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무너진 건물과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들의 사진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지금, 중동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참혹한 전쟁은 80여 년 전 런던의 밤하늘을 불태웠던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과 무섭도록 닮아 있다.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네 번째 장편 《올클리어》는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1940년 런던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전쟁의 스펙터클이나 승전국의 영웅담 대신 방공호와 잔해 속에서 서로를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춘다.
과거에 갇혀버린 세 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역사를 비극으로 바꿀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지옥 같은 밤을 견뎌낸다. 코니 윌리스는 이 거대한 서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압도적인 힘이나 영웅이 아니라 무고한 이들의 조용하고 평범한 희생과 연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 끝에 울려 퍼지는 안도와 구원의 사이렌, ‘올클리어(All Clear)’는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SF의 상상력으로 꿰뚫어 보며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인간의 마음을 만나게 한다.
출판사 리뷰
“포화 속에서 세상을 구원한 것은,
장군들이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킨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동시 수상작!
연일 들려오는 전쟁의 비극 속, 코니 윌리스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띄우는 가장 벅찬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무너진 건물과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들의 사진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중동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은, 80여 년 전 런던의 밤하늘을 불태웠던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과 무섭도록 닮아 있습니다.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네 번째 장편 《올클리어》는 바로 그 참혹한 전장의 한복판,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1940년의 런던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쟁의 스펙터클이나 승전국의 영웅담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가의 시선은 캄캄한 방공호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에게 차를 끓여주고 농담을 건네며, 무너진 잔해 속에서 이웃을 구출해 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합니다.
과거에 갇혀버린 세 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역사를 비극으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지옥 같은 밤을 견뎌냅니다. 코니 윌리스는 이 거대한 서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압도적인 힘이나 영웅이 아니라, 무고한 이들의 조용하고 평범한 희생과 연대”라는 사실을 벅찬 감동으로 증명해 냅니다.
연일 들려오는 전쟁의 비극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지금, 《올클리어》가 건네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신뢰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위로로 다가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기어이 모든 안개가 걷히고 울려 퍼지는 안도와 구원의 사이렌, ‘올클리어(All Clear)’.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SF의 상상력으로 꿰뚫어 본 이 위대한 걸작을 통해,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인간의 마음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한국어판은 지난 2019년 두 권으로 나눠 냈던 책의 7년 만의 합본판입니다.※
“기적의 여정이 이어진다. 코니 윌리스가 미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임을 또 증명했다.”
- <덴버 포스트>
★★★★★ 2011년 휴고상 수상
★★★★★ 2011년 네뷸러상 수상
★★★★★ 2011년 로커스상 수상
코니 윌리스의 기묘하고 감동적인 도약
드디어,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최신작 《올클리어》가 왔습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마지막처럼 보입니다. 속편의 법칙을 지나치게 잘 따랐기 때문이죠. 사실상 직전 작 《등화관제》와 같은 작품으로 보아야 할 《올클리어》는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크게, 가장 복잡하게 움직입니다. 코니 윌리스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해 “한계까지 몰아붙였다”고 자평하기까지 했죠.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플롯을 복잡하게 가져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코니 윌리스는 거짓말처럼 패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 활동을 잘하고 계시죠. 그러나 이 시간 여행 시리즈가 다시 돌아오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코니 윌리스는 대편성 교향곡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저글링하는 걸 즐기는 작가는 아니었으니까요.
《올클리어》를 읽어보면 한계까지 밀어붙였다는 작가 자신의 말이 진심처럼 느껴집니다. 단일 작품으로 엮을 수 있는 《등화관제》를 포함하면 이 소설은 한국어판으로 1,600페이지가 넘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시간 여행자들이 활동하는 주요 타임라인도 예전보다 늘어납니다. 1941년과 1944년은 이 소설의 배경 상으로 ‘현대’라 할 수 있는 2060년과 함께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며,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시간대들이 추가로 등장합니다. 같은 인물이 둘 이상의 시간대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아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등화관제》 때 말이죠. 그러나 《올클리어》에 도전하는 여러분들은 이미 그 혼란을 극복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다시 발생합니다. 다양한 시간대를 교차해가며 전개하는 이 소설의 플롯이 피할 수 없는 문제였죠. 지지부진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등화관제》에서 보셨다시피 갑자기 시간 ‘강하’의 편차가 너무 커진 1941년 또는 1944년의 런던으로는, 원하는 시간대에는 도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간 여행자는 1941년에, 또 어떤 시간 여행자는 1944년에, 또 어떤 시간 여행자는 1941년과 1944년에 모두 갇혀버렸죠. 1941년의 주인공들과 1944년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문제는 이 두 시간대 중에 한쪽이 뭔가를 발견했더라도 다른 쪽에게 전달할 방도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자는 한쪽 시간대의 인물들이 시간 여행에 얽힌 수수께끼를 어느 정도 벗겨낸 걸 본 다음, 거의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쪽 시간대의 인물들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올클리어》의 스토리는 느리게 흘러갑니다. 더 길고 더 느려진 소설이라면, 어떤 독자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래서 팬들 중에는 《올클리어》를 3분의 1 정도로 줄이면 더 좋은 소설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효율로 따지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플롯의 구조상 전개가 느릴 수밖에 없는 이 소설은 그 속도를 더욱 저하시키는 수많은 디테일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헌사를 허투루 넘기지 마십시오. 여기 나오는 모든 직종들이 소설 안에서도 활동합니다(추리 소설 작가도 진짜 나오냐고요? 애거서 크리스티가 ‘등장’합니다). 《올클리어》는 이 작은 영웅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서브플롯이라고 하기에는 본 스토리와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화들도 꽤 많습니다. 이것을 군더더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약 정말 군더더기라면, 효율적으로 단편소설을 쓸 줄 아는 코니 윌리스가 왜 이런 요소들을 남겨두었을까요.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요.
《올클리어》의 플롯을 그림처럼 떠올려 볼까요. 장편소설이라는 거대한 줄기에서 작은 단편과 엽편소설들이 가지처럼 뻗어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거죠. 거대한 줄기는 시간 여행자들의 이야기이고, 작은 가지들은 독일군의 공습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런던 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효율성을 위해서는 잔가지를 다 쳐내도 무방합니다. 《올클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시공 연속체의 수수께끼’는 이전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수준을 넘어섭니다. 이 발상의 전환에 얽힌 핵심 사건들만을 추리더라도 충분히(독자에 따라서는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보기 좋게 매끈한 통나무로 다듬는 거죠. 그게 일반적인 소설 작법입니다. 그런데 왜 코니 윌리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스스로 괴로워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작은 가지들이 거대한 줄기와 함께 한 그루의 나무를 구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의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범하고 대체로 선한 이들의 삶이라는 작은 가지들 말이죠. 이는 사실상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전체를, 혹은 코니 윌리스의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였습니다(코니 윌리스의 크리스마스 단편집 책 소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에서는 왜 이런 무고하고 선한 이들에게 고난이 주어지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즉, 구원이란 무엇이냐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한 단편 <화재감시원>의 주인공 바솔로뮤는 어째서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냐고 분노하죠. 여기서 던져진 질문은 다음 작품인 《둠스데이북》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성서의 수난극에서 형식을 빌어온 이 작품에서 시간 여행자와 그 주위 인물들은 예수의 행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의식하지는 못한 채로) 재현합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일종의 우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재현한 이는 예수가 아니었고, 따라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프로테스탄트적인 기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역사’는 정해져 있고, 숙명은 달라지지 않으며, 선한 이가 더 복을 받는 일도 없었습니다.
어째서 주님의 어린양들에게, 선한 작은 가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느냐는 신정론적인 질문은 그러나 《올클리어》에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합니다. 소설의 절반 정도가 지나면서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이 대전환은 스토리상으로도 소설의 핵심이며 감정의 동력입니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라도 《올클리어》를 읽으셔야 합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풀어놓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간단하게는 이야기를 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코니 윌리스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라는 세계를 지탱하는 시스템, 인격이나 의식을 갖추지 않았지만 4차원적인 권능을 갖춘 이 ‘시공 연속체’의 성격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의 몇몇 장면을 감안해볼 때, 코니 윌리스의 새로운 선택이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지는 명백해 보입니다. 이제 코니 윌리스는 소망하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이전까지는 인간의 소망을 무기력한 선함과 등치시켰던 코니 윌리스는 이제 거기서 과감하게 전진합니다. 왜 과감하냐면, 일견 너무 순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도 누군가가 말합니다. “증거는 없어요”라고 말이죠. 입증이 안 되는 선한 소망을 담은 가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죽고 나서 천국에 간다는 얘기나 다를 게 있나요? 그렇다면 《올클리어》가 과감하게 전개하는 세계관의 변화는 혹시 부질없는 시도는 아닐까요?
네, 부질없는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부질없음은 이 소설에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올클리어》는 모든 부질없고 작고 선한 사건과 인간들에 대한 헌사이며 추모이기 때문입니다(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헌사를 펼쳐 보시길 바랍니다). 신이 자리를 비운 우주에서 나약한 인간들이 고독하게 운명과 싸워야 했던 《둠즈데이북》을 넘어, 《올클리어》는 신이 부재중인 게 아니라 다만 지켜보고 있는 것뿐인지도(혹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만 개입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똑같지 않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한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가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애써 인내하고 인내하며 지켜보려면,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사랑이 필요하겠냐고 말입니다. 《올클리어》는 이 순진하고 순전한 의지를 비로소 드러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을, 작은 가지들을 다 살피고 그들이 흥하건 망하건 아껴주는 힘. 혹은 그런 힘이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게 되는 순간.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는 이렇게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추신: 사실 ‘이렇게 높이 날아오르며 끝났습니다’라고 쓰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제가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언급하지 않았음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 유쾌한 외전에서 제시된 수수께끼(혹은 떡밥)는 아직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비극-희극-비극(?)으로 이어진 이 시리즈의 전개상, 짠단짠단처럼 뭔가 되게 웃기고 행복한 작품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은 묘한 예감이 있습니다. 네? 아,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2019년, 김규림, 평론가
또 추신: 그런데 정말로 그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코니 윌리스가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신작, 《The Spanner in the Works》(2027년 출간 예정)를 들고 돌아온다는 소식입니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이번 신작은 비극과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던 《등화관제》나 《올클리어》와는 달리,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영적·분위기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유쾌한 소동극이 될 예정입니다.
주인공은 1980년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발자취를 쫓는 버스 투어에 참여했던 미국인 영문학 교수 브룩 베니슨입니다. 투어 일정이 옥스퍼드를 건너뛰기로 결정되자 잔뜩 화가 난 그녀는 틴턴 수도원 근처를 하이킹하다 우연히 시간 포털을 발견하고, 무려 2070년대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연구실로 ‘미래를 향해’ 튕겨 나갑니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절대 법칙을 깨버린 그녀로 인해 시공 연속체에는 거대한 오류, 말 그대로 ‘스패너 인 더 웍스(기계에 끼인 스패너)’가 발생하고 맙니다. 베테랑 시간 여행 역사가 아서가 그녀와 짝을 이뤄 시공간의 붕괴를 막으려 고군분투하지만, 이 골치 아픈 미국인 교수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 관광 기회’를 최대한 만끽하려 들 뿐입니다.
영문학에 바치는 러브레터이자 시간 물리학에 보내는 유쾌한 사과문이 될 이 작품은,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올클리어》의 거대한 감동을 맛보신 독자라면, 이제 기쁜 마음으로 옥스퍼드 시간 여행 연구소에 닥칠 다음번 대형 사고를 기다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코니 윌리스
1945년 12월 3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콘스탄스 일레인 트리머 윌리스다. 오랫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여러 잡지에 작품을 기고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982년 단편 <화재감시원>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화재감시원>을 표제로 한 단편집 《화재감시원》(1985)은 그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다. 첫 번째 장편 소설 《링컨의 꿈》(1987)으로 존 캠벨상을 받았고, 1992년에 발표한 《둠즈데이북》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은 물론 로커스상을 휩쓸었고, 1998년에 발표한 《개는 말할 것도 없고》로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SF 문학계에 코니 윌리스 전성시대의 문을 열었다. 12년 만에 발표한 《등화관제》(2010)과 《올클리어》(2010)로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시리즈의 모든 책이 휴고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장단편을 넘나드는 왕성한 작품 발표로 휴고상 11회, 네뷸러상 7회, 로커스상 12회 수상 등 역사상 가장 많은 메이저 SF 문학상을 받은 작가로 손꼽히며, 2009년 SF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2011년에는 그 모든 업적과 공로를 아울러, 역사상 28번째로 ‘그랜드 마스터상’을 받으며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크로스토크》(2016), 《로즈웰 가는 길》(2023) 등을 발표했고, 현재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후속작 《The Spanner in the Works》(2027년 출간 예정)를 집필 중이다.