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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조지 고든 바이런
1788년 1월 22일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빈축을 사 악명이 높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잭은 이런 바이런 집안의 전형적인 인물로 재혼을 한 후에도 다시 방탕한 생활을 하고서 가족을 버리고 프랑스로 도피해 거기서 비참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캐서린은 세 살 난 외아들 바이런을 데리고 그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애버딘(Aberdeen)으로 돌아갔다.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애버딘으로 가서 적은 수입으로 세를 얻어 살았던 그는, 절름발이라는 사실에 매우 민감했던 소년 시절에 애버딘 그래머 스쿨(Aberdeen Grammar School)에 다녔다. 그가 열 살 때 자식 없이 죽은 부도덕한 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작의 작위를 물려받아 ‘바이런 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큰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잉글랜드에 있는 본가인 뉴스테드(Newstead)로 돌아갔다. 변호사인 존 핸슨(John Hanson)의 도움으로 바이런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1799년 가을에 덜위치(Dulwich)에 있는 학교에 가기도 했다.1801년에 바이런은 해로 스쿨(Harrow School)에 입학했고 곧이어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데, 학창 시절 동안 학교 공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쓰고 소설과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또한 그는 선천적으로 불구인데도 운동을 좋아했고 술과 나쁜 친구와 천박한 여자들을 접하고 도박에도 손을 대 빚을 지는 등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휘그(Whig)당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1807년 여름 바이런은 그의 초기 시들을 묶어서 11월에 ≪덧없는 시편들(Fugitive Pieces)≫이라는 시집을 자비로 인쇄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에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시집 ≪한가한 시간(Hours of Idleness)≫을 정식 출간했다. 하지만 이 시집이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에 의해 혹평을 받자, 그는 1809년에 <영국의 시인들과 스코틀랜드의 비평가들(English Bards and Scotch Reviewers)>을 써서 비평가들을 통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해에 성년이 된 그는 1월에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귀족원의원이 되어 당시의 귀족 자제들의 관습에 따라 일찍부터 꿈꾸어 오던 유럽 대륙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포르투갈, 스페인, 몰타, 알바니아, 그리스, 콘스탄티노플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체험하고 문학적인 시야를 넓힌 후 1811년 7월 14일 런던으로 귀국했다. 1812년 2월 27일에 바이런은 상원의원으로서 첫 연설을 했으며, 3월 초에 출간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1·2편은 2년간에 걸친 그의 유럽 여행에 대한 기행문인 셈인데, 이 시에서 주인공인 차일드 해럴드는 동방 제국을 순례하면서 보고 체험했던 이국의 풍물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이 시는 바이런에게 “어느 날 아침에 깨어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뜻하지 않은 성공을 가져다주어서 미모의 청년 귀족 바이런이 휘그당 모임에서 명사 취급을 받도록 했으며, 영국 상류 사교계의 열렬한 갈채와 찬양을 받으며 여성들의 애모와 동경의 대상이 되어 그에게 무절제한 여성 편력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1813년에 ≪이단자(The Giaour)≫와 ≪아비도스의 신부(The Bride of Abydos)≫, 1814년에 ≪라라≫와 ≪해적(The Corsair)≫, 1815년에 ≪히브리 가곡(Hebrew Melodies)≫, 1816년에 ≪코린트의 포위(The Siege of Corinth)≫와 ≪파리지나(Parisina)≫ 등 수많은 걸작 시집들을 잇달아 출판하고 호평을 받았다. 바이런은 복잡했던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1814년 9월 앤 이저벨라 밀뱅크와 1815년 1월 2일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는 바이런의 가정적인 추문은 런던 사회 전체에 심각한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고 신랄한 비방을 자아내게 됨으로써 바이런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16년 4월 바이런은 이혼을 하고 유럽으로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의 도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했고,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유럽에서 지내는 도중 이탈리아 비밀 혁명 단체에 들어갔으며, 이탈리아인의 생활을 어느 때보다 가깝게 접하는 한편 신성동맹에 대한 반란 운동에도 참가했다. 그러면서 1816년과 1818년에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3·4편, 1816년에 ≪시용의 죄수 (The Prisoner of Chillon)≫, 1817년에 ≪베포(Beppo)≫와 시극 <맨프레드>, 1820년에 ≪단테의 예언(The Prophecy of Dante)≫과 ≪마리노 팔리에로(Marino Faliero)≫, 1821년에 ≪두 사람의 포스카리(The Two Foscari)≫와 시극 <카인(Cain)>, ≪심판의 계시(The Vision of Judgement)≫, 그리고 그의 필생의 대작인 ≪돈 주안≫을 1818년부터 1823년에 걸쳐 출간했다. 또한 시인 리 헌트(Leigh Hunt)를 계속 도왔고, 그가 편집하는 ≪리버럴(The Liberal)≫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그는 1823년 4월 런던에 있는 그리스 위원회로부터 터키에 대항해서 독립 전쟁을 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을 돕는 요원으로 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자유와 정의와 인류애를 위한 정치 운동에 정열을 불태우고자 했던 그는, 터키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그리스의 독립 운동을 돕고자 스스로 원군을 조직해 7월 16일에 그리스를 향해 출범했다. 하지만 그는 1824년 1월 그리스의 미솔롱기(Missolonghi)에 상륙한 후 그리스 독립군 최고 사령관이 되어 터키와의 전투를 기다리던 중 불운하게도 열병에 걸렸고, 의사가 고집한 사혈 요법으로 인해 병이 더 악화되어 그해 4월 19일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리스 전체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곧 그는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의 유해는 영국으로 옮겨졌으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 안치가 거부되어, 7월 16일에 뉴스테드와 가까운 한 교회 묘지의 집안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45년 뒤인 1969년에 그를 추도하는 기념비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세워졌다.
지은이 : 존 키츠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중 막내인 존 키츠는 1795년 10월 31일 영국의 런던 페이브먼트 로 무어필즈 24번지에서 마차 대여업자의 고용인인 아버지와 그 집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키츠는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었으며, 키가 다 컸을 때 154cm였을 정도로 작고 몸은 약했지만, 명랑하고 싸움도 잘하고 매우 남자다운 성향을 지녔으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일찍이 인간 삶의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그는 약제사 겸 외과의가 될 생각으로 학교를 마친 후 병원에서 견습생을 거쳐 의사와 약제사 면허를 받지만 문학에 심취해 개업을 포기하고 문학 서적을 읽으며 인간 삶의 고통과 우울, 그리고 이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사랑과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들을 쓰기 시작한다. 키츠에게 문학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막내가 될 초석을 닦은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첫 작품집 ≪시집(Poems)≫에 이어 ≪엔디미온(Endymion)≫을 출간하고,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시인이 된다.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스페인 광장 26번지(26 Piazza Di Spagna)에 방을 얻어 지내다가 1821년 2월 23일에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로마의 신교도 묘지에 묻히고 만다. 그의 묘비에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인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aumont)의 <필래스터(Philaster)>에서 따온 문구인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노라(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가 쓰여 있다.
지은이 : 퍼시 비시 셸리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상가. 급진적 정치관과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담은 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기존의 질서와 종교, 권위에 반대하는 급진적 사상을 가졌으며 시를 통해 인간 해방과 사회 정의를 역설했다.1814년과 1816년 메리 셸리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였고, 1816년 여행에서 돌아온 해 첫 번째 아내 해리엇이 자살한 후 메리와 결혼하였다. 두 여행의 기록을 엮은 이 책은 그가 여행하며 접한 유럽의 면면을 어떻게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그의 저서로는 《서풍의 노래》, 《사랑의 철학》, 《시인의 꿈》, 《셸리 산문집》 등이 있다. 언어의 음악성과 사상의 깊이를 결합한 그의 시는 낭만주의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즐거운 비애의 이야기-조지 고든 바이런
명성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느 젊은 처녀에게 바친 시
아름다운 퀘이커교도에게
캐롤라인에게
엠.에스.지.에게
음악을 위한 시
내 영혼이 어둡다
우는 당신을 보았소
아테네 소녀야, 우리 이별하기 전에
이별할 때
우리 둘이 이별하던 날
떠올리게 하지 마오, 떠올리게 하지 마오
우리 더는 방황하지 않으리
희망이 행복이라고 말들 하지만
한 개에게 바치는 비문
암흑
고국에서 싸울 자유가 없는 사내에게
세스토스에서 아비도스까지 수영 후에 지은 시
시용 성에 바치는 소네트
몰타에서 방명록에 남긴 시
토머스 무어에게
잘 있어라
이네즈에게
레만 호수
별들이여!
대양
사랑의 첫 키스
첫사랑
줄리아 부인의 편지
오늘부로 나는 서른여섯이다
그래 내가 묻히면 당신이 울어주겠소?
눈물
조화로운 광희-퍼시 비쉬 셸리
음악은, 은은한 음성이 사라져도
램프가 산산이 부서지면
음악
제인에게
사랑의 철학
인도풍의 세레나데
아랍 시에서 : 모작
좋은 밤
문제
시인의 꿈
충고
워즈워스에게
[콜리지]에게
플로렌스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메두사에 대하여
오지만디아스
노래 : “영국민들이여”
자유
서풍에 부치는 노래
가을 : 만가
구름
종달새에게
여름과 겨울
시든 제비꽃에 대하여
노래 : “어쩌다, 어쩌다 찾아오는 너”
무상
추억
지나가 버린 옛날
나폴리 근교에서 시름에 잠겨 쓴 시
저녁 : 피사의 알 마레 다리
비가
시간
밤에게
세상의 방랑자들
지성미 찬가
몽블랑
황금-혀의 로맨스-존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노래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프시케에게 바치는 노래
우울에 부치는 노래
희망에게
가을에게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
사람의 사계절
도시에서 오래 갇혀 지낸 이에게는
바다 위에서
내 동생 조지에게
오, 고독! 너와 내가 함께 살아야 한다면
오! 나는 맑은 여름날 저녁이 참 좋다
나에게 장미를 보내준 한 벗에게
여치와 귀뚜라미에 대해
날카롭게, 발작 난 돌풍이 속삭이고 있다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
앉아서 다시 한번 『리어왕』을 읽고
영국이면 행복하다! 나도 만족할 수 있다
바이런에게
잠에게
오늘 밤 내가 왜 웃었을까?
죽으면 어쩌나 두려워질 때면
죽음에 대하여
데이지의 노래
음산하게 캄캄한 십이월에도
내게 여자와 술과 코담배를 주게
인어 선술집에 관한 시
무정한 미녀
패니에게
밝은 별이여
조용, 조용히! 사뿐히 밟아요!
성 아그네스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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