않는다

미국 정치사에서 트럼프는 가장 충격적인 승리를 거머쥐었고, 미국 정치경제를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시대로 전환시켜놓았다.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어진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의 영향력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집권은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 정치 경험의 부재, 무례함, 극도로 혼란스러운 행정부 운영,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 등은 모두 대통령직의 기존 관례를 명백하게 벗어난 것이다. 트럼프는 정말 독특한 방식으로 실패하기도 했다. 오바마 헬스케어 폐지는 실패했고, 이민 통제 역시 의미 있는 새로운 입법을 이루지 못했다. 2019~2020년은 트럼프 자신이 자초한 각종 조사와 탄핵으로 얼룩졌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까지 치달았다가 결국 실패했다. 이것은 공화당에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트럼프에게는 새로운 ‘역사적인 오명’을 남겼다.
공화당 지도부가 분열되고 지지 기반과도 괴리된 상황에서 등장한 트럼프는 미국 정치에서 매우 드문 ‘개인 중심 정치’로 강력한 당 장악력을 이루어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의 정치에 반대하는 세력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특히 트럼프는 트위터를 이용해 반대파를 공개적으로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공화당 전국위원회 등 공화당 조직에 충성파를 심어놓았다. 트럼프 집권 1년 남짓인 2018년 초, 공화당원의 60퍼센트 정도가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 ‘트럼프 지지자’라고 여겼다. 미국 내 대부분 지역에서 공화당은 트럼프가 믿는 것을 믿고, 지지하는 것을 지지한다. 트럼프는 공화당에 대한 ‘개인 중심 정치’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를 비슷한 방식으로 통치하려다 뼈아픈 실패를 수차례 겪었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대통령이 정당들과 협상해야 하며, 행정명령은 사법부의 심사를 받는다. 방대한 연방 관료기구는 조직적인 통제가 필요한데, 트럼프는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정치는 당에 대한 성공적인 ‘개인 중심 정치’와 국가에 대한 실패한 ‘개인 중심 정치’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재편되었으며, 공화당 정치에서 전통적인 보수 이념은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과 그때그때 내놓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한 충성으로 대체되었다. 2016년 이후 공화당 내 전통적인 보수 이념은 트럼프의 ‘변덕’에 밀려났다. 뉴트 깅그리치는 “트럼프는 본질적으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반자유주의자다. 이 둘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내 평생 가장 효과적으로 자유주의를 뿌리째 뽑은 인물일 것이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공화당 내 혼란은 진행 중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대부분 보수 정치의 일관된 구도를 형성해온 힘은 이미 소진되었다. 이로 인해 2010년대보다 격렬한 당내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행정부보다 법치주의에 노골적인 경멸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경제개발위원회는 해리 트루먼 행정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경제개발위원회의 많은 회원이 행정부 내 여러 직책에 임명되어 “회원 보강을 위해 별도의 회의를 소집해야 할 정도”였다. 이 시기 경제개발위원회는 미국 정치경제 구조 형성에 몇 가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첫째, 미국의 세계적 역할과 관련해 의회에서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협정이 논의될 때 기업계의 지지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리 트루먼은 경제개발위원회가 “의심할 여지없이 브레턴우즈 법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칭찬했다. 뒤이어, 경제개발위원회는 마셜플랜을 위한 대중과 의회의 지지 확보에도 크게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외 냉전 전략 토대가 된 국가안전보장회의 각서 제68호(NSC-68)에 대한 지지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했다. 의회 내 보수파가 서유럽에 상시 주둔할 미국 군대의 재정 문제를 우려할 때, 경제개발위원회는 유럽 내 지출 확대와 한국의 6‧25 전쟁 예산 증액을 지지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힘썼다.
- 제1장 「기업의 해체와 분열」

공화당이 뉴딜 체제를 해체하는 데 헌신하는 정당으로 변화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어쨌든,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윌리엄 매킨리와 앤드루 멜런(Andrew Mellon) 시절 공화당에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2년 대선과 193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패하자, 당이 뉴딜에 대응하려면 루스벨트를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 결과, 뉴딜을 완전히 뒤엎기보다는 일부 조정하자는 ‘온건파’ 세력이 특히 대선 과정에서 30년간 당을 이끌었다. 실제로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승리 전까지는 보수파가 당내에서 주도권을 잡고 당을 재편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1930년대 이후 보수파는 온건파를 밀어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정당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들은 ‘서비스 정당 모델’을 구축했는데, 이 모델은 당이 직접 정책을 결정하기보다 후보자들에게 선거 지원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모델은 곧 민주당에도 도입되어 두 정당 모두 정당 본연의 힘이 점차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 제2장 「정당이 없는 시대」

1974년, 하원에서 민주당 개혁파 초선 의원들이 상임위원장들을 끌어내린 이른바 ‘민주당 반란’ 이후 공화당은 가장 과감하게 선임 우선 원칙을 벗어나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ston), 헨리 하이드(Henry Hyde), 토머스 블라일리(Thomas Bliley) 등을 상임위원장에 임명했다. 이들 3명은 모두 1994년 공화당 전국하원위원회를 위한 모금과 후보자에 대한 자금 분배에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 시스템은 “위원회 직위에 가격표가 붙은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에는 깅그리치와 공화당 전국하원위원회 위원장 존 린더(John Linder)가 각 소위원회 위원장들에게 10만 달러를 내지 않으면 위원장직을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기부금 납부를 미룬 한 의원은 침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깅그리치와 린더가 위원장직을 매관매직하려는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위원장직을 차지한다.”
- 제3장 「보수주의자들의 쿠데타」

  작가 소개

지은이 : 폴 하이드먼
미국 럿거스대학에서 미국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정당정치, 미국 좌파의 역사, 미국 사상사 등을 주로 연구하고 집필하며 가르친다. 『제3의 진영 사회주의(Third Camp Socialism)』(공저)‧『계급투쟁과 인종차별(Class Struggle and the Color Line)』 등을 집필했으며, 『재커빈(Jacobin)』‧『디센트(Dissent)』‧『인 디스 타임스(In These Times)』‧『카탈리스트(Catalyst)』 등 진보적 정치사회 잡지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으며,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이다.

  목차

추천의 글 ‧ 5

프롤로그 : 매카시와 트럼프의 극우 정치
매카시가 몰고 온 ‘반공 광풍’ ‧ 8 | ‘매카시 클리어링하우스’를 설립하다 ‧ 11 | ‘육군·매카시 청문회’와 매카시의 몰락 ‧ 14 | 대기업들이 트럼프를 반대한 이유 ‧ 16 | 공화당의 내부 갈등과 슈퍼팩의 등장 ‧ 20 | 구유에 몰려든 돼지들 ‧ 23 | 트럼프의 선동 정치 ‧ 26

chapter 1 : 기업의 해체와 분열
기업들이 조직화하지 못한 이유 ‧ 36 | 상공회의소와 전미제조업협회의 탄생 ‧ 39 | 행정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경제개발위원회 ‧ 42 | 기업과 노동조합의 싸움 ‧ 46 | 건설업계 반(反)인플레이션 라운드 테이블 ‧ 51 | 노동법 개혁 반대 캠페인은 ‘성전’ ‧ 56 | 상공회의소와 레이건 행정부의 ‘세금 전쟁’ ‧ 60 |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투는 분열된 집단 ‧ 64

chapter 2 : 정당이 없는 시대
이념적으로 모호한 정당들 ‧ 70 | 예비선거가 정당 약화에 미친 영향 ‧ 76 |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 분열 ‧ 80 |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잊힌 사람’ 연설 ‧ 83 |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체제 ‧ 86 | 민주당의 ‘정책적 자유주의’ ‧ 91 | ‘통킹만 결의안’과 ‘덤프 존슨’ 캠페인 ‧ 95 | 뉴폴리틱스 운동과 반(反)개혁 세력 ‧ 98 | 온건파와 보수파의 갈등 ‧ 104 | 아이젠하워의 ‘현대 공화당주의’ ‧ 111 | 온건파와 보수파의 불편한 동거 ‧ 116 | 연방선거자금법과 ‘서비스 정당 모델’ ‧ 123 | 정당은 약화되었다 ‧ 127

chapter 3 : 보수주의자들의 쿠데타
‘레이건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 134 | 돈이 정치를 좌우하는 시대 ‧ 139 | ‘깅그리치 후예들’의 반란 ‧ 145 | 의료개혁 반대 투쟁 ‧ 149 | 연방 예산 적자와 연방정부 셧다운 ‧ 155 | 사회복지개혁과 당파적 ‘앙심’ ‧ 159 |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다 ‧ 163 |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 ‧ 166 | 클린턴의 탄핵과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 171 | 담배세 전쟁 ‧ 175

chapter 4 : 따뜻한 보수주의
부시는 ‘조지 W. 레이건’ ‧ 183 | ‘부시 지수’와 ‘고어 지수’ ‧ 187 | 최대 규모의 법인세 감면 ‧ 190 |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규제를 무효화하다 ‧ 194 | 부시 대통령을 민주당으로 교체하자 ‧ 197 |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전쟁 ‧ 200 | ‘메이베리 마키아벨리’의 시대 ‧ 207 | 이민 개혁 법안과 히스팬더링 ‧ 212 | 금융위기와 주택담보대출 ‧ 217 | 미국 경제의 붕괴를 막다 ‧ 223

chapter 5 : 그림자 정당
매케인인가, 롬니인가? ‧ 231 | 우리는 탈레반과 같은 반란이 필요하다 ‧ 235 | 티파티의 반동 정치 ‧ 238 | ‘코크 세미나’와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 ‧ 244 | 칼 로브와 ‘프리덤스 워치’ ‧ 249 |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전면적 반대 전략’ ‧ 253 | 2010년은 당이 없어도 괜찮다 ‧ 257 | 티파티에 아첨하는 공화당 강경파 ‧ 262 | ‘미국의 미래 회복’과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 ‧ 269 | 부검 보고서 ‧ 274

chapter 6 : 공화당의 몰락과 트럼프의 등장
정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고 프로그램 ‧ 282 | ‘가장 미친놈’에게 투표하다 ‧ 286 | 트럼프의 승리, 힐러리의 패배 ‧ 292 | 반(反)주류 세력과 반(反)워싱턴 후보 ‧ 297 | ‘공화당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 ‧ 303 | 북미정상회담과 트럼프의 탄핵 ‧ 310 | 미국건강관리법과 ‘국경 조정세’ ‧ 315 | 트럼프의 ‘관세 전쟁’ ‧ 320 |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간 애국자들 ‧ 324 | ‘부정적 당파성’과 ‘당파적 적대감’ ‧ 328

에필로그 : 극우 정당의 미래
공화당의 분열과 민주당의 분열 ‧ 332 | 공화당을 더 오른쪽으로 ‧ 335 |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유층 ‧ 338 | 공화당의 ‘국가보수주의’ ‧ 341 | 누가 자유주의자를 분노하게 하는가? ‧ 344

주 ‧ 347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