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36년 전 말콤 C. 펜윅 선교사로 시작된 한국침례교회의 첫 발걸음과 믿음의 유산을 돌아본다. 35년 만에 총회 차원의 공식 역사서로 발간된 『새로 읽는 한국침례교회사』는 교단의 정체성과 오늘의 갈 길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책이다.
출판사 리뷰
136년 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말콤 C. 펜윅 선교사를 보내시어 한
국침례교회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이름 없이 헌신한 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씨앗이 되어, 오늘의 한국침례
교회는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연구가 쌓였고, 그 가운데
『대한기독교 침례회사』, 『한국침례교회의 산증인들』, 『한국침례교
인물사』, 『한국침례교회사』, 『말콤 C. 펜윅』, 『시대를 앞서간 말콤 펜
윅』, 『한국침례교회 100년의 향기』, 『신사참배 거부로 수난당한 침례
교 대표 32인』, 『한국침례교사상사』, 『침례교 선교의 발자취』 등 귀중
한 저술들과 각 교회 역사책들이 교단의 정체성을 밝혀주고 우리의
지난 과거를 조명해 주었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
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주며 내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번에 발간된 『새로 읽는 한국침례교회사』는 35년 만에 총회 차
원의 공식 역사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 교단 전체가 함께 세
워 온 믿음의 유산을 새롭게 확인하는 사건입니다.
서평
"새로읽는 한국침례교회사"는 교단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여 교단의 미래를 향한 정체성과 정통성을 계승하고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 교단 전체가 함께 세워져 온 믿음의 유산을 새롭게 확인하는 발걸음이된 것이다.
한국침례교회의 역사는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의 내한으로부터 시작된다. 펜윅은 초교파 독립선교사로 ‘오와리 마루호’(Owari Maru)라는 일본 증기선을 타고 1889년 12월 11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그는 부산에서 며칠 머문 후 육로로 서울을 향해 갔다. 펜윅은 아치발드 펜윅(1813-1868)과 바바라 라담(1823-1901) 사이의 7남 4녀 중 10번째 자녀로 1863년 캐나다 토론토 마캄(Markham)에서태어났다. 5살 때 아버지 아치발드가 세상을 떠나 펜윅은 경제적 어려
움으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도널드 매킨토시(Donald McIntosh) 목사의 가르침으로 건전하게 성장했다. 아치발드는 동네에서 평판이 좋았으며 바바라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녀들을 기독교 신앙과 경건한 삶으로 이끌었다. 매킨토시는 은퇴한 나이 많은 목사로 펜윅의 집에서 여러 해 유하며 신앙적 영향을 끼쳤다. 펜윅은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킨토시 목사님은 글래스고우 대학교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시를 외울 수 있었다. 그는 정말로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이러한 것에 있지 않았다. 비록 그는 공부를 많이 하고 지혜도 풍부하며, 문학적 능력도 뛰어났으나, 이런 것보다 겸손하고 꾸밈이 없으며, 어린이 같은 예수님의 제자였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펜윅은 한국 교인들에게 어린이 같은 겸손을 강조했는데, 이는 매킨토시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킨토시는 펜윅이 18세에 온타리오 프라이즈 모델농장(Prize Model Farm of Ontario)에 취직하여 마니토바라는 지역으로 갈 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당부했다. 이에 관해 펜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작별을 나는 기억하는데 왜냐하면 그 말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말콤아 기억해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그러면 너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많은 젊은이의 삶을 지켜보았는데, 인생의 내리막길로 가는 출발점은 안식일을 기억하는 일에 실패하면서부터였다.” 그 말은 나를 정규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했다. … 짧게 말하면 그 말은 이 땅에서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북미의 복음주의자들은 안식일 성수를 강조했다. 그들은 안식일의 신성함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기독교 문화와 교회를 이루는 기초라 했다. 매킨토시는 전형적인 복음주의자였고 그의 복음주의적 신앙은 어린 펜윅에게 깊이 영향 끼쳤다.
어머니의 신앙과 영성 역시 펜윅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펜윅은 가족을 떠나 마니토바에서 일하며 생활할 때, 어머니와 누이들의 신실한 신앙생활을 기억하며 죄악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온타리오 프라이즈 모델농장에서 3년간 일한 후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는 사고로 누워있었다. 펜윅이 얼마간 간호한 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등 뒤에서 “아들아, 너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기만 한다면, 나는 네가 아무리 멀리 떠나있어도 걱정이 없을 거야”라는 말이 들려왔다. 어머니의 간곡한 권면은 펜윅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진지하게 찾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긴 신앙적 고통을 경험했다. 펜윅은 당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그때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그분을 발견할 때까지 찾아 나
서기로 결심했다. 강한 확신이 들기까지 2년 동안 나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해 알고 들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예를 들면, 숲속에 혼자 있으면서 그분을 찾는가 하면, 밤새워 기도하거나, 그 외 모든 자기의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은 결국 절망감과 함께 포기하게 되었고,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고백했다. … 토론토의 어는 거리의 어떤 장소, 그곳은 이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나의 오랜 갈등의 날들 가운데 나의 왕 나의 구원자를 만났다. 내가 그분의 평화로운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가치가 없지만 나는 가치가 있다. 나는 네가 살 수 있게 하려고 죽었다.” 나는 그때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펜윅은 2년간 산기도와 철야기도를 비롯한 많은 방법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려 했다. 그러던 중 23세가 되던 1886년 토론토의 어떤 거리에서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며 회심을 경험했다. 펜윅은 어머니의 권면으로 회심했을 뿐만 아니라 재림 신앙도 물려받았다. 펜윅이 한국으로 떠날 때 어머니는 마지막 작별의 말을 했다: “내 아들아 괜찮다. …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며 작별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생활과 재림 신앙은 펜윅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렸다.
2. 나이아가라 사경회와 학생자원운동
펜윅은 회심 이후 1886년부터 나이아가라 사경회(Niagara Bible Conference)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신앙 체계를 세웠다. 본 사경회는 1884년을 제외하고 1883년부터 1897년까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22km 떨어진 나이아가라 호숫가에 있는 퀸스 로열(Queen’s Royal) 호텔에서 매년 여름 개최되었다. 나이아가라 사경회는 북미 신학교와 교회가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는 현상에 반대하여, 성경의 진실성과 보수 신앙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성인이 된 펜윅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경회는 성서주의, 세대주의, 경건주의, 세계복음화를 표방했는데, 그것은 사경회가 플리머스 형제회, 부흥주의, 케직 사경회로부터 영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도 상당히 보존하고 있었다. 펜윅은 나이아가라의 보수·근본주의 신학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펜윅은 회심 이후 막연히 해외선교사의 소명을 느꼈으나 거부했다. 그러던 중 1887년 7월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미국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의 창립회원이며 인도 선교사였던 로버트 윌더(Robert Wilder)가 해외선교의 긴급성을 호소했고, 펜윅은 그의 설교에 감동받아서 소명에 순종했다. 펜윅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용국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석사(M.Div)와 철학박사(Ph.D)를 취득했다. 1998년 3월부터 2002년 7월까지 한국성서대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2002년 8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학생실천처장, 출판부장, 기획실장,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학회 활동으로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편집위원장, 총무이사, 부회장, 회장을 역임했으며, 교단 사역으로 기독교한국침례회 역사연구회 부회장과 이단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사랑의교회(대전)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침례교사상사, 1889-1997』(2005), 『미국침례교회사』(2014), 『꿈의교회 120년사』(2016), 『세계침례교회사』(2020), 『침례교회사』(2024) 등의 단행본 이외에 역서들과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목차
발간사 | 이욥 목사 004
머리말 | 김용국 목사 006
제1장
한국침례교회의 시작(1889-1905)
기독교의 한국 전래 017
한국침례교회의 시작 022
말콤 펜윅의 신앙 배경과 내한 029
펜윅의 목사 안수와 엘라씽기념선교회 039
엘라씽기념선교회의 한국선교 047
펜윅의 한국순회선교회 설립과 엘라씽기념선교회 인수 066
스테드맨의 재방한과 충청도 상황 081
사진 논쟁 084
제2장
일제강점기 한국침례교회(1906-1944)
대한기독교회 시대(1906-1920) 095
교권 파동과 「포교계」 사건 124
전도인과 순교자들 133
펜윅의 성경 번역과 복음 찬미 141
동아기독교회 시대(1921-1932) 143
동아기독대 시대(1933-1939) 155
동아기독교 시대(1940-1944) 171
대한기독교회와 항일운동 179
제3장
교단의 재건과 남침례교회 한국선교 시대
(1945-1958)
8·15해방과 교단 재건 189
미국 남침례교회와의 제휴 192
남침례교 선교사들의 입국과 한국 적응 모습 215
구호사업 222
의료선교 228
전도와 교회개척 240
침례교 정체성의 주입 254
교회 부서와 총회 기관 설립 257
결론 및 평가 272
제4장
교단 분열 시대(1959-1968)
교단 분열의 배경과 원인 279
교단 분열의 과정 284
교단 분열의 결과와 평가 308
분열 이후 포항총회 313
분열 이후 대전총회 316
교단의 재통합 331
성령 운동과 교육 목회 334
제5장
한국침례회연맹총회 시대(1968-1975)
교회개척과 한미기금위원회 344
한미연합전도대회 345
총회의 상황 350
총회 기관 현황 353
김장환 목사와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359
제6장
기독교한국침례회 시대(1976-현재)
남침례교 선교부의 지원과 교단 부흥 368
한국 목회자들과 교단 부흥 376
오관석 목사와 하늘비전교회 377
김충기 목사와 강남중앙침례교회 382
김장환 목사와 수원중앙침례교회 388
이동원 목사와 지구촌교회 397
안희묵 목사와 꿈의교회 406
김성로 목사와 춘천한마음교회 412
호칭장로제 논쟁 416
여성목사 안수 논쟁 426
침례병원 문제 436
한국침례신학대학교 현황 447
그 외 기관들의 현황 459
맺는말 469
[부록 1] 역대 총회장과 총회 시대 구분 437
[부록 2] 한국침례교 순교자 명단 482
후주 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